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잘 보면 한국 바깥에서는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데 유독 한국 안에서만 인지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들이 있다. 스케이트보드 또한 마찬가지다. 해외에서는 나름 역사도 깊고 시장 규모나 대중적인 인지도가 꽤 큰 편인 데 반해 한국에서는 여전히 마이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스케이트보드를 즐기기 위한 환경 조성의 문제가 많이 거론되는 모양이다.
이는 스케이트보드를 소재로 한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외에서는 <토니 호크의 프로 스케이터(Tony Hawk's Pro Skater)> 시리즈와 <스케이트(Skate)> 시리즈가 스케이트보드 게임의 기틀을 잡았고, 이후 여러 스케이트 게임들이 활발히 출시되며 개중에는 인기를 끈 게임도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잘나간다고 하는 스케이트보드 게임도 한국에 들어오면 그 호응이 해외만 못하다. 어쩌면 스케이트보드의 낮은 인기가 스케이트보드 게임에 대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디볼버디지털 퍼블리싱의 <스케이트 스토리(Skate Story)>가 출시됐다. 어쩌면 이 게임은 그런 낮은 인지도로 인한 진입 장벽을 많이 낮출 수 있는, 그래서 누구나 즐기기 좋은 스케이트보드 게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작성=쿠타르크(인디 블로거), 편집=한지훈 기자
▶ 여전히 한국에서는 스케이트보드가 마이너하다. 게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은 <올리올리 월드(Olli-Olli World)>
▶ 철학. 심연. 사이키델릭. 스케이트보드. 이 모든 것을 섞은 최적의 결과물.
# 심연을 달리는 스케이트의 악마
<스케이트 스토리>는 달을 삼키기 위해 사탄과 거래를 한 유리 몸의 악마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는 여정을 담은 액션 스포츠 게임이다. 온통 유리로 이루어져 있어 영롱해 보이는 주인공 스케이트 악마의 생김새, 색감은 어둡지만 두렵다기보다는 신비롭고 기묘한 심연의 비주얼, 사이키델릭풍의 감미로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드러내는 보컬 음악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호기심을 유발한다.
▶ 달을 삼키는 악마라, 왠지 이런 제목의 시나 소설이 어딘가에 이미 존재할 것만 같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앞으로 질주하거나 뛰어오르며 묘기를 부리는 게임 플레이는 사실적이며, 철학적인 요소가 다분하면서도 온갖 암유와 환유로 가득한 스토리는 마치 한 편의 문학 작품을 보는 듯하다. 그밖에 한국어 번역은 (일부 번역이 전혀 되지 않은 문장이 그대로 튀어나오는 오류가 있긴 해도) 게임의 문학적인 성향을 아주 잘 살린 모습이다.
스케이트보드를 소재로 한 기존의 게임들과는 다소 다른 결을 보이는 게임이다. 사실적인 스케이트보딩과 넓은 도심이라는 배경에 있어서는 그나마 EA의 <스케이트> 시리즈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이마저도 설정과 배경이 너무나도 다르고 서사의 비중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 유사도가 그리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게임의 결로만 따지면 2019년에 출시됐던 인디 게임 <사요나라 와일드 하츠(Sayonara Wild Hearts)>와 유사하다고 보는 편이 차라리 나아 보인다.
▶ 스케이트보드를 소재로 내세웠던 기존의 다른 게임들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스케이트 스토리>의 스케이트보드는 사실적이면서도 담백한 게임 플레이를 선보인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게임치고는 조작이 다소 단순한 편이고 새로운 조작 방식이 추가될 때마다 튜토리얼도 친절히 제시돼 조작을 익히기도 쉽다. 물론 스케이트보드 묘기가 몇 가지 있긴 한데, 몇 가지 플립 및 스핀 트릭, 그라인딩, 매뉴얼 등 지극히 기초적인 무브라 전혀 어렵지 않고, 고급 트릭이 몇 가지 준비돼 있긴 하지만, 이 고급 트릭을 딱히 쓰지 않더라도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기 위한 지형도 꽤 잘 갖춰져 있다. 가볍게 뛰어오를 수 있는 경사면이나 그라인딩을 위한 긴 조형물 등,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이런저런 묘기를 부릴 수 있는 지형지물이 도처에 널려있다. 특정 트릭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장치나 자잘하게 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오브젝트도 사방팔방에 깔려있다. 그밖에 다양한 디자인의 데크 및 부품들, 그리고 데크를 꾸밀 수 있는 스티커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어 이것들을 수집하는 재미도 깨알 같다.
다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기 위한 지형지물들이 대체로 경사가 완만하거나 턱이 낮은 편이라 여러 묘기를 부리며 콤보를 쌓아 높은 점수를 확보하는 데 최적화돼 있진 않다. 최소한 하늘 높이 날아올라 여러 트릭을 순차적으로 발동한다던가 복잡한 구조의 지형지물을 절묘한 묘기의 연속으로 화려하게 넘어간다든가 하는 건 이 게임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기존의 스케이트보드를 소재로 한 게임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경우에 따라서는 게임이 다소 밋밋하거나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위한 최적의 지형은 잘 구축돼있다. 다만 경사가 완만하고 턱이 많이 낮은 편.
▶ 나름 고급 트릭이 있긴 하다. 굳이 이걸 안 써도 게임을 진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뿐.
# 묘기보다 강렬한 질주와 전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게임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게임 플레이는 짜릿하고 또 흥미롭다. 이는 스케이트보드라 하면 익히 떠올릴 법한 화려한 묘기보다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앞으로 빠르게 질주하거나 상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에 좀 더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그렇다.
실제 게임 안에서도 짧은 구간을 빠르게 돌파하는 구간이나 체력이 많은 보스급 상대를 약간의 묘기만으로 빠르게 물리치는 구간이 많다. 특히 전투의 경우 한 번의 콤보로 가할 수 있는 대미지가 제한돼 있어 무조건 콤보를 쌓아 점수를 끌어올리는 플레이가 지양된다. 스케이트보드는 일종의 수단에 불과할 뿐, 기본적인 게임 디자인은 스케이트보드보다는 질주와 전투라는 가장 원초적인 요소에 더 집중된 셈이다.
여기에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깨지기 쉬워 위태롭지만, 외형만큼은 영롱하고 아름다운 유리 몸체의 스케이트 악마, 게임의 배경이 되는 심연의 어두우면서도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환경, 그리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가득하면서도 심장을 울리는 사이키델릭풍 보컬 음악으로 시청각적인 즐거움을 제대로 충족시킨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자유롭게 스케이트를 타고 빠르게 질주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그러면서도 약간의 스케이트보드 묘기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듯한 재미까지도 완벽에 가깝게 챙긴 모습이다.
어찌 보면 꼭 스케이트보드일 필요는 없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스케이트보드를 소재로 내세웠기에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 것이다.
▶ 꼭 스케이트보드일 필요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스케이트보드이기에 흥미로운 점은 분명 있다.
▶ 극한은 아니라도 짜릿하다. 밝고 곱지 않아도 아름답다. 그렇기에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 문학적인 스토리, 하지만…
스케이트 악마의 달을 삼키기 위한 여정을 담은 스토리는 마치 한 편의 순수 문학을 보는 듯하다. 스토리상에서 사용되는 문장은 간결하고 깔끔하며, 그 의미가 단순해 보이면서도 온갖 환유와 암유로 가득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한편 플레이어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철저히 스케이트 악마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추상과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나아가 철학과 종교의 경계마저 희미하게 만든다.
특히 '사탄과의 계약'이라던가 '영원지네로 인한 망각' 같은 것들이 언급되는 걸 보면, 이 스토리가 어딘가의 고전 설화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누군가의 상념의 흐름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혹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뇌하는 중세 유럽의 시나 희곡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의 내면을 진중하게 다룬 근현대 소설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건 간에 이를 감상하는 플레이어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스토리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 대체로 사용하는 문장이 간결하고 깔끔하다. 그러면서도 표현 하나하나가 정말 심상치 않다.
▶ 어딘가의 고전 설화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의식의 흐름 같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는 때에 따라서는 다소 현학적이고 난해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주인공 스케이트 악마를 비롯해 달, 사탄, 토끼, 그리고 영원지네 등, 게임의 주요 소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장면이 없어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혹여나 스토리를 여러 차례 되짚어가며 곰곰이 의미를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첫 플레이만으로 스토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썩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 게임에서 진짜 아쉬운 점은 따로 있다. 챕터 단위로 나누어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챕터 셀렉트 기능을 지원하지 않고 세이브 슬롯도 단 하나뿐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물론 멀티 엔딩이 존재하는 게임은 아니라서 2회차 이상 플레이할 여지는 적지만, 그런데도 엄연히 챕터가 존재하는 게임에서 원하는 챕터를 골라 다시 플레이할 수 없다는 건 조금 이상하다. 더군다나 스케이트 데크를 수집하거나 특정 행동을 요구하는 도전 과제가 따로 존재하는 게임이다 보니 이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 각 챕터의 내용을 갈무하는 마무리 씬. 솔직히 말하자면, 내용을 다 알고 봐도 이게 뭔가 싶을 때가 있다.
▶ 멀티 엔딩이 없는 게임이라고는 해도, 챕터 단위로 나뉘어져 있는 게임에 챕터 셀렉트가 없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 심연, 사이키델릭, 그리고 스케이트보드
<스케이트 스토리>는 스케이트보드라는 소재를 기존의 게임들과는 전혀 다른 결로 풀어낸 이질적인 게임이다. 그리고 철학과 심연, 악마, 사이키델릭, 스케이트보드 등 서로 도통 어울리기 힘들어 보이는 키워드를 하나로 뭉쳐 짜릿한 재미와 훌륭한 완성도를 지닌 게임으로 엮어낸 멋진 인디 게임이기도 하다.
칠흑같이 어두운 심연을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음악의 강렬한 음색에 힘입어 달을 향해 빠르게 질주하고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제압하는 게임 플레이는 더없이 흥미롭다. 오로지 달을 삼키겠다는 목표로 유리 몸뚱이가 수백 번 부서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 스케이트 악마의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과 온갖 암유와 환유로 가득해 마치 한 편의 순수 문학을 보는 듯하다.
물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는 게임 플레이는 지극히 기초적인 수준을 벗어나진 못한다. 높이 날아올라 묘기를 연속으로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끄러지듯 복잡한 지형을 넘나들지도 못한다.
오히려 그렇기에 스케이트보드에 관심이 없던 이들이라 하더라도 이 게임만큼은 아무런 부담 없이 진입하기도 좋고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게임에서 예술성을 찾는 부류의 게이머들이라면 이 게임이 상당히 만족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 뛰어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사이키델릭풍 사운드트랙
- 트릭보단 질주에 초점을 맞춘 스케이트보드 게임 플레이
- 한 편의 문학 작품을 보는 듯한 스토리
- 챕터 셀렉트와 멀티 세이브 슬롯의 부재
쿠타르크 (블로거)
2014년부터 10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