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하자드>의 2편과 4편을 리메이크하며 인기 캐릭터 '레온'의 복귀를 견고하게 준비해 온 캡콤은 아홉 번째 시리즈로 레온의 현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의 배경은 2026년 가을, 검은 멍이 든 의문의 시신들이 잇달아 발견됩니다. 엄브렐러의 T-바이러스가 남긴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는 거죠.
누가 무슨 일을 왜 벌이고 있는 건지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 건 레온뿐만이 아닙니다. 이번 게임은 두 명의 주인공으로 플레이하게 되며, 새로운 캐릭터는 FBI 조사관 '그레이스'입니다. 특징만 간단히 놓고 보면 레온과 클레어로 플레이 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시리즈와 비슷해 보이지만, 많은 개선이 있었던 리메이크와 비교해도 구성부터 게임성까지 발전한 부분이 많습니다./ 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한지훈 기자

# 사랑스러운 겁쟁이 그레이스의 등장
시리즈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그레이스는 역대 가장 평범하고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캐릭터입니다. 총은 쏠 줄 알고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내지만 너무나도 겁이 많은 FBI거든요.
그레이스로는 레온과 거의 같은 분량을 플레이 하게 되는데, 그레이스의 가쁜 호흡과 떨리는 목소리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실감 나게 살려냅니다. 조금은 신기하게도 저는 전혀 공포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레이스의 음성 때문에 괜히 안절부절못하게 돼서 평소라면 시큰둥했을 장면들도 긴장하면서 플레이하게 되더라고요.
캐릭터마다 1인칭과 3인칭 중 선택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데, 공포감을 느끼기엔 1인칭이 좋고 게임에서도 이를 권장하지만, 그레이스를 3인칭으로 플레이하는 것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겁을 먹고 잠시 얼어붙는 모습이라거나 놀라서 허둥대며 달리는 그레이스의 귀여운 몸짓도 확인할 수 있거든요.
▶ 역대급 겁쟁이 캐릭터, 그레이스.
▶ 몰입은 1인칭이 좋지만, 허둥대는 그레이스를 보고 싶다면 3인칭이 답.
# 서바이벌 호러의 재미에 집중한 그레이스 파트
그레이스와 레온의 파트는 각각 게임성과 시스템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레이스는 대단한 전투력을 가진 게 아니기 때문에 무기는 레온이 준 어설트 리볼버 '레퀴엠'과 호신용으로 챙긴 권총, 대부분 방어용으로 쓰게 되는 작은 나이프를 다룹니다. 쉽게 처치할 수 있는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 스타일은 적극적인 전투를 벌이기보단 잠입 위주로 진행이 되죠.
이번 시리즈에서는 늘 있던 퍼즐이 메인 진행에서는 대폭 축소됐는데, 그 퍼즐의 담당도 그레이스입니다. 그레이스 파트는 장르의 정통에 가깝습니다. 클래식 난이도부터는 잉크 리본을 소모해 수동 저장의 횟수에 제한이 있고, 인벤토리는 8칸에서 시작해 압박감이 꽤 있거든요. 여기에 피를 모아 아이템을 제작하는 그레이스만의 시스템으로 자원 관리의 재미를 특색 있고 정교하게 구현해 두기도 했습니다.
▶ 숨 막히는 그레이스의 인벤토리. 한 번에 2칸씩, 16칸까지 늘릴 수는 있다.

▶ 그레이스는 채혈을 해서 아이템 제작을 할 수 있다.
# 도끼를 들고 호쾌한 액션으로 돌아온 레온
한편 40대 후반의 나이답게 중후해졌지만 여전히 찰랑이는 금발의 레온은 그간 어떤 훈련을 한 건지 4편의 리메이크에서 보여준 것보다 더 격렬하고 시원한 액션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리메이크에서 선보인 패리는 나이프 대신 튼튼한 도끼를 씁니다. 제대로 쳐내면 바로 부러져버렸던 나이프와 달리 도끼는 상시 장비할 수 있습니다. 날이 좀 무뎌져도 비용 없이 간단한 키 입력으로 새것처럼 되돌릴 수 있고요. 도끼는 발차기와 함께 밀리 공격의 장비로도 쓰는데 일반 공격과 강공격 외에 스텔스 킬에도 활용이 가능합니다.
인벤토리는 업그레이드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아주 넉넉하고, 근접 무기의 효율이 좋은 덕에 탄약도 이전보다 부쩍 여유롭습니다. 기존의 파밍과 제작 방식은 유지하고 있지만 중반쯤부터는 용병 모드처럼 적을 처치하면 크레딧을 얻고 이걸 모아 탄약을 구매하거나 무기의 업그레이드를 하게 됩니다. 수동 저장이 가능하지만, 어떤 난이도에서든 자동 저장이 수시로 되기도 하고요.
▶ 못 본 사이 고민거리를 하나 안고 돌아온 레온. 무슨 일인지는 게임에서 직접 확인해 보자.
▶ 약한 나이프는 이제 그만. 이번엔 도끼로 패리한다.

▶ 레온으로는 적을 처치하면 크레딧을 받아 상점을 이용할 수 있다.
# 두 파트의 입체적이고 균형 잡힌 공존
정리해 보면 서바이벌 호러의 장르적 특징은 그레이스에게 집중하고 레온 파트의 플레이는 캐주얼한 액션 게임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덕에 레온으로 플레이 할 땐 너무 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쾌적한 해방감이 그레이스로 플레이 할 때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정말 절묘하고 적절한 밸런스라고 느껴질 정도로요. 어떤 면에서는 세계관 설정과 시간의 흐름에 걸맞게 레온의 노련함과 강인함이 느껴져서 더 자연스럽기도 하죠.
둘로 나뉜 파트의 구성도 2편의 리메이크처럼 단절된 상태에서 지난 이야기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과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주다 보니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거든요. 같은 장소를 배경이나 소재로 하더라도 스토리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장소를 플레이하기도 해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면도 거의 없습니다.
▶ 고전 서바이벌 호러처럼 퍼즐을 풀고 자원 관리를 하며 잠입 플레이를 하는 그레이스 파트.
▶ 캐주얼한 액션 게임 같은 레온 파트로 돌아오면 그레이스 파트에서의 긴장이 시원하게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 묘한 완급 조절과 밀도 높은 플레이 경험
특히 좋았던 건 두 파트가 서로 전환되는 시점과 각 파트 길이의 완급 조절입니다. 수집 요소를 챙기는 플레이를 기준으로 어떤 구간은 지역이 넓어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구간은 조심스러운 플레이로 피로도가 높기도 한데요. 이런 지역의 규모부터 퍼즐과 길의 복잡도와 같은 요소, 플레이의 방식까지 많은 것들을 다채롭게 구성하면서도 딱 알맞게 분배하고 배치해 플레이의 균형을 잡아냈다는 겁니다.
지역들의 연결도 자연스러우면서 의외성이 있어 여러 지역이 등장하는데도 이질감이 들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고요. 전작들을 해 봤다면 반가운 곳도 들르며 감성까지 살뜰히 담아냈습니다.
이상적인 규격에 담긴 경험도 밀도가 높습니다. 세심하게 배치한 좀비들은 섬세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너덜너덜한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거나, 눈이 먼 채 수액 거치대를 휘두르며 소리에만 반응하거나, 메이드복을 입고 더러운 피만 닦고 다니는 등 첫 지역인 요양 병원에 등장하는 좀비만 해도 구성이 굉장히 알찹니다. 지역에 상관없이 같은 디자인의 적이 등장하는 게임들이 즐비한데, 그 지역의 유니크한 생태계를 만들어 둔 데서 오랜만에 기분 좋은 집요함이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 장소의 이동과 파트의 연결은 자연스럽고, 전환의 시점도 절묘하다.

▶ 캐릭터가 확실한 적들은 지역마다 다양하게 등장한다.
# 알차고 깔끔하게 즐긴 세 번의 플레이
회차 요소는 전작들과 동일하게 플레이를 통해 얻은 클리어 포인트로 특전을 구매하는 방식입니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짜임새 좋은 맵 디자인과 특전 시스템으로 회차마다 다르게 플레이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초회차는 수집 요소도 챙겨가며 천천히 탐험하는 플레이를, 2회차는 경로를 최적화하면서 특전을 노리는 스피드런과 제약 플레이를 하고, 3회차는 난이도를 높이되 획득한 특전을 누리면서 익숙해진 게임을 마무리하는 식으로요.
저는 1회차는 초회차 최고 난이도인 클래식 모드의 표준 난이도로 실제 플레이 타임은 12시간, 세이브 파일 기준으로는 9시간 정도로 완주했고, 2회차는 캐주얼 난이도로 하되 4시간 스피드런과 약물과 약초 및 그레이스의 채혈을 쓰지 않는 목표에 도전했습니다.
그레이스의 채혈을 쓰지 않으면 채혈을 통한 탄약 제작을 할 수 없어서 탄약이 부족해서, 칼의 내구도를 무한으로 바꾸는 특전을 썼는데 1회차와 전혀 다른 느낌이라 색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3회차는 엔딩을 봐야 해금되는 광기 난이도를 선택했지만 목표를 달성해서 얻은 특전으로 무한 탄약과 무한 저장을 누리며 즐겁게 플레이했습니다. 시리즈 전통의 무한 RPG-7도 있고요. 이렇게 그야말로 효율과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3번의 플레이로 플래티넘 트로피도 깔끔하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초회차는 실제 시간으로는 12시간이 걸렸다.
▶ 클리어 포인트를 노리게 되는 회차 시스템과 무한 탄약은 그대로.
# 깊이와 초점에서 아쉬움이 드는 이야기
플레이로는 흠잡을 데가 없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레이스에 대해 애틋함이 생기면서 품게 된 개인적인 욕심이 하나 있었거든요. 그레이스가 여느 때보다 공감이 되는 주인공이다 보니 피상적인 이야기만 쫓기듯이 다루는 건 자못 아쉬웠습니다. 끔찍한 기억의 장소를 극복해 내는 이야기, 겁 많은 아가씨가 지키고 싶은 대상이 생기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는 그레이스의 파트는 아주 조금은 더 그레이스의 감정과 생각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또 오랜 팬들이 아니라면 이야기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관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소외감이 들 만한 연출도 적지 않거든요. 이야기는 진부하고 그나마 흥미로운 전개에 비해 엔딩이 싱겁기도 해서, 이번에도 아이코닉한 캐릭터들이 발군이었던 데 반해 이야기의 매력은 부족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대신 멋진 레온을 보고 입덕해서 리메이크도 됐겠다 2편과 4편을 해 보고 싶게 만드는 캡콤의 큰 그림이라면 그 또한 일리가 있다고 보기는 합니다. 일단 저부터 다시 플레이하고 싶어졌거든요.
▶ 그레이스의 서사는 더 깊게 다뤄줘도 좋았을 것 같다.
▶ 30주년을 기념하는 타이틀답게 반가운 인물과 추억의 장소가 많이 등장한다.
# 총평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30주년에 발매된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라쿤 시티의 신입 경찰이었던 레온이 떠나보낸 동료와 시민들을 기리는 진혼곡이자 시리즈를 아껴온 팬들을 향한 정성스러운 연가입니다. 레온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2편의 배경과 시스템을 바탕으로 4편의 액션 스타일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치밀하게 다듬어낸 결정판이기도 하고요.
지난 4편의 리메이크를 플레이했을 때 리메이크의 모범 답안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타이틀은 더블 주인공 게임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훌륭한 답안지 같습니다.
오랜 시간 인기를 유지했고 한 장르의 대중화에 기여한 시리즈로서 <바이오하자드>가 택한 선택은 너무나도 마음에 듭니다. 내가 사랑하던 면들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하고 추억을 소중히 여겨줬으면 하는 팬들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플레이어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끔 했으니까요. 사실적인 광원과 미려한 비주얼을 부드럽게 구현한 RE 엔진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개발진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캐릭터의 매력을 받쳐주는 좋은 스토리도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고, 소소하게는 제자리걸음 같은 달리기가 종종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번 타이틀은 최고의 <바이오하자드>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가치 있는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제가 남기는 기록이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