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 2>(이하 VtMB2)는 분명히 아쉬운 게임이다. 액션, 롤플레잉, 어드벤처, 거의 모든 장르의 범주에서 수준에 미달한 상태로 세상에 나와버린 이 작품의 유일한 매력은, 오직 다분히 선형적인 이야기와 원작에서 따온 흥미로운 설정뿐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앞의 아쉬움을 더 크게 만들 뿐이다.
66,000원이라는 기본 가격 역시 다소 과하게 느껴진다. 당장 할 게임이 하나도 없고, 50% 할인된 33,000원이라면, 그리고 만약 당신이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의 팬이라면 고려해 볼만한 선택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짧은 설명은, 중간에 교체된 개발사의 역량 부족과 너무 길어진 개발 기간 탓에, 게임이 그저 틀만 갖춘 채 겨우 출시되었다는 것이다. 긴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이 게임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VtMB2>는 1991년 처음 출시되어 인기를 끈 테이블 탑 롤플레잉 게임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이하 VtM), 그 설정에 기반한 여러 비디오게임 중에서도 가장 흥행한 작품인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의 후속작이다.
<VtM>은 오늘날 이른바 어반 판타지라 불리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유행시킨 테이블 탑 게임이다. 많은 고전적인 롤플레잉 게임처럼 종이와 펜으로 이루어지는 이 스토리텔링 시스템에서, 플레이어는 저주받은 불멸자인 뱀파이어로서 현대를 살아가며, 결코 완전히 충족되지 못할 피를 향한 목마름, 그리고 그들에게 남은 일말의 인간성을 갉아먹는 내면의 야수에 저항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이 초자연적 존재들은 뱀파이어라는 통속적인 호칭보다 서로를 친족(kindred)이라 부르길 선호한다. 분명 인간보다 육체적으로 우월한 상위 포식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혹은 때때로, 한때는 인간이었던 뱀파이어)의 피를 초인적인 힘과 존재의 원천으로 한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의 존재를 필요로 하기도 하는 모순된 괴물들이다.
따라서 뱀파이어들은 풍부한 식량을 보장하는 인간의 도시에 숨어들어, 자신들의 존재를 교묘하게 숨긴 채 살아가는 것을 일종에 지켜야 할 관습으로 여기는데, 이를 가장무도회, 즉 ‘마스커레이드’라고 부른다.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라는 제목의 유래다.
1991년 출시 당시부터 흥미로운 설정과 게임플레이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 작품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TV쇼인 <킨드레드 디 임브레이스드>(1996)를 포함, 이후 이런저런 부침을 겪기는 했지만, 꾸준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식을 전해왔다.
2000년의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리뎀션>은 당대 유행하던 쿼터뷰 혹은 3인칭 시점의 컴퓨터 RPG로서, 12세기 프라하와 20세기 런던을 오가는 십자군 출신 뱀파이어와 그 동료들의 이야기를 다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바통을 이어받아 2004년 소스엔진으로 제작된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이하 VtMB)은 당대에는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나, 이후 꾸준히 매니아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컬트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다.
▶ 2004년 출시된 첫 작품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
비록 엉성한 전투 메카닉과 수두룩한 버그는 혹평받았지만, 뱀파이어의 콘셉트에 충실한 다양한 대화문과 문제 해결 선택지, 그리고 변화하는 서사, 다시 말해 ‘롤플레잉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만큼은 비평가들도 부정하지 않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제작사 트로이카 게임즈는 <폴아웃>의 개발사로 유명한 인터플레이 출신의 개발자들이 공동 설립한 RPG 전문의 스튜디오였고, 기술적으로는 무너져있는 게임 속에서도 그 저력이 빛을 발한 셈이었다. 일부에서는 이처럼 독특한 세계관의 몰입감에 빗대어, 이 게임을 액션 RPG가 아닌 이머시브 심으로 분류할 정도로, <VtMB>는 당대에 나름대로 비평적 의의가 있는 게임으로 남았다.
다만 안타깝게도 2004년, <하프 라이프 2>나 <메탈 기어 솔리드 3> 같은 쟁쟁한 경쟁작에 밀려 <VtMB>의 초기 판매량은 8만 장에 미달했다. 트로이카 게임즈는 게임 출시 불과 몇 달 만인 2005년 2월 문을 닫았고, 다음 해인 2006년, CCP 게임즈가 <VtM>의 판권사인 화이트 울프를 인수했다.
화이트 울프는 <VtM>의 상위 브랜드로서 마법사, 늑대인간 등 여러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하는 고딕 펑크 세계관, <월드 오브 다크니스>라는 IP를 가지고 있었는데, CCP는 이를 이용해 당연하게도 MMORPG를 제작하려 했다. 정확한 개발 기간이나 내부 사정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어쨌든 이 <월드 오브 다크니스> MMORPG 프로젝트는 2014년 공식적으로 취소됐다.
2015년, 화이트 울프와 그 IP는 다시 <크루세이더 킹즈>와 <유로파> 시리즈의 개발 및 유통사로 널리 알려진 (그리고 DLC 팔이로 악명 높은)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에 매각됐다. 이때는 이미 출시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나, <VtMB>는 하나의 컬트 클래식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IP 인수로부터 얼마 뒤, 시애틀 기반의 개발사인 하드수트 랩스가 패러독스를 방문해 <VtMB>의 후속작을 피칭했다.
2004년 원작의 작가를 영입해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구성했고, 확률에 기반한 고전 RPG식 전투가 아닌, <디스아너드>에서 영감받은 빠르고 즉각적인 일인칭 전투로 선회했다. 패러독스의 경영진은 이 피칭을 마음에 들어 했고 그렇게 <VtMB2>의 개발은 시작됐다.
2019년 3월, 전작의 출시로부터 15년 만에 <VtMB2>는 인상적인 발표 트레일러와 함께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고, 같은 해 E3에서는 20분짜리 게임플레이 영상도 공개됐다. 발표된 출시일은 2020년 1분기였다. 물론, <사이버펑크 2077> 이후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게임플레이 트레일러’가 실제 게임플레이를 촬영한 것이 아니라 게임플레이처럼 만들어진 홍보용 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런데도, 2019년 E3에서 공개된 <VtMB2>의 게임플레이는 2004년의 ‘이머시브 심’ <VtMB>를 상당 부분 계승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많은 게이머들의 기대 속에서, 작품의 출시일은 돌연 2020년 7월로, 그리고 다시 2021년으로 연기됐다. 그러더니 패러독스는 갑자기, 게임의 개발사였던 하드수트 랩스가 더 이상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내부 사정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혹자는 이를 게임에 참여한 작가 중 하나였던 크리스 아벨론의 성폭력 무고 사건과 연관 짓기도 한다.
아벨론은 2020년 6월 복수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됐고, 참여하던 대부분의 작품에서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하차했다. 몇 년 뒤인 2023년, 이 사건은 재판에서 무고로 결론 났고, 재판부는 문제 제기자들로 하여금 아벨론에게 한화로 10억 원이 넘는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지만, 이때는 이미 대부분의 개발사가 그의 작업을 게임에서 제거한 뒤였다.
패러독스가 공식적으로 <VtMB2>에서 아벨론의 작업을 들어내긴 했지만, 그것이 개발 연기에 더불어 개발사 교체라는 극적인 선택까지 이어질 이유에 해당하는가는 불분명하다. 확실한 것은 2021년부터 <VtMB2>의 개발을 맡은 것은 <디어 에스더>(2012)의 개발사로 유명한 더 차이니즈 룸(이하 TCR)이었고,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게임의 대부분을 거의 바닥부터 다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 더 차이니즈 룸의 대표작 <디어 에스더>. 이미지에 배경만 덩그러니 있는 이유는 이들의 게임이 '워킹 시뮬레이터'이기 때문이다.
패러독스 경영진의 인터뷰에 따르면, 하드수트 랩스는 이처럼 큰 규모의 작품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고,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딱히 숨기지도 않았다. 그에 비하면 TCR은 경험 많고 안정적인 개발사로서, 더 자신감 있게 작품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최대한 해석해 보자면, 출시를 앞둔 2019년 말까지도 하드수트 랩스는 게임을 원래 기획하던 수준의 규모까지 만들어내지 못했던 듯하다. 실제로 2019년 공개된 게임플레이 트레일러는 게임 속 세계의 아주 일부만 보여주고 있으며, 플레이어가 돌아다닐 수 있는 게임 속 시애틀이 얼마나 넓은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묘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하드수트 랩스는 ‘납기일’을 맞추는 데에 실패했을 수 있다.
반면 TCR은 이른바 ‘워킹 시뮬레이터’ 전문의 중소 규모 스튜디오다. <디어 에스더>부터 시작해 <에브리바디스 곤 투 더 랩쳐>(2015), <스틸 웨이크스 더 딥>(2024)에 이르기까지, 크고 체계적(systemic)인 게임보다는 작고 선형적이지만 고품질의 경험으로 인정받는 게임들을 주로 제작해 왔다.
만약 패러독스가 이 프로젝트를 완전히 엎는 대신, 추가로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어떻게든 ‘완성’, IP의 충실한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팔아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TCR은 일종의 소방수로서 적임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2021년 인터뷰에서 패러독스는, 프로젝트를 완전히 취소하는 것까지 고려했지만, 다른 스튜디오로부터 ‘충분히 설득력 있는(persuasive enough)’ 피치를 받아 프로젝트를 계속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아무튼 그렇게, 2015년부터 시작된 컬트 클래식의 야심 찬 후속작 프로젝트였던 <VtMB2>는 어영부영 계속 만들어지게 됐다. 애초의 기획과 야망에서는 다소 떨어져, 적절히 작고 적당히 완성된 게임으로 향해서.
▶ 지금의 모습이 나오기까지 아득히 긴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쳤다.
# 뱀파이어 더 허우적거리기
2019년 공개된 하드수트 랩스의 버전에 따르면 플레이어는 원래 ‘씬-블러드’, 뱀파이어의 피가 옅은 신참 흡혈귀로서 시애틀의 밤을 누비게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5년 출시된 TCR 버전의 <VtMB2>에서, 플레이어는 수백살 더 먹은 엘더 뱀파이어의 역할을 맡는다.
이 세계에서 뱀파이어는 체내의 피가 부족해지면 죽는 대신(이미 한 번 죽었으므로) 깊은 수면(torpor)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게임은 주인공인 엘더 뱀파이어 ‘파이어(Phyre)’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걸 밝히지 않는다. 파이어라는 이름조차도 그가 깨어나서 처음 본 밴드 공연 포스터에서 따온, 몇 번째일지 모를 가명이다.
다만 그는 손등에 이상한 표식이 찍힌 채 모든 힘을 봉인 당한 상태로, 2024년의 시애틀에서 갑자기 깨어난다. 그가 왜 여기 있는지, 그의 힘을 봉인한 것은 도대체 누구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전적이지만 탄탄한 궁금증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깨어나 처음 마주친, 무방비 상태의 경비의 피를 빨아먹고 기력을 회복한 파이어는 곧 저항하는 다른 경비와 맞닥뜨린다.
플레이어는 손쉽게 일반 공격 버튼을 누르고, 경비는 마치 차에 부딪힌 것처럼 빠르게 날아가 문에 크나큰 혈흔을 남긴다. 말하자면 이때까지가 적어도 전투에 있어서는 이 게임 최고의 순간이다. 곧 파이어는 주인 없는 구울―살아있는 상태로 뱀파이어의 피를 주입당해 그 하수인이 된 인간―들을 맞이하고, 본격적인 전투 튜토리얼이 시작되면, 어안이 벙벙해지는 경험이 열린다.

▶ 환상이 무너지는 바로 그 순간
<VtMB2>의 근접 전투는 그야말로 ‘허우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엉성하다. 공격 버튼을 누르면 캐릭터는 양팔을 열심히 휘두르고 ‘툭’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적의 피가 줄어든다. 최소한 공격이 적에게 닿았다면 말이다. 대부분의 근접 공격은 엄청나게 짧은 사거리를 자랑하며 적들은 언제나 돌진(이라기보다는 거의 문워크에 가까운 부자연스러운 전진을)하면서 공격해 온다.
유일한 방어 기제는 대시형의 회피인데, 이동 거리가 제법 길어서 한번 후방이나 측면으로 회피하고 나서 적을 때리려면 다시 적의 사거리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물론 일반 공격에도 약간의 바리에이션이 있기는 하다. 측면 회피 이후에 공격하면 옆으로 발차기하고, 후방 회피 이후에 공격 버튼을 누르면 앞으로 발차기한다. 물론 대부분의 적은 이조차도 잘 맞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결과는 끊임없는 ‘허우적’과 일방적인 구타다. 적들의 일관된 경직 타이밍, 액션 게임에 으레 존재하는 록 온 이나 적을 추적하는 기본 공격, 그리고 간단한 방어 액션 정도만 있었어도 일인칭 근접 전투가 이처럼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발진은 전투의 흐름에 대해서도 그다지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원작
그러나 이 기술을 쓸 수 있는 것은 한 전투당 많아야 한두 번이 전부다. 피 점수를 회복하려면 당연히 흡혈해야 하는데, 전투 중에 흡혈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 체력이 소진된 적이 마무리 공격으로 흡혈 기회를 주기는 하지만, 시간이 멈추지도 플레이어가 무적이 되지도 않는다.
피 점수를 회복하고 체력을 채운답시고 적들 한가운데에서 흡혈했다간 실컷 두들겨 맞고 하늘을 보게 되는데, 피 점수가 없으면 능력을 쓰지 못하니 전투가 단조로워진다. 이는 등장하는 적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후반에 가면 더 심해지는 문제다.
결국 플레이어가 가장 크게 의존하게 될 능력은 바로 또 다른 기본 기술인 염동력이다. 말하자면 <하프 라이프 2>에 등장하는 중력건의 열화판인 이 능력은 멀리 있는 물체를 당기거나 부수는 퍼즐에도 활용되지만, 은신 중에 물건을 던져 적을 유인하거나 전투 중에 주변의 기물을 잡아서 던지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어찌 보면 가장 우스꽝스러운(그러나 그런데도 만족스러운) 것이 바로 총을 집어 드는 능력이다. TCR은 이 얕게 설계된 전투 시스템 아래에서 플레이어의 ‘손’에 총을 쥐여주면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사실이 들통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플레이어는 총을 직접 소유하고 손에 들고 쏠 수는 없지만, 적들은 총을 들고나와서 탄약 제한 없이 갈겨댄다. 다만, 쓰러지거나 넘어진 적이 바닥에 떨어트린 총을 염동력으로 들고 쏠 수 있는데, 비록 한 탄창을 다 쏜 뒤에는 ‘던질 수 있는 벽돌 1’로 전락하긴 하지만, 총알이 있을 때만큼은 아주 강력한 대화 수단이 된다.
주인공의 염동력 기술이 세심하지 못한지 끊어서 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한 탄창을 연이어 난사해 버리긴 하지만, 아무튼 총기는 플레이어의 에임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편이고 피해량도 제법 높아서, 던지면 터지는 가스통과 더불어 후반으로 갈수록 의지가 되는 든든한 오브젝트다.
이쯤에서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 과연 ‘파워 판타지’의 측면에서 옳은 선택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수백 살 먹은 엘더 뱀파이어의 주먹보다, 그가 무심히 집어 던지는 벽돌이 더 강력한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아무튼 게임 속 전투의 흐름은 대충, 피 점수가 허용하는 내에서 뱀파이어 능력 서너 개를 사용하고, 주위에 던질 수 있는 물건을 모두 찾아 염동력으로 마구 던진 뒤, 더 이상 집을 물건이 없어지면 적의 공격은 피해지고 내 공격은 우연히 맞기를 바라면서 측면 회피와 일반 공격을 반복하는 것이다.
정말 부정적으로 흥미롭게 들린다는 것은 둘째로 치고, 3D 일인칭 멀미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에게 이 게임을 추천하는 것은 거의 암살 시도에 가까운 일이라는 점도 짚어두어야겠다.
▶ 총을 굳이 손에 쥐고 쏘는 것은 나약한 인간들이나 하는 짓인가보다.
# 나만의 조금 작은 시애틀을 배경으로 한 미치광이 탐정의 활극
만약 탐험과 이동도 액션의 영역에 포함한다면, 이 게임에서 제법 만족스러운 것 중 하나는 바로 빌딩 사이를 점프와 활강으로 넘나드는 재미일 것이다. 시애틀의 아름다운 야경은 2019년 공개된 트레일러보다는 그래도 약간 진보했고, 이 게임이 5년 전에 출시되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불을 지핀다.
물론 빌딩을 오르는 과정이 다소 험난하다. 멀미와 싸우는 것은 둘째로 치고, 이 엘더 뱀파이어의 벽 타기 능력은 참으로 애매해서 외부로 노출된 파이프나 환풍구가 있어야만 5층짜리 벽돌 건물의 옥상을 넘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의도를 알 수 없는 디자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딱히 파쿠르나 플랫포밍 퍼즐이 있는 것도, 플레이어 캐릭터의 이동 능력을 제한해서 얻을 것도 없는데, 왜 굳이 이렇게 만든 것일까. 원작
그런 자연스러운 궁금증을 뒤로 하고, 지도를 펼치면 깨닫게 되는 것은 이 게임의 배경 공간이 얼마나 협소한가다. 보통 실존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 오픈 월드 게임들은 (물론, 이 게임은 그 어떤 기준에 따라서도 ‘오픈 월드 게임’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 세계가 진짜같이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과하게 커지지는 않도록(만들기도 힘들고, 다니기도 힘드니까) 적절한 축척을 채택하고 공간을 추상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VtMB2>는 전례 없는 시도를 했는데,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동(그것도 적절히 작은) 정도는 될까 싶은 크기의 지역 안에 시애틀의 랜드마크를 이것저것 구겨 넣었다. 이것은 말하자면 축척이라기보단 차라리 일종의 ‘축지’다. 걸음과 걸음 사이의 공간을 삭제하며 걷는 게 아니라면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공간을 게임은 배경으로 삼는다.
▶ 게임 속 시애틀은 도시라기엔 너무 작다. '읍' 정도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작은 세계를 누비는 일이 완전히 심심하지는 않은데,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또다른 뱀파이어, 파비앵 덕분이다. 프랑스식으로 파비‘앙’이던지, 아니면 완전히 미국식으로 ‘페이비언’ 하던지, 이런 애매한 번역명은 또 누구를 위한 건가 싶지만, 아무튼 파비앵은 불과 100살 밖에 안되는, 주인공에 비하면 어린 뱀파이어로, 직업은 탐정이다. 그리고 몸은 없다.
파비앵은 수면에서 깨어난 주인공의 몸에 깃든 유령, 혹은 정신의 형태로 플레이어에게 말을 걸어온다. 뱀파이어들은 태생에 따라 각자의 클랜, 혹은 핏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파비앵이 속한 말카비언 클랜은 정신 조작에 능한 미치광이 예언자들로서, 마치 고전적인 비극에서 광대가 수행하던 역할을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럽고 거북하지만 유용한 존재들이다. 특유의 통찰력으로 진실을 꿰뚫어보고 심지어는 미래를 예지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특유의 난잡한 언어와 독특한 사고 방식 때문에 친족들로부터 꺼려지곤 한다.
그러니까 말카비언 파비앵은 제법 우스운 말투를 구사하는 미치광이/천재 탐정이고,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게임 초반 주인공의 여정은 요약하자면, ① 누가 자신을 시애틀에 데려왔는지, ② 누가 그의 손에 표식을 남기고 능력을 봉인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③ 또 누가 그의 머릿속에 파비앵의 정신을 심었는지를 알아내는 과정이다.
2024년 현재와 파비앵이 처음 뱀파이어가 된 1924년의 과거를 오가며 시애틀을 탐험하고, 기억의 조각을 모아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일종의 흥미로운 탐정 수사물 같은 인상을 남기며 썩 즐길만한 경험을 구성해 낸다. 적어도 TCR은 워킹 시뮬레이터의 대부로서 본업에 해당하는 영역만큼은 놓지지 않고 지켜낸 셈이며, 아마도 이것이 패러독스가 TCR로부터 기대한 바일 것이다. 일종의 ‘비빌 언덕’이라고 해야할까.
▶ 게임 속 조력자로 등장하는 '파비앵'
# 이머시브 하려다 말았다 싶은 부분들
한편 <VtMB2>에는 이 게임이 최초에 ‘이머시브 심’으로 기획되었다는 증거, 내지는 그 잔재 같은 것들도 조금 남아서 플레이어를 불쾌하게 하는데, 바로 능력을 해금하는 방식이다.
플레이어는 최초에 주인공이 속한 클랜을 정할 수 있고, 이 클랜은 일반 공격의 형태부터 시작해 이후 배우게 되는 능력 4가지, 그리고 이들을 모두 배울 경우 최종적으로 가지게 되는 패시브 능력 하나를 결정한다. 패러독스는 이 얄팍하기 그지없는 클랜 시스템마저 DLC로 팔아먹으려다가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했는데, 돌이켜보면 이조차도 일종의 교란을 유도한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었나 싶다. 애초에 나쁜 놈으로 찍혀있으면 덜 나쁜 짓을 하는 건 어렵지 않은 법이다.
아무튼, 이 클랜은 게임이 한번 시작된 후에는 바꿀 수 없지만, 도시에 거주하는 다른 클랜 멤버들을 통해 다른 클랜의 능력,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패시브를 익힐 수 있다. 아쉬운 점은 6개 클랜, 각 클랜 마다 4개 능력으로 총 24개나 되는 능력이 구현되어 있는데, 플레이어가 한 번에 쓸 수 있는 능력은 4칸, 그것도 한 줄에 하나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TCR은 ‘자유로운 빌드 빌딩’이라는, 그다지 도전적이지 않은 싱글 플레이어 게임에서는 새삼 무해한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다음번에는 기억해 두었으면 좋겠다.

능력은 둘째치고, 패시브는 배워서 나쁠 것이 없으며 심지어 강력한 효과(흡혈 시에 랜덤하게 피 점수를 1개 더 얻는다던가, 심지어는 흡혈 중 잠깐은 공격받지 않는다던가!)를 가진 것들도 있어서, 여러 클랜의 패시브 능력을 익히는 것이 어느 정도는 권장되는 플레이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필요한 자원이 문제다.
설정상 인간의 피는 모두 맛이 다르고, 뱀파이어들에게도 피 맛의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여기에 더불어 게임에서는 인간의 피를 체질에 따라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등으로 구분하는 ‘공명’ 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는 고대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4체액설을 모티프로 한 것이나 이 이상의 설명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게임 내에서도 그다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각 클랜 멤버는 주인공에게 다른 클랜의 능력을 가르쳐주는 대가로 특정한 종류의 피를 일종의 화폐로서 요구하는데, 그걸 얻는 방법은 시애틀 시내를 돌아다니는 랜덤한 시민 중, 해당하는 종류의 피를 가진 것으로 표시되는 대상을 찾아가 흡혈하는 것이다. 밤의 시애틀은 의외로 아주 북적거리고(실제로 시애틀의 노숙자 문제는 꽤 유명하다), ‘마스커레이드’가 깨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이 시민들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만약 이 게임이 ‘이머시브 심’으로 완성됐다면 이렇게 시민들을 유인하고 추적하는 것 또한 재미있고 창발적인 플레이의 기회로 삼았겠지만, 적당한 내러티브 어드벤쳐로 축소된 <VtMB2>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에게 다가가 대화를 걸면, 빨강 시민은 공격해 오고(골목으로 도망가면 쫓아온다), 분홍 시민은 유혹되어 그냥 따라오고, 남색 시민은 도망간다. 그게 전부다. 설정상 우울질에 해당하는 파란 시민이 가장 번거로운데, 이들은 말을 걸면 대중없이 뛰쳐나가고 그 방향을 유도하는 것도 불가능하므로, 그저 이들이 불행하게도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도망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는 없다.
이 외에도 ‘완전 공명’, 그러니까 수확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지만 가능성이 있는 시민에게 말을 걸고, 해당하는 감정을 강화하는 대화문을 선택해서 공명에 도달하게 만드는 있으나 마나 한 메커닉도 있지만, 굳이 이 이상 이 미완성의 시스템에 대해 부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앞서 말한 단조롭게 뚝딱거리는 전투 시스템, 그리고 이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게 만드는 (“다른 기술을 배우면 전투가 조금 더 수월해질까?“) 욕망과 맞물려, 공명 시스템은 중대한 병목으로 작용하면서 게임의 중후반부를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으로 만들어버린다. 분명 잘 만든 캐릭터와 흥미로운 서사,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좋은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VtMB2>는 애초에 도달하고자 했던 지점에 미달한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고, 이토록 어설픈 미완의 시스템은 그 증인으로 게임에 남아있다.
▶ 우울아, 도망가지 마! 맞서 싸워!
# 마침표가 아닌 시작점이 되길
<VtMB2>는 완성이라는 단어의 흔적만이 엿보이는 수준으로 출시된 게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세상의 빛을 보는 데에 성공했다. TCR의 개발자들도 자신들이 하는 작업에 내재한 중대한 위협을 모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덕분에 2004년의 컬트 클래식은 드디어 후속작을 선보였고, 세상은 다시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라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시스템을 접할 기회를 얻었다.
진부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뱀파이어는 문화적으로 흥미로운 주제고, <VtM>은 필자가 아는 한 뱀파이어를 다루는 가장 ‘현대적’인 픽션이다. 단순한 생존권은 물론이고 번식권까지 손에 쥔 채 이면 사회를 장악한 봉건 귀족들의 궁정인 카마릴라는, 하릴없이 탈식민주의 이론가 아쉴 음벰베의 ‘죽음정치(necropolitics)’를 떠올리게 만든다.
음벰베는 현대 권력이 누가 살아도 되며 누가 죽어도 되는가를 가르는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얻었다. 식민지, 수용소, 전쟁터… 어쩌면 <VtM>에서 도시는 이 모든 것이다. 오직 포식자-괴물의 존재를 감추는 마스커레이드를 지키는 괴물들만이, 역설적으로 문명화된 존재로서 인정받는, 모두가 죽음으로부터 한없이 가까운 허구적인 이면 사회는, 현실로부터 얼마나 멀고 또 가까운가.
비록 <VtMB2>의 미묘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IP로서 <VtM>의 잠재력은 아직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상태에 놓여있다. 오히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