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맨>의 아버지. <바이오 하자드 2>, <로스트 플래닛>, <데드라이징>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남긴 '이나후네 케이지'가 한국에 왔다. 판교에서 진행된 콘솔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국내 개발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게임 업계에서 지켜야 할 마음가짐과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그의 세션은, 표면의 내용만 보면 나이 든 개발자의 훈계 같은 말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기자의 귀엔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IP 명성에만 의존하거나, 장르 유사성에서 시작해 일정 수준의 수익만 기대하는 수많은 '번트'에 대한 일종의 맹렬한 비판이었다. 그는 "오해가 있을까봐 말하자면, 시리즈나 IP를 이어가거나, 기존 유명 장르에서 약간의 변형만 가하는 형태의 게임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것만 있어선 안 된다는 뜻"이라며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한 개발자들이 이 씬에 많이 있어야 건강한 생태계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 연단에 선 이나후네 케이지
# 성공하겠다는 포부는 가지되, 성공에 취하지 마세요
게임 업계에서 보낸 시간만 38년. 1987년에 캡콤에 입사해 닌텐도 패미컴 시절부터 콘솔의 역사를 몸으로 겪어온 그는 히트 메이커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유명 개발자다.
이나후네 케이지는, 계속 변해가는 콘솔 시장 속에서 하드웨어는 점점 발달해 가고, 게임성도 복잡해져 가고 있지만, 변하지 않아야 하는, 변해선 안 되는 것도 있다고 본다고 운을 띄웠다.
게임을 만드는 모두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히트작을 내고 싶다는 그 마음은 언제나 중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내 게임을 플레이해줬으면 하는 그 마음을 숨길 필요도 없다는 것인데, 그는 지금의 나이와 연차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재밌는 점은 단순히 히트작을 만든다는 상상과 포부에 그치지 않고 "그 다음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수 차례 강조했다. 쉽게 말해, 성공을 꿈꾸되 성공의 달콤함에 안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히트작을 내면 성공한 건 맞겠지만, 자신에게 엄청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성공이 좋은 걸로만 보이나요? 좋긴 하죠. 불안한 상태론 성공할 수 없죠,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자신감엔 근거가 필요해요. 성공 체험도 그 근거가 되어줄 겁니다. 하지만 성공한 다음에 또 성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성공은 좋은 효과도 가져오지만, 부작용도 함께 주니까요."
"과거의 성공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그 당시의 방법에 집착하게 되고 수비적인 태도가 됩니다. 게임 씬에서 한 번 성공하고 끝난 분들 참 많지 않았나요. 속편까지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나요? 자기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대표작이 많은 데 자부심이 있습니다. <록맨>만 있는 게 아니라, <로스트 플래닛>, <귀무자>, <데드라이징> 등 많죠. 장르도 다양해요. 과거의 성공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기자의 인생 게임이자, 이나후네 케이지의 대표작 <록맨 X> 시리즈
# 성숙해진 업계지만 방어적 태도의 개발만으론 안 된다
그는 자신이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엔 <몬헌>류, <바하> 스타일, <록맨> 타입의 게임이랄 만한 강력한 레퍼런스도 많지 않던 시기라 말했다. 새로운 걸 만드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라는 것이다. 자신 또한 <록맨> 등 시리즈를 이어가기도 했지만, <바이오 하자드 2> 등 새로운 IP의 도전에 계속 발을 옮겼다는 설명이다.
그에 비해 지금의 게임 업계는 너무 성숙해진 단계라서, 모두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성공 확률이 높은 걸 선택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만, 비즈니스적으론 틀린 말도 아니겠지만, 크리에이티브라는 관점에선 5년 후, 10년 후에도 이게 바람직한 것인가 계속 의문이 든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어 그는 한국게임 시장에도 5년 후, 10년 후에도 이미 성숙했던 분야인 모바일게임과 온라인게임만 있는 모습이 미래라면 그게 좋은 것인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며, 그렇기에 콘솔 시장도, 이번과 같은 컨퍼런스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출시 기종이나 플랫폼뿐만 아니라 게임의 내용물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어떤 시리즈의 11번째, 어떤 IP의 13번째 게임. 그 선택도 팬들을 위해, 비즈니스를 위해 필요할 수 있지만, 게임 개발의 본질과 창작의 열정을 생각하면 그게 게임 씬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나후네 케이지는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의 이도류(타자인 동시에 투수인 모습)를, 야구를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처음에 모두 비판했었다며, 메이저 리그에 진출할 때도 비슷한 비판이 이어졌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그는 안 될 것이라 비판만 하는 건 쉽지만, 야구든 게임이든 확률이 낮을지언정 해내는 사람은 꼭 있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창작, 적극적인 도전에 대한 열정을 잃지 말라는 당부였다.

이어진 Q&A 세션 중에도 인상적인 문답이 오갔다. 게입 업계 취업을 준비 중인 취준생이 던진, 콘솔 등장 초기부터 업계에서 오래 일하셨는데, 어떤 마음가짐과 기대를 가지고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이셨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나후네 케이지는 이런 답변을 남겼다.
"제가 취업했을 당시엔, 게임 업계는 그렇게 유망한 업계가 아니었어요. 게임 업계에 들어간다고 말하면, 왜? 바로 망할 것 같은데 가서 어떻게 할 건데 같은 말이 돌아오곤 했죠. 어떤 회사인가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이 뭘 하고 싶냐 입니다. 그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 건지 확실히 생각해보셔야 해요."
"내가 어떤 활약을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으면, 오히려 작은 회사 쪽이 좋을 수도 있어요. 저는 제 캐릭터 디자인을, 그림을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게임이 좋아서가 아니었는데, 어느새 게임이 좋아졌어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젊은이의 꿈이었는데 <록맨>으로 이뤘죠. 저로서는 올바른 길을 골랐다고 생각해요. 캡콤이라서 고른 게 아니었습니다. 질문을 주신 분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시 돌아보시면 답은 거기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