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전문기자로 일하면 게임 진짜 많이 하시겠어요. 재밌는 게임 있으면 하나 추천해주세요."
어쩌다 직업을 밝힐 자리가 생기면 항상, 매번 듣는 말입니다. 그 누구보다 게임을 많이 하고 사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꼭 장점만 있진 않아요. 일 때문에 하는 게임도 꽤 많고, 아시겠지만 '일'로 하면 재밌다가도 재미 없어지는 게 사람 본능이니까요.
"연휴가 너무 길어도 문제예요. 3일까진 괜찮은데 더 넘어가면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업계 동료 중 한 명이 한 말입니다. 크게 공감해요. 가족, 친척, 동네 친구 누구든 오랜만에 긴 시간 같이 있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명절 연휴가 완전한 자유와는 거리가 멀긴 하죠.
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기자가 지난 3개월 동안 일 때문에 한 게임이 아닌 진짜 여가 시간을 써서 한 게임. 정말 이건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하다 하는 3개 타이틀을 엄선해 소개해드립니다.
아마 여러분의 게임라이프에서도 인생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은 작품들일 거라 자신합니다./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2월 14일부터 18일 토일월화수, 그 다음 주말인 21, 22일까지 짧지 않은 연휴가 있죠. 사진은 명절답게 가족의 이미지를 넣어뒀지만, 추천하는 게임들은 패밀리게임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간'이 넉넉하다는 데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죠.
# <마마마>와 <단간론파>, <역전재판>을 좋아하셨다면! 제발 꼭 해보세요.
◆ <마법소녀의 마녀재판> (Magical Girl Witch Trials, 魔法少女ノ魔女裁判)

오타쿠 문화에 대한 존중이 없는 환경이라면 "어머, 너 그런(?) 게임 하니?" 소릴 들을 수도 있겠지만요. 몰입해서 시간을 보내기에 이만한 게임이 또 없다고 생각하기에 과감하게 추천드려 봅니다.
중제처럼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의 절망적인 세계, <단간론파>, <역전재판>의 깊이가 있으면서도 시스템적으로 마냥 어렵지만은 않은 추리게임 스타일을 좋아하신다면, 이 <마법소녀의 마녀재판>을 놓치시면 안 됩니다.
지난 1월 스팀에서 추리게임 페스티벌을 하던 당시에 최상단에 있어 우연히 입문했다가, 20시간, 30시간이 뚝딱 날아간 명작입니다. 유저 한글패치도 있으니, 추리게임이나 라이트노벨 장르를 좋아한다면 꼭 해보셔야 할 게임 중 하나입니다.

<마법소녀의 마녀재판>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정체 모를 감옥에 갇힌 것을 깨닫는 13명의 소녀들이 펼치는 '마녀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녀화가 진행될수록 살인 충동을 느끼게 되는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범인인 마녀를 찾아 형벌에 처하게 해야만 나머지 소녀들이 생존할 수 있는 매우 절망적인 공간에 소녀들이 갇혀 있죠.
'마녀'라는 단어에서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13명의 소녀들은 각기 다른 '초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 초능력이 살인에 어떻게 쓰였는지를 밝혀내는 과정이 추리의 밑바탕에 있습니다.


앞서 30시간 가까이 플레이했다고 말씀드렸는데, 라이트노벨 추리게임치고는 분량이 긴 편입니다. 그럼에도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반전도 많고, 몰입감이 상당하죠. 이 긴 분량을 모두 풀더빙을 해둔 개발팀의 정성도 대단합니다.
문제는 이 '반전' 요소들입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실 의향이 있는 분들은, 제발(정말 제발) 게임의 제목과 큰 콘셉트 외엔 아무 정보도 접하지 않고 플레이하시길 권장드립니다. 흔히들 말하는 "안한 뇌 삽니다"의 표본인 게임이기 때문이죠.
기자도 그래서 말을 최대한 아끼려 합니다. 시간이 넉넉한 연휴일 때 꼭 해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기자처럼 평일에 밤을 새며 플레이하고서는, 반전의 후유증에 긴 시간 골골대는 꼴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 수려한 아트, 이 긴 분량을 모두 음성 더빙해둔 정성, 후유증이 길 정도로 몰입감 있는 스토리와 반전, 치밀한 추리까지. 취향에만 맞는다면 <마법소녀의 마녀재판>은 인생게임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은 작품입니다. 꼭 해보세요.
# 쓸모없는 인생, 낙인을 찍는 시선? 진짜 영웅은 그 안에서도 탄생합니다
◆ <디스패치> (Dispatch)
본지에서도 이미 리뷰로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 좋은 스토리를 가진 게임의 표본 <디스패치>를 한 번 더 추천해드리려 합니다. (리뷰 바로가기)
2025년 10월에 출시된 <디스패치>를, 개인적으로 플레이한 건 연말 크리스마스 연휴 때나 돼서였습니다. 10월, 11월엔 다른 게임들을 '일' 때문에 하느라 물리적인 시간이 도무지 나질 않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연휴의 새벽까지 바쳐가며 플레이했던 그 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정말 눈물 콧물 쏟아가며, 이 게임의 스토리에 몰입했었기 때문입니다.

'메카맨'(누가 봐도 아이언맨과 닮은)이라는 이름으로 기계 슈트를 입고 히어로로 활동했던 주인공 '로버트'는, 빌런들과의 결투에서 재기불능 수준의 부상을 입고 히어로 활동을 멈추는 것까지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나는 '블론드 블레이저'(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여성 히어로)는 그에게 부상을 회복하고 슈트를 복구할 동안, '히어로'가 아닌 '히어로를 파견하는 일'을 해볼 것을 제안하죠.
그렇게 주인공 '로버트'는 디스패치라는 히어로 회사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인원(주로 빌런 출신)들만 모인 'Z팀'의 매니징을 맡게 됩니다.



인터랙티브 무비와 히어로 파견 시뮬레이션을 적절히 섞은 플레이 내내, 게임은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빌런과 히어로의 경계는 어디이며 무엇이 영웅을 영웅답게 만드는가. 한 번 세상이 찍은 낙인 속에서 개인의 발버둥과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탐내고 있는가.
단순히 쓰레기 취급을 받던 인물이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뻔한 극복 성장 서사만을 다루고 있진 않습니다. 정확히는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고민'과 '감정'을 다루는 쪽에 가깝죠.

영미권 콘텐츠 특유의 말장난과 농담이 많은 대사, 그리고 <디스패치> 게임에서 가장 칭찬할 만한 요소 중 하나인 수준급의 보이스 디렉팅이 더해져, 마치 긴 장편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듯한 감각을 제대로 줍니다.
무너질 것인가 다시 일어날 것인가, 내 앞에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줄 것인가. 말 몇 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가.
아마 <디스패치>를 플레이해보시고 나면,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진지하게 찾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 서사적 완성도 하나로 복잡할 수 있는 소재까지 모두 소화한 명작! 이만한 스토리게임 또 없습니다
◆ <1000xRESIST>

앞선 두 게임도 소위 '스토리 갓겜' 반열에 드는 게임이지만, 근 몇 년 사이에 했던 게임 중에 서사적 완성도나 메시지의 힘이 가장 뛰어난 게임을 하나 꼽으라면, 개인적으로 이 <1000xRESIST>를 강력 추천할 것입니다.
처음 이 게임을 구매했던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스토리가 워낙 좋다더라"하는 해외 유저들의 반응과 (기자의 최애 게임인)<록맨> 시리즈의 SF 설정과 뭔가 닮은 게 있나? 하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놀라게 됐죠. 웬만큼 잘 쓰여진 명작 소설들보다도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1000xRESIST>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인해 지상의 인류가 절멸했다는 설정으로 시작됩니다. '점거자'로 불리는 외계 지적 생명체들이 인류에게 적대적이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들이 온 뒤 발생한 정체불명의 '질병'이 인류 종말의 원인이었죠.
병에 걸린 사람들은 눈물을 쏟고 피를 토하며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어른 아이 나눌 것 없이 모두가 고통에 몸부림쳤죠. 그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었는데, '아이리스'라는 소녀였습니다. 모든 인류 중 오직 그녀만이 이 '눈물병'에 면역을 가지고 있었죠.


인류는 '점거자'와 '질병'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했고, '아이리스'의 면역을 활용하기 위해 지하에 도시를 건설합니다. 면역의 근원을 찾기 위해 '아이리스'의 복제품들이 끊임없이 생산되죠.
하지만, '아이리스' 본인 외엔 그 어떤 복제품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리스' 단 한 명만 빼고 모두는, 질병이 무서워 마스크 없이 숨도 쉴 수 없습니다.
동시에 이상하게도 '아이리스'는 죽지도 늙지도 않았습니다. 클론들은 자신의 뿌리인 그녀를 "올 마더"라고 불렀죠. 그녀는 클론들을 "자매"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무려 1,000년의 시간이 지나갑니다. 지상을 잊은 지하에서 가짜 복제품들의 사회만 만들어진 채 말이죠.


<1000xRESIST>의 서사는 시간을 넘나들며 다층적으로 진행됩니다. '아이리스'가 지상에 있던 시절의 이야기, 지하에서 클론들끼리 1,000년을 보낸 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와 그 너머에 있는 이야기들이 서서히 드러나는 구조죠.
아주 초반 1시간 내외의 플레이에선 이 세계관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순 있습니다. 서사의 크기에 비해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이 다소 밋밋한 게 아닌가 할 수도 있죠.
그런 초반 구간에서 망설임이 생기는 분들이라면, '아이리스'와 (그녀의 친구) '마오'가 졸업식을 하는 에피소드의 끝까지는 꼭 보시길 권합니다. 그 시점에서부턴 이야기의 전개에서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압도적인 몰입감이 있으니까요.

지금까지의 SF 서사만 보면 이게 어떻게 연결이 되나 싶지만, <1000xRESIST>는 '홍콩 우산 혁명'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당장 '눈물병'이라 불리는, 외계 생명체들이 온 뒤 지구에 창궐한 질병도 최루탄의 은유니까요.
역사·정치적인 시선이 배제될 수 없는 소재라서 다루기 복잡하고 어려울 법도 한데, 이야기의 줄기를 따라가며 '아이리스'가 지나온 시간과 세상의 배경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시사점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임은 '종말'과 '파괴'라는 설정 안에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 폭력 앞에 기꺼이 몸을 던져야 하는가, 아니면 밖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가.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희생은 허망한 사라짐인가 역사를 바꾼 한 걸음인가. 과거에 두고 온 찬란한 자유는 이대로 잊혀져도 괜찮은가.

참 재밌는 점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엔 저 주제에 대한 생각보다, 인물들의 서사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전개에 대한 호기심과 감정적 몰입이 큰 동력으로 작용하다가, 게임이 끝나갈 때쯤 이 모든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1000xRESIST>도, 처음 소개한 <마법소녀의 마녀재판>처럼 많은 정보를 모르는 채 플레이하는 쪽이 훨씬 좋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리며 언급한 부분들은 이야기 줄기에서 빙산의 일각이니, 꼭 직접 플레이해보시길 강력 추천합니다.
아마 앉은 자리에서 10시간 가까이 되는 플레이를 모두 소화하시고, 엔딩 이후의 여운을 길게 느끼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자뿐만 아니라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런 경험을 하고 평을 남겼으니까요.(아, 그리고 이 게임 또한 보이스 더빙이 매우 출중한 편입니다)
영화 한 두 편으론 도무지 시간이 지나가질 않는 명절 연휴, 오늘 소개해드린 스토리가 좋은 명작 게임들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