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을 많이 플레이하는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욕망이 있다. 아마 가장 큰 공통된 열망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숨은 보석 같은 명작을 찾아, 그 매력을 알아주는 팬이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 분들에게 국산 인디 호러 <전국퇴마사협회>를 강력추천하고 싶다.
12월 19일에 얼리 액세스로 출시된 <전국퇴마사협회>는, 정말 과장 하나 안 보태고 근래 했던 공포게임 중 가장 재밌었다고 평할 만했다. 엄밀히 따지면 '공포' 테마가 압도적이었다기보단, 잘 만들어진 '스토리 게임'으로서 더 재밌긴 했지만, 퇴마를 비롯해 한국적인 소재들을 풀어내는 방식부터, 캐릭터들이 하나의 이야기 줄기에 모이는 방식까지 정말 공들여 만들었다는 감각을 내내 받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만약 당신이 <이브>, <아오오니>, <살육의 천사> 등의 게임을 좋아했다면, 상대적으로 더 순한맛이지만 이런 작품들의 매력은 온전히 계승한 <전국퇴마사협회>를 재밌게 즐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유백서>, <블리치>의 도입부처럼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를 넘나드는 설정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또 이 게임의 매력에 푹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체험기에는 <전국퇴마사협회>의 얼리 액세스 분량인 0장, 1장, 2장 총 세 개 챕터(전반부)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후 출시될 본편(3장, 4장, 최종장인 5장)까지의 기대감을 높일 수 있을 정도의 내용만 소개할 것이고, 치명적인 스포일러는 없을 예정이니, 마음 편히 기사를 보시고 게임도 즐겨보시면 좋겠다.
# 어머니의 죽음 그 뒤에 숨겨진 비밀을 찾으려는 풋내기 퇴마사
붉은 머리의 여고생 '강혜성'은,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은 영능력으로 인해 항상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린다.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그녀가, 조금이라도 조용한 삶을 살기 위해 전학 온 재상고등학교에서도 또 의도치 않게 사건의 중심에 얽히게 된다.
혜성이 어릴 때 화재로 인해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사고'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한 부분이 많은 가운데, 혜성은 그 자리에 남아있던 '부적'의 흔적을 좇게 된다. 그리고 참 이상하게도 이번에 전학 온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에도 그 '부적'이 이면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 혜성의 어머니도 유명한 퇴마사였다.

▲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던 어린 혜성. 그 이면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고 직감하게 된다.
▲ 영능력 같은 것을 들키지 않고 이번 학교에서는 조용히 지내길 원했지만
▲ 혜성이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혜성에게 접근하는 인물도 있고
▲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강령술로 죽은 영혼을 불러낸 학생들의 일에 휘말리게 된다.
산 자들의 정신력을 갉아먹는 '잡귀'와 강력한 원한으로 혜성을 '결계' 안으로 끌어들여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악귀'까지, 혜성은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 단서를 찾고 살아남아야만 하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때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 죽은 자의 물건에서 기억을 읽어내는 혜성의 능력이다. 이를 통해 악귀가 어떤 원한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되며, 이 원한에 대한 이해는 악귀를 처단해 소멸시키는 폭력적인 방식이 아닌 '성불'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하게 된다.

▲ 물건에서 기억을 읽어내는 힘으로 악귀가 생전에 어떤 일을 겪고 왜 원한을 가지게 됐는지 이해하게 되는 혜성.
▲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날뛰는 원혼의 폭주를 해결할 수는 없던 상황에
▲ 게임의 제목이기도 한 '전국퇴마사협회'의 인물들이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이때부터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전국퇴마사협회>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면, 등장인물들의 매력이 굉장하다는 것이다. 주인공 혜성의 주변에 하나씩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의 소속이 어디인지와 무관하게, 캐릭터 디자인이나 설정 하나만으로도 작품 하나 뚝딱인 친구들이 한가득이다.
팀 다다의 스토리텔링 능력 중 가장 높이 사고 싶은 지점은, 이런 캐릭터들을 남용하는 것이 아닌 적재적소에서 딱 깔끔하게 사용하고, 챕터의 말미에서 다음 챕터를 안 보고는 못 견디게끔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전개로 맺음을 짓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 스팀 페이지의 시놉시스에도 있는 '전국퇴마사협회'와 악의 조직 '조월회' 사이의 이야기가 큰 맥락으로 등장한다. 퇴마사협회의 선배격으로 등장하는 현우와 지원의 매력이 상당하다.
▲ 운전할 때의 구도나 앵글이야 흔한 편이지만, 기자의 최애 게임 중 하나인 <도시전설 해체센터>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전국퇴마사협회>가 <도시전설 해체센터>만큼이나 캐릭터 및 시나리오의 매력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초반부의 세계관을 네이버 도전만화로 일부분 먼저 연재했던 동명의 웹툰 <전국퇴마사협회>에서도 현우와 지원의 등장장면이 강렬했었다.
▲ 이러한 장면들의 묘사를 넉넉한 아트 리소스와 음악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것도 장점이었다.
▲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더 매력적인 인물들이 한가득 나오게 된다. 조월회의 복장도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동시에 멋이 있는 편이고

▲ 핵심 인물 중 하나로 등장하는 '하루'도 마찬가지다. 얼굴만 봐도 사연 많은 친구가 아닌가.

▲ 게임의 중반부로 진입할수록 이렇게 설정만 봐도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와, 이들을 언제 또 만날까 기대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 이 또한 네이버 도전만화 웹툰 당시의 모습 중 일부분. 개인적으로 볼빵빵 캐릭터를 좋아해서 그런지
▲ 게임에서 이렇게 잠깐 등장해도 기억에 오래 남는 캐릭터 중 하나였다.
# 유니티로 만들었지만 알만툴 명작의 장점만 쏙쏙 빼온 플레이
<전국퇴마사협회>의 플레이에서 유일하게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 있다면 아마 쯔꾸르 스타일을 차용한 탐색 요소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플레이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도트 불호파 내지는 쯔꾸르 스타일은 충분히 화려하지 않아서 별로라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일단 그런 선입견을 가지신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중 하나는, <전국퇴마사협회>는 정확히는 알만툴로 만들어진 게임이 아니라 유니티로 만든 게임인데 쯔꾸르 스타일을 차용한 게임이며, 다양한 컷씬 및 이펙트, 연출 등으로 충분히 변주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퍼즐 플레이의 견고함이었다. 잡귀와 악귀에 쫓기는 긴박한 상황 사이에서도 열쇠 같은 아이템을 찾거나, 문을 열고 나아갈 힌트를 찾는 과정이 매우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흐름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구성도 많아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 고전 쯔꾸르에서 흔히 쓰는 퍼즐 스타일도 많이 보인다.
▲ 잡귀의 시야에서 도망다니며 옷장 같은 곳 안에 숨거나, 향을 꺼서 잡귀를 쫓아내는 방식도 긴장감을 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꽤나 고생했던 2챕터 놀이동산 구간의 범퍼카 퍼즐 파트. 쉽지 않았던 만큼 풀고 나서 해냈다는 성취감이 크기도 했던 구간이다.
일부 퍼즐이나 아이템을 찾는 구간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플레이 난이도는 초심자에게도 매우 적합한 수준으로 입문 허들이 낮은 편이었다.
이는 '공포' 게임이라는 장르를 내걸고 있지만, 아주 고어하거나 무서운 장면이 많지 않은, 다시 말해 자극적인 방식으로 공포를 주는 방식 대신 '무서운 분위기'로 설득하는 방식을 채택한 게임의 톤 앤 매너와도 연결된다.
게임이 다루는 소재나 분위기는 굉장히 무거워 진지함을 더하는 데 반해, 플레이의 전체적인 흐름은 중학생이 공략 없이 플레이해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한 편이다. '어려워서' 또는 '너무 무서워서' 공포 게임에 입문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리하게 더 폭넓은 유저층을 잘 끌어들일 수 있는 무대를 만든 모습이라 생각했다.
▲ 기괴하고 잔인한 방식으로만 공포를 강조하는 게임이 넘쳐나는 걸 생각해보면, 무엇이 '공포'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쯔꾸르 공포 명작들이 보여줬던 좋은 연출들을 많이 보고 배운 모습이 보여 참 좋았다.

▲ 이 눈알 패널 점멸 플레이를 지나가는 때의 조작감만 조금만 더 개선하면, 지금의 플레이 구성도 정말 좋다고 느껴졌다. 적절히 머리를 쓰는 구성이면서도, 너무 어렵거나 고어하고 무섭진 않은 선을 잘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 '힘'이 있으면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더 나은 대화 방식은 없을까...주제 의식이 플레이 전반에 녹아 있다
<전국퇴마사협회>가 스토리와 플레이 내내 설득하는 내용 중 하나는, 폭력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답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 게임은 철저하게 비폭력주의(Be 아니고 非)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혜성'은 강한 영능력을 가지고 있고, '하루'나 선배들도 충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폭력으로 악귀를 처단하는 방식을 쉽게 택하지 않는다. 그렇게 '제령'하는 방식을 택하면 그 영혼이 다시 태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고, 어찌 보면 눈 앞의 문제를 당장 해결한다는 맥락에선 우회하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일지라도, 악귀의 이면에 있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이들을 성불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 힘으로 해결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많지만, 혜성과 일행들은 악귀와의 '대화'에 집중하려 한다.
▲ 혜성의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반동집단인 '조월회'와 크게 구분되는 행보이기도 하다.
▲ 하지만 당연하게도 '더 어려운 방식'이다.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혜성은 고행을 무릅쓰고서라도 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려 한다.
▲ 단순히 오지랖이 넓거나, 성녀 포지션을 자처해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혜성에게도 혜성 나름의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다.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게 게임의 주된 서사와 플레이로 등장한다.
'공포 게임'과 '상냥함'이라는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키워드가 하나의 작품 안에 잘 녹아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게임이 가진 개성이 확실하다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편, <전국퇴마사협회>가 '한국 문화'를 폭넓게 소개하는 방식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여러 전통 문화나 한국인들의 일상을 단순히 일회성 소재로만 다루는 것이 아닌, 애정을 가지고 조사해서 게임의 분위기에 녹여내려 했다는 인상이 강했다.
아래의 예시와 함께 살펴보시면 더 와닿을 것이라 생각한다.
▲ 1장의 박물관 파트 중 일부분이다. 각종 유물부터 민화까지 본인들 나름의 재해석이 돋보였다. 단순히 도트로 옮기고 설명을 곁들였다는 수준이 아니라, 이를 공포 분위기에서 다시 재해석하는 영역도 좋게 다가왔다.
▲ 같은 공간을 깨트리고 왜곡하는 방식 등은 쯔꾸르 호러 명작 <이브>의 분위기가 생각나서 인상적이었다.
▲ 거울이 있는 이곳도 참 적절한 변주로 재해석하는 방식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인게임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장한다.
▲ 꼭 전통 문화가 아니더라도, 이런 황룡랜드 같은 놀이공원의 분위기도 한국적인 문화의 정취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 특정 구간 이후부터 한복으로 복식이 바뀌는 콘셉트도 마찬가지다.
▲ '전국퇴마사협회'와 '조월회'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과정에서도, 우리 전통 문화를 여러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활용한 부분이 돋보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작품들이 전 세계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게임 <전국퇴마사협회>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현재 이 게임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하면, 아직 얼리 액세스 출시 단계이기 때문에 전반부(0장, 1장, 2장까지 세 개 챕터)만 공개된 상태라는 것이다.(반대로 정식 출시 때보다 조금 더 저렴한 가격의 얼리 액세스 판매가로 미리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2026년에 순차적으로 3장, 4장, 5장(최종장)까지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니, 현기증을 잠시 참으며 정식 출시까지의 이야기 전개를 손꼽아 기다려보려 한다.
지금까지 잘 다져놓은 캐릭터와 서사의 토대 위에서 최종장까지 이야기의 스케일이 더 확실하게 커졌으면 하고, 호러 연출의 색채도 더 진해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기대가 있다.
과연 혜성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비밀과 함께 확장될 것인지, 조월회의 정체와 그들이 바라는 목적은 무엇인지, 앞으로의 발전 과정이 매우 기대되는 국산 인디 공포 게임 <전국퇴마사협회>를 여러분도 꼭 즐겨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 각 챕터의 제목이 사자성어로 되어있긴 하지만, 한자를 몰라도 진행에 전혀 문제가 없다. 괜한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된다는 뜻이다.
▲ 아직 전반부만 나온 상태인데도, 이들의 이야기에 끝이 있다는 게 벌서부터 아쉬울 정도로, 이 게임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 어찌 보면 '정석'에 가까운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탄탄하게 다가왔던 타이틀이었다. 정식 출시 때까지 순차적으로 공개할 후반부에선 또 어떤 마성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매우 기대되는 국산 인디 공포게임 <전국퇴마사협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