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잇 다이> 시리즈는 태생부터 B급, 이른바 ‘쌈마이함’을 미학으로 삼아왔다. B급 감성의 거장 스다 고이치의 손끝에서 시작된 이 시리즈는 <데스버스 렛 잇 다이>를 지나 본작 <렛 잇 다이 인페르노>에 이르기까지 그 독보적인 테이스트를 고수하고 있다.
미리 일러두자면, 이 ‘쌈마이함’은 결코 조롱이나 비하의 표현이 아니다. 어설픈 완성도는 그저 실패작일 뿐이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의도된 저급함이자 이를 세련되게 비틀어낸 아이러니에 가깝기 때문이다. 개발진은 이 키치한 감성을 다루는 법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상식을 벗어난 파격으로 실소를 자아내거나, 인간의 저열한 욕망을 뻔뻔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전시하는 데 탁월하다.
문제는 그들이 ‘잘하는 것’에만 지나치게 몰두했다는 점이다. 그 탓에 정작 게임으로서 ‘잘해야만 하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전자가 시리즈의 정체성이라면, 후자는 게임 디자인의 본질이다.

# 때깔은 확실했다
재차 강조하지만, 슈퍼트릭스 게임즈는 이른바 ‘쌈마이함’의 미학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들이 빚어낸 표현들은 기괴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시선을 뗄 수 없는 흡입력을 가진다.
먼저 세계관을 보자. 게임은 주인공, 즉 플레이어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다. 무대는 ‘지옥’. 되살아난 주인공은 ‘레이더’가 되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신의 눈’을 찾아 심연으로 내려간다. 현대 일본의 풍경을 뒤틀어 만든 이 지옥도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눈과 입이 덕지덕지 붙은 상자 괴물, 가시 바퀴를 흉기처럼 휘두르는 오토바이, 여학생과 조류를 끔찍하게 합성한 괴조 등 B급 크리쳐 무비에서 튀어나온 듯한 흉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 지옥에서 만나게 되는 기괴한 적들. 하나같이 B급 크리쳐 영화에서 나올 것처럼 생겼다.
이 같은 지옥 한복판으로 떨어진 레이더의 역할은 유용한 자원인 ‘스피리튬’을 수집해 복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 아닌 것들이 존재하는 이 심연 속에 이들을 보호할 도덕과 규칙이 어디 있겠는가. 같은 레이더라고 한들 마주치는 이들은 모두 적이고, 이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죽거나 혹은 죽이는 것 뿐이다. 게임의 제목이 ‘렛 잇 다이(Let it die)’인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여기서 질문. 지옥에서 죽으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개발진의 파격적인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레이더가 죽으면 몸에서 척추가 로켓처럼 하늘로 발사되어 레이더들의 휴식처인 ‘아이언 파치’로 되돌아간다. 회수한 척추에 지금까지의 기억과 기록을 저장하고(당연히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새로운 몸에 끼워 레이더들을 되살리는 것이다.
▶ 사망 시 이렇게 척추만 툭 튀어나와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아이언 파치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의 모습도 범상치 않다. ‘모후쿠(일본의 전통 상복)’과 서양식 정장 사이 어딘가에 있는 복장에 전혀 맞지 않게 전신에 문신을 새기고 있지를 않나, 백발의 할머니는 하얀색 의수에 화려한 패턴의 옷차림을 하고 있지 않나……. “나 키치해요!”라고 온 몸으로 소리를 지르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개발진은 <렛 잇 다이 인페르노>에서 B급 감성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어디서도 맡아본 적 없는 이 진하고 불량한 향기야말로, 숱한 경쟁작들이 쏟아지는 익스트랙션 슈터 장르 시장에서 본작이 가진 가장 확실한 경쟁력일 것이다.
▶ 아이언 파치에서 만날 수 있는 주요 인물들. 하나 같이 비주얼이 강렬하다.
# 익스트랙션 슈터인가, 로그라이트 액션 게임인가?
<렛 잇 다이 인페르노>는 표면적으로 PvPvE 기반의 익스트랙션 슈터를 표방한다. 하지만 개발진은 굳이 ‘로그라이트 서바이벌 액션’이라는 수식어를 고집한다. 이 명칭의 괴리는 어디서 오는가? 해답은 게임의 메커니즘에 있다.
익스트랙션 슈터의 3요소는 경쟁, 약탈, 그리고 탈출이다. 타 플레이어 및 NPC와의 경쟁에서 생존하고, 획득한 물자를 외부로 반출하는 것. 이 기준으로만 본다면 본작은 익스트랙션 슈터의 문법에 충실하다.
▶ 잘 먹고 갑니다~ 야호!
하지만 시선을 돌려 로그라이트의 핵심인 ‘영구적 죽음’과 ‘무작위성’을 대입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놀랍게도 <렛 잇 다이 인페르노>는 이 두 장르의 공식을 교묘하게 겹쳐놓았다.
우선 플레이어는 지옥행을 위해 사용할 ‘바디’를 선택한다. 고유 스탯과 스킬을 지닌 이 신체는 일종의 클래스 역할을 하며, 사망 시 세이프 박스(일명 ‘빤스’)를 제외한 모든 소지품을 소실하는 페널티를 안고 있다. 대신 반복 플레이로 획득한 마스터리 포인트로 영구적인 스탯 강화를 도모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로그라이트의 성장 문법이다.
▶ 마스터리 포인트를 투자해 바디의 영구적인 능력치를 높일 수 있다.
다만 탈출의 방식과 보상에서 다른 익스트랙션 슈터 게임과의 차별점이 드러난다. 탈출구를 찾으면 자유롭게 탈출할 수 있는 다른 게임과 달리, <렛 잇 다이 인페르노>에선 라운드마다 반드시 수행해야 할 목표가 있고 이 목표를 달성해야 탈출구 사용이 가능하다. 뒤로 갈수록 해당 라운드에서 등장하는 아이템의 등급이 높아지는 대신 적들은 강력해지고 목표의 난이도도 높아진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다.
목표를 달성해서 생환에 성공하면 해당 라운드에서 얻은 아이템 외에 ‘코어’라는 새로운 장비를 얻게 된다. 코어는 매 라운드당 하나씩만 얻을 수 있고, 방어와 공격, 유틸리티에 특화된 세 개의 코어 중 하나를 선택해 장착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얻는 능력치의 수치도 크지만, 일부 벽을 오른다거나 ‘스텝(회피)’ 횟수를 늘리는 등 게임 플레이에 변주를 주는 효과도 얻을 수 있기에 그 가치가 결코 적지 않다.
바로 이 부분에서 게임의 로그라이트적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무작위 옵션을 가진 코어를 선택해 빌드를 다져나가고, 사망 시 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기존 익스트랙션 슈터 게임과는 다른 <렛 잇 다이 인페르노>만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 무작위 옵션을 가진 코어를 장착해 빌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익스트랙션 슈터에 로그라이크 요소를 결합한 독특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 ‘잘해야 했던 것’의 부재
장르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보자. <렛 잇 다이 인페르노>는 슈터보다는 액션 게임에 가깝다. 3인칭 시점에서 근접 무기로 투닥거리는 공방이 주가 되니, 개발진의 주장대로 ‘서바이벌 액션’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액션 게임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아쉬운 부분들이 눈에 밟힌다. 유저가 액션 장르에 기대하는 기본기와 실제 게임 디자인 사이에 꽤 큰 괴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투 시스템은 <다크 소울> 시리즈와 흡사하다. 양손에 무기를 들고, (PC 기준) 좌클릭으로 왼손, 우클릭으로 오른손 무기를 사용한다. 방어자는 회피나 가드로 대응하고, 공격자는 가드 브레이크로 빈틈을 노린다. 즉, 심리전이 전투의 기본 골자다.
▶ 화톳불 나오는 게임이 생각나는 익숙한 장비 시스템
그런데 이 게임, <다크 소울>과 달리 ‘락온’ 기능이 없다.캐릭터가 적의 움직임을 자동으로 추적하지 않는다. 개발진은 의도적인 배제라고 밝혔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선택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락온의 부재에서 오는 불편함과 불쾌함이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조작감 문제도 한몫한다. 캐릭터의 움직임은 타 게임에 비해 느리고 둔탁하다. 마우스를 사용함에도 시점 이동은 답답하고, 동작 하나하나에 긴 딜레이가 걸려 있다. 이 특유의 무거운 조작감에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기 밸런스 문제도 여기서 파생된다. 온갖 기상천외한 무기가 등장하지만, 락온이 없다 보니 찌르는 무기는 공격 범위가 좁아 움직이는 적을 맞추기가 고역이다. 반면 횡으로 넓게 휘두르는 무기는 대충 던져도 잘 맞는다. 시스템의 결핍이 무기 간 격차를 만든 셈이다.
▶ 원래는 긴 사거리로 찌르는 무기인데, 가드 브레이크로 휘두를 때 성능이 훨씬 좋다.
필살기 격인 ‘데스 블로우’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레이지 게이지라는 별도 자원을 소모함에도 연출이나 성능이 기대 이하다. 대미지가 압도적이지도, 판정이 우수하지도 않아서 운이 나쁘면 일반 공격 한 방에 맥없이 캔슬되기 일쑤다.
시스템 측면에서도 우리의 기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익스트랙션 장르의 핵심은 빠르고 직관적인 파밍 아닌가. 헌데 이 게임의 인벤토리엔 커서 기능이 없다. 마우스가 있는데도 방향키로 칸을 하나하나 옮겨가며 아이템을 선택해야 한다. 이 과정은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다.
▶ 방향키로 일일이 선택 상자를 옮겨서 아이템을 고르고, 거기서 또 스토리지로 옮기기 버튼을 누르고... (답답)
마지막으로 라운드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다. 3번째 라운드(마스터리 랭크 3)에 진입하면 난이도가 수직 상승한다. 마스터리 포인트로 충분히 성장한 뒤 도전하라는 의도 같은데, 정작 게임은 파밍을 위한 ‘반복 숙달’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특정 라운드를 선택해 진입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2라운드를 깼다면 무조건 3라운드에 도전해야 한다.
충분한 성장을 위해 잠시 쉬어갈 구간을 마련해주거나, 진행을 막을 거면 납득할 명분이라도 있었어야 했다. <렛 잇 다이 인페르노>는 어느 쪽으로도 제대로 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 3번째 라운드부터는 난이도가 정말 급격하게 올라간다. 나름 높은 등급 아이템으로 무장했는데, 공격 몇 대 맞았다고 체력이 저렇게 깎인다.
# B급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며
이 게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때깔은 끝내주지만 속은 다소 아쉬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쌈마이함’의 극치에 다다른 강렬한 비주얼을 게임의 완성도가 미처 따라가지 못한 모양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기자는 이런 B급 감성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에 더 큰 기대를 걸었고, 아쉬움 또한 더 짙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플레이하는 내내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키치함에 감탄하다가도, 곧바로 불편한 조작감에 탄식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으니 말이다. 그만큼 여운이 길게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못 만든 게임’과 ‘B급 감성 게임’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B급 명작들은 조악해 보이는 껍데기 속에 A급 이상의 치밀한 재미를 숨겨두곤 한다. 아쉽게도 지금의 <렛 잇 다이 인페르노>는 껍데기만 B급인 쪽에 가깝다.
물론 희망은 있다. 기자가 체험한 것은 출시 전 빌드이며, 개선의 여지는 남아있다. <렛 잇 다이 인페르노>는 누가 봐도 확실한 B급의 외형을 갖췄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에 걸맞은 ‘A급 재미’를 채워 넣는 일이다. 이 독보적인 개성이 그저 그런 괴작(怪作)으로 남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익스트랙션 슈터와 로그라이트 액션 게임의 독특한 장르적 결합
- 불친절하고 불편한 게임 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