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었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인 2017년, 세계 최대의 오프라인 게임쇼라 불렸던 E3에서 <라스트 나이트(Last Night)>라는 게임의 트레일러 영상이 공개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투박한 2D 픽셀 그래픽과 정교한 3D 그래픽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특출난 비주얼로 순식간에 기대작으로 등극했었다.
지금이야 별다른 후속 소식이 없어 사실상 베이퍼웨어로 남는 분위기지만, 당시 영상을 시청했던 이들이라면 2D 픽셀의 한계를 뛰어넘는 듯했던 그 수준 높은 비주얼을 분명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베이퍼웨어의 늪에 빠진 <라스트 나이트>에 대한 사람들의 아쉬움은 짙어졌고, 이내 기억 속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대체하기라도 하듯, 2D 픽셀 그래픽의 극한에 도전하는 또 다른 게임이 나타났다. 원래대로라면 진작에 출시됐어야 할 게임이지만,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재난을 겪으며 이제서야 간신히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2D와 3D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픽셀 그래픽을 자랑하는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게임, <리플레이스드(Replaced)>. 과연 이 작품은 그 경이로운 비주얼만큼이나 흥미로운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할까? /작성=쿠타르크(블로거), 편집=한지훈 기자

# 한 컷의 예술이 된 디스토피아
<리플레이스드>는 거대 기업의 지배를 받는 가상의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뜻하지 않게 인간의 몸에 깃든 인공지능 'R.E.A.C.H'를 조종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한편, 미국을 지배하는 거대 기업 피닉스 코퍼레이션의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초고성능 인공지능과 전투 장비로 대표되는 최첨단 기술력, 그리고 1980년대 미국의 추억을 자극하는 레트로 감성이 융합된 기묘한 세계관,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몸에 빙의해 활동한다는 설정은 수많은 게이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2D와 3D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고품질의 픽셀 그래픽이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으며, 느리고 무거운 우울한 음악이 세계관에 깊이를 더한다.
►최첨단 기술력과 1980년대 미국의 레트로 감성이 공존하는 기묘한 세계관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의 몸에 깃들었다. 이 자를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게임을 평가할 때 그래픽이나 비주얼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편이지만, 이 게임만큼은 비주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시각적인 측면에서 남다른 면모를 뽐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2D와 3D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소위 '2.5D 그래픽'은 그 어떤 게임보다 감각적이고 혁신적이다. 아무 장면이나 캡처해도 그대로 절경이 되며, 한참 플레이하다가 잠시 멈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특히 폐기물로 가득한 역이나 거대한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옥상 같은 장소는, 당장이라도 월페이퍼 엔진에 담아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여기에 게임 진행에 맞춰 자동으로 조절되는 카메라 워크 또한 일품이다. 캐릭터의 이동에 따라 화면이 확대되거나 축소되고 카메라 구도가 살짝 바뀌기도 하는데, 이 과정이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렇듯 비주얼에 엄청난 공을 들인 덕분에 게임의 세계관과 각종 설정도 자연스레 설득력을 얻는다.
1980년대라는 과거의 시간대와 사이버펑크라는 공상과학의 만남은 자칫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크고 작은 건축물과 다양한 도구, 빛의 변화 등 자잘한 디테일을 정교하게 살려낸 특출난 비주얼 하나만으로 상당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비주얼만 놓고 본다면 100점 만점에 120점을 줘도 전혀 아깝지 않다.
►아무 장면이나 찍어도 월페이퍼 엔진에 담을 만한 절경이 나온다.
►가장 감각적인 픽셀 그래픽을 선보이는 게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완벽한 비주얼, 그렇지 못한 게임성
비주얼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게임이지만, 안타깝게도 게임성이 그 완벽한 비주얼을 따라가지 못한다. 전반적으로 게임의 무대가 매우 넓은 편인데, 그만큼 이동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동선이 길게 늘어져 있는 데다 상호작용 가능한 오브젝트조차 적다. 단순히 이동만 할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구간이 너무 많다.
게다가 주인공 R.E.A.C.H의 기본 움직임도 빠르지 않은데, 사다리를 타거나 물건을 옮길 때는 그 움직임이 한층 더 둔해진다. 다시 말해 게임의 속도감이 지나치게 느리고 밀도 역시 턱없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니 게임의 템포가 축 처질 수밖에 없고, 직접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진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동하고 사물을 조작하는 데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게임이라 해도 무방하다.
가시성과 시인성도 좋지 못하다. 사이버펑크를 소재로 한 게임답게 전반적인 색감이 다소 어두운 편인데, 이 때문인지 나아갈 길을 찾기가 은근히 까다롭다.
특히 어딘가에 매달리거나 무언가를 타고 올라가는 구간에서 이 문제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상호작용해야 할 오브젝트들이 배경과 동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유심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길인지 아닌지 파악조차 쉽지 않다. 사실상 게임 디자인이 플레이어에게 적대적으로 설계된 수준이며, 화려한 비주얼을 위해 쾌적한 게임 플레이를 희생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다회차 플레이를 위한 편의성마저 부족하다. 멀티 엔딩 게임은 아니지만 각종 업그레이드와 수집품, 음악 트랙 등 수집 요소가 존재해 어느 정도 다회차의 여지를 남겨둔 작품이다. 하지만 막상 챕터 선택이나 대화 스킵 같은 기본적인 기능이 없어 2회차 플레이가 매우 불편하다.
►무의미하다 싶을 만큼 동선이 길다. 정말이지 이동하다 시간이 다 간다.
►보이는 것과 다르게 게임의 밀도가 너무 떨어진다. 그만큼 게임의 템포는 처지기 마련이다.
전투 역시 잘 만들어졌다고 보긴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치 벽을 때리는 것 같아 굉장히 답답하다.
우선 주인공의 기본 무기가 총임에도, 원거리 사격은 제약이 심해 마음껏 쓸 수가 없다. 결국 근접전의 비중이 비약적으로 커지게 되는데, 보통 한 번의 전투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함에도 타겟팅 기능이 없어 그저 눈앞에 있는 적만 때리게 된다.
결국 되는 대로 공격 버튼을 마구 눌러 아무 적이나 때리다가 적의 공격을 적당히 피하거나 받아치는, 지극히 단순한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적의 조합이 다양해질 때 더 심각해진다. 이를테면 단단한 장갑을 두른 덩치 큰 적이 앞을 막고, 원거리에서 사격해 오는 적이 함께 등장하면 전투가 굉장히 피곤해진다.
전투 시 주인공의 움직임이 묘하게 굼떠서 원하는 대로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으며, 분명히 회피했는데도 반격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는 등 버그에 가까운 현상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확실히 스타일리시함과는 거리가 먼데,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휘두르기도 까다로운 애매한 전투 양상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텐션을 끌어올려야 할 전투가 오히려 벽을 때리는 양 갑갑하게 다가오고, 스토리 진행을 위해 억지로 치러야 하는 숙제처럼 느껴진다. 다시 말해 전투가 게임의 재미에 마땅히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확실히 스타일리시함과는 거리가 먼데,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휘두르기도 까다로운 애매한 전투 양상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텐션을 끌어올려야 할 전투가 오히려 벽을 때리는 양 갑갑하게 다가오고, 스토리 진행을 위해 억지로 치러야 하는 숙제처럼 느껴진다. 다시 말해 전투가 게임의 재미에 마땅히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가까이 있는 적을 단박에 제압하는 처형신 하나만큼은 볼 맛이 난다. 적마다 처형 모션이 달라 감상하는 재미는 확실하며, 이 연출만큼은 충분히 스타일리시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처형신 하나만으로 전투가 재밌다고 포장하기에는 여전히 많이 모자라지만 말이다.
►스타일리시함과는 거리가 먼데,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휘두르기도 쉽지 않은 애매한 전투 양상
►처형신 하나만큼은 꽤 멋지다. 물론 이것만으로 전투가 재밌다고 보긴 힘들다.
그래도 스토리만큼은 나름 일관된 흐름을 잃지 않는다. 처음 인간의 몸에 깃들어 인간의 개념과 행동이 낯선 인공지능 'R.E.A.C.H'의 언행부터, 본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한 험난한 여정, 다양한 인간 군상과의 만남을 통한 깨달음, 그리고 스스로 찾은 해답을 실현해 내는 과정까지. '인간성'이라는 묵직한 주제 의식을 인간의 몸을 차지한 인공지능이라는 주인공을 매개로 뚜렷하게 풀어나간다.
일부 조연의 확고한 캐릭터성이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기도 하고, 중후반부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설정을 절묘하게 비튼 충격적인 반전이 드러나는 등 스토리 자체는 꽤 흥미롭게 전개된다. 제대로 해소하지 않은 채 어물쩍 넘어가려는 떡밥과 복선 탓에 구성이 살짝 난잡한 감이 있긴 하지만, 최소한 스토리의 핵심 줄기만큼은 초지일관 잘 유지하는 모습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게임의 템포가 워낙 느리고 처지다 보니, 이것이 스토리 몰입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플레이어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증폭시킬 만한 결정적인 장면이 등장하더라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감정선이 원활하게 이어지지 못한다.
더 쉽게 말해, 기껏 끌어올린 감정이 먼 거리를 이동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며 다시금 짜게 식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면 제아무리 감동적인 스토리라 하더라도 그 여운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동선을 과감히 생략하는 맵 디자인 센스의 부재가 뼈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인간이 아닌 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성. 그렇게 인공지능은 인간을 이해해 나간다.
►게임의 템포가 너무 처지니 막상 중요한 장면에서 감정선이 원활히 이어지질 못한다.
# 평가는 냉정히
한 가지, 게임 외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리플레이스드>의 개발사 새드캣 스튜디오는 본디 우크라이나 국적의 개발자들이 주축을 이룬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를 직격으로 맞았고, 그로 인해 개발이 지연되며 출시일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또 미뤄졌다. 원래대로라면 2022년에 진작 세상에 나왔어야 할 게임이 전쟁으로 인해 수년이나 연기된 것이다. 인류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재난을 지나오며 마침내 게임을 완성해 낸 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할 만하다.
물론 그와 별개로 게임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 할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어지러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성을 깨닫는 이야기를 담은 이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게임은, '역대급'이라는 수사가 어울릴 만한 특출난 비주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밀도가 떨어지는 맵 디자인과 템포가 처지는 게임 플레이 탓에, 유저들의 기대치를 충족할 만한 게임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제아무리 비주얼이 좋다 한들 알맹이가 꽉 차 있지 못하다면 마땅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작품 역시 겉은 화려하나 속은 부실한 게임의 전형적인 사례로 남을 것 같다.
그래도 2D와 3D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비주얼은 분명 감상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며, '인간과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스토리는 한 번쯤 깊게 고민해 볼 만한 여지를 남긴다.
순수한 '재미'의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울지라도, 시각적인 예술성이나 서사의 깊이를 추구하는 게이머라면 나름 만족스러운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그 감동에 도달하기 위해 마땅히 치러야 할 굼뜬 이동과 탐험, 갑갑한 전투는 다소 피곤한 과제처럼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2014년부터 10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