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들을 보고 흔히 "얼굴만 봐도 즐겁다"는 말들을 쓰곤 한다. 외모가 사람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임도 일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야 시작할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앤섬 넘버 나인>(ANTHEM#9)은 기자를 포함해 적잖은 사람들의 취향에 적중했던 듯하다.
<페르소나 5>에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아트와 사운드, 여러 효과를 누적하고 젬 스톤으로 콤보 연계를 만들어 무한에 가까운 공격을 퍼붓는 전투는, 콘셉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퍼블리셔 슈에이샤 게임즈가 <도시전설 해체센터> 등의 대표작에 이어, 또 한 번 '만화' 같은 화풍의 괜찮은 게임을 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 2>의 3월 얼리 액세스 출시 전까지 해볼 만한 로그라이크 게임을 찾고 계신다면, <앤섬 넘버 나인>을 가볍게 즐겨보셔도 좋겠다./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보석을 정렬해서 무한에 가까운 콤보 연계를 만들자
<앤섬 넘버 나인>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게임의 룰이 굉장히 직관적이라는 것이다.
빨강, 파랑, 초록 3가지 색깔의 젬 스톤(보석)을 스킬 카드의 발동 조건에 맞게 정렬하는 것으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색 배열(스킬 발동 조건)이 다른 스킬과 꼬리를 물며 이어져도 괜찮다는 것이다.(빨파, 파초, 초빨 스킬 3장이 있다면 빨파초빨 순으로 배열하면 1, 2, 3, 1 순으로 스킬이 발동)



위의 모습처럼, 처음에는 턴마다 주어지는 젬의 숫자가 적어서, 꼬리를 물며 연계를 해도 일정 수준까지만 콤보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는 초반부의 시작에 불과하다.
스킬을 강화하면 한 번의 조건 달성으로 반복 발동되게 할 수도 있고, 여러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대미지나 콤보 연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튜토리얼 구간에서부터 이 정도의 콤보 연계를 보여주는 <앤섬 넘버 나인>이다.
게임의 본편에 들어가면, 캐릭터마다 고유의 캠페인(PvE) 모드를 만나볼 수 있는데, 각 캐릭터마다의 기믹 구성도 다양해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다.


# 로그라이크의 다른 말은 인내 끝의 쾌감?
그래서 여러분이 궁금해하실 지점은 이 게임이 재밌었냐는 것일 텐데, 재미 자체는 확실히 있다.
단검과 독을 써서 화려하게 싸우는 '루빗'은, AP(부가 자원 중 하나)를 소비해 젬의 색을 바꿀 수 있어 안정적인 콤보 연계를 이어갈 수 있다.

▲ 더 강력한 스킬일수록 제약이 있거나, 색 배열 조건이 더 길고 까다로운 편이다. 스킬의 색 배열을 부분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기회가 진행 중에 제한적으로 주어진다.
위의 스크린샷에서도 볼 수 있는데, 색 배열 연계는 꼬리를 무는 방식이 아닌 [포함된] 방식도 허용된다. 초파파빨 스킬을 쓰는 동안에 초파파 스킬과 파빨 스킬은 자연스럽게 써지는 식이다.
당연하지만 처음부터 저렇게 예쁜 연계 배열을 가지고 있진 않다. 로그라이크 가지 형태의 진행 루트를 따라가면서, 적을 처치하고 보상을 얻거나, 상점에서 스킬과 기물을 구매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저런 '빌드'가 완성된다.
기본적으로 <앤섬 넘버 나인>은 공격적인 콤보 플레이를 지향하게 설계되어 있다. 플레이어의 스킬 카드들에는, 적의 스킬을 캔슬할 수 있는 수치도 붙어 있는데, 공격을 퍼붓는 과정에서 적의 행동을 봉쇄하는 것도 가능하다.

위의 사진처럼, 적의 스킬을 모두 취소시키면 추가 보너스 공격도 주어진다.
물론 예외도 있다. 일부 적들은 캔슬할 수 없는 필중 스킬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캐릭터나 빌드 스타일에 따라 공격과 방어 양쪽 모두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경우들도 많이 존재한다.


'퍼니'는 총을 무기로 사용한다. '퍼니'로 플레이하면 두 가지 젬이 뭉친 '더블 젬'이 등장하는데, AP를 소모해 이 더블 젬을 분할할 수 있다.
더블 젬 상태로 소모해 특정 스킬에 시너지를 낼 수도 있고, 더블 젬 상태로 다음 턴까지 남기는 것으로, 킵하는 젬 스톤 수의 제약에 구애를 덜 받는 것도 가능하다.


모든 캐릭터에 공통되는 이야기지만, 특히 '퍼니'는 축복(해당 전투에서만 발동되는 패시브 또는 소모 아이템)과 연계된 스킬이 많아, 빌드 업 과정에서 축복 또한 잘 챙겨야 한다.

'베니'는 AP로 젬을 소비하는 대신 공격력, 실드, 회복 효과 등 버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회복 효과를 부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베니'는 공격과 방어를 모두 신경써야 하는 캐릭터다. 자신의 체력을 일부러 깎아서 맹공을 퍼붓는 아슬아슬한 전략도 포함되어 있다.


<앤섬 넘버 나인>은 koeda라는 개발자의 데뷔작이다.
스팀 페이지에서 그는 자신을 "업계 경험이 없으며 프로그래머도 아니다. 그럼에도 게임 개발의 꿈을 놓지 못해, 서른이 넘어 입문서를 한 손에 들고 과감하게 업계에 뛰어든 독특한 개인 개발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인디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흔치 않은 전략성과 쾌감을 구현해낸 것에 박수를 쳐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진 않았다. 로그라이크 장르 특유의 '처음부터 다시 쌓아 새로운 방향과 높이를 찾아가는 반복적인 과정'이 양날의 검이었다.

일단, 한 판 한 판의 전개 자체는 빠른 편에 속한다. 반복적인 연출은 버튼만 누르면 쾌속 진행도 된다.
(<슬더스>의 승천 같은 엑스트라는 제외한) 메인 미션들을 기준으로 한 미션 전체의 길이도 20, 30분 내외로 길지 않아 부담은 적은 편이었다.
다만, 전략과 빌드가 다양함에도 그 빌드에 도달하는 과정에선 큰 차이를 주지 못했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예를 들어, 원하는 스킬이 선택지에 있어도 색 배열이 지금의 덱과 맞지 않아서 버려야 하는 때가 굉장히 많다.(같은 코스트의 스킬은 같은 개수의 색 배열만 요구한다. 같은 스킬이라도 빨빨초, 빨초파로 다르게 만날 수 있다.)
콤보 연계를 쌓는 게 중요한 게임이라, 상점에 들러 턴마다 획득하는 젬의 수를 늘리는 기능을 사고, 스킬 칸에 들러 지금 있는 덱의 색 배열을 맞추는 과정에 집중하게 된다.
그나마 있는 이벤트 칸이나, 강력한 적(엘리트 에너미)과의 대치는, 제공하는 보상이 빈약한 편이라 후순위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 그 어떤 선택지들보다도 가장 우선시되는 색 배열 변경
# <슬더스>의 밸런스와 <페르소나>의 깊이를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스크린샷들만으로도 느끼셨겠지만 <앤섬 넘버 나인>은 <페르소나 5>의 아트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인게임 BGM 또한 그 분위기를 내려 노력한 것이 눈에 띈다. 일부 몬스터들의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모델링 및 캐릭터 디자인 측면에서 <페르소나> 시리즈와 동일한 완성도는 아니지만, 여기에 화려한 콤보 연출이 더해지니 <앤섬 넘버 나인>만의 스타일로 잘 소화했다는 느낌이다.
단점이라고 할 요소까진 아니지만, <앤섬 넘버 나인>은 세계관 전개나 스토리 중심의 게임은 아니다. 로그라이트 전투 안에서 빌드를 쌓아가는 재미에 중점을 둔 작품이다.
비주얼만 보고 <페르소나> 시리즈처럼 거창한 스토리텔링이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다.(기자도 그런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구성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2만 원이라는 정가 이상의 분위기와 재미는 갖춘 작품이라고 본다.
장르 대표 주자인 <슬레이 더 스파이어> 수준의 완성도나 밸런스를 기대하면 약간의 아쉬움은 있겠지만, 젬 스톤으로 색 배열을 하는 것으로 스킬 콤보를 무한에 가깝게 쓴다는 <앤섬 넘버 나인> 특유의 기믹이 독창성을 충분히 더해주고 있다.
시원시원한 콤보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게임, 적절한 깊이의 전략을 가진 작품을 찾고 계신다면, <앤섬 넘버 나인>을 해보시길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