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 GTA'라는 별명과 함께 많은 기대를 모았던 <이환>(NTE: Neverness to Everness)이 지난주 수요일(4월 29일) 드디어 정식 출시됐다.
이 게임에 큰 기대를 건 사람들은 기자 외에도 많았다. 무려 3,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전예약을 했으니 말이다.
사실 이 3,500만 사전예약이라는 지표도 참 공교롭다. 지난 1월 <명일방주: 엔드필드> 출시 때도 같은 기록이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산 서브컬처 게임 중 기대작 반열에 드는 작품들이 최근 한 번씩 보여주고 있는 수치 중 하나다.
이러한 기대감은 오픈 첫날에도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아직 본편을 제대로 맛보지도 못했을 4월 29일, <이환> 오프라인 팝업 행사 현장 인근 상인들이 정상적인 영업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인파가 몰려, 민원이 속출하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예상한 것과는 조금 다른 결과물"이라는 반응이 은근히 들려온다. 이유가 무엇일까.
▲ 무려 3,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전예약을 한 <이환>이다.
▲ <이환>이 서비스를 시작한 4월 29일부터 5일 동안 진행된 첫 오프라인 팝업 이벤트 '이상 관리국 IN 홍대'는, 첫날인 4월 29일부터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아직 게임 콘텐츠를 제대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으니, 출시 전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이환>의 초기 트레일러가 공개됐던 당시 붙은 별명인 '서브컬처 GTA'처럼, <GTA> 시리즈의 폭력적인 맛까지 내줄 거라고 기대한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한다.(국내 심의 기준 <이환>은 12세 이용가다)
하지만 <원신>, <명조>가 각각 모바일 서브컬처 오픈월드 게임 시장의 1세대, 2세대로 불렸던 것처럼, <이환>이 3세대의 문을 열어주는 게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 사람들은 꽤 있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앞서 다른 게임들이 보여준 재미의 고점을 후발주자인 <이환>이 일정 수준까지는 충족시켜줘야 했던 상황이다.
이번 <이환>은 기술적으로도 콘텐츠의 다양성으로도 굉장한 게임임에는 분명하지만, 확실히 쐐기를 박는 수준의 한 방이 있었느냐고 하면 사람마다 의견이 조금 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게임이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을 꽃 피우려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왜 이 게임이 앞으로 더 잘 될 수 있는 '잠재력'은 확실히 느껴지는 걸까./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GTA>도 SCP도 <페르소나>도 아닌...<이환>은 <이환>
'기대'와 다른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무엇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는지를 먼저 짚어야 한다.
일단, <이환>은 퍼펙트 월드가 의도한 바와 의도가 아닌 경계 사이에서, 굉장히 많은 작품들과의 비교를 피할 수가 없는 게임이다.
이하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게임 내에서 의도적으로 오마주 및 인용을 하고 있는 연출과 분위기도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GTA> 이야기부터 하자면, <이환>에도 '범죄'라는 개념이 있기는 하다. 테스트 플레이 당시에도 있던 시민들의 차나 경찰차를 빼앗아 타는 등의 플레이가 가능하고, 수배도가 올라가면 감옥에도 수감되며, 탈옥 콘텐츠도 있다.
다만, 일반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가 굉장히 제한적이며, 부술 수 있는 오브젝트가 있긴 하지만 큰 변화를 주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범죄'의 다양성은 낮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이환>이 스토리와 설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주인공(감정사) 및 일행의 모습은, 기이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도시 안에서의 믿음직한 '해결사'에 가깝기 때문에, 범죄 플레이는 사이드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는 느낌이다.
또한 플레이어가 의도적으로 감옥에 가는 플레이를 지향하지 않는 한, 웬만해선 수배도가 오르는 경우가 잘 없어서, 범죄 및 감옥 콘텐츠를 전혀 접하지 않고 진행한 유저 후기도 많았다.
▲ 상식적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통칭 '이상' 현상과 '이상'을 다루는 자들로 인해 도시 곳곳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야기로 <이환>은 시작된다.
▲이러한 '이상' 현상과 이능력자들을 통제하는 집단도 여럿 등장한다.
▲ 비밀이 많은 주인공(감정사) 또한 이러한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을, '에이본'을 비롯한 여러 집단들과 함께 발을 맞추며 해결해주는 일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환>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이상' 현상을 다루는 방식은 새로웠을까?
개인적으로 도시 괴담 같은 소재를 잘 풀어낸 작품들을 재밌게 즐긴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이환>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보고 싶던 지점도 '이상' 현상과 '이능력자'들에 대한 묘사였다.
현대적인 풍경 안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현상들 그리고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집단이 있다는 설정을 들으면, 아마 기자와 같은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SCP'로 대표되는 여러 픽션과 설정들을 떠올릴 것이다.
<이환>의 오픈 초기 콘텐츠에선 게임 안의 여러 설정과 에피소드가 '이상' 현상에서 시작되고, 공간이 뒤엉키는 등의 특징적인 연출도 굉장히 자주 나오고는 있다.
이상 관리국이나 이상 헌터 등 여러 집단과 인물들의 배경도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다만, 미스터리를 다루는 게임을 많이 접한 사람들일수록, 아직은 <이환>이 이런 설정의 매력을 더 깊게 풀어내기 위한 시동을 거는 단계에 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 공간이 왜곡되는 연출이 꽤 자주 등장한다. 추후 이어질 콘텐츠에선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이런 연출에 깊이를 더할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이상' 현상(몬스터)도 처음 만나면 흥미로운 대상이 많았다. 다만, '이상'의 종류나 조우하는 방식은 더 다양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 보였다.
재밌게도 <이환>을 플레이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떠오른 작품은, <GTA>도 SCP도 아닌 <페르소나> 시리즈였다.
<이환>의 전투는 실시간 스위칭 액션 게임이니 <페르소나> 시리즈 특유의 턴제 전투와는 분명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상' 현상이 발생했을 때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취합하고, '이상 공간'에 들어가 해결하기도 하며, 캐릭터 사이의 호감도가 있고, 일상과 비일상적 사건 사이를 넘나드는 템포가 <페르소나> 시리즈(특히 <페르소나 5>)와 많이 닮았다.
<이환>의 장점인 '실제 도시 같은 공간'도 <페르소나> 같다는 인상을 주는 요인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다양한 상점과 거리가 있고, 사람들이 그 안에 거주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이 모든 풍경이 굉장히 '일본'스럽다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환>에서 <페르소나>의 맛을 기대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공간과 분위기의 향만 비슷할 뿐, <이환>은 <이환> 자체로 기능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개발진은 <이환>의 '헤테로 시티' 안에 자신들이 낼 수 있는 향을 다 넣어보려는 어려운 도전을 했다.
# 설정과 분위기는 좋지만 스토리 전개는 다듬을 필요가 있다

▲ <이환>의 특징적 연출 중 하나인 만화적 표현을 혼용한 방식들. 특히 '민트'(민트색 머리 여자 캐릭터)가 등장할 때 이러한 기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 이런 연출도 썼어요" 같은 느낌으로 다소 과장되게 나올 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정도의 연출까지는 좋았던 편이다.
<이환>을 플레이하다 보면, 개발진이 하고 싶었던 걸 전부 다 꾹꾹 눌러 넣은 작품 같다는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이러한 기조는 잡다한 연출부터 다양한 플레이 기능까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① 매력적일 수 있는 캐릭터들이 평면적으로 다가온 이유
주인공(감정사)은 '이상'의 존재 여부를 감지하거나, '오디티'(인간이 아닌 반려 또는 보조 역할을 하는 존재)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어떤 기이한 사건이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게 '이상' 현상 없이도 발생 가능한 것인지, 특정 물건, 장소, 인물에게 '이상'이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등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세계관에서 엄청난 능력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능력이 귀중하다는 것을 알아봐주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주인공의 과거 행적은 비밀스럽게 나오고, 감정 표현에 적극적인 편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 인물들의 반응에 다시 리액션으로 반응하는 구도로 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주변 인물들이 더 색채가 진하고 입체적이어야 주인공의 감정 묘사도 함께 깊이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에이본'의 동료들은 각자의 특징은 뚜렷하지만, 주인공과 만나기 전과 후에 성격적 차이를 보여주는 인물이 드물다.
조용한 분석가 '에드가'와 집사 같은 '아들러'는 시종일관 침착하고 친절하다. '사키리'와 '나나리'는 밝고 천방지축인 게 매력이지만, 초반 챕터에서는 이런 속성이 평면적으로만 그려지고, 그 이면의 모습들을 너무 늦게 보여준다.
알고 싶어질 만한 인물이 이면에 숨겨진 과거가 많은 '호토리'와 '다포딜'인데, 이들은 각자 숨기고 있는 비밀의 크기에 비해 주인공에게 심리적 거리를 두질 않는다. 큰 계기 없이 어느새 감정의 거리가 가까워져 있다는 느낌이다.
한 사람이 한 집단에 녹아드는 데엔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감정적 벽을 허무는 과정이 없거나, 너무 가볍게 다뤄지는 때가 꽤 많았다.
▲ '사키리'가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다. 말 안 듣고 툴툴 대는 꼬마처럼 그려지는데, 어느 시점부터 특별한 계기도 없이 그저 주인공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후에 사키리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도 진행 과정에서 등장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전달되는 호흡으로는 다소 늦은 시점이다.
▲ 에이본이 아닌 다른 집단도 마찬가지다. '라크리모사'는 매력적인 설정(박쥐로 변할 수 있다거나, 노곤한 말투,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모습)이 다 부여되어 있지만,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 있는 캐릭터다.
▲ '하니엘'이나 '민트'도 비슷한 결이다. 험난한 역경을 함께 이겨내거나, 이들이 감정적으로 나약해질 만한 계기가 등장해줘야 입체적인 면모를 드러낼 텐데, 사건의 크기가 캐릭터의 색채를 흔들어줄 만큼 크지는 못하다.
유저들이 마스코트 캐릭터 포지션으로 등장하는 '타기도'를 기피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아직 친해질 만큼 대단한 사건사고를 겪거나, 감정적 변화를 겪지 않았는데, 왜 그리 귀엽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타기도'의 연애를 위해 모두가 몸 바쳐 희생해야 하는가.
왜 '타기도'는 다른 인물들의 희생과 노력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만 있는가.(에피소드 말미에 가서 감사 인사를 짧게 하기는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계기나 감정적 요인이, 초반 빌드업 과정에서 훨씬 더 섬세하고 깊게 다뤄졌어야, 플레이어가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 '타기도'가 핵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2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은 상황이다.
② 왜 핵심 캐릭터보다 사이드 캐릭터가 더 매력적이었을까
사람마다 국가마다 이 장르를 구분하는 이름도 경계선도 다 다르지만, 미소녀 게임, 서브컬처 게임, 2차원 게임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캐릭터', '관계', '스토리'가 좋거나, 개발진이 이러한 요소들이 힘을 준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환>을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스토리텔링'이 좋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환>의 스토리 전달 방식엔 여러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일단 대사가 간결하질 못하다. 서사의 전개엔 큰 영향을 주지도 않을 묘사와 대사가 불필요하게 장황하고 긴 대사로 전달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종의 추리물로서 기능하고 있는 '이상' 현상의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은 다소 느리고 처지는 템포로 전달되고 있다.
▲ 메인과 사이드 스토리 모두, 현재 대사량의 절반으로 줄여도 아무 지장이 없을 정도다.
퍼펙트 월드가 한국 성우 캐스팅에도 공을 들여, <이환>의 꽤 많은 부분을 한국어 음성 지원을 해준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한국어 성우를 기준으로 '백장' 역에 심규혁 성우, '다포딜' 역에 이명호 성우 등을 쓴 것은, 최근 서브컬처 게임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도 '백장'과 '다포딜'이 메인으로 나온 스토리 구간이 서사적으로 유저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플레이를 기준으로 유저 경험에서는 다소 아쉽다. 대사 음성을 기준으로 문장의 8할까지는 들어야 다음 대사로 넘길 수 있는 느린 템포가 대표적이다.
▲ 백장
개인적으로도 '백장'이 등장해 식물로 변하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에피소드는 가장 흥미롭게 플레이한 구간이었다.
다만, 이렇게 몰입감을 준 에피소드들이 메인스토리가 아닌 번외 스토리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락 밴드를 결성해 '아카네'가 포기했던 꿈을 다시 되찾게 해주는 에피소드도 몇 안 되는 좋은 스토리였는데, 이 스토리도 번외 스토리였다.
게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아카네'는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아닌 NPC로만 등장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설정에 공을 많이 들인 캐릭터일수록 그 설정의 굴레에 갇혀 다소 평면적인 묘사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었고, 서사 안에서 감정의 기복이 다 드러난 캐릭터일수록 입체적으로 다가온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설정에 잠식되지 않거나, 캐릭터보다는 서사에 힘을 준 에피소드들(주로 사이드 스토리나 사이드 캐릭터)이 호평을 받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 작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아카네. 하지만 플레이어블이 아니다.

▲ 마녀의 집 NPC와 스토리 진행 중 잠시 등장하는 '레이븐'도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플레이어블은 아니다.
이러한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환>의 스토리와 설정에는 몇 가지 확실한 장점들이 있다.
일단, 도시에서 발생하는 이상 현상이라는 소재가 가진 잠재력이 크다. 현재 오픈 콘텐츠를 기준으로도 시간을 넘나드는 연출이 꽤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큰 희생을 대가로 치를 수밖에 없는 이야기 구성도 많이 나왔다.
다시 말해, 서사의 빌드업과 캐릭터의 매력 등이 잘 맞아 떨어지는 에피소드가 앞으로 등장하게 되면, <이환>이라는 게임의 잠재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또한 불필요한 고유 명사를 남발하거나, 터무니 없는 설정으로 빠지지 않은 점도 칭찬할 만하다.
다양한 이능력자와 이상 현상이 공존하고 있는 도시임에도, 주인공 일행이 이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방식은 '추리물'의 구성을 따르고 있는 것도, <이환> 세계관 나름의 법칙과 논리가 확실하게 있기 때문이다.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지금처럼 긴 대사와 음성 연기를 들어야 대사를 넘길 수 있는 방식만 해결하고, <이환> 특유의 경쾌하고 만화적인 연출만 더 적재적소에 활용한다면, 이어질 라이브서비스 과정에서는 호평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템포만 좀 더 끌어올리면서, 적당한 경쾌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소 평면적으로 전달됐던 캐릭터들도 이야기의 흐름이 더 굵직해지면 입체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 오타쿠들이 꾹꾹 눌러 담아 만든 '헤테로 시티'

<이환>을 플레이하다 보면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코 작지 않은 '헤테로 시티'의 면면을, 모두 심리스(로딩이나 경계 없이)로 구현한 것도 굉장하고, 이 공간을 XYZ축 모두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다는 것도 큰 강점이다.
▲ 바다 위를 가르는 열차를 타기도 하고
▲ 등반도 웬만해선 스태미나 제약에 큰 구애를 받지 않으며, 활공은 자유롭게 사용 가능하다.
▲ 해저 터널에서의 모습
▲ 높은 언덕 위에서의 캠핑장
▲ 해질녘의 모습. 처음 며칠은 도시를 둘러보는 것만 해도 재밌다. 먼 풍경의 표현, 광원의 묘사나 이동의 자유 등 오픈월드의 기술적 구현도는 정말 칭찬할 만하다.
이러한 공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매우 많은 편이다.
앞서 락 밴드 에피소드도 있다고 소개했던 것처럼 리듬게임도 있고, 카페 운영도 원격으로 단순화한 작업과 직접 조작하는 타이쿤 형태 조작도 있다. 낚시도 있고 마작도 있다.
도시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여러 행동들은 스토리 중에 사이드 퀘스트로 등장하거나, 직접 찾아가면서 경험해볼 수 있게 여지를 남겨둔 콘텐츠들도 있다.
▲ 낚시
▲ 리듬게임
▲ 심지어 캐릭터 뽑기 과정도 보드게임 형태로 되어 있으니, 미니게임으로 변주를 주는 데 얼마나 집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것으로 보이는 건, 레이싱(운전)과 하우징이다.
탈 것은 실제 현실의 차량들에서 디테일을 많이 따온 것으로 보이며, 도시의 공도를 달리는 몇몇 퀘스트나 콘텐츠는 <이니셜 D>를 의식하고 만든 게 단번에 보일 정도다.

하우징도 단순히 비싼 집을 구매한다거나, 공간을 여러 가구나 장식물로 꾸미는 것을 넘어, 캐릭터를 초대해 상호작용하는 기능이 여럿 마련된 것이 눈길을 끌었다.(참고로 차량에도 동승하는 기능이 있다)
개인적으로 다른 자유도가 높은 게임에서도 하우징 그 자체를 엄청 즐기는 타입은 아니긴 하지만, 자신의 공간에서 최애 캐릭터와 다채로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이환>의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 인연 레벨에 따라 할 수 있는 교류 행동도 늘어난다. 손 잡기, 셀카 찍기 등을 넘어서 귀를 파주는 것...도 있고, 포옹도 있다.(앞서 한 번 언급했지만 12세 이용가다) 최애 캐릭터가 생긴 사람들이라면 챙겨서 해볼 만한 요소들이다.
▲ 가위 바위 보! 이기면 딱밤을 때리기도 한다.
▲ 이런저런 스킨이 꽤 있는 것도 <이환>의 장점 중 하나다.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가진 강점을 일부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런 다채로운 콘텐츠가 도시의 생기를 잘 불어 넣어주느냐는 조금 다른 문제다.
일단 미니게임들의 경우 여러 종류를 넣은 노력은 참 좋지만, 오픈 콘텐츠 기준으로 아주 깊이 있는 콘텐츠는 적은 편이었다.
가령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레이싱 콘텐츠는 감속 조작을 잘 하지 않으면 코너링이 쉽지 않은 편인 다소 뻣뻣한 조작감이었다. 그러다 보니 레이싱은 아무래도 모바일보다는 PC 조작이 더 적합한 경향이 컸다.
또한 이러한 콘텐츠들이 처음에는 "이런 것도 구현했구나" 하며 신선하게 보이지만, 이내 변주보다는 반복의 구간에 들어서면 "부가적으로 있기는 있구나" 하는 감상에 그치게 되기도 했다.
앞으로의 업데이트 과정에서, 메인 스토리 외에도 이런 사이드 콘텐츠들도 모두 챙겨갈 수 있을 것인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 <좋은 커피, 위대한 커피>가 생각나기도 하는 <이환>의 점장 특제
▲ 콘텐츠 깊이가 아쉬운 부분들이 있긴 해도, 캐릭터 배치를 하면 실제 카페 공간에서도 볼 수 있는 등의 디테일은 좋았다.
메인스토리 외에도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이상 현상'과 이벤트들이 꽤 있는 편인데, 이 콘텐츠들 또한 이후에 다소 반복되는 점만 제외하면, 처음 마주할 때는 꽤 신선한 구간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해저에서 차량을 운전하다가 고래와 함께 이상 공간으로 빠져들어가는 연출 끝에 펼쳐진 보스전은 <이환>이라는 게임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콘텐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 고래와 진행하는 보스전
▲ 머리 없는 라이더 보스전도 마찬가지다. 이상 공간에 진입하는 방식이 인상적인 콘텐츠들이 아무래도 기억에 오래 남게 됐다.
<이환>의 전투는 최근 다른 서브컬처 게임들을 많이 즐겨본 사람들이라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스위칭 중심의 실시간 파티 액션이다. 회피, 반격이 있지만 타이밍도 여유로워 어렵지 않다.
최후반 콘텐츠 중 일부에 5분의 '시간 제한'이 있는 때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전투에선 대부분 시간 제한이 없는 것도 큰 강점이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스펙을 강제로 올려 딜로 찍어 누르는 방식만 정답으로 보는 게 아니라, 버프를 사용하거나 거리를 두며 스킬 쿨타임을 채우고, 힐을 사용하며 차근차근 딜을 넣는 방식도 허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성장이 전부가 아니라 실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여지가 꽤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 패러디의 경계는 어디인가...앞으로는 괜찮을까
앞서의 내용들을 종합하면, 불필요하게 긴 대사를 줄이고, 대사를 넘기는 템포를 빠르게 하면서, <이환>의 강점인 '이상 현상'에 대한 설정이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라 적었다.
도시 곳곳에서 즐길 수 있는 여러 콘텐츠도 모두 챙겨가며 업데이트를 하면 더더욱 좋겠지만, 일단 메인스토리에서 '호평'을 듣는 비율을 늘리는 게 급선무다.
스토리텔링에 있어 '연출'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이환>의 연출은 애니메이션이나 코믹스 같은 특유의 통통 튀고 과장된 면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오타쿠'들이 반응할 만한 온갖 패러디 요소들 다 넣은 점도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 <나루토>에서 이타치가 사스케의 이마에 손가락을 찍는 장면의 패러디
▲ <역전재판>의 패러디
위에 이미지와 함께 남긴 <나루토>나 <역전재판>의 패러디 외에도, <슬램덩크>의 하이파이브 장면의 패러디나 <포켓몬스터>의 "효과는 굉장했다" 같은 텍스트 연출 등도 <이환>의 인게임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는 작품들이 많은, 소위 오타쿠 경력이 긴 사람들일수록 더 재밌게 볼 수도 있는 연출들이지만, 동시에 이런 연출이 많으면 많을수록 해당 작품과의 연결고리 찾기나 비교를 피할 수 없게 된다는 단점도 뒤따라오게 된다.
가령 넓은 헤테로 시티의 공간 중 일부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을 비롯해 여러 애니메이션 속 명장면들의 배경이 되는 장면을 모티프로 따와 구현한 것이 눈길을 끌고, 이런 공간을 찾아다니는 유저들도 있다.
다만, 항상 이런 '패러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안전한 패러디는 어디까지인지 새삼 다시 짚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데, 창작자 당사자들끼리 서로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젠레스 존 제로> 로프넷 알림이 떠오르는 인터페이스의 베이글(<이환> 세계관 안에서의 SNS)
▲ <포켓몬> 또는 <디지몬>을 의식하고 만든 오디티 '프렌치프라이몬'
▲ 누가 봐도 <가면라이더>인 특촬물도 등장한다.
앞으로 이어질 업데이트 분량에서, 이러한 패러디 콘텐츠가 어느 정도 비중으로 얼마나 많이 등장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환> 세계관 안에서도 독창적인 요소를 내세울 요소가 많은 만큼, 핵심 구간에서는 오리지널 콘텐츠와 독창적인 연출이 더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기를 바라 본다.
이제 걸음마를 뗀 게임이니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지금의 장단점들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개선해나갈 것인지 주목되는 <이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