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질병인가?”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한 이후, 이 질문은 대한민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학부모들은 모니터 앞의 자녀를 보며 ‘디지털 마약’에 중독될까 전전긍긍했고, 게임은 건강한 청년들을 병들게 하는 주범으로 지목되어 십자포화를 맞았다.
그러나 정작 “게임이 정말 인간의 뇌와 삶을 파괴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납득할 만한 과학적 근거는 빈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막연한 공포와 경험적 추측만이 무성했을 뿐이다.
여기, 그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결정적인 보고서가 도착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공개한 <2020~2024 게임이용자 연구 해설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설문 조사를 넘어선다. 지난 5년간 아동부터 성인까지 1,800여 명에 달하는 패널을 추적 관찰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과 함께 뇌 MRI 촬영까지 감행한 대규모 실증 프로젝트다. 심리학, 의학, 교육학 등 다학제 전문가들이 뭉쳐 게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해부학적, 행동학적으로 정밀하게 파헤쳤다.
데이터는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제기되던 ‘게임 중독설’이 철저한 오해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5년간 과몰입 지속 인원 0명”, “뇌 손상 증거 없음”. 연구 결과는 게임이 만악의 근원이 아니며, 문제의 본질은 게임 밖에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게임에 씌워진 억울한 누명을 벗겨낼 5년의 기록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 "게임은 정말 만악의 근원인가?" 오해를 풀기 위한 5년의 과학적 검증
해설서의 초두에서도 밝혔듯, 이번 연구를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의문은 하나다. “게임은 만악의 근원인가?” ‘게임이 폭력을 유발한다’, 혹은 ‘게임은 술, 마약과 같은 중독 물질이다’ 같은―사실이라면 실로 무시무시한―갖가지 의혹들이 모두 사실이냐는 것이다.
이번 연구의 핵심 목적은 게임 이용자의 행동 특성을 장기간 분석하여, 게임 이용 자체가 과몰입과 같은 문제적 행동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인지를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것이었다. 만약 게임이 특정 질병과 장애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면, 무엇이 이런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명확히 밝혀 게임에게 씌워졌던 억울한 누명을 해소해 줄 필요가 있었다.
▶ 게임에게 씌워졌던 억울한 누명들이 참 많았다. 사진은 2014년 손인춘 전 의원의 실제 발언
이에 연구진은 게임이용장애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과학적 근거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 두 가지 트랙으로 연구를 설계했다.
첫 번째는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로, 동일한 표본 집단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반복적으로 조사하는 종단적 연구 방식을 채택했다. 연구진은 2019년 예비 조사를 거쳐 2020년부터 아동 및 청소년, 성인, 학부모 등 약 1,800명의 패널을 구성하여 5년간 추적 관찰했다.
교육학, 심리학, 의학 등 다학제 간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은 게임 행동 유형, 게임 이용 시간, 심리 및 사회적 환경 변화 등을 다각도로 조사했다. 특히 이번 연구는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초기 패널의 90% 이상을 유지해 데이터의 신뢰성을 확보했다.
두 번째는 ‘게임이용자 임상의학 코호트 연구’다. 해당 연구는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팀이 주도하여 의학적 관점에서 게임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는 게임이용자 86명을 대상으로 뇌 구조와 기능을 볼 수 있는 자기공명영상(MRI) 및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을 진행했다. 더불어 지능 검사와 인터넷 게임 장애 진단 인터뷰 등을 병행하여 게임 이용이 뇌의 해부학적 변화나 인지 기능 저하를 유발하는지 과학적으로 검증했다.
▶ 이번에 진행된 패널 연구와 코호트 연구에 대한 설명 (이미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 “5년간 과몰입 지속 ‘0명’”… 게임과몰입은 질병이 아니다
그렇다면 게임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혹자의 우려대로, 게임은 과몰입 등 문제적 행동의 주된 원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답은 “아니오”다.
연구자들은 게임 이용자를 게임 이용 습관과 행동 양상에 따라 일반사용자군, 선용군(건전하게 즐기는 집단), 경계군, 과몰입 위험군, 과몰입군 등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변화를 추적했다. 이들로부터 지난 5년간 축적된 데이터는 게임 과몰입이 고정된 병리적 상태가 아님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는 게임 과몰입군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소했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지난 5년 동안 과몰입군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한 아동·청소년이나 성인 패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과몰입군으로 분류되었던 이용자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이 변하거나 성숙해짐에 따라 일반사용자군이나 선용군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 지난 5년간 확인된 아동·청소년 패널들의 게임행동유형 변화와
▶ 성인 패널들의 게임행동유형 변화 그래프 (이미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는 게임과몰입이 치료가 필요한 영구적인 질병이라기보다는, 청소년기의 성장 과정이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연구는 또한 게임 이용 시간과 문제 행동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음을 밝혀냈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오래 하면 중독에 빠지거나 학업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데이터가 보여준 결과는 이와 전혀 달랐다.
게임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선용군의 경우, 게임 이용 시간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자기 조절력과 학업 성취도, 원만한 교우 관계를 유지했다. 반면 과몰입 위험군은 게임 시간보다는 부모와의 갈등, 학업 스트레스, 심리적 불안 등 외부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기 효능감이 높고 부모와의 소통이 원활한 학생일수록 게임을 건전하게 이용하는 비율이 높았다.
결과적으로 패널 연구는 게임 이용 시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과몰입이나 중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게임 자체가 문제 행동의 근본 원인이 아님을 입증했다. 문제적 게임 이용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보다는 이용자가 처한 심리적, 사회적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는 해석이다.
▶ 과몰입위험군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게임 이용 시간이 크게 증가했다가 서서히 감소한 반면, 선용군은 오히려 팬데믹 이후 이용 시간이 늘었다. (이미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 지능 저하도, 뇌세포 파괴도 없었다
함께 진행된 코호트 연구의 결과도 일맥상통한다. 연구진은 게임 선용군, 일반사용자군, 위험군(과몰입 및 위험군 포함)을 대상으로 2년 이상 뇌 변화를 추적 관찰했고, 그 결과 “게임이 뇌를 망가뜨린다”는 속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의학적 증거를 제시했다.
첫째, 뇌의 구조적 변화 분석 결과, 게임이 뇌에 유해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만한 변화는 없었다. 게임의 이용 여부나 과몰입 정도와 관계없이 모든 집단에서 뇌의 핵심 부위인 시상(Thalamus)의 부피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아동 및 청소년기의 자연스러운 뇌 성장과 발달 과정일 뿐이다.
▶ 일반이용자와 게임 선용군의 뇌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둘째, 뇌의 기능적 변화 분석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초기 분석에서 게임 위험군은 일반사용자군에 비해 주의력과 관련된 뇌 영역의 활성도가 다소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연구진이 공존 질환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척도를 변수로 통제하여 다시 분석하자, 이러한 뇌 기능 저하 현상은 사라졌다. 즉 게임 때문에 뇌 기능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ADHD 성향이 있는 이용자가 게임에 더 쉽게 과몰입하게 되며, 뇌 기능 차이 역시 게임이 아닌 기저 질환에서 비롯된 것이다.
셋째, 심리 및 인지 기능 검사에서도 게임 이용이 지능을 떨어뜨린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연구 기간 동안 모든 집단에서 지능지수(IQ)가 소폭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게임 위험군으로 분류되었던 참여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울감과 불안감이 감소하고 주의력이 호전되는 등 자연스러운 회복 탄력성을 보였다. 이는 게임이 뇌세포를 파괴하거나 인지 기능을 영구적으로 손상시킨다는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 게임 위험군에서는 뇌 발달에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ADHD의 영향일 뿐 게임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 게임을 향한 ‘합리적 담론’ 시작할 때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이번 연구는 게임을 둘러싼 오랜 편견을 데이터를 통해 해소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5년간의 패널 연구와 코호트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게임이 게임이용장애의 원인이라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WHO 국제질병분류 개정판(ICD-11)에 의하면 게임이용장애의 정의는 “디지털 게임 또는 비디오 게임을 통해 지속적,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게임 행동으로 통제력의 상실과 현저성(게임에 과도한 우선순위), 부정적 결과에도 게임을 계속하거나 확대하는 증상이 12개월 이상 나타나고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장 등에서 중요한 기능성 손상을 가져오는 경우”를 의미한다. 하지만 5년간의 연구에 의하면, 게임 이용으로 인해 이러한 건강상 질병이 발생한다는 증거와 근거는 없다. 따라서 게임이 질병과 중독을 발생시킨다는 의견은 적절하지 않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게임이용을 병리적 현상으로만 접근하려는 태도보다는 “게임과몰입이 양산되는 근본적 원인과 실질적인 환경, 교육, 문화 생태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보완하는 다차원적인 관심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게임을 향한 기존의 논의와 분석은 과몰입, 게임이용 장애 등 부정적 결과에 초점을 맞춰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부정확한 ‘확증 편향’을 낳았다. 이제는 “게임이 만악의 원흉”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반복하는 단계를 넘어서 게임에 대한 합리적인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절실해진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