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의 미스터리한 우주와 <더 씽>의 끈적거리고 기괴한 공포를 담아, 슈퍼매시브 게임즈의 옴니버스 시리즈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가 다섯 번째 타이틀 <디렉티브 8020>으로 돌아왔습니다. <맨 오브 메단>부터 <더 데빌 인 미>까지 지난 네 편이 첫 시즌이었고, 이번 타이틀로 두 번째 시즌의 포문을 열게 된 건데요.
이번 이야기는 식민지 개척함의 승무원들이 외계 생명체와 마주하며 겪는 우주에서의 공포를 다룹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캐릭터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 플레이 공식 안에서, 이번에는 과연 <언틸 던>의 영광을 되찾았을지 호기심을 안고 플레이해 봤습니다./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한지훈 기자

# 언리얼 엔진 5로 달라진 그래픽의 명암
먼저 전작들과 달리 언리얼 엔진 5를 활용한 비주얼은 확실히 한 단계 도약했습니다. 우주선의 금속 질감이나 조명은 고립된 함선의 서늘한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인물 피부 등의 디테일한 표현도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갈 곳 잃은 눈동자나 엉성한 움직임 등 전작들에서도 보였던 어설픈 모션은 여전하더라고요.
또 발매 당일 버전으로 전용 그래픽 카드 드라이버 업데이트까지 마치고 플레이했지만, 레이 트레이싱과 패스 트레이싱을 켜면 시스템 자원이 한참 여유로운데도 프레임이 곤두박질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작 그래픽에서 별다른 차이도 없고 오히려 뭉개져 보이는 현상까지 있었고요. 이 옵션들만 끄면 아주 원활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몹시 아쉬운 기술 버그였습니다.
▶ 언리얼 엔진 5로 조금 더 사실적인 그래픽이 됐다.
▶ 인물의 피부 표현과 표정은 훨씬 좋아졌다.
# 스트레스는 줄이고 편의성은 높인 '분기점'
이번 작에 새로 추가된 기능이자 개인적으로 무척 기대했던 '분기점' 시스템은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선택 직후는 물론이고 원할 때 언제든 분기점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위해 재시도할 수 있는 기능인데요. 캐릭터의 사망을 비롯한 주요 사건을 되돌릴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난이도 선택에 따라 기존처럼 엔딩 이후에만 되돌릴 수 있게 제한할 수도 있었습니다.
▶ 경로를 재선택 할 수 있는 '분기점' 시스템.
저는 아무 때나 되돌릴 수 있는 '탐험가' 난이도로 플레이해 봤는데요. 아무래도 분기점 시스템이 없을 때보다 조마조마함은 덜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선택을 실수로 하게 됐을 때 스트레스 없이 돌이킬 수 있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선택의 결과를 그대로 목격하는 재미도 있지만,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재미도 쏠쏠하니까요.
또한 원하는 선택이 아닐지라도 다른 결과가 궁금할 때 바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 유용했고, 수집 요소를 모으기 위한 시간선의 빠른 이동 역할도 해주어 훌륭한 편의 기능이었습니다. 이미 본 컷신을 스킵할 수만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 주요 분기에는 플레이어들의 선택 비율도 바로 표시된다.
# 능동적인 서사 참여와 괜찮은 초반 몰입감
다크 픽처스 시리즈의 특징이자 장점은 플레이어의 선택이 사건의 진행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에 맞는 운명을 만들어나간다는 데 있습니다. 이 또한 정해진 시나리오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기야 하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캐릭터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선택함으로써 능동적으로 게임의 서사에 참여하는 느낌을 주니까요.
이번 시리즈도 그 점을 잘 살려뒀고 전작들에 비해 부쩍 개연성을 높인 이야기로 몰입을 더합니다.
흥미를 끌어내는 지점이 비교적 빠르게 등장해 '재밌다'는 생각이 빌드업 없이 일찍 드는 것도 좋았고요. 안타깝게도 선택의 결과로든 이야기의 전개로든 클리셰가 난무하고 후반의 전개가 지지부진해 초반의 수준으로 흥미가 지속되진 않았지만, 제가 본 전원 생존 엔딩의 경우 모호하지 않고 깔끔해 뒷맛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번역도 몇 군데 어색한 오류가 종종 튀어나오긴 하지만 몰입을 심하게 해치는 정도는 아니었고요.
▶ 캐릭터의 특성과 운명을 결정짓는 선택지들.
▶ 내가 내린 선택으로 캐릭터가 완성되어 간다.
# 아쉬움만 남긴 플레이 메커니즘의 새 시도
이야기는 무난히 만족스러웠지만 플레이는 대단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번 게임에서는 기존의 이야기꾼 역할을 했던 큐레이터와 선택을 스포일러 하던 암시 시스템이 사라진 대신 몇 가지 새로운 것들이 추가됐습니다. 은신 이동을 한다든지 문을 열기 위해 전력을 복구하는 행동을 자주 하게 되는데요. 여러 조작을 도입해 감상 위주의 플레이에 변화를 주려 한 시도는 좋았지만,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번거롭게만 느껴졌습니다.
▶ 은신 이동으로 적을 피하는 구간이 거의 매 챕터 등장하는데, 매우 반복적이며 실패하면 캐릭터가 사망한다.
더 탐탁지 않은 건, 은신 중 발각되면 캐릭터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한 번의 탈출 기회가 주어져 실제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요. 연출을 위한 한두 번의 이벤트라면 모를까,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유니크한 선택의 결과가 아닌 반복적인 단순 액션의 결과를 주요 분기점으로 재차 설정한 건 다소 안일한 구성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탐험가 모드에서는 되돌리면 그만이라 위협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생존가 모드에서는 그저 허무한 죽음일 뿐이니까요.
▶ 스위치를 돌리거나 전지를 넣어 문을 여는 구간도 챕터마다 꼭 나오지만, 재미는 글쎄.
# 총평
<디렉티브 8020>은 시즌 1의 마무리가 서운했을 플레이어들을 달래줄 시즌 2의 나쁘지 않은 출발점입니다.
물론 서사와 플레이에서는 굵직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차세대 엔진으로 전환하며 발생한 기술적 버그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고요. 하지만 SF 호러의 서사를 기존 시리즈의 공식에 따라 준수하게 구현했고, 분기점 시스템으로 플레이어가 호기심과 수집 욕구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배려해 초반의 몰입을 이끌어내고 결말을 재밌게 감상할 수 있게 했습니다.
비록 이번 작으로 <언틸 던>의 아성을 뛰어넘진 못했지만, 캐릭터의 운명을 결정지으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주요 재미는 굳건하기에 다음을 기약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가치 있는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제가 남기는 기록이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