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 팔콤은 <이스(Ys)>와 <궤적> 시리즈로 대표되는 JRPG의 명가다. 화려한 기술력보다는 특유의 섬세한 스토리텔링과 꼼꼼한 만듦새로 승부하며,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게이머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왔다. 80명 남짓한 ‘소수 정예’ 인원으로 매년 꾸준히 신작을 선보이며 장인 정신을 증명해 온 그들이, 최근 자신들의 가장 빛나는 유산인 <궤적> 시리즈의 시작점을 다시 꺼내 들었다.
금일(30일), 대만 타이베이 게임쇼 현장을 찾은 콘도 토시히로 대표의 표정은 밝았다. 지난해 발매된 <하늘의 궤적 the 1st>가 평단과 유저 모두에게 뜨거운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메타크리틱 88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단순한 그래픽 개선을 넘어 원작의 감동을 현세대 감각으로 완벽하게 되살려낸 “리메이크의 모범 답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무엇이 20년 전의 게임을 이토록 생생하게 되살려냈을까. 그리고 <하늘의 궤적> 이후 팔콤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콘도 대표는 “시키지 않아도 움직인 스태프들의 열정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하며, 향후 전개될 <2nd>와 현재 준비 중인 7개의 신작 라인업에 대한 포부를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변화와 유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니혼 팔콤 콘도 토시히로 대표
# 메타스코어 88점, “모범적인 리메이크”의 비결은?
Q. <하늘의 궤적 the 1st>(이하 1st)가 메타스코어 88점 등 평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소감이 듣고 싶은데요.
A. 콘도 토시히로: 리메이크 타이틀로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어 솔직히 정말 기쁩니다. 스태프들의 높은 동기부여가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전에 스태프들이 “사장님이 이런 걸 생각하신다더라”는 소문을 듣고는 저를 팀에 넣어달라고 요청하거나, 프로그래밍을 담당하고 싶다고 자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계의 궤적>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쪽 멤버들도 <하늘의 궤적> 팀으로 옮겨주면 3배로 일하겠다고 할 정도였죠. 제가 세세하게 지시하지 않아도 팀원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준 것이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Q. <하늘의 궤적 the 1st>가 ‘모범적인 리메이크’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콘도 토시히로: 개발 스태프 중에 오리지널 제작 멤버가 거의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들이 당시 상황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고, 오리지널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던 스태프들도 <하늘의 궤적>을 좋아해서 입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신작을 만들 때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개발팀이 지시를 기다리느라 속도가 더뎌지곤 하는데, <하늘의 궤적>은 에스텔이 어떤 캐릭터인지, 요슈아가 어떤 아이인지 모두가 잘 알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합류한 스태프들도 “이렇게 하면 더 좋아질 거야”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인 것이 퀄리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Q. <1st>가 한국 유저들 사이에서도 호평받고 있고, 그로 인해 <2nd>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2nd>에서 중시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가요? 원작과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콘도 토시히로: 기본적으로 <1st> 때와 마찬가지로, 새롭게 리메이크하는 만큼 기존 유저와 신규 유저 모두가 플레이하기 편하도록 만드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nd>에선 <1st>에서 모험했던 무대를 다시 여행하게 됩니다. 두 번 도는 만큼 그곳에 새로운 경험이 있어야 하고, 단순한 재탕이 아니라 다시 한번 신선하게 여행하는 느낌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시와는 게임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스트레스 없이 즐기실 수 있도록 조정한 점이 <1st>와 비교해 달라지는 부분이 될 것 같습니다.
원작에서 달라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1st>를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놀라울 정도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유저분들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나 저희 스스로도 남기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부분은 계승하되, 편의성 면에서는 현시대에 맞게 제공하고 싶습니다. 원작 <하늘의 궤적 SC>는 여러 지역을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대해 호불호가 있었는데, 이런 부분의 밸런스를 신경 쓰며 다듬어가고자 합니다.
▶ 평단과 유저 모두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하늘의 궤적 the 1st>
Q. <1st>와 <2nd>는 내용이 깊게 이어져 있어 1편을 안 하면 2편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의 작품으로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두 개로 나누어 발매하는 이유가 있나요?
A. 콘도 토시히로: 단순하게 말하면 만드는 게 너무 힘들어서입니다. 원래 (원작인) <FC>와 <SC>는 한 편의 게임이었는데, 반으로 나누어
이번 리메이크는 3D로 구현된 이벤트 컷신 등이 매력 포인트인데, 이를 충실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나누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고조되는 전개나 화려한 장면들을 제대로 그려내려면 역시 둘로 나누어 공들여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일본에서도 분할 발매를 결정했습니다.
Q. 원작이 꽤 오래된 작품임에도 대사나 표현의 깊이는 상당히 세련된 게임이라고 느꼈습니다. 당시의 감성을 현대 감각에 맞춰 조정하셨을 텐데, 어떤 부분을 고려하셨나요?
A. 콘도 토시히로: 20년도 더 된 타이틀이다 보니 성별에 대한 표현이나 옛날 특유의 다소 거친 말투 등은 조금 순화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남겨두는 편이 작품의 매력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한 표현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에스텔은 당시로서는 드문 여성 주인공이었는데, 주변 캐릭터들이 에스텔에게 꽤 험한 말을 하기도 합니다. 에스텔은 그걸 씩씩하게 이겨내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 대사를 통째로 들어내면 에스텔의 매력이 반감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어디까지 남기고 어느 선부터 순화할지 스태프들과 많이 고민했습니다.
Q. 구체적인 예시가 있을까요?
A. 콘도 토시히로: 게임 초반에 한 남자아이가 에스텔에게 “여자 주제에 건방지다”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표현상 좋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반대로 그에 대한 에스텔의 대처가 있기에 캐릭터가 성립된다는 의견도 있었죠. 그런 말을 들었을 때의 반응을 통해 에스텔이라는 캐릭터가 완성된다면 남기는 게 낫지 않겠냐는 식으로 하나하나 조율해 나갔습니다.
▶ <하늘의 궤적 the 1st>의 주인공 에스텔.
# “7개 신작 준비 중”… 콘도 대표가 밝힌 팔콤의 미래
Q. <2nd> 발매가 결정되었는데, 리메이크가 아닌 ‘신작’ <궤적> 시리즈는 언제쯤 발매될까요?
A. 콘도 토시히로: <2nd>가 끝난 뒤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계의 궤적> 속편 개발은 사내에서 이미 시작되어 <2nd>와 병행하여 진행 중입니다. 발매 시기는 다른 타이틀의 개발 상황에 따라 전후될 수 있지만, <2nd> 다음 작품이 <궤적> 시리즈의 정식 후속작이 될 것입니다. 구체적인 시기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Q. 앞으로 <궤적> 시리즈의 어느 작품까지 리메이크할 계획인가요?
A. 콘도 토시히로: 어디까지 할지는 현 단계에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개발 스태프들도 “다음은 <3rd>인가요, <제로>인가요?”라고 물어보곤 하는데, 우선은 <2nd>를 확실히 끝내고 생각하려 합니다.
다만 이번 리메이크의 목적이 시리즈가 너무 길어 진입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입문작이었고,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여기서 끝내지 않고 리메이크 노선을 어떤 형태로든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Q. 지난해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미공개작 포함 7개의 신작을 준비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힘을 쏟고 있는 타이틀은 무엇인가요?
A. 콘도 토시히로: 모든 타이틀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웃음). 저희는 80명 남짓한 규모의 회사라 타이틀이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지금 모인 개발 스태프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려해 타이틀을 정합니다. 마케팅적으로 유행을 따르기보다, “무엇을 하면 제일 잘할 수 있을까?”, “이거라면 승부해 볼 수 있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작품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궤적>과 <이스>만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팔콤의 세계관과 게임을 더 폭넓게 제공할 준비가 되었다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Q. 요즘 아이들은 왕도물이나 소년 만화 같은 전개를 덜 선호하는 등 세대 차이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기준이나 노하우가 있나요?
A. 콘도 토시히로: 저희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만드는 건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저희 이야기는 왕도적이고 기본적인 것이 많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나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의 이야기 등은 인간의 보편적인 테마이기에 시대가 변해도 받아들여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오래된 흑백 영화라고 해서 재미없는 건 아니듯이, 인간인 이상 받아들이는 방식이 같은 부분이 있을 겁니다. 저희도 시대에 따른 문제를 어느 정도 반영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저희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Q. 니혼 팔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매년 9월에 신작을 1편 릴리스한다는, 매우 안정적인 개발 페이스를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신작을 2편 동시에 준비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A. 콘도 토시히로: 반드시 매년 2편을 낼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폭넓은 게임을 보여드릴 체제는 조금씩 갖춰지고 있습니다. 인원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한 게임 제작 방식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올해는 복수 타이틀 병행 체제가 가동되므로 타이밍에 따라 1년에 2편도 가능합니다. <궤적>만 계속 만들면 직원들도 지치기 때문에, 사내에 다양한 도전이 있는 편이 좋죠. 다각도로 미래를 그리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Q. <이스>와 <궤적> 모두 장기 시리즈인 만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데서 오는 부담이나 어려움도 클 것이라 생각됩니다. 대표로서 가지고 있는 철학이나, 가장 크게 고민하고 있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A. 콘도 토시히로: 역시 ‘계속해 나간다’는 것 자체가 가장 힘듭니다. 이번 <하늘의 궤적> 리메이크의 또 다른 사내 목적은 <궤적> 팀을 한번 ‘리프레시’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20년 넘게 이어지다 보니 마치 온라인게임 운영처럼 되어버려, 스태프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시나리오가 나올 때까지 대기해야 하는 문제가 누적되었거든요.
반면 <하늘의 궤적>은 시나리오가 이미 있으니 디자이너 등 스태프들이 처음부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그동안 쌓인 불만을 해소하며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프로젝트 순서를 정하고 스태프들의 의욕을 관리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고민이자 일인 것 같네요.
Q. 끝으로 한국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콘도 토시히로: 이번 <하늘의 궤적> 리메이크를 즐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시리즈를 계속해 왔기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욕구도 생기고, 반대로 <하늘의 궤적>을 통해 시리즈 지속의 중요성도 재확인하는 등 사내 분위기가 매우 좋습니다.
<이스>와 <궤적>뿐만 아니라 새로운 타이틀과 장르를 보여드릴 준비도 되어가고 있습니다. 조금 신중한 회사지만, 여러분이 기다려 주신 덕분에 준비가 갖춰졌으니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