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고릴라에 대한 애정은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봐도 분명 남다른 구석이 있다. 실제로 2015년에는 일본의 한 동물원에 있는 '샤바니'라는 미남 고릴라가 일본 내에서 강렬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고 하니, 가히 일본인들의 고릴라에 대한 유별난 사랑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매체를 막론하고 고릴라라는 동물이 꽤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드래곤볼> 시리즈에 등장하는 사이어인들은 폭주할 때마다 고릴라처럼 생긴 거대 원숭이로 변신하기도 하고, <슬램덩크> 북산의 영원한 센터 채치수는 본명보다도 고릴라 선배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고는 한다. 일본의 유명 괴수물인 <고질라> 시리즈의 이름이 고릴라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닌텐도의 또 다른 프랜차이즈인 <동키콩>은 지난 해 <동키콩 바난자>를 통해 다시금 전 세계 게이머들로부터 수많은 찬사와 응원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고릴라 게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릴라다. 그것도 <길티기어>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의 게임 개발사 아크 시스템웍스가 제작한 고릴라 카드 게임이라고 한다. 고릴라가 바나나를 먹고, 때로는 카레가 되기도 하는 이 기상천외한 고릴라 게임, <고릴테어>에 대해 살펴볼 시간이다.

# 고릴라와 바나나, 그리고 카레?
<고릴테어>는 고릴라와 바나나, 오로지 두 종류의 카드만을 사용하는 캐주얼한 카드 게임이다. 열대 우림의 활기를 나타내는 듯한 경쾌한 음악이 게임의 흥을 돋우며, 고릴라라는 동물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카드 디자인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게임상에는 총 27장의 고릴라 카드와 27장의 바나나 카드가 준비되어 있는데, 특이하게도 각 카드마다 디자인이 전부 다르다. 특히 일부 고릴라 카드에는 뜬금없게도 카레가 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이건 실존하는 일본의 카레 음식점 '고고카레'를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다.
게임의 규칙은 아주 단순하다. 플레이어는 매 턴 필드에 고릴라 카드를 배치하고 바나나 카드를 확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릴라 무리가 해산하지 않게끔 필드에 놓인 고릴라의 숫자와 동일한 양의 바나나를 턴마다 확보해야 하며, 바나나가 부족할 시 다음 턴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패배하게 된다.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가장 아랫줄에 최소 7장의 고릴라 카드를 나열해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 게임을 연장해 7점 이상의 점수를 노려보는 것도 가능하다. '고릴라'와 '솔리테어'라는 두 단어를 적당히 합성한 '고릴테어'라는 제목에 딱 부합하는 단순 명쾌한 게임 디자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한 게임을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5분이 채 되지 않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즐긴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플레이하기도 아주 좋다.
▶ 고릴라의 완전성을 설파하는 기적의 삼단논리 (아님)
▶ 고릴라와 바나나만 존재하고, 종종 카레가 찬조 출연한다. 이거 고고카레 바이럴인가?
게임 시작 시 고릴라 카드와 바나나 카드를 총 36장 들고 가게 된다. 퀘스트 모드에서는 카드의 비율이 정해져 있는 반면, 자유 모드나 연습 모드, 엑스트라 스테이지 같은 일부 모드에서는 바나나 카드와 고릴라 카드의 비율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대체로 바나나 카드의 비율이 높으면 승리 조건을 쉽게 달성할 수 있으나 고점을 보기가 힘들고, 고릴라 카드의 비율이 높으면 패가 꼬이기 쉬워 초반에 게임이 터질 여지가 있지만 대신 고점을 노려보기 좋다. 즉, 두 카드의 비율을 플레이어가 직접 설정해 게임의 난이도와 양상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두 종류의 카드만을 사용하는 지극히 단순한 카드 게임 같아 보이면서도 나름 전략적인 여지를 확보한 모습이다.
▶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단 36장. 덕분에 게임 한 판이 정말 빠르게 끝난다.
▶ 높은 단계에 배치한 고릴라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스킬이 게임을 풀어나가는 데 주요 관건이 된다!
# 짜릿한 고점의 쾌감, 그리고 아쉬운 볼륨의 명암
퀘스트 모드의 최종 스테이지 '웅비'는 단연 이 게임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5레벨과 6레벨 영역이 열리고 이 영역에 배치된 고릴라만이 사용할 수 있는 익스트림 아츠가 해금되는데, 이 기술 중에는 굉장히 강력한 것들이 많아 잘만 사용하면 순식간에 고점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5레벨과 6레벨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고릴라 카드를 많이 배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서, 매 턴 플레이에 고민도 많이 해야 하고 더 많은 운도 요구된다. 그래도 게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들이라면 이 최종 스테이지를 통해 진정한 고점을 노려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 포인트일 것이다.
다만 워낙 단순한 게임이기도 하고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결판이 나는 게임이라 그런지 콘텐츠가 그다지 풍부하다고 보긴 힘들다. 엑스트라 스테이지를 포함해 총 여섯 스테이지가 존재하는 퀘스트 모드, 자유롭게 카드 비율을 맞춰 편하게 플레이해 보는 자유 모드와 연습 모드 정도가 이 게임의 전부다. 엑스트라 스테이지에서 신나게 고릴라 카드를 깔고 나름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낸 이후에는 '근데 이제 뭐함?' 상태에 빠질 여지가 크다.
그 밖에 게임 디자인상 초반 몇 턴에 손패가 꼬이기라도 하면 더 이상 손을 쓸 도리가 없어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아쉽게 다가온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차피 짧은 게임이니 손패가 만족스럽게 들어올 때까지 게임을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유연함이 떨어져 다소 경직된 인상을 주기도 한다.
▶ 5레벨과 6레벨 영역이 열리는 엑스트라 콘텐츠는 단연 이 게임의 화룡점정.
▶ 초반에 패가 꼬이면 정말 답이 없다. 어차피 짧은 게임이라 엎어버리고 다시 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 간식처럼 가볍게 즐기는 킬링타임용 고릴라 게임
<고릴테어>는 고릴라라는 동물과 바나나라는 과일, 그리고 카레라는 음식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는 게임이다. 오직 두 가지 카드만을 활용하는 단순한 규칙과 더불어, 안정적인 저점보다는 한 번의 높은 고점에 집중한 듯한 다소 적극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성향이 묻어나는 카드 게임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성향 또한 고릴라라는 동물의 이미지를 반영하고자 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굉장히 짧고 빠른 게임이기도 해서, 간식을 먹는다는 느낌으로 잠깐 짬을 내어 즐기기에도 좋다.
다만 콘텐츠가 다소 빈약한 데다가 운을 꽤 타기도 해서 깊게 파고들 여지는 적다. 게임의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 만큼, 딱히 세일을 노리지 않더라도 언제 어느 때고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해서 깔끔하게 끝낼 용도로는 괜찮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이 게임을 충분히 즐기고 난 뒤 식사는 가급적 카레를 먹도록 하자.

2014년부터 10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