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게임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보통 리듬 게임을 플레이할 때 우리의 시선은 연주해야 할 노트에 쏠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배경의 변화를 놓치기 쉽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배경에서 그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더라도 막상 연주를 마치고 나면 배경에 뭐가 있었는지 기억조차 안 날 때가 많다.
특히 음악 연주의 난이도가 높아 더욱 노트에 집중해야 할 때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게 발생할 수 있다. 이래서 리듬 게임이라는 장르에서 음악 연주와 스토리 전달이 함께 이루어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우선 음악 연주 도중 잠시 쉬어가는 구간을 두는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이러면 이야기 전달은 잘 되겠지만, 음악 연주를 멈추게 되니 마땅히 게임의 흐름이 끊기게 된다. 혹은 음악 연주를 살짝 방해하는 한이 있더라도 스토리 묘사를 더 뚜렷하게 드러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연주의 방해로 인한 불쾌감 유발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걸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No”라고 했겠지만, 이제는 이 대답을 “Yes”라고 바꿔야 할 것 같다. 5년 만에 정식 출시로 돌아온 심장 박동 리듬 게임, <리듬 닥터>가 있으니 말이다.
▶ 그런 사례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사진은 <스페이스 채널 5: 파트 2>.
▶ 충실한 박자로 거세게 휘몰아치는 장대한 뮤지컬, <리듬 닥터>.
# 눈을 현혹하는 연출, 귀를 파고드는 정직한 리듬
<리듬 닥터>는 이른바 '얼불춤'으로 통용됐던 리듬 게임 <불과 얼음의 춤>의 개발사 7th Beat Games의 차기작으로, 심장 박동 교정 프로그램을 사용해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이색적인 리듬 게임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21년 2월경 얼리 액세스로 출시된 걸 고려하면 사실상 얼리 액세스 이후 정식 출시까지 무려 5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셈이다.
다양한 음악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은 더 이상 말해봐야 입만 아프게 느껴질 만큼 초 고퀄리티를 자랑한다. 다만 곡의 아티스트가 각자 달라 사운드트랙을 온전히 구성하기 힘들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휘황찬란한 연출과 리듬과 박자에 충실한 레벨 디자인, 그리고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스토리가 돋보인다.
그 밖에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임이며, 중국어가 그대로 출력되는 극히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한국어 번역 자체의 퀄리티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한편 ‘일곱 번째 박자’를 강조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마침 개발사의 이름이 7th Beat Games기도 하고 그동안 공개된 여러 트레일러 영상에서도 지속적으로 일곱 번째 박자를 강조하며 실제로 초반부 레벨은 일곱 번째 박자에 버튼을 누르는 레벨이 등장한다. 마치 ‘일곱 번째 박자’가 이 게임의 아이덴티티인 것 같지만, 막상 후반으로 갈수록 이런 일곱 번째 박자를 무시하는 듯한 경향을 보인다. 긴 얼리 액세스 기간 동안 게임의 방향성이 어느 정도 바뀌었음을 의심해 볼 법하다.
▶ 심장 박동 교정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실존했더라면 단연 심혈관질환의 화타였을 것이다.
▶ 7번째 박자를 유달리 강조하는 건 좋다만, 정작 가면 갈수록 이 7번째 박자가 무시되는 경향은 있다.
각 레벨에 진입할 때마다 새로 등장하는 기믹을 숙지시키는 튜토리얼을 먼저 플레이하게 된다. 이는 전작인 <불과 얼음의 춤>에도 존재했던 시스템을 잘 계승한 모습이며, 이 튜토리얼에서 연습을 충분히 해볼 수 있어 해당 기믹을 숙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해당 기믹의 다양한 변형과 응용을 최대한 전부 설명하고 있어 조금 번거롭긴 해도 친절한 튜토리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론과 연습은 다른 영역이고 실전은 또 다른 영역이듯이 실제 레벨은 튜토리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까다롭다. 튜토리얼에서 보지 못한 변칙이 나타나는가 하면 앞선 레벨에서 선보였던 기믹이 섞이면서 타이밍이 꼬이기도 하고, 플레이어의 원활한 플레이를 가로막는 각종 방해와 교란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 전작이 그러했듯 새로운 기믹을 숙지시키는 튜토리얼이 아주 잘 갖춰져있다.
▶ 물론 연습과 실전은 전혀 다른 세계다. 특히나 다른 기믹이 섞이기라도 하면 더 괴로워진다.
특히 이 연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활한 플레이를 가로막는 연출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 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플레이의 흐름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그렇다.
단순히 일부 박자를 끊거나 넘기는 페이크성 연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온 화면을 뒤덮거나 아예 레벨이 끝난 걸로 착각하게 만드는 절묘한 연출, 그리고 시작부터 끝까지 아예 게임 화면 자체를 격렬히 움직이는 과격한 연출 등, 온갖 종류의 연출이 총동원돼 플레이어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런 시각적인 연출이 하도 강렬하면서도 정신이 사나워 음악에 대한 집중을 흐트러뜨리고 자연스레 실수를 유발하게 된다(다르게 보면 이러한 연출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강렬하고도 과격한 연출이 불쾌감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온갖 방해와 교란, 페이크가 있어도 대부분의 레벨은 정박을 온전히 유지하기 때문에 그렇다. 한 레벨 안에서도 음악의 속도가 수시로 변하는 데다가 중간중간 페이크가 심겨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알맞은 박자를 유지하면 제대로 된 연주를 이어 나갈 수 있다.
다시 말해 음악 연주가 정박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덕분에 각종 방해와 페이크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성립이 가능한 것이다. 덕분에 처음 몇 차례 플레이에는 게임의 흐름을 끊는 각종 연출을 그 자체로 즐기고, 이후 점차 곡에 대한 숙련도를 키우며 연주 솜씨를 늘려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리듬 닥터>가 훌륭한 리듬 게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 아예 게임 화면 자체를 뒤흔들어버린다. 이것이야말로 보법이 다른 페이크.
▶ 하늘이 무너져도 정박은 유지된다. 그렇기에 온갖 교란과 페이크도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 눈과 귀로 읽는 이야기, 기믹조차 서사가 되다
스토리텔링 또한 돋보이는 면이 있다. 대체로 각 레벨의 플레이 타임이 3분에서 4분 남짓으로 짧은 편이라 이야기를 전달할 시간이 부족하지만, 그 안에서 각 캐릭터의 개성과 사연, 심정 변화를 제대로 드러낸다. 여기에는 각 캐릭터에게 어울리는 음악 장르 선정과 연주 기믹의 조화, 그리고 적절한 가사의 공이 크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다양한 연출이 캐릭터와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원활한 음악 연주를 가로막는 강렬하면서도 과격한 연출이 각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긴 설명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덕분에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음악 연주에 집중하면서도 게임의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파악하고 나아가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보편적으로 리듬 게임이란 장르에서 음악 연주와 스토리 묘사가 병행되기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음악 연주를 위해 화면에 표시되는 노트나 흘러나오는 음악에 시선이 쏠리다 보면 주변의 다른 것들이 잘 보이지도 않고 기억도 나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이를테면 <디제이맥스> 시리즈 같은 리듬 게임을 플레이할 때 백그라운드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눈에 띄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런데 <리듬 닥터>는 어떻게든 각인될 수밖에 없는 절묘한 타이밍의 강렬한 연출과 살짝 쉬어가는 타이밍의 완급조절, 그리고 언제나 정박을 유지하는 게임 플레이로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만으로도 <리듬 닥터>라는 게임이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은 충분히 존재하는 셈이다.
그밖에 스토리 자체의 완성도도 훌륭하다. 특히 정식 출시 이후 추가된 피날레 레벨은 모든 캐릭터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클라이맥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의사와 환자의 애환을 모두 녹여낸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마무리를 깔끔하게 매듭짓는다. 상대적으로 캐릭터가 노출될 기회가 적어 이야기의 맥락이 아주 부드럽게 이어지진 않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 보통 음악 연주와 스토리 전달이 한꺼번에 이루어지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걸 완벽하게 해냈다.
▶ 모두가 함께 하는 피날레는 완벽하게 다듬어진 클라이막스를 제대로 보여준다.
각종 미니 게임과 콜라보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다. 수시로 변하는 박자를 따라 커피콩을 뛰어넘어 높은 점수를 노리는 커피콩 상자 뛰어넘기, 양손의 박자를 유지해 덤벨을 무사히 들어 올리는 리듬 역도는 리듬과 박자라는 소재에 충실한 게임 디자인으로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한편, 게임 본편에도 어느 정도 <리듬 천국> 시리즈의 오마주가 담겨있는데, 이 미니 게임에서 그런 오마주가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다른 리듬 게임과의 콜라보 레벨도 인상적이다. 대체로 <리듬 닥터>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콜라보 대상의 특징을 잘 살려내고 있어 해당 콜라보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반갑게 다가올 것이고, 반대로 콜라보 대상을 몰랐던 이들도 이번 콜라보를 통해 관심을 가져볼 여지가 있다.
특히 <뮤즈 대시> 콜라보가 더욱 눈에 띄는데, 콜라보 레벨만 무려 세 가지가 존재하는 데다가 <뮤즈 대시>의 세 주인공 캐릭터가 그대로 등장하고 뮤즈 대시만의 이런저런 디테일을 제대로 살려냈다. 심지어 도전 과제까지 따로 할당돼 있어 그야말로 완벽한 콜라보의 사례로 인용될 만하다.
▶ 특히 뮤즈 대쉬 콜라보의 재현도가 엄청나다. 이래서 도전과제도 따로 할당된 걸지도.
▶ 물건을 들어올리는 그 순간에도,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리듬!
다만 게임을 접하는 데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긴 하다. 이는 취약점이나 문제점이라기보단 불안 요소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듯하다.
우선 휘황찬란하다 못해 삐까뻔쩍한 화려한 연출이다. 이 연출이 플레이어의 박자를 교란하는 한편 캐릭터들의 개성을 드러낸다는 점에 있어서는 단연 뛰어나다고 볼 수 있지만, 화면의 변화가 극심한 데다가 리듬의 변화를 강조할 요량이었는지 번쩍이는 연출이 유독 잦은 편이다. 딱 광과민성 증후군을 겪기 좋은 환경이며, 어느 정도 내성이 있던 이들도 이 게임에서만큼은 피로감을 느낄 여지가 다분하다.
4년하고도 8개월에 달했던 기나긴 얼리 액세스 기간은 이 게임의 또 다른 불안 요소라 할 수 있다. 4년 8개월이라는 기간은 어떻게 봐도 절대 짧지 않으며, 그동안 게임에 대한 소감이나 평가의 기준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는 곧 얼리 액세스 기간 동안 각종 패치와 업데이트를 꾸준히 따라왔던 이들과 정식 출시 이후 게임을 처음 플레이한 이들 사이의 간극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간극의 여지를 어떤 식으로 극복해 나갈지 역시 하나의 관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화면의 변화가 극심한데다가 번쩍임도 상당하다. 광과민성 증후군 오기 딱 좋은 환경.
▶ 4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간극이 발생하기엔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 완벽에 가까운 ‘처방전’
<리듬 닥터>는 큰 흠을 찾기 힘든, 단언컨대 완벽에 가까운 리듬 게임이다. 리듬으로 심장 박동을 교정해 환자를 치료한다는 설정은 참신하고, 온갖 교란과 방해를 뚫고 박자를 유지하며 음악 연주를 무사히 마치는 게임 플레이는 그 재미가 상당하다. 여기에 정박에 충실한 게임 디자인과 다양한 연주 기믹으로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는 한편 짧지만 충분한 개성과 감동을 선사하는 캐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다양한 미니 게임과 콜라보로 게임의 완성도를 더 끌어올린다.
그나마 광과민성 증후군에 취약하고 얼리 액세스 기간이 길었으며 정식 사운드트랙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이걸 굳이 단점으로 내세우기에는 아무래도 좀 모자라 보인다.
장르마다 소위 '머스트 플레이'라 불리는 반드시 플레이해 봐야 할 게임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롤플레잉에는 올해 출시된 <클레르 옵스퀴르 : 33 원정대>, 덱빌딩에는 <슬레이 더 스파이어>, 액션 로그라이크에는 <아이작의 번제>이나 <하데스> 시리즈 같은 게임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리듬 닥터>는 이런 반드시 플레이해 봐야 할 게임의 반열에 오를 자격을 충분히 갖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리듬 게임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혹은 리듬 게임을 선호하거나 나아가 리듬 게임에 대해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내고 싶은 이들이라면, <리듬 닥터>만큼은 무조건 플레이해 보기를 바란다.

- 원활한 연주를 방해하면서도 눈에 확 띄는 강렬한 연출
-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압축되어 전달되는 캐릭터와 스토리
- 각종 콜라보와 미니 게임, 레벨 에디터 등 풍부한 컨텐츠
- 기나긴 얼리 액세스 기간으로 인한 간극
쿠타르크 (블로거)
2014년부터 10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