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들은 스스로 아동을 보호할 수 있을까. 각국 정부의 답은 '아니오'였다. 게임·소셜 플랫폼을 넘나들며 수백 명의 미성년자가 그루밍 피해를 입으면서, 자율 규제의 한계가 드러났다.
디스코드와 <로블록스>는 연령 인증을 강화하고, 콘솔 3사는 업계 공조를 선언했다. 소송과 입법이라는 압박 앞에서 게임 업계의 아동 보호는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됐다.
▶ (출처: 로블록스)
# 국경 넘는 범죄 패턴과 플랫폼 직접 규제 본격화
2026년 2월 미국 플로리다 검찰이 29세 로드아일랜드 남성 저스틴 애드킨스를 기소했다. 온라인 게임과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넘나들며 아동을 그루밍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는 2024년 <포트나이트>에서 피해 아동에게 처음 접근했고, 전화번호를 교환한 뒤 스냅챗으로 소통 채널을 옮겼다. 이후 아이폰과 <포트나이트> 재화인 브이벅스, <로블록스> 재화인 로벅스 등을 미끼로 수백 건의 성착취물을 제작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이러한 패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호주에서도 27세 퀸즐랜드 남성이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스냅챗을 교차 이용하며 259명의 아동을 상대로 596건의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바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초기 접촉, 사적 채널 이동, 게임 재화 보상'으로 이어지는 동일한 단계를 밟고 있었다. 플랫폼의 설계적 취약점이 범죄 수법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는 방증이었다.
이에 각국 정부는 플랫폼 기업에 단순한 공간 제공자를 넘어선 선제적 관리 책임을 요구하며 법적 공세를 높이고 있다.
호주의 애니카 웰스 연방 통신부 장관은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에 공식 서한을 보내 성인용 콘텐츠와 유해 물질로부터 아동을 보호할 구체적 방안을 소명하라고 요구하며, 아동 보호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에서도 플랫폼의 책임을 묻는 강도 높은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루이지애나주와 텍사스주는 <로블록스>를 상대로 플랫폼이 포식자들을 위한 놀이터가 되었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플로리다주 역시 최근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로블록스>에 형사 소환장을 발부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영국은 온라인 안전법을, 유럽연합은 디지털 서비스법을 도입하여 플랫폼 설계 단계부터 위해 요소를 차단하도록 법제화했으며,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미성년자의 유해 콘텐츠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강도 높은 연령 확인을 의무화하고 있다.
▶ 미국 플로리다 검찰이 <포트나이트> 그루밍 사건 범죄자를 기소했다. (출처: 10 Tampa Bay News 유튜브)
# 기술적 보호와 업계 공조, 선제적 안전 표준 확산
정부와 규제 기관의 압박이 거세지자 플랫폼 기업들은 이용자의 신원을 직접 검증하고 연령별로 환경을 분리하는 기술적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디스코드는 오는 3월부터 전 세계 이용자를 대상으로 연령 인증을 거쳐야만 특정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틴 바이 디폴트(Teen-by-default)' 정책을 시행한다. 이 정책에 따라 모든 이용자는 기본적으로 미성년자에게 적합한 설정값을 적용받으며, 연령 제한이 있는 공간에 접근하거나 설정을 변경하려면 얼굴 스캔이나 정부 발행 신분증 제출로 성인임을 증명해야 한다.
<로블록스> 역시 호주 온라인 안전 규제 기관인 eSafety 커미셔너와 협력하여 연령 확인 절차와 부모 통제 기능을 강화했다. 특히 호주 당국이 로블록스의 PG 등급 적절성을 재검토하기 시작하자, 성인과 미성년자 간의 대화를 제한하는 연령 체크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개별 플랫폼의 기술적 대응을 넘어, 업계 차원의 공조 체계가 안전 기준을 상향 평준화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1월 닌텐도, 소니와 함께 '더 안전한 게이밍을 위한 공동의 약속' 업데이트를 발표했다. 세 기업은 예방, 파트너십, 책임이라는 세 가지 핵심 원칙을 바탕으로 플레이어와 부모의 통제 권한 강화, 등급 기관 및 업계 이니셔티브와의 협력 확대, 행동 규범 위반에 대한 신속한 대응 체계 구축 등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공동 약속을 바탕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생태계의 안전 조치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번 달 5일 공개된 제6차 Xbox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사전 대응형 AI 솔루션 도입 이후 스팸 신고 건수가 직전 보고서 대비 90% 감소하는 등 실질적인 지표 개선이 확인되었다.
기술적 방어뿐만 아니라 예방 교육에도 나섰다. Xbox는 오늘부터 <마인크래프트> 내에 온라인 위험 상황을 직접 체험하고 대처법을 익힐 수 있는 교육용 월드 '사이버세이프: 배드 커넥션?'을 무료로 배포한다. 사후 대응 중심이던 안전 정책을 사전 예방 체계로 전환하여, 이용자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 <마인크래프트>의 교육용 월드. (출처: 마인크래프트 에듀케이션 유튜브)
# 보호와 침해 사이, 안전한 생태계 구축이 관건
한편, 일각에서는 플랫폼이 민감한 생체정보와 신분증을 보유하게 되는 만큼 보안 사고 시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디스코드는 불과 몇 달 전 제3자 서비스 제공업체 해킹으로 약 7만 명의 신분증 사진이 노출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디스코드는 얼굴 스캔용 셀피 비디오가 기기 외부로 유출되지 않으며, 파트너사에 제출된 신분증 정보 역시 인증 후 즉시 삭제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배경에서 작동하며 계정 소유자가 성인인지 여부를 추론하는 '연령 추론 모델'을 병행 도입하여 보안을 강화한다.
글로벌 게임 플랫폼 시장은 강화된 규제와 기술적 대응이 맞물리며 안전 설계가 서비스 경쟁력의 주요 지표가 되는 단계에 진입했다. 안전 표준의 상향 평준화가 진행됨에 따라, 플랫폼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규제 기준을 충족하고 이용자 신뢰를 확보할지가 향후 업계의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출처: 디스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