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우주의 천 년. 그 긴 세월을 외로이 표류하는 거대한 우주선이 있습니다. 날렵하고 작은 로봇 '미오'도 있죠. 미오는 빛이 사그라들고 쇠락해 가는 방주 곳곳을 수리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의 생존자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과 이루고자 했던 일들의 기억을 하나둘 되짚어 가면서요.
그림자 퍼즐을 이용한 감성적인 퍼즐 어드벤처 게임 <셰이디 파트 오브 미>로 데뷔했던 프랑스 개발사 두즈 디지엠(Douze Dixièmes)은 두 번째 작품의 배경을 잊혀가는 우주선으로 선택했습니다.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며 더 깊은 곳을 탐험하는 메트로배니아 <미오: 메모리즈 인 오빗>은 엔딩까지는 20시간, 모든 구역을 들여다보고 진 엔딩에 도달하기까지는 45시간이 걸렸을 정도로 비교적 오랜 시간의 여정을 담고 있는데요. 지금부터 그 여정에 대한 경험을 하나씩 풀어 보겠습니다./ 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한지훈 기자

# 감성적인 아트와 영리한 공간의 활용
<미오: 메모리즈 인 오빗>은 전작과 유사한 스타일을 상당 부분 고수하고 있지만 미려한 예술적 완성도는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연필로 스케치한 듯한 섬세한 선과 물감의 번짐이 표현된 텍스처는 수채화풍의 미학으로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원색적인 화려함보단 차분하고 감성적인 파스텔 톤이나 채도가 낮은 색을 주로 사용해 고독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요. 여기에 성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강렬한 멜로디의 코러스와, 아늑한 피아노곡부터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전자음악까지 멋진 음악들이 플레이하는 내내 향수를 자극합니다.
또 영리한 공간의 활용은 이 게임에 담긴 아트의 핵심입니다. 작은 캐릭터와 압도적으로 거대한 규모의 공간이 이루는 대비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미오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강조해서 보여줍니다.
미오의 고개를 돌리며 둘러볼 수 있는 공간들은 장애물에 가려지거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공간에 자연스레 몰입할 수 있게 되면서 탐험의 재미를 더하고요. 연출로서든 플레이로서든 아주 유용하고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스케치 스타일과 낮은 채도로 표현된 비주얼 아트.
▶ 거대한 배경은 작은 미오와 대비되곤 한다.
▶ 배경을 둘러보며 시야 밖의 영역도 살필 수 있어 탐색에 매우 용이하다.
# 메트로배니아 문법 안에서의 변주들
미오는 우주선의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들의 목소리를 수집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상한 터널을 발견할 때마다 처음 미오를 깨워 준 ‘삼스크’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얻게 되죠. 이 게임은 메트로배니아의 기본적인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수시로 뽐냅니다.
새 기술은 상징적으로 도식화된 가상 공간에서 회한이 섞인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몸에 익히게 하고, 이를 통해 부유해서 이동한다거나 소금쟁이처럼 수면을 걷는 등 다른 게임들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곤 합니다.
본인의 탐험 의지가 없다면 사망 지점으로 돌아갈 이유도 없습니다. 미오가 회복과 아이템 구매를 위해 사용하는 ‘자개 방울’은 사망하면 여기저기에 흩어질 뿐 사망 지점에 가도 회수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어디에서 사망했는지 알려주지도 않고요. 대신 ‘결정체’로 고체화하면 보존할 수 있어 위험이 크진 않고 다량을 사용할 일도 거의 없습니다.
▶ 미오에게 탐험 기술을 하나씩 설치해 주는 캐릭터 ‘삼스크’
▶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땐 도식화된 가상 공간에서 튜토리얼이 진행된다.
▶ ‘방울’ 형태인 재화를 고체로 ‘결정화’하면 사망해도 잃지 않는다.
#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 탐험 요소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사망 지점을 알려주지 않는 건 지속적인 탐험을 하고 싶은 플레이어에게 답답한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렇듯 탐험의 측면에서는 독특한 만큼 불편한 점도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사망 위치뿐 아니라 보스의 위치도 지도상에 표시해 주지 않습니다. 미니맵도 없고 이동 경로를 휴식처에 앉았을 때 갱신해 주는 시스템이다 보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우연히 보스를 만났다면 새로 그려진 맵을 확인해도 어디가 보스방이었는지 혼란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또 일반 엔딩을 위한 목표를 제외하면 퀘스트나 마커 등의 직접적인 안내가 없어 메트로배니아에 익숙하지 않다면 방황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도에 지역과 장소의 이름이 표시되지 않아 목적지를 알고 열쇠를 구하더라도 직접 가 보지 않으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방향을 잡기 어렵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건 놓친 아이템의 위치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꼼꼼히 탐색하고 기억하거나 표시해 두지 않으면 아주 고생스러워지겠더라고요.
▶ 기본 엔딩을 위한 가이드는 거점에서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수수께끼 같다.
▶ 지도에는 지역명조차 표시되지 않으니 적극적인 마커 활용은 필수.
# 보기 편리한 지도와 깊이 있는 여정
그럼 지도를 바탕으로 한 탐험은 전반적으로 아쉽냐 하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정보의 제공에 있어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탐험을 위한 기본적인 시스템은 오히려 깔끔하고 명쾌하거든요.
갈 수 있지만 가지 않은 곳은 깜빡이는 빗금으로, 열쇠가 필요하거나 반대쪽에서 막혀 갈 수 없는 곳은 붉은 선으로, 연결된 길이지만 일시적인 장애물이 있는 곳은 두꺼운 회색 선으로 보여줘 길을 잃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동선의 연결과 맵 구성, 오가며 만나는 연출도 물 흐르듯 이어지면서 뻔하지 않아 좋았고요.
탐험하는 과정, 특히 엔딩 이후 진 엔딩에 도달하는 동안 만난 맵과 이벤트들은 작년의 <할로우 나이트: 실크송>에 견줄 만큼 일반 엔딩만 보고 끝내는 것과 진 엔딩까지 도달한 경험이 판이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많은 기술과 이야기의 내막은 엔딩을 볼 수 있는 시점을 훌쩍 지나고 나서도 이어지고,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깊거든요.
슬쩍 보이는 아이템을 어떻게 손에 넣을지 고민하며 찾아내는 숨겨진 길들, 예상치도 못했던 공간이 기발한 방식으로 움직이며 열리는 새로운 지역, 만나지 못했다면 아쉬웠을 재밌는 보스전 등 진한 여운을 남기는 진 엔딩뿐 아니라 세세한 과정들도 마음을 흔들 때가 많았습니다.
▶ ‘이게 뭘까’, ‘여긴 어딜까’ 하는 호기심을 해결하면 대체로 경이로운 일들을 겪을 수 있었다.
▶ 눈에 보이지만 닿지 않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고민하고 숨겨진 길을 찾는 묘미가 뛰어나다.
▶ 일반적으로 엔딩 이후 만나게 될 보스들이 더 재밌고 멋졌다.
# 쾌적한 조작, 그러나 아쉬운 전투 스타일
다른 이야기로 넘어와서, 미오의 움직임은 어떨까요. 작은 로봇 미오는 머리카락 같은 전선을 덩굴손으로 사용합니다. 덩굴손을 뻗어 문을 열고 공격도 하는 식이죠. 머리핀을 던져 이동과 공격을 위한 갈고리로 쓰기도 합니다.
적에게 몸이 부딪히는 것만으론 피격되지 않고 공격과 상호작용의 사거리도 길어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른 게임의 질주나 대시와 유사한 기능을 비교적 후반에 얻을 수 있지만 이단 점프와 네 방향 공격이 처음부터 주어지기도 하고, 빙판 지역을 첫 지역으로 구성해 슬라이딩의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신선함도 있고요.
반면 전투에서의 액션은 만족할 만한 점이 많지 않습니다. 패시브 효과의 변형으로 머리핀과 회피를 활용한 몇 가지 다른 시도를 해 볼 수 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3단 콤보 공격의 평타가 실질적인 전투의 끝일 정도로 전투가 단조롭거든요. 또 타격과 피격의 피드백은 진동과 시각적인 면에서는 체감이 잘 되는 편이지만 소리에 있어서는 조금 뭉툭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 대신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15번의 보스전은 매번 새로운 디자인과 다채로운 공격 패턴으로 전부 재밌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 전선을 덩굴손으로, 머리핀을 갈고리로 쓰는 미오.
▶ 초반부터 빙판 지역이 등장하는 건 꽤 의외였다.
# 독창성이 느껴지는 생존과 성장 요소
생존과 관련된 기능들은 개성 있고 독자적인 체계를 품고 있습니다.
로봇인 미오는 우주선의 다른 개체들처럼 점점 약해지지만, 탐험을 통해 얻은 방어 코팅을 기체에 둘러 계속 강해질 수 있습니다. 자체 수리 기능이 없다 보니 휴식처를 제외하면 ‘자개 보관소’라는 특정한 장소에서만 방어 코팅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회복 물약을 허리춤이나 가방에 넣고 다니는 보통의 게임들과는 달리 수시로 회복할 수 없다는 데서 꽤 긴장감이 들죠.
그만큼 패시브 효과인 ‘변형 요소’를 효율적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할당 매트릭스’의 한도 내에서 추가 방어 코팅을 얻거나 더 쉽게 자개 보관소를 이용하거나 더 강한 공격으로 위험을 미리 제거하는 식으로요. 선택지가 그리 다양하지는 않고 어떤 변형 요소를 써도 플레이가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는 건 아쉽지만, 탐험과 전투 등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변형하면 은근히 체감이 크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늘 신경 쓸 필요가 있었습니다.
▶ 회복 수단은 ‘자개 보관소’에서 방어막을 충전하는 것뿐.
▶ 패시브 효과인 ‘변형 요소’를 ‘할당 매트릭스’ 안에서 잘 조합해야 한다.
# 도전적이지만 배려가 엿보이는 난이도
한편 조작의 난이도 밸런스는 좋은 편입니다.
전투가 단조롭고 전투 중 회복이 불가한 만큼 적의 체력이 높거나 까다로운 패턴의 적들이 많다면 짜증스럽고 지루하게 느껴질 텐데, 적의 공격 전에 하얀색 사인을 보고 준비할 수 있고 점프와 회피의 무적 판정 범위가 넓고 여유로워 대응이 쉽습니다.
하지만 플랫포머 구간들은 진 엔딩을 보기 위해 맵 구석구석을 누비고자 한다면 장르에 익숙하지 않을 경우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실수 없이 정확한 액션을 요구하는 곳들이 많고 회복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아 긴 구간을 다시 도전해야 할 수도 있거든요.
만약 딱 한 가지가 없었다면 저도 진 엔딩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땅에 머물면 방어막을 하나 얻을 수 있는 치트키 수준의 변형 요소인데요. 슬롯 소모가 크긴 하지만 플랫포머 구간에서는 이 변형 요소로 대부분의 구간을 무한히 반복할 수 있어 구간을 돌파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변형 요소는 직접 획득하고 장착하지 않더라도 지원 옵션에서 항상 켜 둘 수도 있습니다. 전투에서도 재도전할 때마다 보스가 약화되도록 하거나 필드를 진행할 때 몹들이 선공하지 않도록 하는 옵션도 있어, 보스전이 어렵게 느껴지거나 탐험에 집중하고 싶다면 훨씬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는 배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 플랫포머 구간들은 쉽지 않지만, 재밌는 구성이 많다.
▶ 세 가지 지원 옵션으로 전투와 탐험을 편안하게 진행할 수도 있다.
# 총평
<미오: 메모리즈 인 오빗>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문학을 꼭 닮은 게임입니다. 보들레르가 상징으로 가득 찬 숲을 걷고 랭보가 미지의 심연을 향해 ‘취한 배’처럼 몸을 던졌듯, 미오는 녹슬어가는 방주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물을 유영합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들이 모호한 감각을 정교한 언어로 붙잡아두려 했듯, 이 게임은 어렴풋한 이야기를 다층적인 탐험으로 풀어냈습니다. 직설적이거나 명료하지 않아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지만 섬세하게 짜인 공간들과 우아한 표현들 덕에, 작은 미오로 커다란 공간의 일부가 되어 달리고 뛰어넘으며 게임을 마주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점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술적인 감수성과 장르적인 쾌감을 동시에 주는 게임이기에, 우주의 고요함과 메트로배니아의 탐험을 사랑하는 플레이어라면 폐허 속에서 희망의 궤적을 그려나가는 두근거림을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 탐험과 연출에 영리하게 활용한 거대 공간
- 보기 편리해 길 찾기가 수월한 지도
- 독창적인 맵 구조와 깊이 있는 탐험
- 다채로운 보스전과 플랫포머 구간들
- 적당한 수준의 지원 옵션
-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진행 방식
- 다소 부족한 지도의 정보
- 아이템 추적 기능의 부재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다양한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제 경험담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과 영상을 남겨 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