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야심 찬 스페이스 오페라 <아우터 월드>는 2019년 발매 당시 꽤나 호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폴아웃>을 기대했던 플레이어들은 깊이가 아쉬운 스토리와 짧은 분량 등으로 실망을 토로하는 사례가 많았고, 개인적으로도 빈약한 월드 구성과 공감이 잘 가지 않는 캐릭터 대사에 몰입이 어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덕분에 후속작 소식에 걸게 되는 기대에도 우려의 농도가 짙었고요.
그래도 2편에는 다시 기대해 볼만한 뚜렷한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1편의 발매 시점에서야 옵시디언이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스튜디오에 퍼스트 파티로 인수됐기 때문에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알려진 1편의 개발 환경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여건에서 개발됐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폴아웃>의 아버지'로 불리는 개발자 '팀 케인'에서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프로듀서였던 '브랜든 애들러'로 디렉터의 변경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둘 다 장르에 뼈가 굵은 전문가들이지만 플레이어로서는 새로운 변화를 기대해 볼 만하니 디렉터가 달라진 데에도 관심이 가더라고요. /작성=깐(게임 리뷰어), 편집=한지훈 기자

# 어쨌든 해동은 됐지만 흥미진진해진 도입부
얼마나 절치부심해서 돌아왔을까 기대하며 입성한 <아우터 월드 2>의 세계는 첫인상부터 차이가 컸습니다.
주인공은 똑같이 예기치 못한 동면 상태에서 깨어나지만, 식민지선에서 사고를 당하는 전작의 엉뚱하고 단순한 도입부 대신 '지구 위원회'의 사령관으로 임무에 착수하던 중 불의의 사건을 겪고 탈출 포드에 몸을 싣게 되는 긴박한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됩니다. 기본 조작과 퀘스트 진행 방식 등의 튜토리얼도 더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게 됐고요.
배경도 달라졌습니다. 변화의 중심에는 전작의 배경인 '할시온'이 지구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식민지로 존재할 수 있던 이유인 성간 이동 기술 '스킵 드라이브'가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배경은 스킵 드라이브가 발명된 '아르카디아'이며 스킵 드라이브와 연관된 '균열 이상' 현상들이 갈등의 주된 원인입니다.
▶ 상업적인 맛 그대로, 주인공이 속한 '지구 위원회'의 광고로 시작한다.
▶ 커다란 사고와 함께 시작되며 훨씬 흥미진진해진 오프닝.
# 아르카디아의 주요 세력들과 평판 시스템
아르카디아에서 만날 수 있는 세력들은 크게 셋입니다.
기업과 개인의 갈등은 이번에도 주요하게 다뤄지지만, 여러 기업이 등장했던 전작과 달리 스킵 드라이브 기술을 독점하고자 아르카디아에 뿌리를 내린 하나의 거대 기업만 등장합니다. 바로 전작에서 화장품 제조사였던 '클레오 이모네'가 '문맨'으로 시리즈의 상징적인 비주얼을 담당하기도 하는 잡화 제조사 '스페이서스 초이스'를 인수해 '이모네 초이스'가 된 거죠.
다른 메인 세력으로는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보호령'의 군인들과 수학에서 진리와 계시를 찾으며 방정식 풀이에 몰두하는 '승천 교단'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외부인이지만 아르카디아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기 때문에 각 세력과 적극적으로 교류할 수 있고 하나 이상의 대상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다른 세력들끼리의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요. 기업 논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해 서로 중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전작의 세력들에 비해 동기가 더 명확하고 개성도 강합니다. 다만 다듬어진 설정과 탄탄해진 메인 스토리의 짜임새에도 불구하고 세계관의 몰입도를 가르는 평판 시스템은 여전히 아쉽습니다.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 무조건 전투가 일어난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상태를 제외하면, 상점 가격과 몇 가지 대화 선택지 말곤 평판의 영향을 느끼기 어려웠거든요. 신뢰를 받는 세력의 마을에서 돌아다닐 때 더 상냥한 대우를 받는다든지, 물건을 도둑맞은 집의 주인이 버럭 화를 낸다든지 하는 생동감 있는 묘사는 이번에도 없었습니다.
▶ 기업 세력은 '스페이서스 초이스'를 꿀꺽 먹은, 클레오 이모가 이끄는 '이모네 초이스'.
▶ 루스가 이끄는 '승천 교단'은 수학과 방정식에 미쳐있다.
# 입맛대로 육성이 가능해진 캐릭터
하지만 캐릭터 생성과 육성에 있어서는 자잘하지만 체감이 큰 변화들이 돋보였습니다.
다른 RPG들에서도 종종 있는 설정이지만, 캐릭터의 출신을 골라 특수한 전용 선택지를 해금하거나 플레이 도중 다른 정보를 얻게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고고학 연구를 했던 '교수' 출신을 택했더니 복잡한 방정식들을 이해한다거나 과학자들 앞에서 똑똑함을 자랑하는 대사를 날리며 기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더라고요.
육성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습니다. 전작에서는 힘, 민첩 등의 캐릭터 특성을 고르면 스킬이 특성 수치에 묶인 채로 적용됐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미리 고른 특성은 더 높게 육성할 수 있는 혜택을 줄 뿐 원하는 스킬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즉, 불필요한 제약 없이 캐릭터를 키워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긍정적인 특성을 고르면 부정 특성을 반드시 선택하고 진행해야 해서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현실감을 더하기도 했고요.특전도 개선됐습니다. 최대 레벨은 이번에도 30으로, 2레벨이 오를 때마다 특전을 하나씩 고를 수 있습니다.
여러 진행 루트를 해금하는 수단이 되는 건 그대로이지만, 전작에서는 단순한 수치 변화가 많았던 것에 비해 눈에 띄는 성능 향상으로 이어져 성장의 재미를 높였습니다. 예를 들어 무기 레벨을 높여 강화하는 땜질이 없어진 대신 총기 관련 특전들로 다각도로 대미지를 높이는 식으로요.
또 특정 행동을 반복할 때 뜨는 결함 시스템은 이번에도 등장하는데, 더 이상 특전 점수를 주진 않지만 조금 더 고심의 흔적이 보이는 성능 변화로 이어져 플레이에 재미를 더했습니다.
▶ 2편에서는 출신을 선택해 추가 선택지를 해금하고 새로운 발견을 할 수도 있다.
▶ 특성 선택에 따라 스킬이 제한됐던 전작과 달리, 스킬은 자유롭게 찍을 수 있게 됐다.
▶ 반복 행동을 하면 팝업되는 결점 시스템은 더 재밌어지기도.
# 더 커진 세계와 퀘스트에 빠져드는 탐험
지역도 넓어졌습니다. 세미 오픈월드로 구현된 네 개의 주요 행성과 이벤트가 진행되는 몇몇 장소들은 알록달록한 환경과 아르데코풍 인테리어 등 아트 스타일은 유지하고 있지만 전보다 화려하고 다채로워졌습니다. 하단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UI와 1인칭이 불편한 플레이어를 배려한 두 가지 옵션의 3인칭 시점의 추가, 답답한 무게 제한 시스템의 삭제로 쾌적하게 탐사할 수 있게 됐고요.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각 지역에서는 탈것 없이 뚜벅뚜벅 걸어 다녀야 하고 걸핏하면 낙사에, 물에 발만 담가도 사망해 탐험 루트에 제약은 심합니다. 지역이 넓은 편은 아니지만 주요 지점을 오가며 만날 수 있는 인카운터 이벤트도 거의 없고요. 대신 밀도는 전보다 높아졌고 촘촘한 빠른 이동 덕에 단점을 느낄 일이 많지 않습니다.
진행하다 보면 이전에 방문했던 행성에 재방문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지만, 거의 모든 지역에 구비된 빠른 이동 지점으로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내키는 만큼 발 닿는 대로 탐험을 하거나 먼저 해결하고 싶은 사이드 퀘스트를 챙기러 다녀도 언제든 빠른 이동을 쓰면 되니 편리하고요.
저는 행성마다 한두 개씩 있는 수집 퀘스트 중 위치 파악이 어려워 포기한 두 가지를 제외하고 발견한 모든 사이드 퀘스트를 완료했는데, 대부분은 자발적인 탐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행하게 됐습니다. 그만큼 세계를 들여다보고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다는 방증이겠죠.
▶ 방문할 수 있는 지역들. (가장 오른쪽의 지역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름을 가렸다.)

▶ 1인칭 외에도 3인칭 근거리/원거리로 시점 옵션을 제공한다.
▶ 대단히는 아니지만 더 넓고 촘촘해진 맵. 빠른 이동은 역시 유용하다.
# 읽는 재미만큼이나 여전한 제약들
게임 진행에 있어 가장 비중이 높은 건 대화를 나누고 기록을 읽는 시간입니다. 유사한 서양식 RPG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시간이 즐겁기를 고대하실 텐데요.
무수한 기록을 읽고 오디오 로그를 들으며 세계관을 파헤치는 재미나 풍자가 깃든 유머를 주고받거나 시니컬하고 자조적인 대사를 읊는 재미는 준수합니다. 이전보다 인물들의 상황과 처지가 보다 자연스럽고 개연성 있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흠잡을 데 없는 번역은 아니어서 매끄럽게 읽히진 않는 데다 키워드로 검색하거나 요약해 주지는 않기 때문에 스스로 머릿속에 정리하며 따라가야 해서, 마감과 편의성이 좋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대화들이 깊이와 규모가 있는 결과로 이어지진 못한다는 겁니다.
즉각적인 대화 반응을 결정하고 다음 대화에서의 선택지를 달리 하기 때문에 읽고 답하는 즐거움은 충분하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주요 사건은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해도 일어나며 플레이어는 세부 과정과 최종 결과만 바꿀 수 있습니다. 세계의 운명은 뜯어고칠 수 없지만 내 주변의 인간관계에는 높은 영향력을 갖는 셈이니,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장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요.
▶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대화는 여전히 준수한 재미를 준다.
▶ 운명적 사건을 막을 순 없지만 동료들의 선택엔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 그럴싸한 이야기를 하는 여섯 동료들
이번 시리즈에서도 동료는 각 소속의 인물과 로봇으로 여섯 명이 등장합니다. 저는 친해질 기회를 얻기 전에 아마도 죽여버렸는지 끝내 만나지 못한 한 명을 제외하고 동료 퀘스트를 진행하며 가까워져 봤는데요.
특별히 매력적인 서사를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전작보다는 개성과 호감도가 적어도 한 단계씩은 높아졌다고 느꼈습니다. 영입 과정들도 대체로 그럴듯하고 동료 퀘스트를 하면서 드러내는 개인적인 내적 갈등에도 공감이 가더라고요. 주관이 있으면서도 입체적으로 묘사되는 캐릭터성도 좋았고요. 특히 마지막 동료 퀘스트들은 메인 퀘스트 못지않게 볼거리가 많은 새 지역에서 다른 퀘스트들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진행돼 더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동료들은 전투에서도 유용합니다. 초반엔 같이 수다 떨어주다 전투가 일어나면 드러눕는 역할에 그치지만 주인공 레벨이 오를 때마다 찍을 수 있는 스킬 퍽으로 점점 쓸모가 많아지고, 동료 퀘스트를 완료해 장비 업그레이드를 마치면 후방에서 동료 스킬만 써도 될 정도로 강력해지더라고요. 전작과 달리 장비를 세팅해 줄 필요가 없어 더 자립적인 동료라는 느낌도 들었고요.
▶ 처음엔 전혀 쓸모없지만 점점 든든해지는 동료들.
▶ 동료 장비는 직접 바꿀 수 없게 달라졌다. 동료 퀘스트를 하면 업그레이드되는 식.
# 귀찮은 건 버리고 디테일은 더한 전투
그렇다고 해도 전투는 기대를 낮추는 게 좋습니다. 그리 발전하지 못한 투박한 모션은 순간이동을 일삼는 적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려 할 때마다 더 웃음이 나곤 하더라고요.
개선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은신 관련 퍽을 찍지 않아 소음기나 한 손 근접 무기의 효율 개선은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발각되기 전에 은신 공격으로 적을 처치하고 산성 분해기로 시신을 말끔히 처리하는 등 잠행과 은신 플레이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동료의 버프와 높은 성장 폭으로 후반이 시시해지는 문제는 여전하지만 초반 전투의 긴장감은 조금 높아졌습니다. 전투 중에 회복하려면 흡입기로 아드레노를 마셔야 하는데 한 번 들이마실 때마다 독성 디버프가 생겨 연달아 사용하기가 어려워졌거든요. 옵션이 많진 않지만 독성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회복법의 개선을 도모할 수도 있어 성장의 새로운 묘미를 주기도 했습니다.
기대를 낮추길 권했지만 정작 저는 전작보다 재밌게 전투를 즐겼습니다. 바로 무기 때문이었는데요. 경량, 중량, 에너지로 고작 세 가지였던 탄약은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덕분에 탄약 수급 상태에 따라 여러 탄약의 무기를 골고루 써 보게 되더라고요.
또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업그레이드인 땜질과 무기 레벨 시스템이 사라졌고 내구도마저 없어져 대미지와 특수 옵션 등 특성만 보고 취향껏 쓰게 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루트 슈터만큼은 아니지만 재밌는 옵션에 성능도 좋은 무기가 적지 않다 보니 꾸준히 새로운 무기를 써 보며 플레이하는 맛이 끝까지 좋더라고요.
▶ 땜질로 업그레이드를 안 해도 되고 내구도도 없어져서 마음에 드는 무기를 계속 사용할 수 있다.
▶ 은신 공격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끔 추가 기능이 생겼다.
# 총평
제가 30시간 넘게 <아우터 월드 2>의 아르카디아에서 보낸 시간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물론 전작을 석연치 않게 플레이했던 경험이 기대치를 다소 낮추기는 했지만 SF 계열의 RPG 팬으로서 기대의 저점이 그리 낮진 않았고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1편은 다른 플레이어에게 권하기 위해 이런 저런 사족이 많이 필요했던 데 비해, 이번 후속작은 장르 팬에게 무난하게 추천할 수 있을 게임이 됐습니다.
전작의 단점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지만 눈에 띄게 개선된 점들이 많아 전반적인 몰입도와 재미는 확실히 높아졌으니까요. 감명 깊은 스토리나 깊이 있는 상호작용이라든지 실감 나는 전투 같은 걸 찾는다면 다른 게임을 제치기 어려울 테지만, 유머러스한 분위기에서 엉망진창인 세계를 누비며 이상한 사람들과 괴상한 일들을 벌이고 대화하길 원한다면 딱 알맞은 게임입니다.
전작을 재밌게 했다면 고민의 여지가 없을 테고, 전작에 시큰둥했더라도 적어도 이번 경험은 훨씬 더 나을 겁니다.
- 한결 자유롭게 육성할 수 있게 된 캐릭터
- 짜임새를 더한 메인 스토리와 이제야 공감이 좀 가는 캐릭터들
- 더 넓어진 세계와 탐험의 재미를 주는 사이드 퀘스트
- 무게 삭제! 내구도 삭제! 땜질(업그레이드) 삭제! 그리고 탄약 종류 추가!
- 영향력이 미미한 평판 시스템
- 편의성이 없어 섭섭해지는 코덱스
김가은(깐) - 게임 리뷰어
폭 넓은 장르의 게임에서 가치 있는 경험을 찾고자 합니다. 제가 남기는 기록이 새로운 게임을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