1997년, 한국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가 대유행하던 시절, 여러 독자적인 규칙을 가진 유즈맵을 즐겨 했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이름은 바로 '터렛 디펜스'. 동료 플레이어들과 힘을 합쳐 수십 개의 터렛과 영웅의 특수 능력으로 적의 전진을 저지하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었다.
어떻게 타워를 배치해야 효과적으로 적을 막을 수 있는지 학습하는 시간은 짧은 반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때의 쾌감은 짜릿했다.
수비 진형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마치 방치형 게임처럼 자신이 구축한 방어선을 가만히 감상하는 여유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필자는 타워 디펜스 게임의 팬이 되었다.
타워 디펜스는 타 장르에 비해 무거운 연출이나 시스템 환경이 덜 필요한 만큼 소규모 인력으로 개발하기 용이했다. 이는 2000년대 웹·플래시 게임 서비스의 주축이 되어 마니아 유저층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스팀 플랫폼이 확장되면서 인기 타워 디펜스 게임들이 함께 상륙했고, 현재 필자가 즐기는 모든 디펜스 게임의 주력 플랫폼 역시 PC와 모바일이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스팀에서 서비스 중인 국산 타워 디펜스 게임을 소개하려 했으나, 상상 이상으로 그 수가 저조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분 무료화로 스팀 PC에 뛰어들었던 <가디언 크로니클>과 <프로젝트 랜타디>가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사실상 스팀에서 무료로 입문 가능한 국산 디펜스 게임은 전멸한 상태다.
타워 디펜스가 아닌 '디펜스' 비중이 높은 유료 게임만 추려도 그 숫자가 20개를 밑돌 정도로 적었다. 모바일 플랫폼과 비교해 스팀 PC에서 국산 타워 디펜스 게임의 성과가 낮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이에 필자는 현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디펜스 테마 게임 중, 스팀 유저 평가 100개 이상의 기록을 남긴 국산 게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 함께 지금의 한국 게임이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해 보자. /작성=유형권(게임 블로거), 편집=한지훈 기자

1. 던전 워페어 (Dungeon Warfare)
키워드: 2D / 레트로 / 전략 / 타워디펜스 / 탑뷰 / 던전
개발: Valsar
출시일: 2015년 11월 5일
가격: 9,900원
고정된 방어탑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활용하는 것이 타워 디펜스의 기본이라면, <던전 워페어>는 그 기본을 충실히 지킨 정통 타워 디펜스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필자의 탐색 결과, 정통 타워 디펜스로 스팀 누적 유저 평가 1,000개 이상을 받은 국산 게임은 <던전 워페어>가 유일했다. 출시일이 10년이 넘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뒤를 이은 개발자들의 작품 인기도가 저조하거나 퓨전 장르로 접근해 돌파를 시도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3편까지 시리즈를 이어가며 전작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지만, 아쉽게도 원작 이상의 평가와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다른 국산 게임과 비교해 타워 디펜스 계열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2. 래트로폴리스 (Ratropolis)
키워드: 2D / 전략 / 카드 / 디펜스 / 도시 경영 / 수인
개발: Cassel Games
출시일: 2020년 12월 22일
가격: 18,500원
<슬레이 더 스파이어> 흥행 이후 카드를 주축으로 한 덱빌딩 로그라이크가 우후죽순 등장했는데, 이 시스템을 디펜스 환경과 융합하려는 시도 끝에 <래트로폴리스>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정형화된 공략이 존재하는 타워 디펜스와 달리, 랜덤 이벤트와 카드 덱 조합이라는 우연성은 수비 전략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정적인 탑 대신 귀여운 동물 쥐를 활용한 연출도 유저들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사이드뷰 디펜스로 이름 있는 <킹덤 투 크라운즈>와 비교해도 카드를 통한 기지 전반 운영으로 차별점을 두며 고유의 매력을 살리는 데 성공했다. 현재 스팀에서 경험할 수 있는 국내 최고의 디펜스 게임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단, 로그라이크 시스템을 접목하는 과정에서 타워 디펜스 특유의 스테이지별 디자인이 준비된 것은 아니기에 한 판의 호흡이 비교적 길다는 점은 참고하자.
3. 나이트 오브 더 데드 (Night of the Dead)
키워드: 3D / 생존 / 액션 / 어드벤처 / 디펜스 / 오픈월드 / 좀비
개발: Jackto Studios
출시일: 2020년 8월 28일
가격: 32,000원
오픈월드 어드벤처 게임에 '생존' 키워드를 융합시킬 경우, 자연스레 의식주를 마련하거나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들어가게 된다.
<나이트 오브 더 데드>는 캐릭터의 장비나 스킬을 강화하는 방향뿐만 아니라 강력한 방호 능력이 있는 진지를 구축할 수 있어, 모험과 수비 요소를 모두 즐길 수 있는 퓨전 장르 게임이다.
사전에 적 공격 방향을 안내받고 수비 진지를 구축하는 타워 디펜스의 특징처럼, 디테일하진 않지만 캐릭터의 생존 날짜를 주기로 웨이브 공격이 몰려오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필자가 이 게임을 디펜스 키워드로 분류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모험과 수비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국산 스팀 게임은 필자가 아는 한 이 작품이 유일하며, 누적 유저 평가 수 역시 높은 수치를 자랑한다.
4. 브로큰 유니버스 (Broken Universe)
키워드: 2D / 전략 / 타워디펜스 / 탑뷰 / 수인 / 캐주얼
개발: Jinthree Studio
출시일: 2023년 2월 5일
가격: 9,500원
과거의 타워 디펜스는 퍼즐 게임에 비유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정된 아군 수비 대상, 반복적인 학습으로 알 수 있는 적의 유닛 구성과 이동 경로, 아군 타워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오직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 적의 존재는 '어느 위치에 타워를 건설해야 클리어할 수 있는지' 한정된 정답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브로큰 유니버스>는 수비 대상의 위치를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고, 타워의 능력을 이용한 지형 조작 및 적의 공세 방향을 유동적으로 변경하는 자유를 부여해 플레이어의 전략 폭을 넓혔다.
길을 막아 정면 대응을 할 수도 있고 타워를 직접 공격하는 적도 있어, 기존 게임과는 다른 방향으로 수비 효율을 고민하게 만든다.
5. 키친 크라이시스 (Kitchen Crisis)
키워드: 2D / 레트로 / 요리 / 타워디펜스 / 쿼터뷰 / 로그라이크
개발: Team Samoyed
출시일: 2024년 4월 3일
가격: 16,500원
타워 디펜스라고 하면 '다가오는 적을 공격해 쓰러트리는 게임'이라 생각하기 쉽다. <키친 크라이시스>는 외계인에게 음식을 제공해 살아남는다는 콘셉트로 요리와 타워 디펜스를 융합시켰다.
타워는 세워두기만 해도 적을 상대할 수 있지만, 요리는 재료와 도구 준비부터 신경 써야 하기에 수비를 위한 공간 배치를 구상하는 과정에 많은 변화가 요구된다.
여기에 스테이지 진행에 따른 보상이나 강화 선택 전반에 강한 무작위성이 부여된 만큼, 상시 새로운 전략을 추구해야 하는 독특한 디펜스 게임이 되었다.
6. 디펜던 (Defendun : Hero Defense)
키워드: 2D / 모바일 / 레트로 / 타워 디펜스 / 탑뷰
개발: MYMEStudio
출시일: 2024년 2월 14일
가격: 9,900원
과거의 타워 디펜스는 일정 이상의 적이 수비 대상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면 패배했다. 시간이 흐르고 연구가 이루어지며 '지킬 대상이 없어도 필드에 적이 일정 이상 쌓이면 패배'하거나 '주어진 시간 내에 적을 전멸시키지 못하면 패배'하는 방식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이는 보다 좁은 공간에서 디펜스 연출이 용이한 모바일게임 서비스로 이어졌다.
<디펜던> 역시 PC와 모바일 플랫폼 양쪽에 런칭하기 용이한 환경으로 구축된 사례다. 수려한 도트 그래픽으로 첫인상을 잡고, 적을 쓰러트릴 때 얻는 보상으로 캐릭터를 생성 및 조합해 성장하는 구조를 지녔다.
다만 다회차 진행 시 영구 강화를 통한 점진적 성장 시스템을 거의 지원하지 않으며, 한 판의 호흡이 긴 특징이 있어 유저 호불호가 높은 편이다.
7. 3분 영웅 (3 Minute Heroes)
키워드: 2D / 전략 / 타워디펜스 / 카드 / 사이드뷰 / 로그라이크
개발: Sinkhole Studio
출시일: 2020년 12월 3일
가격: 20,500원
타워 디펜스 게임은 공세에 대비할 준비 시간과 수비 시간을 각각의 턴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실시간 전략 디펜스도 존재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관리해야 할 타워 수가 많아져 숨 쉴 틈 없이 조작해야 할 정도로 체감 난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3분 영웅>은 이 문제를 카드 플레이를 통한 전장 개입 시스템으로 해결했다. 탑을 구매하거나 강화하기 위해 지형을 클릭해 별도의 UI를 띄울 필요 없이, 화면에 노출되어 있는 카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배치 및 강화 과정을 간소화했다.
사이드뷰 기반이라 복잡한 경로 침입이나 수비 전략을 생각할 필요 없이, 눈앞의 공방에 대응할 카드를 사용하면 되므로 입문자도 빠르게 적응하기 쉽다.
8. 폴리 타워 디펜스 (Poly TD)
키워드: 3D / 타워디펜스 / 탑뷰 / 로그라이크 / 중세 / 1인 개발
개발: Naroot
출시일: 2026년 1월 30일
가격: 8,900원
<스타크래프트> 및 <워크래프트>의 유즈맵을 통해 수많은 디펜스 게임이 등장했지만, 그중에서도 유저들의 높은 지지를 받은 방식은 '랜덤으로 캐릭터를 뽑고 조합해 성장하는' 디펜스였다.
<폴리 타워 디펜스>는 이들 게임 경험에 영구적 강화와 단계적 성장을 선택할 수 있는 로그라이크 시스템을 융합해 성장의 재미와 편의성을 넓혔다.
그 시도가 제법 성공적이었는지 앞서 출시한 다른 디펜스 게임과 비교해 국내 유저들의 관심을 많이 끌어모았다. 2026년에 출시해 서비스 중인 국산 스팀 디펜스 게임은 현재 <폴리 타워 디펜스>가 유일하다.
9. 리로드 (ReRoad)
키워드: 3D / 전략 / 타워디펜스 / 탑뷰 / 로그라이크 / 공상과학
개발: Rabbithole Games
출시일: 2020년 11월 18일
가격: 16,000원
앞서 언급한 <브로큰 유니버스>가 수비 대상과 길목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면, <리로드>는 미리 사용 가능한 타워가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로 적이 지나갈 길을 플레이어가 직접 드릴로 팔 수 있도록 세팅되었다.
가장 큰 특징은 전지적 시점이 아닌 캐릭터 시점에서 직접 조종해 뛰어다니며 타워 건설과 수리를 한다는 점이다.
한 번 뚫어둔 길목은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전까지 변경할 수 없으며 타워 고장을 유발하는 적도 등장한다. 효율적인 수비를 위해서는 타워 위치 배정은 물론, 수리를 위해 직접 뛰어다녀야 하는 캐릭터의 동선까지 신경 써야 한다.
10. 나티
키워드: 2D / 전략 / 타워 디펜스 / 탑뷰 / 수인 / 동양
개발: 4Days Lab Co., Ltd
출시일: 2023년 2월 16일
가격: 8,900원
꼭 타워를 통해 직접적으로 적의 전진을 저지할 필요는 없다. 병력을 자동적으로 생산해 길목에 배치하는 기능의 타워가 존재한다면 한층 전략적인 수비가 가능해질 것이고, 국산 게임 중에서는 <나티>를 통해 그런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디펜스 게임 중 한국 설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몇 안 되는 게임이라는 점도 특별한 매력 포인트다.
그 밖에도 <스켈 던전: 히어로즈 머스트 다이!>,<크림슨 커넥트 오리진>, <디펜스&메이킹>, <이세계 채광 디펜스> 등의 스팀 국산 디펜스 게임이 있지만 앞서 언급한 작품들에 비해 성적이 저조한 상황이다.
아직 2026년에 출시된 국산 디펜스 게임은 <폴리 타워 디펜스>뿐이지만, <마왕 마계 디펜스> 등 향후 출시 대기 중인 국산 게임들도 있다.
평소 디펜스 게임을 즐겨 했으나 아직 이런 국산 게임들의 존재를 몰랐던 유저가 있다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필자도 스팀 유저 평가가 1,000개 이상인 디펜스 게임을 여러 개 즐기는 중이다.
하지만, 국산 게임의 잠재력이 이들과 비교해 크게 뒤떨어진다고 느끼지 못했다. 홍보 미비로 인한 지명도 문제라면, 이렇게 언급할 기회가 있을 때 꼭 한 번 다루고 싶었다.
✍️ 유형권 - 게임 블로거
세상을 살며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는,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게임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으며, 게임 개발사에서 일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자유인으로 블로그를 포함해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