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에서 큰 혜택을 받은 '체력' 탱커들은 두 손 번쩍 들고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쳤지만, 엄청난 체력을 앞세워 달려드는 탱커들의 역습에 별다른 수혜를 입지 못한 미드, 원거리 딜러는 연신 눈물을 훔쳐야 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리고 지금의 상황, 사람들이 '리그 오브 워모그'라고 부르는 지금의 현상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지금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가장 핫(HOT)한 이슈, 워모그를 앞세운 피통 괴물 출현에 따른 리그 오브 레전드의 현실을 짚어보자.
/디스이즈게임 크라운산도
| 시즌3의 시작, AD 캐스터의 시대 |

▲ 메뚜기의 시대가 도래했'었'다!
시즌 3가 시작되고 UI와 아이템에 대격변이 일어났다. 그리고 가장 뜨거웠던 아이템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칠흑의 양날 도끼'다. 칠흑의 양날도끼의 효과가 크게 상향되면서 AD 캐스터가 미드에 자주 출현하기 시작했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다르게 자주 픽 되지 않았던 카직스의 시대가 열렸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물리 공격력 기반의 챔피언이 미드 라인에 간다고 하면 흔히 AD 캐스터, 즉 AD계수에 기반해 스킬 위주의 높은 순간 화력을 뽑아내는 챔피언들이 주로 가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탈론, 판테온, 카직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히려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앞서 말한 이들에게 큰 힘을 실어준 계기인 칠흑의 양날 도끼가 되려 기존의 딜탱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것.
제드, 오공, 자르반 등 비교적 탑 라인에서 큰 힘을 쓰지 못하던 챔피언들조차 칠흑의 양날 도끼에 힘입어 미드 라인으로 넘어와, 방어력과 체력이 비교적 낮은 미드 AP누커들을 제압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탑 미드 가릴거 없이 AD챔피언들이 자리를 점하니 챔피언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스킬간 시너지 효과를 조합한 새로운 형태의 팀 파이트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오히려 특정 챔피언(특히 정글러)에게 많이 기대고 있었던 이니시에이팅도 AD 캐스터들의 힘을 앞세우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미드 AD의 우세는 AP 챔피언이 예전만큼 폭발적인 딜링을 보여주지 못하기에 나타난 현상이기도 했다. 먼 옛날 애니의 6레벨 필살 콤보처럼, 한 순간에 확실하게 적을 처치하는 누킹이 예전만 못한 것이다.
어째서 AP 챔피언이 예전같지 않을까? 그 이유는 일명 딜탱(방어에 치중한 아이템을 세팅한 챔피언)들의 아이템 트리가 '체력 위주'로 통일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AP챔피언들은 이전과 같은 대미지로 상대방을 공격하지만, 체력이 너무 많아서 약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 한 때 6렙 필킬을 자랑했던 애니의 모험담은 추억일 뿐이다.
그렇다. 소환사의 협곡에 체력이 넘쳐나고 있다. 요즘 탑 라인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이 바로 거인의 허리띠다. 이를 워모그 또는 태양불꽃 망토로 업그레이드하는 등, 어떤 아이템이든 대개 체력을 우선해 세팅하는 것이 대세다.
체력을 무려 1000이나 올려주는데다 5초당 최대 체력의 1.5%나 회복시켜주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워모그는, 일단 입은 순간 적에게 달려들 수 있는 용기까지 히든 패시브로 부여한다. 팀을 위한 강력한 고기방패로 태어나 아군의 공격을 돕는 것이다.
대미지 딜링? 그런 거 필요 없다. 어차피 솔로 라인에 서서 파밍한 이상 기본적으로 미드 라인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레벨이 된다. 레벨과 장비에서 앞서기 때문에, 팀 파이트에서 저돌적으로 파고들어 상대적으로 체력이 낮은 미드 누커나 원거리 딜러를 공격하면 충분히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특히 쉔과 같이 고정 대미지를 가지고 있거나 체력 계수를 받아 강력해지는 스킬을 가진 챔피언들은 일부러 대미지 증가 아이템을 구매할 필요도 없어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해낸다.
| 유행이 가장 빠른 프로 리그를 보니 |
최근 결승전이 끝난 올림푸스 리그오브레전드 더 챔피언스 윈터 2012 - 2013의 경기 결과를 보면 최근 아이템 추세에 대해 알 수 있다. 12강부터 4강까지 진행된 총 54경기에서 탑 라이너들의 아이템을 살펴보면 럼블이나 제이스 처럼 딜링이 중요한 챔피언을 제외한 모든 챔피언이 워모그 또는 태양불꽃 망토와 같은 체력 증가 아이템을 구매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요즘 잘나가는 초가스
근접 챔피언에게 있어 체력은 생존 척도이기도 하지만, 적진에 달려들어 공격할 수 있는 시간을 연장시켜주는 공격 보조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라인 강자에 속하는 초가스와 올라프, 그리고 최근 하향으로 자취를 감출 뻔한 쉔까지 너무나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지난 2시즌만 되돌아보더라도 크게 대조되는 현상이다. 과거 초가스의 경우만 하더라도, 영겁의 지팡이를 핵심 아이템으로 여길 만큼 어느 정도 AP에 치중된 딜탱에 가깝지 않았는가.
특히 지난 2시즌의 탑 라인을 점령하다시피 했던 잭스와 이렐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핵심 아이템 중 하나였던 삼위일체를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들도 지금은 옷장에 워모그 한 벌씩 갖춰두고 체력에 투자하는 시대. 이건 마치 노○페이스 패딩을 착용한 학생들로 가득한 고등학교의 한 교실을 보는 기분이다.
친구가 탑 라인에서 익숙치 않은 챔피언을 하다가 자신에게 아이템 빌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냥 워모그부터 입어'라고 대답해보자. 재미있는 건, 그 챔피언이 뭐든 간에 대부분 저 대답이 정답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과연 라이엇 게임즈가 의도한 것이었을까?
시즌 3가 초읽기에 접어들 당시 공개됐던 패치 프리뷰에서, '아이템에 대한 부분이 이렇게 크게 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모렐로는 이렇게 답한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템은 결국 다양한 선택과 활용의 폭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반복되는 아이템 세팅을 타파하고 매 게임 새로운 아이템을 선택하는 재미를 주기 위해서죠.'

사실 시즌3 초반(물론 지금도 초반이겠지만)에는 여러 아이템에 대한 실험도 활발했고, 실제로 다양한 빌드가 등장했다. 특히 서포터의 경우, 슈렐리아 일변도의 아이템 빌드를 크게 변화시켜 다양한 빌드가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시즌 2의 초창기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서포터의 필수 아이템은 체력을 올려주는 시야석이고, 다른 서포터 아이템보다 체력이 붙은 슈렐리아나 솔라리 팬던트를 더 선호한다.
서포터의 체력이 높을 수록 라인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라인전의 우위는 원거리 딜러의 CS양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 더블리프트 曰 "지금 밸런스는 ADC를 전부 죽이고 있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상대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다름아닌 원거리 딜러(이하 원딜)다.
최후의 속삭임을 비롯한 방어구 관통 아이템을 맞추고 적을 공격해도, 넘치는 체력으로 버텨내는 경우가 잦다. 그 때문에 5:5의 팀 파이트가 발생하면 원딜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멧돼지같은 딜탱들을 피해 눈치만 봐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CLG의 AD 포지션인 '더블리프트' 피터 펭 또한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런 내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AD 포지션의 입장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다소 편파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의 논지를 종합하면 체력 일변도로 흘러가는 현 메타,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오죽하면, 최근에는 피바라기+최후의 속삭임으로 이어지는 최소한의 AD 아이템만 세팅한 후 워모그를 입는 원딜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어차피 서로 넘치는 체력 탓에 길어질 5:5 교전이라면 생존력을 늘려 지속 화력을 더 높이겠다는 의지다. 그만큼 게임에서 원딜, 즉 후반 지향형 AD 캐리가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 대 워모그 시대 이대로가 좋은가? |
아이템의 효율에 따라 아이템 세팅을 다르게 해 매 상황에 대비하도록 유도하고 싶었던 라이엇 게임즈. 그러나 현재의 추세를 짚어보면, 앞의 문장들이 무색할 정도의 체력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AOS(MoBA) 장르에서의 밸런스란 각기 다른 다양한 챔피언이 각자의 콘셉트에 따라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즌 3에서는 오직 체력 세팅만이 득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팀 게임인 만큼 구성원 하나하나의 능력과 10명이 모여 벌어지는 한타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갈리는 '거대한 룰'은 유지되고 있어 다행이다.
최근 PBE의 변화 내역을 살펴보면, 이런 문제점이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니, 한동안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최근 원거리 딜러의 유력 아이템에 속하는 피바라기와 칠흑의 양날 도끼가 재차 하향되어 원딜의 설 자리가 더 좁아진 것. 원딜은 이제 정말 무한의 대검 뿐이라고 외치면서, 그야말로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극 후반 지향형 챔피언으로 흘러갈 위기에 놓여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물론 혹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단지 일시적인 메타일 뿐이며, 대부분의 문제는 손가락 탓에 발생한다 주장할 수도 있다.
'리그 오브 워모그', '체력 오브 레전드' 등이라는 별명이 매일같이 생겨나는 요즘.
워모그의 집권 시대가 단지 한 번 휩쓸고 지나가는 유행일지,
아니면 LOL이 추구하는 게임 밸런싱의 이상향인지 앞으로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