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디 게임 개발자들에게 스팀은 꿈과 절망이 공존하는 기회의 땅이다. 매일 수없이 많은 신작이 쏟아지는 이곳에서 대다수의 게임은 잊혀지지만, 극소수의 몇몇은 밸브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된다. 이 선물은 화려한 트로피나 메일 한 통이 아니다. 고급스러운 '초콜릿 한 상자'다.
과연 게이브 뉴웰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필요한 '초콜릿 문턱'은 얼마이며, 왜 이 작은 상자가 서구권 게임 업계에서 그토록 강력한 상징성을 갖게 된 것일까? 밸브의 비즈니스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초콜릿 전쟁'의 내막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인디 게임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심층 분석해보았다/ 작성= 게임룩, 번역 및 편집= 디스이즈게임

# <슬더스> 옆집의 서러움, 밸브의 '초콜릿 선물'
이 화제의 발단은 유명 인디 게임 스튜디오인 애그로 크랩의 공동 설립자 닉 카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카만은 스튜디오가 마침내 올해 밸브 본사로부터 연말 선물인 고급 초콜릿 한 상자를 받았다고 들뜬 기색으로 전했다.
애그로 크랩은 게임 업계에서 이미 실력을 입증한 스튜디오다. 전작인 <고잉 언더>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카만은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이웃 스튜디오가 밸브의 선물을 받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씁쓸한 과거를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애그로 크랩의 사무실은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개발한 메가 크리트 스튜디오와 같은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카만은 매년 연말 연휴 시즌마다 메가 크리트 팀이 밸브로부터 온 정성 가득한 선물을 받는 것을 보며 정작 자신들의 우편함은 비어 있었던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이를 "일종의 고문"이었다고 농담조로 덧붙이며, 동료가 밸브의 CEO 게이브 뉴웰이 하사한 초콜릿을 뜯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만 봐야 했던 기분은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한구석을 묘하게 뒤틀리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환점은 <어나더 크랩스 트레저>가 출시된 이후 찾아왔다. 독특한 화풍과 탄탄한 게임성으로 무장한 이 소울라이크 액션 게임은 신작 <피크> 발표 전까지 스튜디오 역사상 최고의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 되었다. 이 정도의 시장 성적이라면 마땅히 밸브의 관리 명단에 이름을 올릴 법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카만은 인터뷰에서 <어나더 크랩스 트레저>의 수익이 이미 문턱을 훨씬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연말에 여전히 기다리던 소포가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카만은 직접 밸브에 이메일을 보내 초콜릿의 행방을 묻는 항의를 해야만 했다. 이에 밸브 측은 즉각 사과하며 응답했다.
굳게 닫혀 있던 초콜릿의 문은 개발자가 직접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열린 셈이다.
# 단순한 디저트 아닌 현실판 '도전과제'
그렇다면 도대체 게임을 얼마나 팔아야 게이브 뉴웰이 보내는 이 디저트를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일까? 이는 감에 의존하는 막연한 영역이 아니라, 정밀한 수치상의 문턱이 존재하는 계산의 영역이다.
게임 마케팅 컨설턴트 크리스 주코프스키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그가 수년간 스팀의 백엔드 데이터와 수많은 개발사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른바 초콜릿 문턱은 연간 총매출 약 80만 달러(약 11억 8,208만 원) 수준이다.
주코프스키는 스팀 플랫폼의 개발자 지원 시스템에 명확한 계층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연 매출이 해당 기준에 못 미치는 대다수 개발자에게 스팀은 그저 냉정한 알고리즘 기계에 불과하다. 이들은 시스템의 자동 추천이나 자체적인 커뮤니티 운영에 의지해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제품의 연 매출이 80만 달러를 돌파하는 순간 밸브 내부의 특별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개발자는 전담 고객 매니저를 배정받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며, 밸브의 일원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연례 초콜릿 상자까지 손에 넣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주장은 레딧과 트위터의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도 널리 확인된다. 여러 인디 개발자들은 매출 100만 달러(약 14억 7,760만 원)를 돌파한 해에 실제로 밸브 본사로부터 신기하게 소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커뮤니티에 공유된 실물 사진에 따르면, 밸브가 최근 몇 년간 보낸 선물은 보통 프랑스의 최고급 명품 초콜릿 브랜드인 라 메종 뒤 쇼콜라 제품이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은 약 165달러(약 24만 원) 상당의 '코프레 메종' 세트로, 60구의 엄선된 초콜릿이 담겨 있다.
험난한 시장 검증 끝에 얻는 달콤한 ‘클리어 보상’
연 매출 수백만 달러를 기록하는 게임사 입장에서 200달러 내외의 선물은 물질적으로는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서양 게임 산업의 맥락에서 이 선물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가격 그 자체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는 동양 게임 업계의 홍보 문화와는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동양 게임 산업에서 명절 선물은 대개 짙은 인맥과 의리의 색채를 띤다. 대형 업체든 스타트업이든 매체, 채널사, 파트너사, 심지어 경쟁사에까지 화려하게 제작된 명절 선물 세트를 널리 보낸다. 이러한 문어발식 예우는 관계망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상대방의 실적과 관계없이 이 업계에 몸담고 있다면 관례상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밸브의 방식은 거침없고 직선적이다. 비상장사 특유의 자유로움과 군더더기 없는 조직 문화를 가진 이 회사는, 보여주기식 대관 업무나 매체 관리에는 확실히 거리를 두고 있다. 게이브 뉴웰의 관점에서는 아마도 준수한 실적이 찍힌 재무제표만큼 확실하게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수단은 없는 듯하다.
"성공한 개발자만이 밸브의 초콜릿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단순한 기준을 넘어 현실판 '스팀 도전과제 잠금 해제'와도 같다. 스팀이라는 거대한 놀이터에서 이 초콜릿 상자는 마치 "축하합니다, 당신의 게임이 성공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숨겨진 이스터 에그와 같은 성취다.
한편 지역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초콜릿 구성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하는 글.
잔혹한 시장의 검증 과정을 진정으로 통과했을 때에야 밸브는 미소를 지으며 이 뒤늦은 클리어 보상을 건넨다. 이는 단순히 초콜릿을 맛보는 행위가 아니라 인디 게임 개발이라는 험난한 길 위에서 겪은 온갖 고생과 역경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느끼는 달콤한 뒷맛이다. 비록 그 단맛을 보기 위해 때로는 개발자가 직접 메일을 보내 재촉해야 할지라도 말이다.
물론 많은 개발자가 계산기를 두드리며 조롱 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165달러짜리 초콜릿 한 상자를 먹기 위해 스팀에 약 24만 달러(약 3억 5,462만 원)의 플랫폼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초콜릿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가득한 게임 산업에서 게이브 뉴웰이 직접 인증한 '연말 보너스'를 받는다는 것은, 샴페인을 터뜨리거나 초콜릿 상자를 열어 축하할 만한 충분히 기분 좋은 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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