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붉은사막>과 <프래그마타>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나는 오랜 기다림 끝에 출시된 펄어비스의 대작이고, 다른 하나는 캡콤이 선보일 완전 신규 IP죠.
겉으로만 보면 두 작품은 꽤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세계관도 다르고, 전투의 감각도 다르고, 게임이 강조하는 경험도 다릅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두 게임은 의외로 꽤 비슷한 측면도 많습니다. 두 작품이 출시 전후에 마주한 ‘공통된 질문’도 마찬가지죠.
플레이어의 목소리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이용자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만 성공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의외로 이 자명한 사실을 잘 지키는 개발사는 많지 않습니다.
여론 반전에 성공한 <붉은사막>과 낯선 메커니즘을 어필하는 데 성공한 <프래그마타>의 예시를 통해, “이용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기자가 직접 대본을 쓰고 녹음을 한 영상이 디스이즈게임 유튜브 채널에 어제(15일) 먼저 올라갔습니다. 영상으로 시청해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1. 다사다난했던 두 작품, 캡콤과 펄어비스의 다른 선택
2020년 6월, 캡콤은 <프래그마타>의 첫 티저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몸에 맞지도 않는 큰 파란색 외투를 걸친 맨발의 소녀 ‘다이애나’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게이머들이 기대감을 품었죠.
캡콤은 자체 엔진인 RE 엔진으로 개발 중이며, 2022년 발매 예정인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첫 영상 공개 당시 전투 비주얼은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차세대 하드웨어를 겨냥한 캡콤의 ‘완전 신규 IP’라는 점이 강조됐죠.
▲ 2020년 6월에 올라왔던 트레일러입니다.
하지만 2022년 출시 예정이라던 게임은, 몇 차례의 연기를 거치게 됐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26년 4월 17일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이번엔 <붉은사막> 쪽으로 잠시 고개를 돌려 봅시다. <붉은사막> 또한 펄어비스의 자체 엔진 블랙스페이스 엔진으로 만든 게임이고, “진짜 나오기는 하는 거냐”는 원성 섞인 소리를 듣던 기간도 길었을 만큼, 여러 차례의 연기 끝에 출시된 게임입니다.
긴 기다림 끝에 나온 <붉은사막>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듯, 전 세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고, 호불호는 크게 갈렸어도 출시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누적 판매량 500만 장 돌파, 스팀 최대 동시 접속자 27만 명이라는 굉장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다만, 두 게임이 어깨에 짊어진 무게는 조금 달랐습니다.
펄어비스 입장에선 <붉은사막>은 꼭 성공해야만 하는 사활을 건 타이틀이었던 반면, <몬스터헌터>나 <바이오하자드> 같은 인기 시리즈가 많은 캡콤 입장에서 <프래그마타>는 우선순위 1위에 해당하는 타이틀은 아니었던 겁니다.
캡콤 소속의 한국인 개발자 <프래그마타> 조용희 디렉터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큰 기대를 받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티저 트레일러 이후 기대하는 반응이 너무 많았을 때 부담이 크기도 했고요. 초기엔 이 정도의 프로젝트가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의 <프래그마타>가 되기까지 정말 많은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 <프래그마타> 조용희 디렉터. 캡콤 소속의 한국인 디렉터입니다.
이 지점에서 캡콤은 명확한 선택을 했습니다.
티저 영상부터 많은 호평을 받은 ‘세계관과 캐릭터’는 유지하면서 선명하게 만드는 쪽으로 갔고, ‘전투 시스템’은 신규 IP에 걸맞은 새로운 재미를 줘야 한다는 원칙 아래에서 최적의 형태가 될 때까지 참신한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냈죠.
그 과정 끝에, 한손으로는 다이애나를 조작해 한붓그리기 퍼즐 형태로 해킹을 하고, 한손으로는 슈팅을 하는, 매우 독특한 형태의 게임으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프래그마타> 조용희 디렉터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획자분들에게 입버릇처럼 말씀드렸던 건, 쉽게 질리지 않는 전투 시스템이었어요. 하면 할수록 한 번 더 하고 싶은 그런 것이었죠. 슈터뿐만 아니라 액션과 퍼즐 요소를 접목했고, 한 전투에 어느 정도의 슈팅이 있고 퍼즐이 있는지 고민하면서,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해 지금의 형태까지 왔습니다.”

다만, <프래그마타> 개발팀 내부에선 한 가지 결정적인 고민이 있었습니다.
한붓그리기 형태의 해킹 퍼즐과 실시간 슈팅 액션 조작을 함께 하는 게임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프래그마타>의 조작을 너무 낯설게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과제였죠.
이를 위해 캡콤은 개발 검수 과정에 <프래그마타>를 단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직원을 꾸준히 신규 투입하는 방법을 적극 활용했다고 합니다.
게임을 오래 잡고 만든 개발팀도, 기존 검수팀도 이미 ‘고인물’이 되어 불편함까지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이 오기 쉬웠기 때문이죠.
새로운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를 열었던 것입니다.

#2 볼 때 재밌는 게임, 할 때 재밌는 게임
여기에 그치지 않고 캡콤은 게임을 알리는 방식에 있어서도 과감한 수를 두게 됩니다. 2026년 4월에 출시할 게임을, 꽤나 이른 시점인 2025년 12월에 데모를 공개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여줬죠.
이 선택에도 캡콤의 고민이 녹아있었습니다. <프래그마타>는 퍼즐과 슈팅을 결합한 낯선 조작 체계이기 때문에 ‘보기만 하는 것으로는 플레이 감각을 알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프래그마타> 데모를 빨리 공개한 이유는,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갈고 닦으며 만든 플레이를 하루빨리 선보이고 싶은 자신감인 동시에,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유저 피드백을 토대로 더 나은 조작감을 만들고자 한 결정이었죠.
아마 게임 유튜브 채널을 많이 챙겨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데모 공개 이후 정말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다이애나짱 완전 카와이하다능”, “해킹 퍼즐 플레이가 긴박한 슈팅 대치 상황과 더해지니까 긴장감 있어서 재밌어요”와 같은 호평이 가득했죠.
다시 <붉은사막> 이야기를 해봅시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만, 출시 초기 가장 많은 말이 나온 지점은 ‘적응하기 어려운 조작감’이었습니다.
“10시간 폐사 구간만 넘어가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갓겜인데!” 같은 반응이 많았고, 조작감의 진입장벽 때문에 “볼 때만 재밌는 게임”이라는 아쉬운 평가를 남기는 유저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펄어비스에게도 기회는 많이 있었습니다.
펄어비스는 <붉은사막> 홍보 과정에서 현장 시연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게임쇼 순회에 엄청난 투자를 했습니다. 유럽, 미국, 일본, 태국, 중국, 남미 등 2025년에만 순수 이동 거리로 지구 7바퀴를 돌았을 정도죠.
국내에서도 크고 작은 규모의 시연 행사들이 이어졌습니다. 기자 본인 또한 그 현장 취재를 여러 차례 갔었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죠.
이런 글로벌 홍보 과정에서 전 세계 각지의 많은 게이머, 스트리머, 기자들이 <붉은사막>의 시연 버전을 접했고, “조작감 개선이 필요하다”는 같은 말을 다양한 언어로 펄어비스에 전했습니다.
▲ 해외 게임쇼를 매우 적극적으로 다녔고, 피드백도 많이 들을 기회가 있었던 <붉은사막>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붉은사막> 출시 이후 펄어비스는 글로벌 유저들의 주목도에 비해 엇갈린 평가를 보고 빠르게 업데이트에 착수했고, 결국 극적으로 평가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취향에만 맞다면 “할 때도 재밌는 게임”으로 거듭나는 중이라는 ‘신뢰’를 형성하는 덴 성공했죠. 물론, 여전히 더 나아져야 할 지점이 많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 빠른 업데이트에서도 핵심은 “귀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출시 전에 들은 수많은 피드백에서 지금과 같은 판단을 했다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개선할 의지를 강하게 보여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국내에서 메타크리틱 평점을 매길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매체는 두 곳뿐이며, 저희 디스이즈게임에서는 <붉은사막>의 편의성 개선 업데이트 이전에도 9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아쉬움을 넘어서는 강점도 분명히 있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본지에서 <붉은사막>에 남긴 메타크리틱 평점 요약입니다.
#3 “귀를 열어야 성공한다”
<포켓몬>, <마리오>, <젤다>, <동키콩> 등 닌텐도의 수많은 인기 타이틀을 만들어낸 전설적인 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 또한, 이번 칼럼에서 강조하고 있는 “열린 자세”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닌텐도 Wii와 DS 등을 만들며 닌텐도 사장까지 역임한 이와타 사토루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실수를 만회하는 방식”을 보며 감탄한 일화를 인터뷰와 책을 통해 여러 차례 전하기도 했죠.
미야모토 시게루는 다른 기획자 개발자들보다 훨씬 타율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실수를 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회사 안에서 그 게임이나 기기를 단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을 데려와 “자, 해볼래요”라고 말했다고 하죠.
▲ 미야모토 시게루 (출처: 닌텐도 공식 유튜브)
미야모토 시게루는 고객의 시선을 찾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히트작이 많은 스타 개발자였음에도 ‘고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을 때는, 곧바로 냉정하게 수정할 곳을 찾았다고 하죠.
영감이나 직관, 자신의 고집에 의존하는 천재 개발자가 아닐까 하는 세상 사람들의 추측과 달리, 논리적으로 상황을 보는 데서 오는 강점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 형태로 유저 피드백을 받아도, 게임 개발에 대한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서 결국 귀를 제대로 열지 못하는 개발사가 참 많습니다.
국내 해외를 막론하고, 게임의 품질 검수 과정에선 실행이 잘 되는지 코드에 문제는 없는지 찾는 게 더 우선순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 많은 상황입니다.
AI의 빠른 발전과 함께 검수 팀의 인력을 점차 줄이고 AI로 대체하는 추세도 두드러지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열린 자세”를 가진 디렉터나 프로듀서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한데, 그런 모범적인 리더를 가진 회사는 극히 드문 게 현실입니다.
# 마치며
<붉은사막>과 <프래그마타>는 상당히 다른 게임입니다. 하지만 두 작품은 비슷한 시사점을 남기고 있습니다.
유저의 반응을 미리 확인할 용기
낯설다는 말을 흘려듣지 않는 태도
그리고 잘 만든 것을 끝까지 더 잘 전달하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죠.
때로는 태도의 차이가 결과를 크게 바꾸기도 합니다.
“귀를 열고 있었는가.”
<프래그마타>는 이 질문에 출시 전부터 답하려 했고, <붉은사막>은 출시 후에 이 질문을 다시 붙잡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