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개가 넘는 AI 개발 툴 중 실제로 도움이 되는 건 거의 없다."
게임 산업에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실제 개발 현장에서 체감하는 AI의 효용성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타필드>, <마블 라이벌즈>, <데드 아일랜드 2>, <앨런 웨이크 리마스터> 등 다수의 게임 개발 및 현지화에 참여한 키워드 스튜디오는 최근 외신 게임 비즈니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AI 도구들의 실무 적용 실태를 설명했다.
존 깁슨 혁신 부문 총괄은 사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500개가 넘는 AI 개발 도구를 직접 테스트해 보았으나, 실제 게임 개발 과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도구는 6개 정도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시중에 출시된 수많은 AI 솔루션 중 대다수가 실제 상업용 게임 제작 파이프라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다.
▶ 답변 중인 키워드 스튜디오 존 깁슨 혁신 부문 총괄(오른쪽). (이미지 출처: 게임 비지니스)
# '혼란의 단계'에 놓인 AI
깁슨 총괄은 현재 대부분의 AI 도구들이 게임 개발자들이 직면한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특정 모델이나 도구가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능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상적인 접근법이라면 개발사가 내부 파이프라인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를 먼저 파악한 뒤 그에 맞는 도구를 구축하거나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특정 도구를 먼저 정해놓고 이를 기존의 생산 파이프라인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으로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뚜렷한 '유즈 케이스(Use Case)' 없이 단순히 유행하는 AI 도구를 무리하게 적용하려다 보니, 겉보기에는 화려한 기능을 갖췄더라도 실무에서는 활용도가 떨어지는 도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을 두고 현재의 AI 기술 생태계가 '혼란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하며, 이제는 실제 현장에서 '사용 가능한 단계'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간단한 프롬프트를 입력해 단숨에 뛰어난 결과물을 얻어내는 단편적인 데모 시연과, 실제 라이브 게임 제작 환경에서 그 기술을 적용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실무에서는 단순히 결과물을 생성하는 것을 넘어, 인간 개발자의 지속적인 지휘와 방향 설정 아래 일관되고 높은 품질의 산출물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깁슨 총괄은 "AI가 실무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려면 개발팀의 역할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을 보완하고 복잡한 업무 효율을 높이는 조력자로 융합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대표적인 AI 게임 개발 툴 중 하나인 Ludo.ai.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게임 디자인이 가능하고, 이를 실제로 플레이 가능한 형태로 확인할 수 있다.
# 통제되지 않은 기술의 한계… 철저한 검증망과 안전장치 시급
AI 도구가 실무에 안착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중대한 장벽은 바로 안전성과 통제력이다. 게임 개발은 수많은 창작자의 지적 자산이 정교하게 결합되는 고도의 창작 활동이므로, 외부 AI 도구를 무분별하게 도입할 경우 심각한 법적 분쟁이나 윤리적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게임 내에 포함되는 이미지, 코드, 음성 등의 에셋 하나하나가 스튜디오의 핵심 자산이 되는 만큼, 출처가 불분명한 데이터로 무단 학습된 생성형 AI를 사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 침해 리스크는 기업 입장에서 치명적이다.
존 깁슨 총괄은 상용화된 라이브 프로덕션 환경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면 해당 도구가 철저한 검증과 통제 하에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식재산권(IP) 침해의 위험이 없는지, 법률적으로 안전하게 설계되었는지, 그리고 도덕적 및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검증 시스템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중의 많은 AI 도구들은 이러한 민감한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기능적인 퍼포먼스와 결과물 생성 속도에만 치중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와 엄격한 법적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하는 대형 게임사나 파트너사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함부로 도입할 수 없는 계륵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명확한 안전장치나 투명한 데이터 출처 없이 AI를 실무에 투입했다가는 향후 출시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법적 제재를 받거나 플랫폼 입점이 거부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단순히 멋진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업계 표준에 부합하는 철저한 검증망을 통과한 소수의 안전한 도구만이 실제 게임 제작 파이프라인에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2025년 인디 게임 어워드에서 AI로 생성된 리소스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수상이 취소된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 현재 해당 이미지는 대체됐다.
# 90%가 쓰지만 절반이 사용 반대? 소통 부재가 키운 현장의 불신
이러한 기술적, 윤리적 한계는 실제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깁슨 총괄은 최근 게임 개발자 회의(GDC)에서 발표된 산업 현황 보고서의 통계를 인용하며 오늘날 게임 업계가 직면한 모순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해당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가 이미 게임 개발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으나, 동시에 52%의 개발자는 AI 사용에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의 개발자가 회사의 방침이나 업계의 흐름에 따라 AI를 실무에 적용하고는 있지만, 절반 이상이 그 실효성에 의문을 품거나 심리적인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 게임 개발의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AI가 활용되고 있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GDC)
깁슨 총괄은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투명한 AI 관리 체계의 결여와 조직 내부의 소통 부족을 지목했다. 상당수의 기업들이 현장 직원들에게 AI 도입의 구체적인 목적과 전략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도입되는 기술이 조직의 생산성 향상이나 개인의 업무 환경 개선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득 과정 없이, 무작정 새로운 도구의 사용만을 권장하거나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회사들이 직원들에게 왜 AI를 사용하는지, 전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채 모델 도입에만 나서고 있으며, 이것이 현장 개발자들을 더욱 우려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비전 공유 없이 이루어지는 탑다운 방식의 기술 도입은 현장 개발자들의 고용 안정성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킨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게임 업계 전반에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 이어졌던 만큼, 비용 절감과 인력 대체의 수단으로 AI가 오용될 수 있다는 실무진의 경계심은 클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소통 없는 기술 도입은 AI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키워드 스튜디오의 이번 진단은 게임 업계가 AI를 효과적인 도구로 내재화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맹목적인 기술 도입을 멈추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실효성 있는 운영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AI가 개발팀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업무를 보완하는 수단임을 증명하는 조직 내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