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최신작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이 오는 2월 27일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단 15분 만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포를 선사했던 지난 도쿄게임쇼 시연 이후, 기자는 줄곧 이 게임의 행보를 주시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21일 진행된 미디어 프리뷰 행사에서,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본작의 또 다른 축인 ‘레온’ 파트를 한발 앞서 체험할 수 있었다.
시리즈 최고의 겁쟁이 그레이스와 최강의 인간 병기 레온. 이 두 사람의 시야에서 펼쳐지는 경험은 마치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온도 차이는 이번 작품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당혹스러운 이질감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토록 서로 다른 두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데에는 분명 제작진의 의도가 있을 터. 기자는 이번 시연을 통해 그 답을 어렴풋이 찾을 수 있었다. 이 극과 극을 달리는 구성 속에, 지난 30년간 이어온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 TGS 때는 분명 무서웠는데…
기자는 지난해 도쿄게임쇼에서 접했던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의 강렬한 인상을 똑똑히 기억한다. 거꾸로 매달린 채 깨어난 낯선 방, 불조차 켜지지 않는 스산한 복도, 그리고 기이한 소리를 내며 압박해 오던 거구의 추적자까지. 15분 남짓한 짧은 시연이었음에도 공포의 정수를 맛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 우연히 찾은 변사체를 조사하는 컷신을 보며 방심하던 찰나에
▶ '까꿍' 하고 등장한 추적자를 보고 기자도 덩달아 놀라 숨을 삼켰다.
앞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쿠미자와 마사토 프로듀서가 밝혔듯, 주인공 그레이스 애쉬크로프트는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나약하고 겁 많은 캐릭터다. 변사체를 마주하면 플레이어보다 더 경악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추적자의 등장에 육성으로 비속어를 내뱉는 그녀의 모습은 영웅이라기보다 지극히 평범한 생존자에 가깝다.
사실 무력한 주인공을 내세운 공포 게임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하다.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나 <아웃라스트> 같은 작품들을 떠올려 보라.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 같은 괴물과의 추격전이 주는 긴장감은 가히 압도적이다. 여기서 오는 무력함은 결코 불쾌한 경험이 아니다. 오히려 사선에서 벗어나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TGS에서 경험한 <바이오하자드 레퀴엠> 역시 그 궤를 같이했다. 갑작스러운 추적자의 등장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리고, 숨을 죽인 채 책상 아래 몸을 가두며, 문틈 사이로 추적자가 사라지기만을 기도하는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 ‘즐거운 공포’였다. 그런데…
▶ 분명 TGS 때 추격전은 재밌었는데…
# 그레이스로 풀어낸 클래식의 맛, 여운처럼 남는 '답답함'
이번 시연에서 경험한 그레이스 파트는 이전 플레이와는 결이 사뭇 달랐다. 맥락상 TGS 시연 구간 이후의 시점으로 보이는데, 같은 재료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요리해 낸 인상이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초기작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그레이스 파트가 무척 반가울 것이다. 1편의 대저택을 연상시키는 복잡한 구조의 폐호텔을 탐색하고, 곳곳에 숨겨진 단서를 조합해 퍼즐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이른바 ‘클래식’의 맛을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 클래식한 퍼즐 요소들. 맛은 대단히 안정적이다.
알다시피 초기 시리즈에서 전투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에 가깝다. 자원이 한정된 탓에 모든 적을 쓰러뜨리는 호쾌한 액션보다는, 적절히 회피하며 물자를 아끼고 결정적인 순간에 화력을 집중하는 특유의 완급 조절이 이번에도 이어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좀비들이 생전의 습성을 반복한다는 설정이다. 청소부 좀비는 바닥의 오물을 닦고, 호텔 직원 좀비는 복도의 전등을 끄고 다닌다. 플레이어는 오물의 흔적을 보고 좀비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거나, 일부러 불을 켜 좀비를 유인하는 등 좀비와의 조우 자체를 하나의 퍼즐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잠입과 탐색에 신선한 전략성을 더해준다.
▶ 생전에 청소부였던 좀비는 죽어서도 청소를 하고
▶ 호텔 직원 좀비는 전기 절약을 위해 목숨 바쳐 (?) 일하고 있다.
▶ 잡히면 맑은 소리로 귀를 괴롭하는 가수 좀비. 고... 고우시다.
다만, 이러한 참신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실제 플레이가 다소 지루해질 수 있다는 우려는 남는다. 좀비는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대응 수단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단검류는 피해량이 낮고 반격 시 분실 위험까지 있어 실효성이 떨어지며, 유일한 대안인 권총마저 탄약이 늘 부족하다.
결국 모든 대응 수단이 고갈되어 적들을 줄줄이 매달고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잦았는데, 여기서 오는 감정은 공포라기보다 ‘불쾌한 번거로움’에 가까웠다. 전작의 ‘타이런트’나 TGS 시연의 추적자처럼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음에도 자원이 없어 도망쳐야 하는 일반 좀비들이 뒤를 졸졸 따르는 모습은 긴장감을 갉아먹는다.
설상가상으로 좀비들의 추격 AI 역시 정교하지 못했다.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면 추적을 포기하고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기 일쑤였다. 이들을 특정 지점으로 유인하기 위해 조련하듯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뒷걸음질 치다 보면, 긴장감보다는 지루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 선생님들 좀 나와주세요... 왜 쫓아오다가 돌아가세요...
# 답답함 씻어주는 레온의 호쾌한 액션
답답함이 극에 달할 즈음 레온 파트로 넘어가면, 마치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30발들이 탄창을 장착한 권총과 수류탄, 그리고 묵직한 샷건 한 자루가 플레이어를 반긴다.
레온 파트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뚱보 좀비'와의 전투로 포문을 연다. 그레이스 파트에서 조우했을 때는 용혈성 효소를 아무리 주입해도 쓰러지지 않아 앞길을 가로막던 절망적인 존재였지만, 레온에게는 그저 거대한 타겟일 뿐이다. 좁은 통로를 통과하지 못하는 덩치를 역이용해 이리저리 거리를 벌리며 샷건과 권총 세례를 퍼붓는 전투는 그레이스 파트의 무력감을 단번에 씻어내 준다.
▶ 샷건 맛 좀 봐라!!
두 파트의 경험은 단순히 캐릭터만 바뀐 수준이 아니다. UI부터 시스템,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경험치까지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그레이스 파트에서 중요하게 쓰이던 생존 기믹이 레온 파트에서는 배제되기도 하고, 그레이스 시점에서 낑낑대며 풀었던 퍼즐을 레온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과정 또한 묘한 재미를 선사한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기분이라고 하면 정확할까. 내내 제약에 묶여 답답하게 진행하다가, 만능 도구인 토마호크와 각종 화기를 손에 쥐는 순간 체증이 싹 가신다.
여기에 <바이오하자드 4>에서 보여주었던 '인간병기' 레온 특유의 화려한 마샬아츠까지 더해지니, 과장을 보태 정말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레이스 파트가 시리즈 2, 3편의 클래식한 공포에 가깝다면, 레온 파트는 4~6편의 호쾌한 액션 그 자체다.
겁쟁이 그레이스와 인간병기 레온, 두 주인공의 특징에 맞춰 플레이 경험을 차별화하려는 제작진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다만, 이 간극을 극대화하려는 욕심 탓인지 한쪽은 너무 무력하고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강력하게 설정된 감이 있다.
이 강렬한 온도 차 덕분에 레온 파트의 쾌감은 확실했지만, 반대급부로 그레이스 파트의 답답함이 더 도드라지는 부작용도 느껴졌다.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이 극단적인 이질감을 완충해 줄 정교한 밸런싱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아까 노래 잘 들었습니다^^
▶ 인벤토리 사이즈도 남다른 레온
시연을 통해 확인한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지난 30년간 시리즈가 쌓아온 거대한 유산을 하나로 집대성한 작품에 가깝다. 특히 외전작 <바이오하자드 아웃브레이크>의 계보를 잇는 그레이스 애쉬크로프트의 등장은 무척 반갑다. 그녀의 파트가 1~3편의 정통 서바이벌 호러를 계승한다면, 레온 파트는 4~6편의 호쾌한 액션 스타일을 충실히 따르며 시리즈의 전성기를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마침, 올해는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3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이번 작품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전부 준비”한 듯한 방대한 구성을 보여준다. 비록 파트 간의 극명한 온도 차라는 숙제는 남았지만, 시리즈 팬들에게 이보다 확실하게 통할 전략은 없어 보인다.
취향에 맞는 스타일이 하나쯤은 반드시 들어있을 이 ‘종합선물세트’ 같은 게임 속에, 과연 어떤 깊이 있는 서사와 공포가 숨겨져 있을까. 30년 역사의 정수를 담아낸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이 선사할 새로운 경험에 기대를 걸어봐도 좋을 것 같다.
▶ 돌아온 인간 병기 레온의 시원시원한 액션 플레이는 정말 좋았다.
▶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의 시그니처 무기 '레퀴엠'이 좀 더 활약해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