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아버지, 호리이 유지가 한국을 찾았다. 이번 지스타 2025 컨퍼런스의 강연자로 참석한 그는 이 자리에서 ‘<드래곤 퀘스트>의 창조와 유산’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해당 강연에서 그는 1986년 첫 작품의 탄생 비화부터 최신 리메이크작은 물론, AI를 활용한 신작 구상까지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철학을 공유했다.
호리이 유지는 최근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소수장(旭日小綬章)’을 수상했다. 욱일소수장은 국가 혹은 공공에 대한 공로가 있는 자 중에 공적 내용에 주목하여 현저한 공적을 올린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이번 수상은 일본 게임 개발자 중 최초다. 이에 대해 호리이 유지는 “과거 게임은 ‘게임을 하면 좋지 않다’는 등 세간의 차가운 시선을 받았는데, 이제는 게임 디자이너로서 국가로부터 표창을 받게 되어 감개무량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 <드래곤 퀘스트>의 아버지 호리이 유지
# 일본의 국민 게임 <드래곤 퀘스트>의 탄생
<드래곤 퀘스트>의 역사는 1986년 1편의 출시와 함께 시작됐다. 당시는 롤플레잉 게임이 PC로만 즐길 수 있는 성인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였다. 당시 호리이 유지는 액션 게임이 주를 이뤘던 닌텐도의 가정용 게임기 ‘패미콤’에 롤플레일 게임을 출시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고, 64KB라는 지극히 한정된 용량 안에서 텍스트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다.
호리이 유지의 독창적인 철학은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드러났다. 본래 만화가를 꿈꾸었던 그는 작가와 독자 사이의 소통이 일방향적이었던 만화와는 다른 컴퓨터의 상호작용성에 매료됐다. 당시 유행했던 <위저드리>, <울티마> 같은 서양 RPG들은 플레이어의 자유도가 높은 대신 그만큼 게임이 복잡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그는 “스토리라는 레일”을 따라 가게 설정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RPG를 꿈꾸었다. 이 같은 철학이 반영된 결과가 바로 <드래곤 퀘스트>였다.
► 80년대 PC로 출시된 서양의 RPG <울티마> 시리즈. 사진은 <울티마 4: 아바타의 길>
►비슷한 시기 닌텐도의 패미콤으로 출시되어 이후 일본의 RPG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드래곤 퀘스트>
천부적인 스토리텔러였던 그는 플레이어가 게임 속 주인공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캐릭터의 이름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설정해 플레이어가 자신의 이름을 넣을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늘 보기만 했던 TV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고 게임 속 인물들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 특별한 상황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당대의 모든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1986년 1편을 시작으로 <드래곤 퀘스트> 발매되는 족족 흥행에 성공했고, 1988년 출시된 3편에 이르러서는 시리즈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게임을 구매하기 위해 게임샵마다 장사진이 펼쳐졌고, 전국에서는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사회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3편의 흥행 이후, 후속작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도 높아지면서 호리이 유지는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다. 이때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여러 캐릭터들의 삶을 그려내는 ‘장(章)별 구성’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이야기는 잊어도 ‘아리나’나 ‘라이안’ 같은 캐릭터는 기억한다”며, “캐릭터가 곧 게임의 생명”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전했다.
► <드래곤 퀘스트 3> 구매를 위해 장사진을 이룬 현장의 모습.
# 71세 나이에도 여전히 “나는 게이머”
최근 이어지는 HD-2D 리메이크 작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드래곤 퀘스트 3> 리메이크 이후 <드래곤 퀘스트> 1편의 리메이크를 작업하며, 단순한 이식이 아닌”시간이 지나며 미화된 유저들의 추억을 게임으로 재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특히 <드래곤 퀘스트 2> 리메이크에선 직접 엔딩의 시나리오를 집필했음을 밝히며 원작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71세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게이머로 활동하며 게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있는 그는 최근 AI와 VR 같은 최신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플레이어의 질문에 자연스럽게 답하는 AI 수사 파트너와 함께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의 게임 개발자 지망생들에게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는 누구나 걸작이지만, 이를 밖으로 꺼내 유형의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자신 역시 “처음에는 단 4개의 프로그래밍 명령어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처음부터 모든 것을 만들려 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 점차 세계를 넓혀가라"고 격려하며 강연을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