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게임보이용 소프트웨어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으로 첫선을 보인 <포켓몬스터> 시리즈가 어느덧 30주년을 맞이했다.
본가 시리즈 최신작인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은 누적 판매량 2,808만 장, <포켓몬스터 소드·실드>는 2,708만 장을 기록하며 여전히 굳건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본가 타이틀 외에도 다양한 시도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닌텐도 스위치·스위치 2로 출시된 <포켓몬 레전즈 Z-A>는 본가의 턴제 배틀 대신 실시간 액션 전투를 도입했으며, 합산 1,2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배틀 요소를 아예 걷어내고 포켓몬과의 생활에 집중한 <포켓몬 포코피아> 역시 올해 초 메타크리틱 89점을 받으며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처럼 장르와 문법을 달리한 시도들이 잇따르는 가운데서도, 본가 시리즈만큼은 첫 작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턴제 배틀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포켓몬 배틀은 스토리 클리어 이후를 채우는 대표적인 엔드 콘텐츠로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왔다.
다만 본가 타이틀이 줄곧 DS, 3DS, 닌텐도 스위치 등 전용 하드웨어로만 출시되어 온 탓에, 기기 구매에 따른 부담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해 왔다. 실전용 포켓몬을 육성하는 과정의 복잡함 역시 신규 유저가 선뜻 발을 들이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포켓몬 챔피언스>는 바로 이 장벽을 걷어내고, 오직 배틀의 재미에만 집중하기 위해 기획된 신작이다. 지난 4월 8일 닌텐도 스위치로 먼저 출시되었으며, 오는 6월에는 모바일 버전도 출시될 예정이다.
문턱은 실제로 낮아졌을까. 그리고 포켓몬 배틀의 재미는 여전할까. <포켓몬 챔피언스>를 플레이하며 확인해 보았다.

# 스카우트부터 랭크 배틀까지, 기본 흐름
플레이어는 50년 경력의 체육관 매니저 코르디에게 후계자로 지목되며 <포켓몬 챔피언스>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다. 이어지는 튜토리얼을 통해 기본적인 배틀 시스템 안내를 받고 나면, 플레이어는 자신의 첫 팀을 구성하기 위해 스카우트 절차를 밟게 된다.
스카우트는 무작위로 제시되는 10마리의 포켓몬 중 1마리를 선택해 채용하는 방식이다. 최초 1회 스카우트를 진행하면 선택한 포켓몬마다 미리 지정되어 있는 5마리의 포켓몬을 추가로 제공받아 그 자리에서 6마리의 파티를 완성하게 된다.
스카우트를 통한 영입 외에도 포켓몬 홈 연동 기능을 지원하므로 닌텐도 스위치 하드웨어로 발매된 기존 타이틀을 플레이한 유저라면 본인이 육성했던 포켓몬을 데려올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파티의 운용과 강화는 전용 재화인 VP가 담당한다. VP는 포켓몬의 세부 능력치 조정부터 배틀 도구 구매, 스카우트, 트레이너의 치장 아이템 구매에 이르기까지 게임 내 모든 활동에 소비된다.

▶체육관 매니저 코르디.

▶기본적인 전투 정보를 알려주는 튜토리얼.

▶포켓몬 스카우트 관련 NPC 루콜라.

▶최초 스카우트는 해당 10마리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배틀 메뉴는 랭크 배틀, 캐주얼 배틀, 프라이빗 배틀로 구성된다. 대전 방식은 싱글 배틀과 더블 배틀로 구분된다. 랭크마다 사용 가능한 포켓몬 풀은 시기에 따라 다르게 운영될 예정이며, 현재는 메가진화를 테마로 한 레귤레이션이 적용 중이다.
랭크 시스템의 경우 현재 도달 가능한 최고 등급은 마스터볼 4다. 마스터볼 4 이후에는 레이팅 점수를 통해 순위 경쟁을 이어간다. 마스터볼 1~3과 상위 티어인 챔피언 등급은 시즌 개시 일주일 후인 4월 15일에 해금될 예정이다.

▶최고 티어를 달성한 뒤 부터는 레이팅 점수를 올려 경쟁한다.
# 포켓몬 배틀의 매력, 그리고 진입장벽
포켓몬 배틀은 기본적으로 불꽃, 물, 풀 타입 간의 상성 관계를 활용한 가위바위보 식의 규칙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유저 간의 대전에서는 이러한 상성 구조 위에 수 읽기가 더해지며 한층 전략적인 성격이 짙어진다.
먼저 1대1로 맞붙는 싱글 배틀은 '기점 마련'이라 불리는 판 짜기가 핵심이다. 화력이 강력하거나 스스로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포켓몬이 마음 놓고 활약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주는 과정에서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진다.
반면 2대2로 진행되는 더블 배틀은 두 마리 포켓몬 사이의 연계와 시너지가 주요한 가치로 다뤄진다. 서로의 강점을 극대화하거나 약점을 보완하는 전술은 물론, 상대 팀 전체의 능력치를 떨어뜨리는 특성이나 복수의 포켓몬을 동시에 타격하는 기술처럼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두 모드 모두 본격적인 대결에 앞서 상대의 엔트리 6마리를 미리 확인하고, 그중 싱글 배틀은 3마리, 더블 배틀은 4마리를 골라내는 선출 과정을 거친다. 상대의 전체 파티를 보고 어떤 포켓몬이 나올지 예측하며 출전 멤버를 결정하는 단계부터 이미 배틀은 시작되는 셈이다.

▶서로의 엔트리를 확인하며 선출 멤버를 정하는 과정.

▶1대 1로 진행되는 싱글 배틀. 선두 포켓몬 브리두라스는 아군 후속 포켓몬의 진출이 편하도록 돕는 역할을 맡았다.

▶2대 2로 진행되는 더블 배틀. 상대 몰드류는 마기라스의 날씨 특성 덕에 스피드가 2배가 됐다.
이렇듯 팽팽한 심리전은 많은 유저가 포켓몬 배틀을 계속 찾게 만드는 매력이다. 단순히 상성이 유리한 기술을 선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 한발 앞서 대처하는 과정에서 깊은 재미가 발생한다.
여기에 기술의 명중 여부나 부가 효과가 터지는 확률 같은 운 요소가 더해지며, 매 경기 예상치 못한 반전과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런 재미를 온전히 맛보기 위해서는 그간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야만 했다. 원하는 능력을 갖춘 소위 실전용 포켓몬을 만들기 위해 방대한 시간을 육성에 할애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선 더 뛰어난 능력치를 가진 개체를 얻으려 수없이 알을 부화시키거나 포획을 반복해야 한다. 이어 특정 능력치를 보강하고 전술에 알맞은 기술을 배치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이러한 일련의 단계는 배틀 입문자에게 방대한 시간과 노력을 요구했다.
결국 포켓몬 배틀은 시리즈의 정수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쉽게 발을 들이기 어려운 높은 진입장벽을 갖게 되었다.
#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편의성 향상
배틀 중심의 플랫폼을 표방한 작품답게 <포켓몬 챔피언스>는 대전 과정에서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시도를 도입했다.
우선 실전 개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로도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 이전에는 같은 종이라도 포켓몬마다 제각각이었던 능력치를 이번 작품에서는 모두 동일하게 통일한 것이다. 덕분에 더 높은 능력치를 지닌 개체를 확보하기 위해 수행하던 소모적인 반복 작업이 본작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훈련 메뉴에서 능력 수치나 기술 배치를 직접 조정할 수 있게 했으며, 기술의 부가 효과 발생 확률을 수치로 명확히 기재해 전략 수립의 직관성을 높였다.

▶강화 방향 결정 전.

▶VP를 투자해 능력을 강화하고 기술을 교체할 수 있다.
배틀 중에 유저가 파악해야 하는 정보 전달 방식도 한층 세밀해졌다. 날씨나 트릭룸처럼 필드에 적용된 부가 상황의 남은 턴 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공격과 방어 등 각 능력치의 랭크 변화 상황도 즉각적으로 파악 가능하다.
불필요한 메시지 출력을 줄이고 연출 속도를 조절해 전체적인 경기 진행의 속도감을 높인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러한 편의성은 개별 포켓몬 단위를 넘어 파티 구축 단계의 지원으로 이어진다. 전작부터 이어져 온 팀 공유 시스템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팀 ID 입력' 기능이 대표적이다.
상대가 공유한 팀 ID를 입력하면 유저가 보유한 포켓몬의 도구와 능력치를 해당 조합에 맞춰 자동으로 조정해 준다. 이는 팀 구성을 어려워하는 신규 유저가 완성된 형태의 전략을 자신의 포켓몬으로 직접 체득할 수 있게 돕는다.

▶트레이닝 섹션에서 이용 가능한 팀 ID로 편성.

▶다른 유저가 구축한 파티 구성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
# 프레임도, 포켓몬 수급도 아직 불안하다
배틀 중심의 플랫폼으로서 여러 장점을 갖췄음에도, 실제 구동 환경과 시스템 설계 측면에서 느껴지는 아쉬운 지점들이 존재한다.
우선 최신 하드웨어 환경에서도 30fps에 머무는 프레임과 빈번하게 발생하는 프레임 드랍은 쾌적한 플레이를 저해하는 요소다.
UI 조작 역시 터치 기능을 지원하지 않아 모든 메뉴 이동을 버튼과 조이스틱에만 의존해야 한다. 휴대 모드 활용도가 높은 기기 특성과 향후 모바일 버전 출시를 고려하면, 터치 조작을 배제한 이러한 설계는 다소 의아한 대목이다.

▶터치 가능한 여느 모바일게임 UI 처럼 생겼지만, 조이스틱과 버튼으로만 조작할 수 있었다.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는 포켓몬 수급 체계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현재 원하는 포켓몬을 확정적으로 영입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가 포켓몬 홈 연동뿐이기 때문이다.
기존 시리즈에서 넘어온 포켓몬이 없는 신규 유저로서는 무작위 요소가 강한 스카우트 시스템에만 의존해 파티를 완성해야 하는 구조적 제약을 안고 있다.
특히 스위치 버전이 2개월 먼저 출시된 상황에서, 추후 합류할 모바일 유저들에게 포켓몬 확정 획득 수단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면 플랫폼 간의 포켓몬 보유 격차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포켓몬 홈을 사용해 포켓몬을 <포켓몬 챔피언스>로 옮기는 장면.
# 본가를 해봤다면 더 크게 느껴질 빈자리
경쟁 배틀의 문법에 익숙한 기존 유저들에게는 일부 기능의 미탑재와 시스템적 제약이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특히 8세대 <포켓몬스터 소드·실드>부터 자취를 감췄던 리플레이 기능 '배틀 레코드'의 부재가 대표적이다.
<포켓몬 챔피언스>가 대전 그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 전문 플랫폼을 표방하며 등장한 만큼, 전략 복기와 학습을 위한 핵심 기능의 부활을 기대했던 유저들에게는 이를 대체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 더욱 큰 빈자리로 다가온다.
전략의 핵심인 포켓몬과 도구의 가짓수가 제한적이라는 점 역시 본가 유저들에게는 체감상의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구애안경이나 생명의구슬 같이 범용성이 높은 도구들의 부재는 이미 넓은 전략 풀을 경험했던 유저들에게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내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원인이 된다.
업데이트가 단순히 과거 콘텐츠를 순차적으로 복구하는 식이라면, 기존 유저들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아는 맛의 반복에 그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경우 차기작인 <포켓몬스터 윈드 웨이브> 발매 전까지는 배틀 환경 내에서 신선한 전략적 자극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입국몬' 이라고도 불리는 사용 가능 포켓몬 리스트. 1000종이 넘는 전체 포켓몬 수와 비교하면 185종은 아쉽다.
# 지향점은 보인다, 첫인상은 아쉽다
<포켓몬 챔피언스>는 지향점이 뚜렷한 게임이다. 포켓몬 육성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UI 편의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이 게임이 오로지 대전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별도의 프리 시즌 없이 즉각 시즌 1을 시작했다는 점 역시 랭크 시스템에 대한 기획 방향성이 이미 확고하게 정립된 상태로 출시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본가 시리즈의 배틀 시스템을 선호하거나 턴제 배틀을 즐기는 유저라면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수싸움을 주고받는 전략적 재미와 더불어, 기술 명중이나 부가 효과 발동 확률 같은 운 요소에 울고 웃는 포켓몬 배틀 고유의 즐거움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분 좋은 변수인 동시에 가장 불쾌한 변수인 급소 적중.
다만 '더 잘 만들 수 있었다'는 아쉬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프레임 드랍과 같은 기술적 결함은 물론, 전반적인 시스템 구성에서도 보완할 점들이 발견된다.
팬 입장에서 또 하나 안타까운 지점은 접근성은 낮아졌으나 정작 주변에 선뜻 권하기는 어려운 게임이 되었다는 점이다. 게임 본연의 재미나 밸런싱을 차치하고라도, 기술적인 안정성과 완성도라는 기초적인 부분에서 오는 아쉬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오는 6월 모바일 버전 출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특성상 업데이트를 통해 현재 지적된 문제들을 개선해 나갈 여지는 충분하다. 주어진 과제를 개발진이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개선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다만, 배틀 전용 타이틀로서 선보인 첫인상은 다소 아쉽게 남았다.

▶리뷰를 작성하는 동안 더블 배틀 마스터볼 4 랭크를 달성한 파티. 리자몽의 멋짐에 이끌린 신규 유저도, 엘풍의 리샘열매 채용에 의문을 제기할 기존 유저도 만족할 <포챔스>가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