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거리는 태양이 하늘을 가리고 황색 해안이 금빛으로 시야를 물들일 때, 이성은 다시 무너집니다. 지난 2021년 <리터널>로 개인의 심연을 파고들었던 '하우스마크'는 또 한 번 코즈믹 호러를 자신들만의 색채로 새롭게 그려냈습니다.
<사로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각종 장치들로 난이도를 대폭 낮출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전작의 하드코어함이 많은 플레이어들을 좌절시켰기 때문이겠죠.
덕분에 전투에만 집중한다면 10시간 남짓에 모든 바이옴(생물군계)의 탐색을 마칠 수 있습니다. 로어를 수집하는 비중 또한 높은 게임이기에, 20시간에 걸쳐 꼼꼼하게 플레이하며 세계관을 파헤쳐 보았습니다./ 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한지훈 기자

# 이성이 무너지는 세계에서 진짜 무슨 얘기에요
이번 작품의 무대는 불가해한 일식이 거듭되는 행성 '카르코사'입니다. 크툴루 신화와 떼어 놓을 수 없는 '황색 옷의 왕'이 지배하는 공포의 고대 도시와 같은 이름이죠.
이름부터 불길한 이곳에서 주인공 '아르준'은 미지의 힘에 의해 변해가는 동료들과 냉담한 AI의 지원 속에서, 이전 조사대였던 연인을 찾아 나섭니다.
이번 타이틀은 동료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진행되기에 초반 상황을 파악하기는 한결 수월합니다.
하지만 플레이가 깊어질수록 인물 간의 관계는 더 혼란스러워지고, 모호한 대사들은 끊임없이 궁금증을 증폭시킵니다. 진 엔딩에 도달했음에도 모든 미스터리가 시원하게 해소되지는 않았고요,
▶ 시작하자마자 추궁받는 주인공. 진짜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
▶ 온갖 기록들을 수집해 봐도 이야기의 퍼즐이 잘 맞춰지진 않았다.
# 온몸의 감각으로 만나는 '카르코사'
모호하게 얽힌 서사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제가 확실하게 체감한 플레이 경험으로 바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플레이 내내 가장 먼저 와닿은 것은 <리터널>에서도 호평받았던 '듀얼센스'의 탁월한 활용이었습니다.
햅틱 피드백의 질감도 훌륭하지만, 트리거 작동을 섬세하게 설계해 컨트롤러를 조작하는 맛을 극대화했습니다. 오른쪽 트리거는 기본 사격을 담당하고, 왼쪽 트리거의 압력에 따라 발사 방식이 달라집니다.
왼쪽 트리거를 누르지 않으면 일반 사격, 반쯤 누르면 보조 사격 모드, 깊게 누르면 묵직한 장력과 함께 강력한 동력 무기가 나가는 방식입니다. 손가락 끝의 감각만으로 세 가지 무기 모드를 오가는 시스템은 처음엔 낯설 수 있지만, 적응하고 나면 특유의 쫀득한 손맛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청각적인 설계에서도 세심함이 돋보입니다. 상황별 음악 볼륨은 물론, 베이스와 트레블 밸런스까지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는 사운드 옵션은 개발진이 '전투의 고양감'과 '탐험의 적막함' 사이의 균형을 얼마나 고심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유저의 취향껏 다듬어 즐길 수 있는 배려도 놓치지 않으면서 말이죠.
시각적인 완성도 역시 뛰어납니다. 처음 진입하는 순간 압도되는 바이옴별 비주얼을 PS5 노멀 버전에서도 디테일 저하나 프레임 드롭 없이 부드럽게 구현해 내어 플레이 내내 눈이 즐거웠습니다.
▶ 무기마다 다른 보조 사격 모드는 슈팅만으로도 재밌지만, 트리거를 반쯤 누르는 감각도 기분이 좋다.
▶ 주 무기들보다 강력한 동력 무기는 트리거를 길게 누르면 장전할 수 있다.
# 속도감과 다채로운 탄막 전술의 조화
<사로스>의 액션은 산뜻하고 가벼운 조작감을 바탕으로 합니다. 기본 이동 속도가 빠르고 점프와 회피의 연계가 매끄러워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답답함이 없습니다. 타이밍에 맞춰 발사 키를 누르는 '완벽 재장전' 시스템은 전투의 템포를 끌어올리고, 무한 탄약을 제공해 자원 관리의 스트레스 대신 탄막 대응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다만 무기 간의 밸런스가 완벽하지 않아 모든 무기가 고르게 쓰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4단계로 조절 가능한 조준 보정 시스템과 다양한 유도탄 및 자동 조준 무기들이 마련되어 있어, 컨트롤러 슈팅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도 무난하게 전투를 즐길 수 있습니다.
탄막 대응은 전작보다 한층 적극적이고 전술적인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탄막은 카르코사의 토양을 닮은 주황색 소형 탄과 파랑, 노랑, 빨강의 대형 탄으로 나뉩니다. 주황색은 단순히 피해야 할 위험 요소지만, 나머지 색상의 탄막은 역으로 전술적 자원이 됩니다.
파란색은 보호막을 켜고 맞으면 흡수가 돼 동력 무기를 쓰는 에너지로 바뀌고, 노란색은 일정 시간 내구도의 최대치까지 떨어뜨립니다. 빨간색은 대시로도 피격되지 않고 통과할 수 없지만 쳐내기로 적을 경직시키는 게 가능하죠. 이후 근접 공격으로 다가가 큰 피해를 줄 수도 있고요.
이러한 시스템이 자칫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게임 내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학습하게끔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한 보호막, 쳐내기, 근접 공격의 조작 키가 동일해 적응이 무척 쉽습니다. 단순히 탄막을 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다방면으로 활용하여 전투의 깊이를 더한 점은 큰 호평을 주고 싶습니다.
▶ 굉장히 디테일한 사운드 옵션을 제공한다.

▶ 파란색 탄막은 보호막을 활성화한 상태에서 맞아 흡수할 수 있다.
▶ 빨간색 탄막은 가장 위험하지만, 쳐내기를 통해 적에게 반격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 반복의 피로는 줄이고, 성장의 밀도는 높이고
전투 액션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로그라이크 장르의 성패는 '반복되는 주기를 얼마나 지루하지 않게 설계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로스>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 딜레마를 영리하게 풀어냈는데요.
첫째, 반복의 피로도를 대폭 줄였습니다. 이미 클리어한 지역은 리플레이를 강제하지 않아, 죽을 때마다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을 덜어냈습니다. 물론 스킵한 만큼 한 번의 런에서 얻을 수 있는 성장 기회도 줄어듭니다.
원한다면 이전 지역부터 다시 플레이할 수도 있지만, 개발진은 두 번째 해결책으로 레벨 디자인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맞췄습니다. 한두 구역만 꼼꼼히 탐색해도 보스 클리어에 무리가 없는 스펙을 갖출 수 있는데요.
챌린지 구역이나 열쇠 방 등 능력치와 패시브를 강화할 기회가 넉넉하게 주어집니다. 진행도에 따라 새로운 탐색 능력이 해금되므로, 구석구석 살피면 더욱 빠르고 쾌적한 성장이 가능하고요.
또한 '숙련도' 시스템을 통해 짧은 구간 안에서도 긴장감과 효율을 동시에 챙겼습니다. 적을 처치하고 얻는 '루서나이트'는 영구적인 성장의 재화이자, 숙련도 레벨을 올려 더 좋은 특성이 붙은 고레벨 무기를 획득할 확률을 높여줍니다. 피격당하지 않고 연속으로 수집하면 일시적인 강화 버프까지 제공하고요.
▶ 지역마다 포털로 바로 진입할 수 있어, 클리어한 지역을 억지로 반복할 필요가 없다.
▶ 적을 처치하고 얻는 '루서나이트' 파밍이 성장의 핵심이다.
▶ 숙련도와 같은 레벨의 무기가 드롭된다. 숙련도는 루서나이트를 모으면 높아진다.
#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구제책들
그렇다고 해도 반복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에 결국은 지치게 마련인데, 다행히 다음 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적절한 난이도 밸런스도 잊지 않았습니다.
내구도에 영향을 주는 '활력', 동력 흡수와 직결되는 '지휘력', 앞서 언급한 숙련도에 관여하는 '추진력'까지 세 가지 핵심 스탯은 반복 플레이를 통해 차곡차곡 누적됩니다. 이처럼 영구적인 성장이 계속 뒷받침되고 원하는 지역부터 시작할 수 있어, 여타 로그라이크 게임들에 비해 체감 난이도는 확실히 낮은 편입니다.
여기에 사망을 한 번 무효화해 주는 '세컨드 찬스' 시스템은 플레이의 부담을 크게 덜어줍니다. 이를 소진하더라도 게임 내 어려운 도전을 극복해 다시 충전할 수 있고요.
더 나아가 '카르코사 변이'는 보호와 시련으로 나뉜 변이 효과를 활성화 해 난이도 밸런스를 맞추는 기능으로, 옵션에서 부작용을 끄고 이로운 효과만 활성화할 수도 있어 난이도 때문에 고통받는다면 확실한 치트키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 세 가지 주 스탯을 중심으로 영구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 '카르코사 변이'로 게임의 규칙을 유리하게 바꿀 수 있으며, 옵션에서 부작용 제한을 푸는 것도 가능하다.
# 총평
<사로스>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가슴이 뻥 뚫리는 개운함이나 엄청난 성취감이 밀려오지는 않았습니다. 전작에 비해 순해진 난이도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건의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실루엣만 남기고 멈춰 섰기 때문입니다.
안도감과 깨달음 대신 갈증을 남기는 서사 방식은 게임을 계속 붙잡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진 엔딩을 보고 나서도 어딘가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진실을 끊임없이 유예하는 연출과, 모을수록 도리어 미궁에 빠지는 서사의 파편들은 분명 유저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릴 만한 요소입니다. 플레이 측면에서도 판을 완전히 뒤집는 '사기 빌드'를 완성하는 쾌감보다는 안정적이고 성실한 수치 강화에 치중되어 있어, 로그라이크 장르에서 흔히 기대하는 변칙적인 재미는 덜한 편이고요. 등장하는 적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수려한 비주얼로 빚어낸 미지의 코즈믹 호러, 광기 어린 반복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지게 만드는 정교한 액션과 성장 메커니즘은 하우스마크가 자신들의 장기를 더욱 예리하게 다듬어냈음을 증명합니다.
매운맛을 조금 덜어내 더 많은 플레이어에게 매혹적인 세계로의 초대장을 건넸고요. 로그라이크와 탄막 슈팅이라는 장르의 하드코어함 때문에 아직 주저하고 계신다면, 이제는 부담을 내려놓고 그 초대에 기꺼이 응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가치 있는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제가 남기는 기록이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