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시리즈는 저승과 이승을 잇는 황천의 문을 닫기 위해, 무녀를 제물로 삼는 인신 공양 의식을 하는 기괴한 마을들의 이야기입니다. 시리즈의 첫 게임이 발매된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총 다섯 개의 정규 타이틀이 발매됐고, 이번에 리메이크된 <제로 ~붉은 나비~>(이하 붉은 나비)는 두 번째 시리즈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바 있습니다. 한국어를 공식 지원한 마지막 시리즈이기도 하고요.
최근 두 시리즈의 리마스터 버전이 발매된 바 있고, <붉은 나비>도 Wii 버전으로 리메이크가 된 적이 있지만 이번 리메이크만큼 크게 개선을 시도한 건 처음입니다. 저는 시리즈 전체의 엔딩을 포함한 대략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한 번도 직접 플레이를 해 본 적은 없었는데요. 마침, 가장 해 보고 싶었던 타이틀이 리메이크된 덕에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해 봤습니다. /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한지훈 기자

# 붉은 나비를 따라,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로
이야기는 댐 공사로 수몰될 예정인 골짜기에서 출발합니다. 주인공 '미오'는 쌍둥이 언니 '마유'가 골짜기에서 사고를 당한 기억을 떠올리고 언니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 보지만, 마유는 어디선가 나타난 붉은 나비를 따라가 버린 뒤입니다. 자매는 숲에서 길을 잃으면 당도하게 된다는 '지도에서는 사라진 마을' 미나카미에 이르게 되고, 둘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합니다.
이번 작품의 이야기는 원작과 동일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후 시리즈들에서 비슷한 설정과 이야기 방식을 반복적으로 택하기도 했고 단일 작품으로만 보더라도 다소 전형적이고 식상한 괴담이지만, 호평받았던 이유이기도 한 서정적인 이야기는 여전히 탄탄한 짜임새와 차분한 스토리텔링 덕에 따라가는 재미가 좋습니다. 마을에 살았던 이들의 일지와 사이드 스토리는 이야기 속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요.
이야기는 결말까지 흐트러짐 없이 완성도 높게 전개되며, 일반적인 플레이로 볼 수 있는 첫 엔딩은 감성적 깊이와 여운으로 다른 엔딩도 확인하고 싶게끔 확실히 동기 부여를 해 줍니다.
▶ 미오가 진지한 이야기 좀 하려는데 붉은 나비를 따라 어디론가 가 버리는 마유.
▶ 쌍둥이 자매는 '이누나키 괴담'처럼 지도에서 사라진 '미나카미 마을'에 갇힌다.
# 공포감을 주는 섬세한 입체 음향
물론 잘 짜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야기에 집중하고 긴장감을 느끼는 결정적인 이유는 사운드에 있다고 봅니다.
이번 리메이크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입체적인 음향으로 등 뒤에서 속닥거리는 원령의 소리라든지 벽 너머에 있는 아이의 영이 같이 놀자며 공을 던지는 소리라든지 주변 환경의 음향이 위치와 거리에 따라 섬세하게 들려옵니다. 보이지 않는 원령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파악하게 해 준다든지 사영기를 조준할 땐 살짝 울리는 표현으로 몰입감을 더하는 공간감도 있고요.
영들의 녹음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석 라디오도 유난히 으스스하게 들려서 좋았습니다. 저는 플레이 하며 자막을 보는 게 불편해서 음성 자료들은 잠깐 듣고 넘길 때가 많은데, 이번 게임의 영석 라디오는 꼬박꼬박 들으면서 플레이하게 되더라고요.
컷신은 예쁘고 원령은 자주 보니 친숙하며 마을도 돌고 도는 곳이라 공포감이 크지 않지만, 사운드만큼은 헤드셋을 착용하고 플레이하면 소름이 돋을 때가 꽤 있었습니다.
▶ 을씨년스러운 마을과 무너져가는 가옥의 공포감은 소리로 생생하게 느껴진다.
▶ '영석'을 발견하면 깃들어 있는 영의 목소리를 영석 라디오로 들을 수 있다.
# 언니와 손을 잡고, 사뿐하게 걷는 미오
이번 리메이크는 <인왕>의 액션 디자이너이자 <와룡>의 디렉터로 참여한 '나카지마 히데히코'가 액션을 책임지며 조작성도 개선했다고 알려진 바 있습니다.
오리지널 버전을 해 보지 않아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플레이하며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가녀린 소녀의 움직임다운 사뿐한 걸음걸이가 잘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움직이는 즉시 반응해 굼뜨거나 답답하지 않았습니다. 달리기할 때도 쏜살같이 뛰어버리면 어색했을 텐데, 조금 서둘러 볼까 하는 느낌으로 탐험의 쾌적함을 적당히 더해주는 정도였고요.
재밌는 건 오리지널에서는 포기했었다는 손 잡는 액션이 추가됐다는 겁니다. 둘이 함께할 땐 손을 잡아 체력과 영력을 회복하기도 하고, 마유가 공격을 당해 넘어지면 손을 잡아 일으켜 줄 수도 있는 건데요.
이속 속도가 느려지거나 하진 않지만, 손을 잡고 다니려면 컨트롤러 기준으로 RT 키를 꾹 누르고 있어야 하는 불편은 있습니다. 하지만 자매가 서로 의지하는 애틋함이 담긴 액션이라는 서정성과, 헤어지지 않으려는 자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구현했다는 완결성이 마음에 들어서 귀찮은 상황이 아니라면 사이좋게 잡고 다니곤 했습니다.
▶ 걸을 땐 사뿐사뿐, 달릴 땐 살랑살랑 움직이는 미오.
▶ 공격받아 넘어진 마유를 일으켜 세워 줄 수도 있다.
#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사영기
원령을 공격하는 유일한 수단인 '사영기'는 <제로> 시리즈의 특징입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면 효과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데, '좋은 사진'은 초점이 선명하게 맞고 DSLR의 화면에서처럼 포커스 포인트의 개수가 많을 때 찍을 수 있습니다.
초점은 자동으로 맞춰지지만 수동으로 빠르게 조정할 수도 있고요. 다수의 원령이 있을 땐 줌 아웃을 해 단체 사진을 찍어 광역 대미지를 주고, 반대로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원령이 있을 땐 줌을 당겨 저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선명해지는 데 그치던 오리지널 버전보다 현대화된 셈이죠. 촬영 후에 대미지에 비례하는 점수로 수치를 확인할 수도 있는 점은 그대로입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필름이 장전되어 있어야 하며, 무한으로 쓸 수 있는 기본 필름인 07식과 별도로 입수가 필요한 41식, 61식, 90식, 영(零)식이 있습니다. 성능에 차이가 있고 성능이 좋을수록 대개 필름 수가 적고 장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소지 제한도 있고 보관함 기능이 없기 때문에 쟁여놓는 건 불가능해서, 필름을 구매할 수 있는 2회차 이후가 아니라면 잘 관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 오래된 사영기지만 게임적 허용으로 DSLR 같은 초점과 줌, 필터를 사용한다.
▶ 미오랑 놀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들도 한 컷 찍어주자. 대상이 선명하고 포커스 포인트가 많이 활성화되면 좋은 사진이다.
# 페이탈 프레임과 셔터 찬스의 활용
전투에서는 필름을 장전할 시간을 확보하고 적들이 체력을 회복하고 강화되는 '우화'가 일어나기 전에 큰 대미지를 줘서 빠르게 처치하는 게 관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이 공격할 때 상단의 빨간 램프가 반짝이면서 프레임이 붉게 빛나는 '페이탈 프레임'에 촬영하는 게 좋습니다. 성공하면 원령을 잠깐 위축시킬 수 있거든요. 또 원령의 체력 바에 표시된 선까지 대미지를 주면 '셔터 찬스'가 돼 다음번 촬영에 큰 대미지를 줄 수 있고, 이때 페이탈 프레임으로 촬영하면 '페이탈 타임'이 발동돼 연속으로 촬영할 수 있게 됩니다. '페이탈 프레임'은 다른 액션 게임의 패리와, '셔터 찬스'는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 큰 공격 기회를 얻는 것과 비슷한 결의 재미가 있는 시스템입니다.
한편, 주인공 미오는 원령에게 공격받거나 잡히면 체력이 닳고 닿기만 해도 영력을 잃습니다. 공격 타이밍에 맞춰 회피하는 방어도 신경 써야 하고, 영력과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아이템도 부족하지 않게 구비하고 다니는 게 좋습니다.
▶ 원령이 공격하면 상단 램프와 프레임이 붉게 빛나는데, 이때 촬영하면 원령을 위축시킬 수 있다.
▶ 원령 체력 바의 하얀 선까지 공격에 성공하면 원령이 무방비 상태가 되는 셔터 찬스 발동.
# 강화렌즈를 대신하는 성장 시스템들
점점 맷집이 좋은 원령들이 쌍둥이 자매를 붙잡으려 하기 때문에 사영기의 업그레이드도 필요합니다.
사영기는 '염주'를 소비해 강화할 수 있고 '공주'라는 구하기 쉬운 아이템으로 언제든 초기화 할 수 있습니다. 사영기는 포커스 포인트의 개수나 장전 매수와 같은 공통 기능과 필터 별 기능을 따로 업그레이드를 하게 됩니다.
필터는 사진을 촬영할 때 전환해서 효과를 발동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오리지널의 '강화렌즈'를 다듬어서 추가한 부분인데요. 전투 중에는 영력을 소비해 각기 다른 효과를 얻을 수 있고 탐색 중 특정 상호작용에도 쓰입니다. 기본 필터인 '사영'은 특수 촬영을 하면 원령을 밀쳐내게 되고, 푸른색 '영시' 필터로 보면 영의 시야를 보고 추적할 수 있으며 특수 촬영으로 벽 너머의 영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주황색의 '노출' 필터와 보라색의 '조사' 필터도 특수한 능력이 있고요.
역시 강화렌즈에서 발전시킨 또 다른 성장 요소도 있습니다. 미오는 사이드 스토리 등으로 얻는 '영석'과 플레이하며 얻은 포인트로 구매하는 '부적' 중 하나를 선택해 장착할 수 있습니다. 패시브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아이템을 하나만 장비하고 교체하며 써야 하는 건 조금 아쉬운데, 그래도 2회차부터는 최대 4개까지 장비할 수 있게 됩니다.
▶ 사영기는 '염주'로 강화할 수 있다. 공통 기능과 필터 별 업그레이드로 나뉜다.
▶ 기본 필터인 '사영' 외에, '영시', '노출', '조사' 필터로 전환해서 사용할 수 있다 각각 탐험과 전투에서 다양한 쓰임이 있다.
▶ 패시브 아이템인 '영석'또는 '부적'을 1회차에서는 1개, 2회차부터는 최대 4개까지 장비할 수 있다.
# 반복되는 탐험과 동선 설계의 번거로움
콘솔 버전에서 30프레임으로 제한을 걸어두었다는 사전 정보가 있던데, 제가 플레이한 PC 버전에서는 특별한 최적화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뛰어난 그래픽이 아니기도 하고 마을의 가옥 몇 채와 언덕 및 강가, 약간의 지하구역 정도로 맵이 그리 넓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들어가 볼 수 있는 장소가 늘어나고 필터를 입수하며 상호작용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지만, 제일 처음 방문한 집을 끝까지 여러 차례 가봐야 할 정도로 같은 장소를 반복적으로 탐색하게 됩니다. 마을의 분위기도 매력적이고 이야기와의 연결이 자연스러운 데다 방대한 맵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옛날 게임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긴 하지만, 후반이 될수록 탐험의 측면에서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사이드 스토리는 메인 스토리와 동일한 지역에서 진행되는데 선행 조건 때문에 동선이 꼬여 같은 곳을 여러 번 찾아가야 하는 상황도 빈번했습니다. 어차피 모든 사이드 스토리를 1회차에서 확인할 수 없는 구성이니, 불필요한 반복을 줄이고 싶다면 사이드 스토리만큼은 2회차에서 효율적인 동선으로 진행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 게임은 시작부터 엔딩까지 작은 마을을 벗어나지 않는다.
▶ 안 그래도 반복적인 동선은 사이드 스토리를 하다 보면 더 빙글빙글 돌게 된다.
# 아주 많은 수집 요소와 다회차 시스템
탐험은 쉽고 탐색은 조금 어려운 편입니다. 거의 모든 목표는 지도에 표시가 되고 지도는 간결합니다. 시인성 좋은 미니맵으로 방향과 길을 찾는 것도 쉽고요.
건물 안에서 목표를 찾아야 할 땐 길잡이와도 같은 부유령을 숨바꼭질하듯 추적해야 합니다. 부유령이 어느 방향으로 향했는지 사진을 찍어 두면 좋은데, 마침 부유령은 수집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해서 진행에 필요한 부분과 수집 요소를 잘 엮어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유령뿐 아니라 원령, 지박령, 쌍둥이 인형도 촬영해서 수집해야 하는 대상이며, 쌍둥이 인형은 둘을 한 프레임에 담아야 카운트가 돼 찾아내는 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수집했음에도 1회차에서는 고작 절반 남짓을 모았을 만큼 찾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요. 2회차 이후 엔딩의 조건 중 하나인 나이트메어 난이도가 열리기도 하고 엔딩 후 세이브 데이터를 선택해 연계해 채워나갈 수 있으니, 수집 요소는 사이드 스토리와 함께 회차 플레이로 채워나가는 게 정석일 겁니다.
참고로 엔딩은 총 6개로 난이도와 후반부의 특정 조건에 따라 달라지게 돼 모든 엔딩을 확인하고 싶다면 다회차가 필요합니다. 일반 엔딩과 배드 엔딩의 달성 조건 및 엔딩의 목록을 볼 때 오리지널과 조건은 같을 것으로 보이고요. 난이도 조건을 제외하면 엔딩을 본 세이브에서 챕터를 선택해 진행할 수 있으므로 전체 플레이가 많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 지도는 간단해 알아보기 쉽고 미니맵도 눈에 잘 들어온다.
▶ 쌍둥이 인형은 한 프레임에 전부 담아 수집하는 묘미가 있다.
▶ 엔딩을 보면 추가 엔딩의 조건인 나이트메어 난이도가 해금된다.
# 총평
저는 솔직히 <제로> 시리즈를 예쁜 여주인공이 귀신들의 사진을 찍는 그리 무섭지 않은 게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리메이크한다고 해도 20년 전의 게임이니 고전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울 거라고 넘겨짚었고요.
하지만 이번 <붉은 나비> 리메이크의 깔끔한 비주얼과 섬세한 사운드 디자인이 극대화한 경험은 세련된 공포를 선사합니다. 결말을 알고 있을지언정 이야기와 인물들이 자아내는 서정적인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고요. 쾌적한 조작감이 더해진 개성 있는 촬영 시스템도 오리지널 버전에 비해 훨씬 역동적으로 구현해 다른 게임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재미를 줍니다.
리메이크이다 보니 작은 맵과 같은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고 촬영에만 의존하는 단조로움도 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필터의 활용 등 노력을 기울인 부분들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시리즈의 두 번째 타이틀이라는 점은 독립적인 이야기이니 문제 되지 않고 리메이크라는 점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준수하게 개선이 되었으니, 기이한 괴담과 긴장감 있는 분위기로 어필하는 J호러의 팬이라면 플레이해 보시길 권합니다.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가치 있는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제가 남기는 기록이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