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게이머들에게 살짝 스치듯 지나가는 가벼운 게임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일평생 가슴 속에 남는 인생 게임이 되기 마련이다. 본인에게는 <괴혼> 시리즈가 딱 그런 게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1년 전, 2004년에 처음 플레이스테이션 2로 출시됐던 <괴혼(Katamari Damacy)>는 여러 가지 의미로 참 희한하고 또 신박했던 게임이었다.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사운드트랙은 음악 하나하나가 묘한 중독성을 자랑하고, 지극히 작은 물건부터 거대한 물건까지 전부 하나의 덩어리에 붙이는 참신한 게임 플레이는 '티끌 모아 태산',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다분히 실험적이면서도 아스트랄한 센스 범벅의 덩어리 굴리기 게임은 그대로 본인의 인생 게임이 되었다.
비록 <괴혼> 시리즈의 모든 게임을 즐겼던 건 아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이후에도 <괴혼>이라는 게임은 언제나 가슴 한 편에 남아있었다. 그랬기에 2018년과 2023년에 각각 출시됐던 <괴혼> 시리즈의 두 초창기 작품의 리마스터는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두 리마스터 작품을 즐기고 난 뒤 문득 딱 한 번만이라도 <괴혼> 시리즈의 새로운 신작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슬며시 생겨났다.
그 간절한 바람이 통했던 걸까, 완전히 새로운 신작인 <옛날 옛적에 괴혼(Once Upon a Katamari)>가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1년에 출시됐던 <괴혼>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괴혼 노비타> 이후로 무려 14년 만에 말이다./작성=쿠타르크(게임 블로거), 편집=한지훈 기자
▶ 이래뵈도 본인에게는 나름 인생 게임 <괴혼 앙코르(Katamari Damacy Reroll)>
▶ 과거로 회귀한 <괴혼>, 초심을 되찾다.
# 굴리는 재미는 여전, 듣는 즐거움은 역대급
<옛날 옛적에 괴혼>은 오랜만에 등장한 <괴혼> 시리즈의 신작으로, 아바마마가 실수로 또 다시 부숴버린 지구와 달, 수많은 별을 되살려내기 위해 과거의 여러 시간대를 여행하며 부지런히 덩어리를 굴려야 하는 캐주얼 액션 게임이다. 리마스터 작품을 제외한 모든 <괴혼> 시리즈로 따지면 2017년 모바일을 통해 출시된 <어메이징 괴혼> 이후 8년 만에 신작이며, 범위를 콘솔로 한정하면 <괴혼 노비타> 이후 무려 14년 만에 공개된 신작이기도 하다.
▶ 또다시(이 부분 중요) 박살이 나버린 우주를 복구하기 위해 여러 과거 시대를 넘나든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비주얼, 이름 있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한 사운드트랙, 그리고 한국 정발본만의 초월 번역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센스까지. 기존의 <괴혼> 시리즈의 장점은 이번 신작에서도 여전히 건재하다.
<괴혼> 시리즈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와도 같은 아바마마의 존재는 이번에도 유난히 돋보인다. 왕자가 덩어리를 굴릴 때마다 본인만의 스타일로 온갖 독설을 유감없이 퍼붓는 것은 물론, 툭 하면 행성을 부수는 사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아바마마답게 행적 하나하나가 기이하고 괴상망측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 이번 작에서는 아바마마뿐만 아니라 어마마마의 에피소드도 공개되는데, 몇몇 사촌들이 함께 엮이는 각 에피소드의 내용은 그 황당함과 어처구니 없음이 아바마마의 그것과 비교해 봐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과연 그 남편에 그 아내고, 그래서 부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 이번 작에서도 아바마마는 온갖 독설과 기이한 행동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대대로 사운드트랙이 지나칠 정도로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던 <괴혼> 시리즈니만큼 이번 신작에서도 음악에 엄청난 공을 들인 모습이다. 반다이남코 측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지 게임의 정식 출시 이전부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주요 음악들의 뮤직 비디오 영상을 꾸준히 올렸다.
뜨거운 호소력을 강렬한 허스키 보이스를 자랑하는 마츠자키 시게루와 파격적인 장르 변화로 당시 큰 화제가 됐던 엔카 가수 니이누마 켄지 등 기존 참여진은 여전히 건재하다. 여기에 더해 '네 기꺼이'로 순식간에 인기가 급부상한 콧치노 켄토나 2인조 락밴드 요루시카의 보컬 suis, 학원 아이돌 마스터의 하나미 사키 등 이름 있는 아티스트들이 이번 사운드트랙에 새로 합류해 사운드트랙의 스펙트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 꽤 많은 화제가 됐던 콧치노 켄토의 곡. 정작 다른 곡에 비하면 개성이 조금 밀리는 편. (출처 : 반다이남코 공식 유튜브 채널)
초창기 <괴혼> 시리즈를 플레이할 때 주로 겪는 현상이 하나 있는데, 게임을 한참 플레이하다가 불현듯 흘러나오는 음악이 워낙 귀에 착착 감겨 무심결에 음악의 주요 파트를 따라 부르거나 흥얼거리게 된다. 이번 <옛날 옛적의 괴혼>에서도 이런 현상을 겪을 수 있다.
대체로 멜로디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곡들이 많아 게임의 흥을 제대로 돋우면서도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그러면서도 팝, 락, 힙합 같은 현대적인 장르에서부터 엔카, 합창 같은 고전적인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곡을 아우르고 있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 사운드트랙의 완성도가 지나칠 정도로 높다.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출처 : 반다이남코 공식 유튜브 채널)
# 초심으로 돌아간 굴리기, 여전히 강력한 중독성
작은 덩어리를 굴리며 무엇이든 접착시키는 기본적인 게임 디자인은 언제나 한결같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전부 접착시켜 덩어리의 크기를 급격히 키운다는 발상은 현시점에서 봐도 꽤나 창의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작은 덩어리에서 시작해 덩어리보다 작은 물건을 차근차근히 붙이며 덩어리를 조금씩 키워나가는 미약한 시작. 덩어리의 크기가 작을 땐 미처 붙이지 못했다가 덩어리가 충분히 커졌을 때 한때 자신보다 컸던 물건들을 붙여나가는 과정.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눈에 보이는 건 무엇이든 붙이며 덩어리의 크기가 순식간에 커지는 창대한 마무리에 달하는 게임 플레이는 누구나 쉽게 흥미를 붙일 만하다.
▶ 본질은 언제나 한결같다. 무엇이든 접착시켜 덩어리를 크게크게.
초창기 <괴혼> 시리즈를 의식한 듯한 요소도 몇 가지 발견된다. 시리즈별로 큰 변화를 보이는 편은 아니긴 해도 전반적인 화면 구성이나 구도, 공을 굴리는 조작 방식, 그밖에 몇 가지 세부적인 디테일에서는 <괴혼> 시리즈의 가장 첫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은 흔적이 엿보인다.
그런가 하면 사실상 지상 위의 모든 물건들을 접착시켜 우주에 닿을 만큼 덩어리의 크기를 키울 수 있는 후반부 레벨에서는 무려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도 접착시킬 수 있는데, 이건 <괴혼>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데굴데굴 쫀득쫀득 괴혼>에서 처음 도입됐던 바 있다. 어쩌면 <괴혼> 시리즈가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초창기를 좇아 다시금 초심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 "대체 무슨 짓이냐, 아들아" "덩어리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
그런 가운데 아바마마가 또다시 부숴버린 행성을 과거 시대로 넘어가 복구한다는 설정이 붙으면서 배경이 꽤 다양해졌다.
고대 일본에서 시작해 원시 시대와 그리스/로마 시대, 사막 시대, 서부 시대 등, 다양한 시대 배경을 넘나들게 되며, 이 덕분에 게임에서 보이는 풍경과 접착시킬 수 있는 물건의 종류 또한 꽤 다양해졌다. 이에 따라 각 레벨의 목표도 단순히 덩어리를 크게 (혹은 빠르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어림짐작으로 덩어리의 크기를 맞추거나, 특정 물건을 일정 개수만큼 접착시키거나, 덩어리를 적당히 키워 특정 지점에 갖다 놓거나 하는 등 목표의 종류도 보다 다양해진다.
나아가 플레이에 따라 이후 전개가 달라지는 레벨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옛날 바다의 아무튼 더 크게(바다) 레벨에서는 게임 도중 문어가 나타나는데, 이 문어의 접착 여부에 따라 이후 전개가 완전히 달라진다. 모든 전개를 전부 보려면 최소 두 번 이상 같은 레벨을 플레이해야 한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분기에 따라 전개가 달라지는 레벨이 좀 더 많았어도 괜찮았을 듯하다.
▶ 여러 과거 시간대를 넘나드는 결과 보이는 풍경이 꽤 다양해졌다.
▶ 무려 '분기 조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스테이지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다만 몇몇 레벨이 물건의 배치만 살짝 바꾸거나 일부 영역으로의 진입에 제한을 두는 등 기존 레벨의 재탕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더군다나 이런 재탕 레벨에도 수집할 수 있는 세 개의 왕관과 하나의 선물, 그리고 사촌의 종류가 전부 달라 100퍼센트 수집을 목표로 한다면 전부 꼼꼼히 플레이해야 한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디테일만 살짝 다른 동일한 스테이지를 반복해서 플레이한다는 느낌을 받게 될 여지가 다분하다.
게다가 한 레벨에서 바로 모든 수집품을 수집하기도 쉽지 않다. 수집품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레이더가 아이템으로 존재하긴 하지만, 막상 모든 수집품의 위치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레이더가 먹통이 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그렇다. 레벨의 다양성 부재가 확실히 아쉽게 다가오고, 그게 힘들었더라면 하다못해 레이더를 통해 수집품의 위치를 보다 제대로 알려주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 유감스럽게도 약간의 물건 배치만 다른 자가 복제성 레벨이 꽤 많다.
그나마 최대 4인 멀티 플레이를 지원하며 서로 최고 점수를 목표로 경쟁하는 '스포츠 괴혼'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자신과 상대방의 덩어리 크기에 따라 취해야 하는 행동이 달라져 어느 정도 전략성도 있고, 덩어리 크기를 포인트로 바꾸는 왕자 십의 위치가 매번 달라져 변수 요소도 적절히 충족시킨다. 여기에 게임 시간이 단 3분이라 여러 판 가볍게 즐기기에도 좋다. 기왕이면 온라인을 통해 다른 플레이어와 경쟁해 보는 것도 꽤나 재밌을 것이다.
▶ 그래도 스포츠 괴혼은 나름의 변수도 있고 경쟁 요소도 충분히 존재한다.
<옛날 옛적에 괴혼>은 덩어리를 굴려 모든 걸 접착시키는 본질적인 재미를 잘 지킨 동시에 여러 시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양상으로 덩어리의 크기를 키워나가는 재미 또한 잘 추구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사운드트랙은 자칫 노동에 가까울 수 있는 덩어리 굴리기를 제대로 신나게 만들며, 아바마마의 온갖 독설과 기행이 다시금 게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과정이 조금 불편하긴 해도 여러 레벨을 순회하며 숨겨진 선물과 사촌을 모으는 재미도 그런대로 쏠쏠하다. 이것이 딱 초창기 <괴혼> 시리즈가 자신감 넘치게 선보이던 모습이고, 또 본인을 비롯한 많은 <괴혼> 매니아들이 기억하고 바라왔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면 이번 <옛날 옛적에 괴혼>은 게임 속 아바마마와 왕자가 부서진 지구와 달과 별을 되살리기 위해 과거로 넘어갔듯 <옛날 옛적에 괴혼> 역시 자신들이 가장 호기롭고 찬란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한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오래도록 시리즈를 지켜봐 왔고 조심스레 신작을 염원해 왔던 이들이라면 이번 <옛날 옛적에 괴혼>이 꽤나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또한, <괴혼> 시리즈를 잘 모르던 이들이라도 이번 신작이 그럭저럭 괜찮은 입문작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 지나칠 정도로 훌륭한 퍼포먼스의 사운드트랙
- 덩어리를 굴려 물건을 접착시키는 원초적인 재미
- 시대를 넘나들면서 다양해진 배경과 물건들
- 물건 배치만 살짝 바꾼 재탕 레벨
- 100% 수집을 위한 편의성의 부족
쿠타르크 (블로거)
2014년부터 10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