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무심코 메일함을 뒤적이다 낯선 발신인이 보낸 메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자신이 개발한 인디 게임 <파이어필드(Firefield)>를 소개하는 보도자료였다.
솔직히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첨부된 스크린샷만 봐서는 스팀에 흔히 쏟아지는 양산형 카피 게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발에 'AI를 적극 활용했다'는 문구를 확인했을 때는 권태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바로 아래 이어지는 한 줄이 기자의 시선을 단숨에 붙잡았다.
"게임 개발 경험이 전혀 없는 45세의 무경험자가, 단 3개월 동안 오직 AI가 작성한 코드로만 완성한 게임."
무심코 나직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방금 전까지 품었던 권태감은 순식간에 강렬한 호기심으로 뒤바뀌었다. 이 대담한 문장이 과연 사실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고민은 의문만 키울 뿐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곧바로 스팀을 켜고 게임을 실행했다.

# 기대 이상으로, '게임다웠다'
게임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1996년작 <디아블로>의 카피 게임이었다. 이글거리는 불꽃 위에 새겨진 게임 타이틀, 영어 폰트, 클래스 선택 화면, 그리고 아이소메트릭 시점에서 보이는 작은 마을과 캐릭터까지도. 차이가 있다면 기술의 발전으로 색감이 보다 선명해지고 UI가 조금 더 세련되게 바뀐 정도다.
▶ 흐린 눈으로 봐도 영락없는 <디아블로>의 카피 게임처럼 보인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인지, 튜토리얼과 메인 퀘스트가 제대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되레 기묘하게 다가왔다. 단축키를 눌러 인벤토리나 상태창, 스킬창을 열 수 있었고, 'WASD' 키로 캐릭터를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마을 장로에게 말을 걸어보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동자가 하나도 없는) 일러스트와 함께 AI로 생성된 음성이 세계관과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Rainz'라는 인물이 마법으로 위대한 왕을 살해한 이후, 그의 후손인 플레이어가 조상이 왕을 죽인 이유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곧장 장로의 부탁을 받고 실종된 주민을 찾으러 던전에 입성했다.
▶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모든 NPC들의 눈에 눈동자가 없다. 그나저나 얼굴이 누구를 많이 닮았는데…
던전에서는 익숙한 핵앤슬래시 스타일의 플레이가 이어졌다. 이 지점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게임은 상당히 '게임다웠다'. 몬스터를 처치하면 경험치를 얻고 레벨이 오르면 스탯 포인트를 투자해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호기심에 체력 스탯을 올려보니 HP 수치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것까지 구현되어 있었다.
가장 뜻밖이었던 건 그래픽이다. 전투 중 드롭된 아이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 구현되어 있었고, 심지어 착용한 장비에 따라 캐릭터의 외형이 달라지는 요소까지 존재했다. 매끄러운 조작감과 함께, 이 지점만큼은 <디아블로>보다 나은 부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스킬 역시 고유의 이펙트가 있었는데, 특정 장비에 붙은 스킬은 다소 이질적이긴 해도 꽤 화려한 연출을 보여주기도 했다.
▶ 게임의 전체적인 그래픽과는 맞지 않지만, 나름 화려한 스킬 연출도 있다.
던전에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도 다양했다. 거대한 쥐와 스켈레톤, 좀비처럼 흔히 보던 것들이긴 해도 HP 수치나 대미지 등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던전 2층부터는 <디아블로> 시리즈의 챔피언 몬스터와 거대한 보스 몬스터도 등장했다. 특히 보스 몬스터는 화면 중앙에 체력바도 표시되고 새로운 패턴도 보여주면서 나름 이름값을 했다.
여기까지 플레이하면서 다시 한 번 '게임다웠음'을 실감했고, 또 한번 놀랐다. AI를 활용했음은 의심을 넘어 확신의 영역까지 다달았지만, 나머지는 아니었다. 정말 이 정도의 퀄리티가 오직 AI만으로, 그것도 비전문가의 손에서 단 3개월 만에 나올 수 있을까. 확인이 필요했다.
▶ 물론 완벽한 게임은 절대 아니다. 포탈을 탔더니 맵 밖에 갇혀서 못 나올 뻔했다.
# "베테랑들이 피땀으로 쌓은 토대 잊어선 안 돼"… AI가 뒤집은 1인 개발의 시대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의문들을 꾹꾹 눌러담아 개발자에게 던졌다. 답변을 받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로브 오브 파이어(Robe of Fire)'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개발자 후지나가 나오키는 기자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기자의 질문과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을 정리했다.
Q. 게임 개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AI로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 첫 프로젝트의 장르로 <디아블로> 스타일의 아이소메트릭 ARPG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후지나가 나오키: AI만으로 만든 게임인 <코덱스 모르티스(Codex Mortis)>에 대한 기사를 읽은 것이 계기였다. 기사를 읽고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늘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한번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10대 때부터 거의 30년 동안 <디아블로> 시리즈와 <울티마 온라인>을 플레이해 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순간과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바로 그 세계 안에 있었다. 나와 같은 세대의 플레이어들이 그 감정을 다시 한번 느끼길 바랐고, 그것이 바로 이번 프로젝트의 장르로 <디아블로> 스타일의 아이소메트릭 ARPG를 선택한 이유다.
리처드 개리엇이 창조했던 것과 같은 세계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1997년 <울티마 온라인> 베타 시절, Rainz라는 플레이어가 파이어 필드 마법을 사용해 로드 브리티시를 암살한 사건이 있었다. MMO 역사에 남을 전설적인 순간이었는데, 그 광경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파이어필드'라는 제목은 바로 그 사건에 대한 오마주다.
▶ 유명한 <울티마 온라인>의 로드 브리티시 암살 사건.
Q. 게임 업계 경험이 전혀 없다고 했는데, 이전에는 어떤 분야에서 일했나? 과거의 업무 경험이나 지식이 AI에게 적절한 프롬프트를 내리고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하는 데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었나?
A. 현재 퍼스널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항상 육체적인 노동이었고 IT나 프로그래밍과는 전혀 무관했다. 게임은 항상 좋아했지만 어디까지나 플레이어로서만 즐겼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 직업적 지식이 AI 개발 작업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프로그래밍 지식도 없고 게임 업계의 관행이나 규칙에도 전혀 익숙하지 않다.
굳이 과거 경험 중 도움이 된 것을 하나 꼽자면 바로 '인내력'일 것이다. 과거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데, 그 과정을 통해 혹독한 훈련과 식단 관리를 이겨내며 나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그 경험을 통해 길러진 끈기가 이번 프로젝트 내내 AI와 수없이 소통해야 했던 나를 지탱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 끔찍했던 훈련과 감량 기간에 비해서도 지난 3개월간의 게임 개발이 더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가 이 일을 진심으로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Q. 유니티나 언리얼 같은 상용 게임 엔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초보자 입장에서는 튜토리얼이 많은 엔진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워 보일 수 있는데, 엔진 없이 게임을 구축한 이유가 무엇인가?
A. 앞서 언급했듯 내 배경은 항상 육체노동이었고 프로그래밍이나 게임 개발을 접해본 적이 없다.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3개월 안에 완성하겠다'는 명확한 데드라인을 세웠는데,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을 기초부터 배우는 데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아주 초기 단계부터 AI와 함께 내가 자유롭게 형태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을 구축하는 편이 더 빠르겠다고 느꼈다. 상용 엔진을 배우려면 보통 수십에서 수백 시간이 걸리지만, AI에게 원하는 메커니즘을 말하면 AI가 엔진에 해당하는 부분을 직접 작성해 준다. AI 시대 이전이라면 1인 개발자가 바닥부터 엔진을 만든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였겠지만, 이제는 AI가 '엔진을 배우는 비용'과 '엔진을 만드는 비용'의 역학 관계를 뒤집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게임 엔진을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나에게 딱 맞는 맵 에디터와 에셋 통합 워크플로우를 백지상태에서 구축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만을 위한 고유한 개발 흐름을 가졌던 것이 3개월 만에 게임을 완성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이었다고 본다.
Q. 단 한 줄의 직접 코딩 없이 12만 줄의 코드를 오직 AI로만 구현했다는 점이 놀랍다. 개발 과정에서 주로 어떤 AI 모델들을 사용했고, 전체적인 토큰 비용은 대략 어느 정도 들었나?
A. 이번 프로젝트에서 단 한 줄의 코드도 직접 쓰지 않았다. 모든 것은 AI를 통해 생성되었고 3개월에 걸쳐 축적되었다. 코드 생성에는 클로드 코드(Claude Code)를 사용했으며 모델은 주로 Opus를 사용하고 작업에 따라 Sonnet을 보조로 활용했다.
구독 비용의 경우 처음 2개월은 월 100달러인 Claude Max 5x 플랜을 썼고, 폴리싱과 버그 수정을 위해 AI 사용량을 대폭 늘린 마지막 1개월은 월 200달러인 Claude Max 20x 플랜을 이용했다. 결과적으로 총비용은 약 400달러, 한화로 약 56만 원 정도가 들었으며 이 예산 안에서 3개월간의 개발을 마칠 수 있었다.
정확한 총 토큰 수를 측정해보지는 못했지만 12만 줄의 생성된 코드와 더불어 토론, 수정, 디버깅, 기존 코드 재읽기 등을 포함해 누적 사용량은 대략 수천만에서 2억 토큰 정도에 달했을 것으로 AI가 추정했다. 일반적인 API 요금으로 환산했다면 수천 달러가 나왔겠지만 구독 플랜 덕분에 비용을 아꼈다.
코딩 외의 생산 작업에도 다양한 AI 서비스를 조합하여 활용했다. 이미지 생성에는 ChatGPT를, 비디오 생성에는 Kling AI를, 음악 생성에는 Suno AI를 도입했으며 사용 목적에 따라 다양한 로컬 AI 모델과 기타 추가 AI 도구들을 적절히 사용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12만 줄의 코드와 95개 언어 자막, 70개 언어 더빙, 100개의 도전 과제라는 전체 규모를 3개월간 약 400달러의 예산 안에서 해결해냈다.
▶ 이미지 출처: Unsplash
Q. AI는 긴 대화에서 문맥을 잊거나 할루시네이션을 일으키기 쉽다. 12만 줄에 달하는 방대한 코드가 꼬이지 않게 어떻게 관리했나? 또한 이러한 기술적 장애물을 극복하고 디버깅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A.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저 기능들을 하나씩 추가하기만 바빴고 첫 한 달 동안은 구조를 관리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첫 달이 끝날 무렵에는 제한 시간을 단 1~2시간 만에 다 써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AI의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작업 효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AI가 무언가를 수정하거나 추가할 때마다 모든 관련 데이터를 먼저 읽어야 하는데 코드베이스가 커질수록 읽어야 할 양이 많아져 생각하는 시간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중반에 이를 깨닫고 세 가지 해결책을 마련하여 대응했다. 우선 마법, 맵, 적 등 시스템 역할에 따라 파일을 깔끔하게 분리하여 AI가 주어진 작업에 관련된 특정 파일만 읽도록 만들었다. 이어서 프로젝트 전체에 걸쳐 유지되는 클로드 코드의 메모리 파일인 CLAUDE.md에 일종의 인덱스 디렉토리를 작성하여 특정 기능을 수정할 때 어떤 파일을 봐야 하는지 명시함으로써 AI가 불필요하게 파일을 검색하는 낭비를 없앴다.
마지막으로 개발이 계속되면서 버그 발생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최소 2주에 한 번, 혹은 1주일에 한 번씩 AI가 직접 전체 코드 구조를 정리하는 리팩토링을 수행하게 했다.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기 때문에 리팩토링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적으로 AI에게 맡겼는데, 개인적으로는 기초가 없는 땅에 탑을 쌓으면서 그 아래의 기초를 보강하는 작업 같다고 느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바로 이 '문맥과의 싸움'이었다. 여러 번 고쳤다고 생각한 버그가 실제로는 고쳐지지 않거나 초기에 정립한 규칙을 AI가 잊어버리고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코드를 작성하기도 했다.
지난 3개월 동안 이러한 문제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규칙 설정, 파일 분리, 리팩토링을 통해 구조적인 측면에서 다시 세우는 방법을 배운 것이 가장 큰 교훈이다.
Q. 게임을 하면서 무기나 장비의 외형, 보스의 디테일, 스킬 이펙트가 꽤 훌륭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그래픽 에셋과 시각 효과들도 모두 AI로 제작된 것인가? 아트 작업 과정에 대해 조금 공유해 줄 수 있나?
A. 그래픽의 경우 AI 생성과 오픈소스 라이선스 에셋을 조합하여 비주얼을 구축했다. 코드와는 달리 3개월이라는 한정된 기간 내에 필요한 아이소메트릭 애니메이션의 수와 현재 AI 이미지 생성 품질을 고려했을 때 모든 그래픽 에셋을 AI로만 생성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업은 먼저 AI에게 어떤 오픈소스 에셋들이 존재하는지 물어보는 것에서 시작했다. 게임 개발이 완전히 처음이었기에 애초에 라이선스 에셋 라이브러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는데, AI의 안내를 받아 이 프로젝트의 세계관에 맞는 에셋들만 선별해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기존 에셋으로는 표현할 수 없거나 이 게임만의 독특한 느낌을 살리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는 ChatGPT와 로컬 AI 이미지 생성 모델을 사용하여 직접 새로운 비주얼을 생성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AI가 단순한 생성 도구에 그치지 않고 초보자에게 어떤 오픈소스 자원이 존재하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내비게이터 역할도 한다는 점이다. AI 생성과 기존 에셋의 현명한 조합을 설계한 것이 코딩을 모르는 사람이 3개월 만에 플레이 가능한 형태로 게임을 완성할 수 있었던 현실적인 요인이었다.
Q. 1인 개발로 95개 언어 자막과 70개 언어 더빙을 지원한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다. 번역이 실용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전 세계 테스터들을 어떻게 모집하고 소통했나? 또한 음성 더빙에 주로 사용한 AI 서비스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원어민 테스터의 직접 검수는 주요 언어권으로 제한되었고 나머지 언어들은 번역을 생성했던 AI와는 다른 AI 모델을 사용해 크로스 체크를 진행했다. 테스터 모집은 주로 X(구 트위터), 유튜브, 그리고 프로젝트를 위해 개설한 디스코드 커뮤니티라는 세 가지 채널을 통해 유저들에게 연락을 취하며 진행했다.
게임의 기준 언어는 영어로 설정되어 있는데, 일본어 원어민으로서 먼저 내 눈과 일본인 테스터들의 눈을 통해 영어와 일본어 버전이 게임 텍스트로서 자연스럽게 읽히는지 철저히 검증했다. 그 후 몇몇 주요 언어권의 원어민 테스터들이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며 부자연스러운 번역이나 어색한 표현들을 짚어주도록 유도했다.
주요 언어들의 번역이 안정된 후에는 영어를 기반으로 파생된 나머지 언어들에 대해 기존 번역 생성에 쓰인 AI와는 다른 AI 모델을 사용하여 번역의 정확성, 문맥적 자연스러움, 게임 텍스트로서의 적합성을 검토했다.
내 목표는 이 모든 언어들을 게임 플레이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실용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전문 로컬라이제이션 회사의 엄격한 품질 보증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1인 개발자가 이 정도 규모의 다국어 지원을 시도조차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AI 시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음성 더빙을 위한 AI 서비스의 경우 서비스마다 지원하는 언어가 크게 달랐기 때문에 단일 서비스에 의존하기보다는 여러 AI 서비스를 조합하여 각 언어에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해 사용했다.
▶ <파이어필드>의 언어 지원 목록. 모두 AI를 활용해 제작 및 검수됐다.
Q. <디아블로> 스타일 ARPG의 핵심적인 재미는 아이템 드롭률, 스킬 데미지, 몬스터 체력 등의 수치 밸런싱에 크게 의존한다. 이러한 밸런싱 과정도 전적으로 AI에게 맡겼나, 아니면 끊임없는 플레이 테스트를 통해 직접 수치를 조정했나?
A.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두 단계로 접근했다. 첫 번째 단계는 AI 주도의 초기 설계였다. 게임 개발이나 밸런스 튜닝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세부적인 수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먼저 AI에게 <디아블로>를 비롯한 기존 ARPG 타이틀의 수치 설계에 대해 공개된 정보들을 폭넓게 조사하고 학습하게 했고, 이를 바탕으로 초기 밸런스의 뼈대를 조립했다. 적의 HP 범위, 드롭률 등급의 곡선, 스킬의 데미지 배율 같은 프레임워크의 대략적인 형태를 AI와 논의하고 틀을 함께 결정했다.
두 번째 단계는 테스터 피드백 기반의 반복적인 미세 조정이었다. 초기 구현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후 테스터들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게 하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수집했다. 보스가 너무 강하다거나 특정 스킬이 약하다는 의견, 혹은 특정 아이템이 너무 안 나온다는 피드백을 바탕으로 수치들을 조금씩 조정해 나갔다. 이 부분은 AI에게 위임할 수 없는 영역이었는데, ARPG의 최종적인 감각은 오직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프로젝트의 밸런스 설계는 AI에게 전적으로 맡긴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수천 시간 동안 플레이 테스트를 한 결과도 아니다. 오히려 AI는 데이터 연구 보조 역할을 했고 플레이 테스트를 통한 폴리싱 작업은 커뮤니티와 함께 수행한 셈이다.
솔직히 현재의 밸런스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콘텐츠가 확장될수록 이 밸런싱 작업이 가장 큰 난제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AI가 코드를 빠르게 확장시켜 줄 수는 있지만 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AI나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기에, 앞으로 디스코드 커뮤니티의 테스터들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며 이 밸런스를 함께 다듬어가고자 한다.
Q. 현재 멀티플레이 기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이 멀티플레이 모드와 앞으로의 모든 업데이트 역시 전적으로 AI를 통해 개발할 계획인가?
A. 그렇다. 향후 업데이트와 멀티플레이어 모드 구현 모두 계속해서 AI를 활용해 개발할 계획이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완전히 제로에서 시작했다. 프로그래밍이나 게임 개발 경험이 없었던 터라 출발선에 섰을 때는 불가능해 보이는 미지의 문제들을 수십 개 넘게 마주했다.
하지만 AI와 함께 그 문제들을 하나씩 극복해 나갔고 어떻게든 얼리 액세스로 출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게임은 결코 완성작이 아니며 여전히 개선해야 할 품질적인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멀티플레이나 온라인 기능 같은 것들도 비록 처음에는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AI와 함께 끈기 있게 파고들면 결코 넘지 못할 벽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멀티플레이어 구현에 필요한 모든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기술적으로 완벽히 파악하고 있지는 않지만, 서버 아키텍처나 동기화와 같은 필수 기술 분야에 대해 AI와 함께 사전 조사를 시작했으며 이제 본격적인 설계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개인적인 최종 목표는 <파이어필드>를 온라인 모드로 즐길 수 있는 ARPG로 완성하는 것이다. 과거 <디아블로>나 <울티마 온라인>을 플레이했던 분들이 이 게임을 접했을 때 지나간 옛 감성을 조용히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보람일 것이며, 그 목표를 향해 AI와 함께 계속해서 개발을 이어가고자 한다.

Q. 이 프로젝트를 하나의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직접 한계를 시험해 본 입장에서, 앞으로 AI가 인디 게임 시장과 1인 개발 생태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나?
A. 아마추어인 내가 이런 거시적인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주제넘은 일이다. 이 프로젝트는 결코 게임 개발의 성공 사례가 아니며 기껏해야 개인이 AI와 짝을 이루면 이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를 형태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초기 디딤돌 중 하나일 뿐이다. 또한 내가 답변 전반에서 언급한 AI 도구의 이름, 개발 방법론, 그리고 기술적인 용어들조차도 모두 개발 과정에서 AI로부터 배운 지식들이며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 점을 전제로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최근 몇 년간 AI가 이룩한 발전을 통해 우리는 인디 게임뿐만 아니라 개인 개발과 창업 전반에 걸쳐 큰 전환점에 진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기업 규모에서만 가능했던 도전들이 앞으로는 개인 규모에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해질 것이며 이 프로젝트는 그러한 변화의 조촐한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긴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내 경우에는 게임 개발 경험과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AI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것이 이상적인 형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년간 유니티나 언리얼 같은 상용 엔진을 다뤄온 분들은 AI를 보조 도구로 통합하고 있다.
나는 나처럼 AI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구축하는 경험과 기존 엔진 및 게임 개발의 기초 지식이라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들이야말로 앞으로 인디 게임 씬을 이끌어갈 가장 강력한 크리에이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업계 밖에서 이 세계로 뛰어든 사람으로서 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처럼 AI가 게임 창작을 '민주화(democratizing)'하는 과정에 있는 바로 이 순간에, 우리 같은 신규 진입자들이 베테랑 개발자들이 수십 년간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토대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AI가 게임 제작의 장벽을 낮출수록 앞서 길을 개척한 분들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적어도 나 개인적으로는 그 마음가짐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개발을 해나가고 싶다. 지난 3개월 동안 이 게임을 만들면서 다시 한번 마음속에 깊이 새기게 된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