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랙션 슈터 장르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끝없는 PvP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장르 자체에 대한 관심마저 사그라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던 와중이었다.
바로 이 시점에 엠바크 스튜디오의 신작 <아크 레이더스>가 등장해,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돌풍을 일으켰다. 스팀 최고 동시 접속자 35만 명. 냉혹한 생존 경쟁과 상실의 공포에 지쳐가던 시장에서 거둔 성과이기에 더욱 의미심장한 대기록이다.
과연 무엇이 35만 명의 유저를 이 새로운 황무지로 불러 모았을까? 그 이유를 짚어봤다.

# 어려운 장르, 쉬운 게임
게임을 플레이해 본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아크 레이더스>는 쉽고 가벼운 익스트랙션 슈터로 포지셔닝에 성공했다. 리얼리티를 중시하거나 게임 플레이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 집중한 다른 익스트랙션 슈터 게임과 비교해 보면 이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몇 가지를 짚어보자면, 첫 번째는 넓은 시야각이다. 게임은 의도적으로 3인칭 숄더뷰 시점을 채택해 화면 내에 보이는 시야각을 넓혔다. 시야각이 넓어지면 화면 안에서 드러나는 정보의 양도 많아지고, 즉각적인 대응보다는 정보를 기반으로 한 전략의 중요성이 더 높아진다.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으나, 1인칭 시점보다는 3인칭 시점이 더 접근성이 좋다.
또한 게임은 눈에 띄는 보라빛 파티클 이펙트를 통해 피격되었음을 보여주고, 플레이어가 무력화됐을 때는 구명 신호탄을 하늘로 쏘아 올린다. 이 같은 장치들을 통해 교전의 경과를 멀리서도 다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여기서 오는 피드백이 확실하게 존재한다. 결국은 정보량의 차이가 교전의 승패를 가리기 마련이니까.
▶ 피격 시에는 보라색 파티클 이펙트가 터져 멀리서도 확실하게 파악이 가능하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중요한 정보다.
장비와 인벤토리에서도 게임의 높은 직관성이 잘 드러난다. <아크 레이더스>의 장비 시스템은 무척이나 간결하다. 일종의 가방 역할을 하는 증강물와 방어구인 실드, 무기 2자루가 전부다. 방탄모가 어디까지 보호하는지, 방탄조끼는 어떤 걸 입어야 하는지를 일일이 따질 필요가 없다. 무기 부착물 역시 그 종류가 많지 않아서 쉽게 이를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아크 레이더스>의 모든 아이템은 그 크기나 가치와 무관하게 모두 1칸의 인벤토리 슬롯을 차지한다. 교전에 활용할 수 있는 투척물이나 회복 수단 같은 도구들은 습득 시 빠른 사용 슬롯에 우선적으로 들어가기에 인벤토리 정리에 대한 부담이 적다.
정리하자면 <아크 레이더스>는 냉혹한 익스트랙션 슈터 장르에서 보기 드문, 입문자들에게 친화적인 게임이다.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익혀야 할 정보는 적고, 게임 내에서 주어지는 정보는 많다. 장르의 특성상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부담은 존재하지만, 이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은 낮다는 것이다.
▶ 장비 시스템은 단순하고 모든 아이템은 동일하게 인벤토리 1칸만 차지한다.
#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작은 힘
알다시피 게임에 진입하는 것이 아무리 쉽다고 한들, 유저가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죽음과 이에 따르는 상실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이 너무 커서 선뜻 게임 시작을 누르지 못한다면 지금 같은 동시접속자를 기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크 레이더스>는 플레이를 이어가기에도 쉬운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아크 레이더스>의 인벤토리 슬롯의 수는 많지 않다. 어떤 증강물을 착용했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탐색을 이어가며 이것저것 줍다 보면 인벤토리는 금세 가득 차기 일쑤다. 이 상황에서 유저는 무리하게 ‘아크(게임 내 적대적 NPC)’ 또는 다른 유저와 교전하기보다는 빵빵해진 가방과 함께 복귀하는 길을 택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극단적인 ‘존버’ 플레이가 아닌 이상, 게임의 호흡은 짧고 동선은 간결하다.
▶ 탈출 후 체크할 수 있는 동선. 운이 좋다면 이렇게 극단적으로 짧은 동선으로도 탈출이 가능하다.
설령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들, 이에 대한 부담과 상실감은 적은 편이다. 게임의 마스코트이자 일종의 보험 장치인 ‘꼬꼬’의 존재 덕분이다. 매 게임이 끝날 때마다 게임 플레이에 비례해 추가 자원을 제공하는 꼬꼬의 존재로 인해 꼭 필요한 아이템 제작은 무리 없이 가능한 편이다.
자원 투입 없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무료 로드아웃’도 게임 플레이의 부담을 줄여주는 요소 중 하나다. 인벤토리 슬롯도 적고 안전 포켓도 없는 데다, 최하위 등급 무기 중 하나가 무작위로 지급되기에 적극적으로 교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잘 플레이한다면 큰 부담 없이 적당한 양의 재료를 수급해 올 수도 있다.
▶ 게임의 든든한 마스코트 '꼬꼬'
이렇게 발생한 무료 로드아웃 증강물은 상점에서 고급 등급의 증강물로 바꿀 수 있다. 해당 증강물이 같은 상점에서 약 2,000코인에 거래되는 점을 고려하면 ‘기적의 가성비’다. 개발자의 실수일까? 아니다. 오히려 생환에 성공한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계된 또 다른 안전장치인 셈이다.
얻었으면 더 얻고 싶고, 잃으면 되찾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 아닌가. <아크 레이더스>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여러 장치들로 디딤돌을 마련해준 뒤, 살짝 밀어주어 유저들이 다음 게임으로 과감히 뛰어들게끔 만든다. 개발진의 노련함에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다.
▶ 무료 로드아웃 증강물은 상점에서 상위 등급 증강물로 교환할 수 있다. 실수가 아닌 적극적인 플레이를 유도하는 영리한 설계 포인트다.
#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이렇게 게임에 뛰어든 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크와 레이더가 공존하는 지상 ‘러스트 벨트’다. 카세트 퓨처리즘 스타일로 꾸며진 인류 문명과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아크의 대비는 다른 익스트랙션 슈터 게임에선 볼 수 없던 영화적인 색감으로 그려졌다.
게임을 플레이해 보면 이 형형색색의 황무지를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게 된다. 걷고, 뛰고, 파쿠르로 벽을 넘고, 집라인을 타고 이동하는 등의 이동 관련 모션 외에도 3인칭으로 진행되는 건파이팅 교전을 위한 슬라이딩과 구르기 동작까지도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어진다. <더 파이널스>의 개발사다운 행보다.
이런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움직임은 로봇인 아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공식 블로그를 통해 밝혔듯, 이들은 머신러닝을 통해 아크들의 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드론들은 날개를 맞으면 방향을 잃고 마구 흔들리고, 여러 개의 다리로 겅중겅중 다가오는 ‘리퍼’는 지형의 굴곡에 따라 몸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사운드 역시 마찬가지다. 소리 역시 게임 플레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보인 만큼, 무엇 하나 허투루 다듬어진 것이 없다. 배경음 하나 없는 고요한 전장 위에서 들리는 총성과 아크들의 신호소리, 유저들의 발소리와 목소리는 공간감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엠바크의 악마 같은 디테일은 전투 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게임 속 아크와의 전투는 너무 부족하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다. ‘스니치’, ‘와스프’, ‘틱’ 같은 소형 아크들은 약하지만 때때로 껄끄럽고, ‘로켓티어’와 ‘바스티온’은 그 풍채에 걸맞게 어지간해선 안 건드는 편이 좋을 정도로 강력하다. 이 만만함과 위협적임 사이 어딘가에서 유저들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크의 역할인 셈이다.
▶ 풍채에 맞는 강력함을 자랑하는 아크 '리퍼'
건파이팅 경험은 무기의 등급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무료 로드아웃에서 얻을 수 있는 낮은 등급의 총은 각자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씩 있어 시원시원한 교전이 어렵다. 여기서 한 단계 위로 올라가면 무기의 성능이 급격하게 올라가지만, 그 이후부터는 성능의 상승도가 비교적 완만하게 체감된다. 리스크에 따르는 리턴은 확실하게 두되, 부담 없이 쓸만한 적당한 등급 안에서는 충분히 쾌적한 전투가 이뤄지게 하는 영리한 설계다.
가히 ‘디테일의 악마’라는 말이 아쉽지 않을 만큼 엠바크는 <아크 레이더스>의 모든 요소에서 섬세한 디테일을 자랑했다. 이 같은 디테일이 게임의 완성도를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평단과 유저, 마니아와 입문자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면 무기별 개성과 성능도 크게 달라진다.
# 독보적 자리 선점 성공, '최고점'일까 '시작점'일까
<아크 레이더스>는 쉽지만, 마냥 편한 게임은 아니다. 앞서 <아크 레이더스>는 쉬운 게임이라 구구절절 설명해 놓고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쉬운 것과 편한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
게임 내에는 대략 200개 가까이 되는 아이템이 존재하고, 이들의 쓰임새는 저마다 제각각이다. 아이템 설명에 이들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대략 설명되어 있긴 하지만, 퀘스트나 제작대 레벨업에 필요한 재료라는 점은 게임 내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행여 실수로라도 분해하거나 상점에 판매했다면 다시 황무지 위를 뛰어다녀야 한다.
여기에 더해 <아크 레이더스>는 프리셋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선택지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들고 입장할 수 있는 커스텀 로드아웃과 기본 세팅으로 시작하는 무료 로드아웃 뿐이다. 매 게임마다 일일이 아이템과 장비를 빈 슬롯에 채워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 어떤 아이템 제작에 쓰이는지는 알 수 있지만 퀘스트가 제작대 레벨업 재료인지는 표시해주지 않는다.
이 외에도 불편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몇 군데 있지만 이런 점들로 평가절하하기엔 게임의 퀄리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익스트랙션 슈터로 스팀 동시접속자 35만 명이라는 대기록은 괜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건은 앞으로의 여정이다. 높은 접근성과 낮은 부담으로 치열한 익스트랙션 슈터 장르 경쟁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선점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후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이번 성과가 최고점이 될지, 아니면 상승세의 시작점이 될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흥행세를 타고 찾아온 다양한 유저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시점이다. 관련 커뮤니티와 SNS에선 유저 거래를 도입해야 하는지, PvE 모드는 필요한지 등 온갖 주제로 토론이 펼쳐지고 있다. 이를 잘 경청하고 소통해서 기대해도 좋은 게임으로 계속 남기를 바란다.

-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만드는 탄탄한 안전장치
- 압도적인 완성도, 이를 살리는 악마적인 디테일
- 쉬워진 만큼 다소 낮아진 생존의 쾌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