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의 호의(Courtesy of the Red, White & Blue)."
2026년 2월 28일, 미국이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란을 침공했다. 전쟁이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포함해, 무차별 폭격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는 전쟁에 참여한 미국인들도 포함됐다.
지난 5일, 미 백악관이 공식 SNS을 통해 공개한 영상이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게이머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20개가 넘는 시리즈의 작품 중 정확히 어떤 작품의 장면인지 알 정도로―<콜 오브 듀티>의 한 장면이었다. 치열한 교전이 한창인 상황, 군인은 단말기를 꺼내 '대량 유도 폭탄(Mass Guided Bombs)' 공격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면이 뭔가 이상했다. 굉음과 함께 시뻘건 불꽃을 토해내며 미사일이 날아가는데, 게임 속 한 장면이 아닌 현실의 그것이다. 이윽고 등장한 폭격 장면 역시 실제다. 폭격에 성공하자 게임처럼 킬 스코어가 오르는 것 빼곤 말이다.
화면 너머에 존재하는 타인의 고통과 비명은 완벽하게 거세되었고, 오직 '통쾌한 타격감'과 '미국의 압도적인 화력'이라는 군사적 스펙터클만이 남았다.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이 한 편의 오락거리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 미 백악관 공식 계정으로 올라온 트윗. 실제 미군의 폭격 장면에 게임 속 킬 스코어 UI를 편집했다.
오늘도 백악관의 트윗은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는 아예 숏폼 영상으로 미국의 이란 공습 영상을 보란듯이 올리고 있다.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Wanna see me do it again(또 해볼까)?" 밈(Meme)까지 덧붙여서.
이들은 밈에 참 민감하다. 최근 유행 중인 <포코피아> 로고를 패러디해 "Make America Great Again", 즉 'MAGA' 메시지를 전달한다. 게임에 이어 인터넷 밈까지 프로파간다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예상한 바 그대로다. 이번엔 미국이 SNS에서 밈 전쟁을 열었다. 많은 이들이 똑같이 <포코피아> 로고로 이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엡스타인 관련 루머를 겨냥한 미국 민주당의 "소아성애자 비호를 중단하라(Stop Protecting Pedophiles)" 메시지가 대표적이다.
얼떨결에 무기생산자(?)가 된 포켓몬 컴퍼니는 "우리의 사명은 세상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며, 그 사명은 어떠한 정치적 관점이나 의제와도 관련이 없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곱씹어봐도 참 '웃픈' 현실이다.
▶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 SNS, 무기가 된 밈.
# 게임, 프로파간다의 수단이 되다
미국 정부가 이토록 노골적으로 게임을 프로파간다에 동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세관집행국(ICE)의 불법 이민자 단속이 극심했던 시기에도 동일한 전략이 사용되었다.
당시 국토안보부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이민자 체포 성과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포켓몬스터>를 활용했다. 미국에서 <포켓몬스터>를 상징하는 캐치프레이즈 "Gotta Catch ‘Em All"을 패러디해, 마치 포켓몬처럼 불법 이민자들을 다 잡아들이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체포된 이민자들을 포켓몬 카드로 만들었다. 포켓몬의 모습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민자의 몽타주와 이들의 국적이, 설명란에는 이들의 혐의가 기재됐다.
한 사람의 인간이 그저 유희를 위한 '수집 대상'으로 전락했다. 적어도 포켓몬은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받는데, 이들이 인권은 존중받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 국토안보부는 ICE의 이민자 체포를 <포켓몬스터>에 빗대어 표현했고, 체포된 이민자들의 신상을 포켓몬 카드에 담아 공개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그쳤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이들은 SF 슈팅 게임 <헤일로>의 이미지를 차용해 ICE 요원 모집을 홍보했다.
이들이 사용한 문구 "Destroy the Flood(플러드를 박멸하라)"에서 '플러드'는 <헤일로> 세계관 내에서 가장 위협적인 끔찍한 '기생체'를 의미한다. 이민자들을 외계 생명체(alien), 그것도 기생체로 표현한 부분에서 이들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헤일로>의 주인공 '마스터 치프'를 하나로 합친 이미지를 게시했다. 이는 단순히 웃긴 이미지가 아니다.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외계의 침략으로부터 인류를 수호한 영웅과 동일시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으니 말이다.
▶ 왼쪽이 국토안보부가 게시한 이미지, 오른쪽이 백악관이 게시한 이미지.
# 탈정치화, 그리고 폭력의 오락화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토록 집요하게 게임과 밈을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사용하는가? 그 해답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이유는 밈이 현재의 청년 세대를 관통하는 '모국어'이자, 복잡한 현실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납작하게 만드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밈은 태생적으로 무거운 역사적 배경이나 복잡한 윤리적 맥락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오직 직관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만을 남긴다.
지금 유행하는 많은 밈들을 떠올려보라. 그것이 어디서, 어떤 맥락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의식하고 사용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밈이 된다는 것은 곧 맥락을 지우고, 자극적인 인상만 남긴다는 것이다.
만약 백악관이 이란 공습의 지정학적 이유나 이민 정책의 법적 타당성을 진지한 연설로 풀었다면, 청년들은 "지루하고 현학적"이라 불평하며 화면을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포코피아>의 귀여운 폰트나 커뮤니티에서 볼법한 짧은 유머의 형태로 다가올 때, 대중의 비판적 사고는 작동을 멈춘다. 사안의 본질을 숙고하기도 전에 밈이 주는 원초적인 재미와 친숙함에 취해버린다. 여기서 조금만 진지하게 반응하면 '진지충'이라는 딱지가 붙기 마련이다.
결국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국가의 무력 행사와 인권 침해 문제는 한낱 농담거리로 전락하며 완벽하게 탈정치화된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거부감 없이 우리의 인식 속에 스며든다. 국가는 물리적인 무기뿐만 아니라, 우리의 웃음과 무관심마저 가장 예리한 프로파간다의 무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 과거 액티비전으로부터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내용의 게임을 개발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폭로한 챈스 글래스코.
두 번째 이유는 게임의 문법을 빌리면 잔혹한 폭력도 유희를 위한 놀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게임 속에서 다양한 존재들과 싸운다. 악마와도 싸우고, 외계인과도 싸우고, 다른 나라 혹은 다른 민족과도 싸운다.
이 과정에서 자행되는 폭력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것 혹은 단순한 유희를 위한 것이다. 정부는 바로 이 같은 게임의 문법을 빌려 폭력을 세탁한다.
앞서 언급한 백악관의 영상이 단적인 예시다. 현실의 폭격 영상에 게임의 UI를 더하는 순간, 화면 너머의 타겟은 더 이상 현실의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처치해야 하는, 게임 속에서 숱하게 만났던 NPC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만다. 이들의 비명과 죽음은 우스꽝스러운 밈의 등장으로 우리의 시선 밖을 떠돈다.
이처럼 잔혹한 현실이 철저히 계산된 엔터테인먼트로 치환될 때, 대중은 국가의 폭력에 윤리적 거부감을 느끼는 대신 통쾌함이라는 오락적 쾌감을 소비하게 된다. 국가는 대중의 도덕성을 마비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할 완벽한 면죄부를 손에 쥐게 된다.
혹자는 이를 두고 "지나친 확대해석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저 트렌드에 편승한 가벼운 해프닝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통해 특정 국가와의 전쟁을 정당화하고 오락거리로 만들려는 시도는 결코 망상이 아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최근 <콜 오브 듀티> 개발사인 인피니티 워드의 공동 창립자 챈스 글래스코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다. 과거 퍼블리셔인 액티비전으로부터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내용의 게임을 개발하라"는 '노골적이고 불편한 압박(very awkward pressure)'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의 갈등을 게임이라는 엔터테인먼트로 치환해 대중의 인식을 조종하려는 욕망이 실재했음을 방증한다. 과거 가상 세계에서 이란과의 전쟁을 오락거리로 기획하려던 시도가, 수년이 지난 지금 현실의 이란 공습 영상을 게임처럼 포장하는 백악관의 행태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 오락이 된 폭력
가장 뼈아픈 아이러니는 따로 있다. 오랜 시간 게임 산업은 "게임이 현실의 폭력을 조장한다"는 사회적 편견과 싸워왔다. 단순한 오락을 넘어 전쟁의 참혹함과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는 성숙한 매체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자정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 오늘날의 게임계다.
그런데 정작 현실의 무력을 철저히 통제하고 무겁게 다뤄야 할 국가 권력이, 자신들의 행위를 포장하기 위해 게임의 가장 표층적인 '폭력성'과 '오락성'만을 차용하고 있다. 이는 게임계가 오랜 시간 쌓아온 성찰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씁쓸한 행태다.
게임 속 'Game Over'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벼운 실패를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의 전쟁과 강제 추방은 누군가의 삶에 찍히는 되돌릴 수 없는 마침표다. 국가의 폭력이 대중문화의 장막 뒤에 숨어 한낱 가벼운 유머로 소비되는 작금의 상황은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다.
결국 남은 몫은 모니터 앞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게이머이자 한 명의 시민으로서, 화면 너머로 주어지는 유쾌한 밈을 무비판적으로 소비하고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게임처럼 편집된 영상과 친숙한 폰트 뒤에 가려진 현실의 피사체를 직시하고, 그 이면에 깔린 의도를 읽어내는 '리터러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오락이 된 폭력'에 대중이 무감각해지는 순간, 현실의 비극은 언제든 우리의 일상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 것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