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가. AI와 인간의 발화, 창작물의 구분이 어려워진 시대 유독 스스로에게 더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인간성'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다. 기자 일을 하다 보면 (물론 좋은 인물도 많이 만나지만) 판타지 작품 속 마물보다 더 마물 같은 악인들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JRPG가 항상 힘 주어 말하는 모험과 도전, 용기, 우정, 희생, 연민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발매된 <드래곤 퀘스트 7 리이매진드>는 유독 더 그런 진한 감동을 많이 주고 있다. 시리즈 전체 중에서도 특히 절망의 세계를 잘 묘사했던 원작(7편)이, 이보다 더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아직도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JRPG가 고루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과감히 발을 들이셔도 좋다. 이번 작품이 당신의 첫 <드퀘>라도 아무 상관없을 정도다.
시리즈 입문자가 플레이하더라도 큰 문턱 없이 즐길 수 있는 압도적 편의성, 마치 피규어 디오라마가 움직이는 듯한 깔끔하고 멋진 3D 그래픽, <드퀘> 특유의 음악과 사운드, 성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져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작품이니 말이다.
40시간 이상 시간을 들여 게임의 엔딩 이후 콘텐츠까지 모두 플레이해보면서, 여러분들에게 이 타이틀을 꼭 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는 마음이 내내 커졌다.
<드퀘 7 리이매진드>는 마음 한 켠에 넣어 뒀던 낭만과 설렘이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는 계기가 되어줄 그런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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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고 처연한, 거짓된 모든 것에 도전하는 모험
어른들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바다 너머에는 분명 더 넓은 세상이 있을 거야.
<드래곤 퀘스트 7 리이매진드>의 이야기는, 어촌 마을에 사는 소년 '주인공'이, 왕국의 왕자 '키퍼'와 마을의 소꿉친구 '마리벨'과 함께 "바깥 세상"의 존재를 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떠나는 모험에서부터 시작된다.
PS1 황혼기 시절의 흥행작이었던 원작 <드퀘 7>(2000년 作), 첫 번째 리메이크였던 3DS 버전(2013년 作)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이 작품은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가?"



<드퀘 7>은 '석판' 조각을 모아, 과거의 섬들로 가는 문을 열고, 과거 시대와 현대의 이야기를 넘나들며 진행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섬들은 서로 다른 위기 속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줄 '인물' 또는 '계기'를 절실히 찾고 있다.
7편이 <드퀘> 시리즈 전체에서도 암울하고 무거운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었던 만큼, 그 색채는 <리이매진드>에서도 여전하다. 주인공 일행이 긴 여정 내내 마주하는 현실은 잔혹하기 그지 없다.
배신과 오해 끝에 인간이 마물이 되어 (플레이어가 직접 쓰러트려야 하는) 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과거의 아픔이 현대에서 해소되지 않거나 오히려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가는 경우들도 있다.
주인공 일행뿐만 아니라, 작중에서 무언가를 지키고자 하는 인물들은 말 그대로 모든 '권위'에 맞선다. 일족의 강요된 문화나 역사, 촌장이나 왕 같은 권위, 심지어 '신'격화된 대상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겐 옳은 것은 그저 옳은 것일 뿐이다. 망설임 없는 그 용기가 주는 감동이, 오히려 이 시대엔 귀하다는 점이 서글퍼지기도 하는 시점이다.



# 살아 움직이는 디오라마, 눈과 귀가 즐거운 작품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 등의 작가로 익숙한 토리야마 아키라가 <드퀘> 시리즈의 캐릭터 원화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게이머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사실이다.
이번 <드퀘 7 리이매진드>가 유독 더 아름답고 깔끔한 그래픽으로 다가오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최대한 실사 디오라마풍에 가깝게 구현하려 한 모델링 스타일이다.





인게임에서 마치 인형이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받으셨다면 착각이 아니다.
실제로 개발진은,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의 원화를 기반으로 전문가가 직접 제작한 인형을 촬영해, 이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구현하는 방식으로 주요 캐릭터들에게 숨결을 불어 넣었다.
탐색 과정에서 공간을 자유롭게 돌려가며 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비주얼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된 경험의 일부분이다.

▲ 이렇게 장난감 세상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 게, 이번 <드퀘 7 리이매진드> 비주얼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드퀘> 시리즈 특유의 웅장함과 처연함, 서글픔, 기쁨이 모두 잘 전달되는 것은 물론이고, 현대적인 감각과 추억이 공존하고 있다.
가령, 대부분의 음악과 사운드는 2026년 출시에 맞는 수준의 음질과 풍성한 악기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의도적으로 특정 시그니처 사운드나 문을 넘나들 때의 효과음 등은 레트로 감성으로 남겨둔 것이 특징이다.
<드퀘 7 리이매진드>는 지난 1월 체험판 공개 당시부터 엄청난 호평을 받았는데, 그때 초반부를 즐긴 유저들 중에도 '음악' 때문에 게임을 구매할 것이라는 의견을 남긴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다.
# 압도적인 편의성과 함께 한층 더 진화한 탐색과 전투
<드퀘 7 리이매진드>는 정말 편해도 너무 편한 게임이다. 최근에 한 JRPG 중에 이렇게 부담 없이 플레이한 게임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다.
뒤로 갈수록 워낙 방대해지는 스케일과 여러 시대 및 섬을 넘나드는 탓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는 경우도 있을 법 한데, 맵에 띄워주는 느낌표 마크와 현재 목표만 잘 따라가도, 헤맬 일이 전혀 없었다.
루라(순간이동), 양탄자, 비공석 등도 마찬가지로 이동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드퀘 7 리이매진드>가 가장 크게 혁신을 거듭한 부분은 전투다.
보통 30시간 넘게 턴제 전투를 하고 있다 보면 질리거나 지겨울 법도 한데, 정말 차근차근 아껴둔 도파민을 끊임 없이 제공해주는 성장 커브를 보여주고 있다.
일단, 전투가 편하다는 게 정말 엄청난 강점이다. 필드에선 전투력 차이가 나는 대상을 '단숨에 승리'로 바로 이길 수 있고, 실제 전투 페이즈에서도 하나하나 명령을 내릴 수도 있지만 "공격 중심으로", "요령껏" 등의 방향성을 정해 '자동 전투'를 진행할 수도 있다.

이 '자동 전투'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단순 무식하게 공격만 몰아치는 게 아니라, 아군이 잠들면 옆 캐릭터가 바로 깨워주기도 하고, 회복이나 부활이 필요할 때도 바로바로 나서준다.
이 '자동 전투'만 켜두고 지켜보기만 해도 지루하지 않은 게, 가장 강력한 스킬 하나만 계속해서 쓰는 게 아니라, 웬만하면 다채로운 방식으로 싸워주기 때문에, 새로 배우는 스킬들도 놓치지 않고 전투 과정에서 다 보게 된다.
심지어 전투 진행 속도도 매우 빠름까지 지원해서, 턴제 전투가 답답하고 느리다는 편견도 정면돌파했다. 이 또한 정말 '적당히' 빨라서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어떤 상태 이상에 빠졌는지 시인성은 또 매우 좋다.



이번 작품에서 전투에 재미를 더하는 요소는 크게 4가지 정도가 있다.
◆ 버스트 스킬
각 직업마다 '버스트 스킬'이라는 일종의 특수기, 필살기 같은 개념이 있다. 전투가 진행되면서 버스트 차지를 하면 발동할 수 있게 되는데, '직업'마다 매우 다르다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상위 전직 직업 중 하나인 '현자'는 버스트 상태에서, 주문을 한 번 더 반복해서 사용하는 '메아리 주문'을 쓰고, '도적'은 적을 상태 이상에 빠트리면 한 번 더 행동한다. 설명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매우 강력한 효과들이다.


◆ 메인, 서브 전직! 두 개의 직업
이번 작품에서는 한 캐릭터가 메인과 서브 두 개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심지어 어느 장소에서든 단축키로 전직만 호출하면, 언제든 탈부착할 수 있다.
이미 육성한 직업은 나중에 불러와도 다시 그 단계로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직업을 언제든지 바꿔 붙여가며 키울 수 있는 구조다.
재밌는 점은, 직업을 마스터하는 과정에서 습득하는 개별 스킬들도 다르고 버스트 스킬도 달라서, 이 두 가지 직업의 조합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분신을 소환해 싸우는 버스트 스킬과 근접 공격을 가진 직업을 조합하는 정석적인 방법부터 시작해, 캐릭터 하나로 각종 상태 이상부터, 파티의 힐과 부활, 공격까지 다양하게 커버하는 구성을 만들 수도 있다.


사진을 보시면 숨겨진 전직들도 보일 텐데, 개별 직업의 마스터까지의 속도도 매우 빠른 편이라서, 여러 직업을 시도해보면서 숨겨진 상위 전직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기자의 경우 40시간 동안 거의 모든 전직을 다 커버해봤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러 상위 전직 중 거의 최종 단계에 해당하는 '갓 핸드', '천지뇌명사', '용사'가 모든 캐릭터에게 동일하게 있다는 점이다.
장비 세팅에는 착용할 수 있는 캐릭터 제한이 조금씩 있던 만큼, 각 캐릭터마다 특색이 있는 히든 최종 전직이 별도로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사소한 아쉬움은 있었다.
▲ 최종 등급의 전직에 아쉬움을 표하긴 했지만, 앞선 단계의 전직들이 워낙 개성이 강한 직업이 많고, 메인 서브 조합도 무궁무진해서 만족스럽게 플레이하긴 했다.
◆ 마지막 순간까지 낭만을 채워주는 각종 장비들
처음에는 습득하는 장비들의 스탯만 쳐다보게 되지만, 이후엔 자세히 보기를 눌러 장비마다 특색 있는 패시브가 붙어 있는 걸 확인하며, 매번 새로운 선물을 받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 방패 가드율을 올려주는 동시에, 6% 확률로 적을 즉사시키는 종결 무기도 있고
▲ 특정 장비나 액세서리는 '도구'처럼 사용하면 체력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거나, 적을 공격하거나 상태 이상에 빠트리는 주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드퀘 7 리이매진드>가 정말 많은 반복 전투를 하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도파민'이 끊임없이 나오는 결정적인 이유도 이러한 '성장 커브'에 있다.
계속해서 해금되는 전직,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장비를 만나는 경험 등이 엔딩을 보는 시점까지도 이어진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전투 편의성도 좋은 편이다 보니, 탐색이나 스토리 진행의 완급 때문에 잠시 숨 고르기를 할 때 말고는, 게임의 텐션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편이다.
# <드퀘>에 입문한다면 이 작품, 지금이 적기다
올해는 1986년 <드퀘> 1편이 발매된 이후 40주년이 되는 해다. <드퀘>, <파판>, <이스>, <궤적> 등 JRPG의 대명사 같은 역사적인 시리즈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래됐다"는 현실 그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역사가 긴 <드퀘>는 "아저씨들의 명작"으로 통하던 것도 사실이다. 신규 유저들이 발을 들이기 쉽지 않은 시리즈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정식 넘버링 작품으로만 보면 11편과 (아직 개발 중인) 12편 사이에 공백이 길기도 하고, 최근 발매된 다른 리메이크 작품들은 레트로 감성이 훨씬 강조되어 팬들을 위한 헌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 시리즈에 <드퀘 7 리이매진드>는 정말 뜻 깊은 신작이 되어줬다고 생각한다. 체험판 공개 당시부터 엄청난 입소문 몰이를 한 것은 물론이고, 정식 출시 이후에도 호평 일색이다.

심지어 40년 된 시리즈에 이번 타이틀로 입문했다는 유저들도 정말 많을 정도다. 스팀 평가가 이런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지 않을까. 출시 3일 만에 822개 리뷰 중 91%가 긍정적인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고, 유저들의 실질적 평가도 정말 좋은 편이다. 아래는 유저 반응 중 일부다.
"드퀘 시리즈를 이걸로 입문했다. 복잡하게 어렵게 재밌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재밌고 마음이 편해진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주세요."
"JRPG 턴제 좋아한다면 꼭 사야 된다고 생각한다"
"추억이 게임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마치 그 시절 그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기자의 소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짧지 않은 플레이타임에도 정말 재밌게 즐겼다.
지금도 좋지만 굳이 아쉬움을 열거하자면, 리메이크를 하는 김에 7편의 강점인 잔혹한 설정과 서사의 묘사를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과, 전직마다 외형이 바뀌는 시스템 등이 남아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의 사소한 아쉬움만 있었다.
옛 <드퀘>에 추억이 있으신가. 아직 <드퀘>에 입문해보지 않은 젊은 게이머인가. 누구라도 좋다. <드퀘 7 리이매진드>가 여운이 긴 감동과 재미를 당신에게 남겨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