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는 하나의 실험적인 문학입니다."
지스타 2025 현장에서 '게임의 내러티브'를 주제로 한 다양한 강연이 진행된 가운데, 게임 끈이 긴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만한 개발자가 찾아왔다. 타임지 선정 2019년 올해의 게임으로까지 선정된 <디스코 엘리시움>의 작가 '로버트 크루비츠'와 2024년 전 세게의 찬사를 받은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의 작가 제니퍼 스베드버그-옌이 지스타에 찾아와 대담을 나눈 것이다. 특히, 로버트 크루비츠는 날카로울 것이라는 인상과 달리 마치 <디스코 엘리시움>의 주인공 '해리 드-부아'처럼 적극적으로 농담을 하며 좌중을 폭소케 만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생각하는 게임의 스토리는 무엇일까. 어떤 것이 좋은 스토리고, 좋은 스토리를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강연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했다.

먼저, 두 사람이 생각하는 RPG는 무엇일까. RPG라는 장르는 다른 게임 장르보다 스토리를 담기 좋은 그릇일까? 로버트 크루비츠는 RPG의 본질 자체가 실험적인 문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RPG의 원류는 테이블탑 게임 <던전 앤 드래곤>이라 볼 수 있고, <던전 앤 드래곤>은 던전 마스터와 참여자들이 연기하며 하나의 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발전시켜, 문학에서 시도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실험이 펼쳐지고 있는 곳이 바로 RPG다.
제니퍼 스베드버그-옌 또한 이에 동의했다. RPG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플레이어는 RPG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때로는 선택하며, 게임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렇기에 구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조가 잘 짜여야 다양한 변형을 시도하기 좋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한 서사와 달리 플레이어가 여러 방법으로 스토리를 체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령 <33 원정대>는 거시적으로 보면 1막, 2막, 3막과 같은 형식으로 스토리가 나뉘지만, 여기서 플레이어는 전투를 하기도 하고, 조금 정적인 상황에서 탐험을 진행하기도 하며, 등장인물간의 대화를 보기도 한다. 이런 미시적인 차원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내러티브를 어떻게 극대화할지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게임의 스토리는 일방향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유저와의 티키타카를 통해 만들어진다. 물론, 그렇기에 더욱 쉽지 않다. 플레이어마다 생각이 다르며, 행동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크루비츠는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일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좋은 내러티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것이 힘들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성가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스트리밍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조금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약간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가령,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폐교회에서 디스코를 틀려고 하는 아이들과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주인공이 경찰이다 보니 그런 이유로 플레이어가 체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체포하면 게임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으로 연결이 안 됩니다. 농담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런 이 바보들!'이라는 생각도 하고 그랬네요(웃음)."

제니퍼 스베드버그-옌은 그렇기에, 좋은 내러티브는 플레이어와 '악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생각합니다. 스포일러일 수도 있지만, <33 원정대>는 멀티 엔딩입니다. 선택해야 하죠. 하지만 그 외에도 플레어어가 스토리에 관여하는 더 광범위한 방식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악수하기’라고 생각합니다. 개발자가 손을 내밀고, 플레이어가 이 손을 잡아야만 함꼐 악수를 할 수 있죠.
자신만의 관점과 가치관을 가진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동료들과 여정을 떠나고, 각각의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며 그 캐릭터의 관점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겁니다. 과연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옳은 행동은 무엇일까요? 쉽지 않습니다.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았죠.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플레이어가 일종의 관여자가 되도록 합니다.
플레이어는 이야기를 만들고, 선택하고, 이 결말이 자신에게 있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게임과 엮이게 됩니다. 스포일러는 죄송하지만, <33 원정대>에는 해피 엔딩이 없습니다. 각 결말 모두 댓가가 있으며, 쓰라립니다. 그리고 저희는 질문하죠. 올바른 길은 과연 무엇이냐고. 저는 이것이 개발자와 플레이어의 ‘악수하기’라고 봅니다."

두 스토리 작가가 만들어낸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과 <33 원정대> 모두 깊이 있는 스토리를 선보였다. 좋은 스토리는, 어떻게 보면 작가가 살아오며 느낀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제니퍼 스베드버그-옌은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SF와 판타지를 정말 좋아해서, 판타지 세계관에서 판타지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죠. 하지만,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판타지 속에서 인간성을 찾고, 현실감을 찾는 것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관찰한 것을 반영하고, 여러 윤리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반영하려 합니다. 이것이 스토리가 살아 있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의 경험에서 나온 진실된 것이기에, 사람들이 현실감을 느끼고, 삶의 괴로움에 바탕을 두었기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말이 있죠. 글쓰기를 좋아하고 업이여서, 즐겁게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글쓰기는 좋아하고 업으로 삼지만, 아주 괴로워하면서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후자입니다. 아이를 낳는 듯한 고통이라 할까요. 그래도 사랑하는 일이고, 많은 고통이 따르지만, 뒤를 돌아 우리가 창조한 것을 바라보면, 이런 이야기들은 고립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창조하는 예술과, 그 예술을 관찰하는 관객이 같이 존재합니다. 그 교차점이 정말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33 원정대>가 개발되던 한창은 코로나 기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게임의 스토리의 많은 부분이 현실에서 얻은 아이디어에서 반영됐다. 사람들이 코로나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원인을 이해하거나 대응하기 어려운 죽음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서로가 어떻게 현실과 싸워나가는가, 어떻게 서로가 돕는가, 두려워한다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등에 대한 관찰의 경험이 게임에 반영됐고, 사람을 죽이는 화가에 대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

좋은 스토리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로버트 크루비츠는 <폴아웃>의 개발자 팀 케인의 말을 인용했다. 먼저 세계관과 스토리가 만들어져야, 그 다음으로 시스템이 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발자라도 대본을 보아야, 게임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상상하며, 이를 시스템으로 옮길 수 있다.
제니퍼 스베드버그-옌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로 '계획은 쓸모 없지만 계획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는 것이 있습니다"라며, 선형적인 개발이 아닌 병렬적인 개발이 중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게임에 120만 자가 넘어가는 텍스트가 삽입된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에 대해 질문하자 로버트 크루비츠는 웃으며 "사실, 저도 제가 왜 그랬나라는 생각이 있다. 제가 이런 텍스트 분량을 측정하는 단위는 성경이다. 구약과 신약을 합치면 80만 단어인데, <디스코 엘리시움>은 1.5 성경 분량이 들어갔다. 특히 게임 스트리밍을 보며, 전투 장면임에도 수많은 텍스트만이 나오는 모습을 보며 더욱 그렇게 느끼기도 했다. 아마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라며 웃었다.
더불어 로버트 크루비츠는 <디스코 엘리시움>에서는, 연극 무대에서 연출가가 배우에게 연기를 위한 코칭이나 지시를 하듯이, 게임 안에서 여러 요소를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감정과 같은 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33 원정대>는 스토리 요소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컷신, 음악, 캐릭터의 표정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다른 방식들이 있다. 제니퍼 스베드버그-옌은 <스트레이>나 <에디스 핀치의 유산> 같은 게임을 이야기하며, 텍스트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디스코 엘리시움> 또한 그 반대로, 오히려 수많은 텍스트를 통해 스토리를 전했기에 이 또한 훌륭하다고 말했다. 즉, 게임이라는 수단에서 스토리나 내러티브를 전할 수 있는 수단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은 혼자서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 개발의 무서운 점은, 실패한다면 혼자만의 실패가 아니란 것이다. 게임 개발은 수많은 개발자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다. 도전을 위해서는 남을 설득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계속해서 소통하고, 때로는 타인의 아이디어를 수용해야 할 때도 있다. 때로는 해당 분야 전문가나 담당자의 의견을 존중해줄 필요도 있다.

제니퍼 스베드버그-옌은 특히, 누군가 우려를 표한다면, 중요한 것은 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다고 전했다. 다른 사람의 말 뒤에 있는 우려의 배경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 "게임 스토리를 쓰며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는가?"고 묻자 로버트 크루비츠는 웃으며 "답변하기 정말 힘든 주제다. 만들고 나서의 이야기긴 하지만, 구글에 검색하길 바란다. AI 검색 봇에게 물어봐도 좋다! 다 나온다!"라고 답했다.

그러면 정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 좋은 스토리란 무엇일까? 로버트 크루비츠는 '캐릭터'라고 답했다. 좋은 스토리에는 반드시 좋은 캐릭터가 있다는 것이다. 제니퍼 스베드버그-옌 역시 동의하며, 좋은 이야기를 가진 수많은 미디어나 창작물을 보면 결국에는 캐릭터가 있다고 전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관계이듯이, 우리가 스토리를 통해 관계를 맺는 대상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캐릭터는 플레이어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자 창이다.
마지막으로, 게임적 혹은 서사적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묻자 두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로버트 크루비츠) 저라면, 아주 우울한, 아주 부정적인, 아주 어두운,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극한의 어두움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얼마만큼 바닥으로 갈 수 있고, 얼마나 기분이 나빠질 수 있고, 최대한 망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것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해 보고 싶네요(웃음)."
"(제니퍼 스베드버그-옌) 저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더욱 깊은 내면에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보고 싶네요. 보통 자신의 행복에 대해 말하면, 자신의 성공 등과 같은 것을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타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되도록,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