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내가 달을 보고 있지 않을 때, 달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 회의를 표하며 던졌던 이 유명한 질문은, 역설적으로 관측이 실재를 규정한다는 양자역학의 본질을 꿰뚫는 문장이 되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관측하기 전까지 세계는 확정되지 않은 확률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관측됐을 때 비로소 하나의 고정된 존재로 각인된다는 것. 이 난해하고도 매력적인 이론은 여러 분야를 막론하고 수많은 창작자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소설과 연극, 드라마, 영화, 그리고 게임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이러한 양자역학의 특성을 이해하기 쉽게 구현해 낸 게임이 하나 있으니, 바로 13년 전에 스팀에 출시됐던 <페즈(FEZ)>가 그 주인공이다. 화면을 회전시켜 3D 공간을 2D 평면으로 압축하고, 보이는 화면의 변화를 통해 없던 길을 만들어내거나 특정 구도에서 보이지 않았던 단서를 보이게 만드는 등의 퍼즐 디자인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것이었다. 비록 <페즈>의 개발자 필 피쉬는 크고 작은 논란 끝에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지만, <페즈>라는 게임의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양자역학의 난해한 구조를 아주 직관적으로 풀어낸 불멸의 유산이 되었다.
그리고 2026년 병오년의 시작과 함께 또다시 보이는 세계에 변화를 가하는 게임이 하나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양자역학의 상징과도 같은 문장을 도입부에 드러내는 이 게임의 이름은 바로 <카세트 보이>다.
▶ 출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페즈(FEZ)>의 2D와 3D를 넘나드는 게임 디자인은 여전히 혁신적이다.
▶ 독창적이라기엔 다소 한정적인 변화, 그리고 의미를 상실한 달 <카세트 보이>
#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세트 보이는 사라진 달을 복구하기 위해 달의 조각을 모으기 위한 여정을 떠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액션 어드벤 게임이다. 한편으로는 <크래프토피아>와 <팰월드> 등의 게임으로 유명한 일본의 게임 개발사 포켓페어가 퍼블리싱을 맡은 게임이기도 하다.
닌텐도 게임보이 시절이 떠오를 법한 레트로 풍의 화면 색상과 더불어 픽셀 그래픽과 복셀 그래픽이 뒤섞인 비주얼이 꽤나 힙하게 다가온다. 던전 탐험과 퍼즐 해결, 그리고 몬스터와의 전투를 적당히 겸비한 게임 플레이는 고전적인 액션 롤플레잉 장르의 기본에 충실한 편이다.
여기에 화면을 회전시키며 오브젝트의 관측 여부에 변화를 가하는 독창적인 게임 시스템으로 “보이지 않는 물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직관적으로 구현해 낸 점이 돋보인다. 그밖에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임이며, 한국어 번역의 퀄리티가 매우 괜찮아 별다른 위화감 없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 실제로 게임을 켜자마자 나오는 화면. 양자역학의 핵심을 나타내는 이 문장이 오히려 낭만적이다.
▶ 2D와 3D, 픽셀과 복셀, 안정과 혼돈이 뒤섞인 비주얼이 꽤나 힙하게 다가온다.
화면의 회전에 따라 오브젝트의 존재 유무가 결정되는 게임 시스템은 분명 독창적인 면이 있다.
이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대략 이렇다. 이를테면 길을 막고 있는 바위나 상자, 몬스터 같은 오브젝트를 화면을 회전시켜 지형을 통해 가리면 해당 오브젝트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된다. 혹은 주인공이 스위치를 누른 상태로 해당 스위치를 가려버리면 이미 스위치가 작동된 상태에서 존재가 사라져 버리니 주인공이 자리에서 벗어나도 스위치는 여전히 누른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존재의 변화를 통해 몬스터와 전투를 치르고 퍼즐을 풀어 길을 열거나 상황을 해결하는 게임 플레이는 꽤나 흥미롭다. 오브젝트의 존재 여부에 대해 치열하게 두뇌를 굴려 해답을 고민하는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한 셈이다.
다만 이런 독창적인 시스템의 응용은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게임상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퍼즐과 전투가 존재를 가리는 것에만 국한돼있기 때문에 그렇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몇 가지 새로운 스킬을 획득할 수 있긴 하나 이마저도 존재를 가리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한다.
결국 어떤 상황을 맞이하게 되든 무언가를 가리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해야 해결될 때가 많다. 이로 인해 ‘존재의 유무 변화’라는 소재의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져 버린다. 게다가 ‘화면의 회전에 따른 존재 여부의 변화’라는 기본 규칙이 모든 오브젝트에 일괄되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라 플레이어에 따라서는 애매모호하게 다가올 여지도 다분하다.
▶ 벽 뒤에 무엇이 있든 상관없다. 보이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 변화라는 주제를 ‘존재의 유무’로만 풀어낸 느낌이다. 보다 다양한 응용이 가능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담지 못한 낡은 만듦새
고전적인 액션 롤플레잉 장르에 충실한 게임 디자인은 사실 고전적이라기보단 원시적인 감각에 더 가깝다. 게임의 궁극적인 목적인 달의 조각을 찾는 과정은 게임 안에서 별다른 지시나 단서를 찾기가 힘들어 플레이어가 직접 여기저기 다니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스스로 게임을 풀어나가야 한다.
게임의 무대가 그리 넓은 편은 아니긴 하지만, 게임 내의 모든 구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NPC와의 대화를 통해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나마 반드시 대화해야 할 NPC의 머리맡에 말풍선 표시를 띄워주긴 하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플레이어에 따라서는 이것이 너무나도 막연하게 느껴질 여지도 다분하다.
전투 파트 역시 지극히 투박한 편이다. 어떤 몬스터를 만나도 적당히 붙어서 칼을 휘두르거나 멀리 떨어져서 활을 쏘는 게 끝이라 단순한 몸통 박치기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특히 보스전의 경우 대체로 각 보스의 공격 패턴이 너무나도 단순해 딱히 패턴을 파해하는 재미도 없고, 고생해서 잡는다는 보람을 느끼기도 어렵다.
레벨을 올려 공격력과 방어력 등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긴 하다. 다만 능력치가 전투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닐뿐더러 레벨을 올리는 데 필요한 경험치가 전투 기회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 레벨을 올리기도 까다롭다.
앞서 언급했던 ‘화면 회전을 통한 존재 여부의 변화’라는 독창적인 발상을 제외한 채 탐험과 전투의 요소만 놓고 보면, 사실상 1990년대 초중반의 흔한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수준이다.
▶ 그나마 이 말풍선이 나름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공격력, 방어력이 딱히 큰 의미가 없다. 게다가 레벨도 정말 더럽게 안 오른다.
게임의 배경 및 설정, 스토리 또한 다분히 애매모호하다. 게임의 도입부와 초반부에선 지속적으로 달을 언급하며 달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게임의 목적도 흩어진 달의 조각을 전부 모아 달을 복구하는 것으로 다시금 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달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이야기의 양상이 급격히 꺾이는데, 이 과정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부자연스러워 스토리의 흐름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를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스토리의 빌드업이 너무나도 부실한 데다가 그 임팩트가 딱히 강렬하다고 보기도 힘들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게임의 제목이 ‘카세트 보이’이고 일부 스킬을 카세트를 활용해 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스토리상에서 카세트라는 도구가 그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보여주진 않는다.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미지의 존재라던가 용사를 사칭하는 ‘루딘’처럼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캐릭터들이 있긴 하나 이들이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화면의 회전에 따른 존재 여부의 변화가 스토리에 큰 영향을 끼치지도 못한다.
결국 스토리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달과 카세트, 존재, 변화 등 그 어떤 것도 뚜렷이 부각되지 못해 방향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스토리적으로도 아쉬운 면이 정말 많은 게임인 셈이다.
▶ 분명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달이 되게 중요할 것 같았는데…
▶ 정말 뜬금없는 타이밍에 이런 메타 발언이 튀어나온다.
# 총평
화면 회전에 따른 관측 상태에 따라 존재의 유무가 결정되고, 이를 바탕으로 상황을 해결하는 게임의 규칙 및 시스템은 분명 독창적인 구석이 있다. 여기에 엔딩을 기준으로 6시간에서 8시간 정도면 클리어할 수 있을 만큼 짧은 게임이기도 해서 가볍게 즐기기에는 썩 괜찮은 게임이긴 하다.
다만 ‘존재의 변화’라는 독창적인 발상의 응용이 부족하단 점이 아쉽고, 아이디어 이외에 기본기라 할 만한 요소들에 있어 다소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게임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달, 카세트, 존재, 변화 등, 그 어떤 것도 뚜렷이 부각되지 못해 방향성이 확실히 잡혀있지 못하다는 점이 가장 치명적이지 않나 싶다.
이렇듯 장점보다는 단점이 좀 더 눈에 밟히는 게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못 할 게임으로 격하될 게임까지는 아니다. 최소한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소재는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고, 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잘 구현해 낸 퍼즐만큼은 분명 흥미롭다.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특성을 어떻게든 구현해 낸 게임을 찾는 이들이거나 혹은 독창적인 발상을 소재로 삼은 게임을 찾는 이들이라면 그럭저럭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게임으로 추천한다.

- 화면을 회전시키며 존재에 변화를 가하는 독창적인 시스템
- 고전적인 수준을 넘어 다소 원시적인 게임 디자인
- 오리무중한 배경 및 설정, 애매모호한 스토리 구성
🔎쿠타르크 (블로거)
2014년부터 10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