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후덕죽 셰프 당근 짜장면 보셨나요? 진짜 신기하고 대단하지 않아요?"
유튜브, 인스타, 틱톡 등 모든 플랫폼에서 <흑백요리사>(시즌 2) 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꼭 넷플릭스에서 전체 분량을 다 보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 하나의 콘텐츠를 중심으로 이야기꽃이 피어난다는 자체만으로 대단한 현상이다.
지난 주엔 임짱(임성근 셰프)의 다소 요란하면서도 화끈한 면모에 팬들이 양산됐다면, 이번 주는 후덕죽 셰프의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와 기품에 대한 예찬이 도배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연진들에게 이입하는 포인트나 매력을 느끼고 소비하는 방식은, 시청자의 연령대나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흑백요리사>를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당신의 알고리즘이 <흑백요리사>에 발목이라도 걸치고 있다면, 연말연시 가장 핫한 콘텐츠 중 하나가 <흑백요리사>가 아니었을까.
▲ 이번 주 방영분을 보신 분들이라면 후덕죽 셰프가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 <한식대첩 3> 우승자이기도 했던, 이미 유명한 임성근 셰프가 다시 한 번 이렇게 화제의 인물이 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흑백요리사>는 시즌 1 때도 그랬지만 후반전으로 갈수록 인기를 더해가는 모양새다.
반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선 최근 2년, 3년 사이에, 이제는 '세분화된 취향의 시대'로 접어들어 모든 콘텐츠의 서브컬처화가 진행된 게 아니냐는 말이 매우 자주 들려오는 중이다. 주류 메인스트림이라 할 만한 콘텐츠가 줄어든 현상은 영화, 드라마, 예능, 만화, 게임 모두 겪고 있다.
"귀주톱(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체인쏘맨)이 애니메이션의 인기와 함께 잘 나가고 있지만, <드래곤볼>이나 원나블(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정도로 롱 런하며 폭 넓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초대형 IP는 나오기 어려울 것"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처럼 4500만 장을 훌쩍 넘기는 판매량을 보여주는 AAA 콘솔 게임은 앞으로 보기 어려울 것"
누가 한 말이라고 꼭 특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전망이다.
다만, 원나블과 <라오어>가 시대를 잘 타고난 것도 맞고, 시장 특성이 각기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려운 것도 맞지만, 지금처럼 세분화된 시장에서도 폭넓은 사랑을 받는 콘텐츠들엔 공통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세분화된 취향 사이에 있는 교집합'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려고 한다.
#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싶은데요...
▲ <케이팝 데몬 헌터스>
▲ <오징어 게임>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요즘 게임 업체들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글로벌 시장 공략'이다.
AAA 게임으로 갈수록, 또 올해 유독 많이 출시되는 '오픈월드' 장르처럼 규모가 커질수록, 개발에 들인 기간과 비용도 크기 때문에, '더 큰 성공'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내수만으론 해결이 어렵다는 얘기다.
연령도, 자라온 환경도, 취향도 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꼭 고르게 분포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가 아닐까 싶다.
보편적인 소재를
보편적인 정서로 풀어내되
역동적이어야 한다.
▲ <몬스터 헌터 월드> 요리
▲ <파이널 판타지 15> 에그 토스트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다. 전 세계 사람들 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먹는 데 진심이지 않은가. '요리'는 분명 꽤나 보편적인 소재에 속하는 편이다.
그러나 (위의 두 게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분이 잘 아실 만한 게임의 화면을 인용했을 뿐) 보편적인 소재만으로 잘 될 것 같았다면, 세상 모든 요리 게임,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 다 잘 됐어야만 한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무엇이 보편적인 것이고, 무엇이 역동적인 것인가.
# 독창성과 보편성, '나'를 찾고 보여주는 여러 방법
▲ 정체성 찾기라는 보편적 정서를 내세운 <케데헌>
게임 개발자들은 "너무 낯설면 외면 당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등의 말을 입에 달고 살곤 한다.(게으른 창작을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의 작품들도 이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도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같은 작품들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케데헌>도 세부 배경 및 소재가 매우 한국적이라는 점을 빼고 보면 서사 구조는 '정체성 찾기'의 전형에 가깝다. <흑백요리사>의 경연 스타일도 익숙하다.
이러한 콘텐츠들이 극적인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엔 공통점이 있다. 얼핏 너무 당연한 말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와주시길 부탁드린다.
하나 또는 다수의 이입 '대상'을 배치하고
그들이 돋보일 만한 '상황'을 만들고
'성공과 실패'라는 명확한 목적성을 제시한다.
▲ <페르소나 5>
주인공이나 핵심 인물이 꼭 하나일 필요가 없다는 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다만, 흔히 쉽게 범하는 오류는 자극적이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만 있으면 작품의 매력도 해결이 된다는 캐릭터 만능주의다.
<페르소나> 시리즈를 포함해, 등장인물이 정말 많은 최신 서브컬처 게임들도,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들은 인물 그 자체에 못지않게 '인물의 배치'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인물이라는 게 혼자만 덩그러니 있을 땐, 매력이 살아나기 어려운 법이다. 자신과 반대되는 인물도 있어야 하고, 닮은 듯 다른 라이벌이나 동료도 있어야 한다.
어떤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와 함께할 때 자신의 성격과 개성을 한껏 더 뽐낼 수 있고, 시너지가 나는가. 일명 '케미'(케미스트리)가 돋보이는 조합과 상황이 충분히 발생하느냐가 관건이다.
예시로 들었던 넷플릭스의 세 작품을 기억하는 방식도 비슷하지 않은가. "하.. 기훈이형!"이라거나 "리조토 정말 20분 만에 되는 거 맞아요?" 같은 대사나 상황만으로도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다.
그렇다면 반문해보자.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게임들은 이러한 순간들을 인게임에서 충분히 만들어내고 있을까. 라이브서비스 게임은 특히나 다음 캐릭터 다음 지역을 소화하는 데 급급한 때도 많지 않았나.
▲ <뉴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U 디럭스>
어떤 내러티브든 기승전결이 있고 큼직한 성공과 실패가 있기 마련이지만, 게임이 다른 콘텐츠와 궤를 조금 달리하는 점은 '성패'의 순간이 매우 촘촘하게 자주 있다는 것이다.
<마리오> 같은 플랫포머 게임에선 점프 한 번 한 번이 성공과 실패의 순간을 가를 수 있다. <엘든 링> 같은 액션 게임은 더더욱 그렇다. 패링, 회피 한 번에 희비가 엇갈린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대상과 자신이 느끼는 성패의 감정을 공유한다.
다른 콘텐츠보다 게임을 잘 만든다는 게 조금 더 어려운 면이 있다면, 이러한 성공과 실패에 대한 감각의 민감도와 역치가 사람마다 다르고, 적정 템포를 흐트러트리지 않으며 목표 지점까지 이어가게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 한몫을 하고 있다.
▲ <엘든 링>
# 큰 틀은 내어주되 '스타일'과 '개성'은 확실하게
기자가 최근 게임 업계인들을 만날 때마다 종종 테이블 위로 올라오는 표현 중 하나가 "'톤 앤 매너'나 '스타일'이 개성있어야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콘텐츠의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기자 또한 크게 공감한다.
2026년은 <젤다의 전설>, <메트로이드>, <드래곤 퀘스트> 40주년, <소닉> 35주년, <페르소나>, <포켓몬> 30주년, <동물의 숲> 25주년이 되는 해다.
게이머라면 다들 잘 아시겠지만, 역사적인 N주년을 맞이하는 저 시리즈들은 단순히 오랜 시간 사랑 받은 것을 넘어, 확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게임들이다.
한 장면만 스크린샷으로 보여주거나, 주요 BGM 또는 시그니처 사운드만 짧게 들려줘도 "아, 그 게임!"(개별 넘버링까지 맞추긴 힘들지 몰라도 시리즈 구분은 명확히 된다) 하고 알아챌 수 있는 수준이다.

핵심은 이들도 보편적 소재와 정서를 항상 근간에 둔 채로, 그 위에서 자신들의 스타일을 공고히 하고 변주를 준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40년 전에 나왔던 <젤다>, 30년 전에 나온 <포켓몬>은 앞선 시대에 선점할 수 있던 영역이 많았던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의 스타일은 어떠한가. 데스 게임 장르의 여러 선례들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긴 했어도, 특유의 공간 구성, 복식, 색감, 캐릭터들의 개성은 <오징어 게임>만의 것이 아니었던가.

<흑백요리사> 시즌 1, 2도 마찬가지다. 국내외에서 방영된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세트장의 분위기, 빌런인지 영웅인지 모호한 경계에 있는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이 많은 점, <흑백요리사> 특유의 경연 룰, 2인 심사위원 체제 등이 모두 '스타일'의 한 부분이다.
'두부로 만든 치킨', '마늘 빠진 봉골레'나 '당근 짜장면' 같은 요리들은 <흑백요리사>에서만 볼 수 있던 강렬한 순간들의 대표적인 예시다.
생존이라는 '성패' 앞에서 셰프들이 각자의 창의성을 극한까지 끌어내며 프로그램에도 '개성'을 더해준 것이다.
▲ 원경으로 세트장의 공간 구성과 분위기, 로고 정도만 보여줘도 알아볼 수준으로 '스타일'에 공을 많이 들인 <흑백요리사>다.
2026년 또는 그 이후에 출시를 예고한 수많은 게임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놀이터나 취향이 세분화됐다는 시대적 상황을 잠시 뒤로 하고 보면, '스타일'이 확고하지 않은 작품들이 너무나 많아 걱정이다.
병오년 새해뿐만 아니라 앞으로 'AI' 인공지능이라는 키워드도 계속해서 부상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콘텐츠를 양산할 것이란 얘기다. 이런 시대일수록 '스타일'과 '개성'이 더더욱 중요해진다.
구태여 게임이 아닌 콘텐츠의 예시까지 들어가며 이번 칼럼을 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보편성과 개성이 공존하기 어렵다고 보는 시선을 타파하기 위함이 크다.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싶으신가. 당신의 게임이 단 한 장면의 스틸 컷, 한 문장의 대사, 한 소절의 음악으로 대표될 수 있는지 한 번만 더 돌아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