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의 큰 별이 졌다. 일본 게임계의 풍운아, 이타가키 토모노부가 향년 58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여러 개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누군가에게는 <데드 오어 얼라이브>(이하 DOA), <닌자 가이덴>을 탄생시킨 ‘아버지’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타협 없는 독설로 업계를 향해 직언을 날리던 ‘이빨까기’였다. 하지만 그를 어떻게 부르든, 그가 게임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거장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평생 그의 얼굴과도 같았던 검은 선글라스를 벗어 던진 그의 마지막 사진은 그래서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늘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던 그의 트레이드마크 뒤에, 이토록 온화하고 진중한 맨얼굴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의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마주하게 되었다. 참 그다운 마지막이다.
그는 유언 말미에 “So it goes”,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자신의 최후마저 ‘쿨’하게 받아들이는 담담한 작별 인사였다. 전 세계 팬들과 동료들이 그의 뜨거웠던 삶과 식지 않을 열정을 기억하며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 자신의 SNS에 공개한 이타가키 토모노부의 마지막 사진
# 검은 선글라스의 승부사, “게임 개발은 도박이다”
이타가키는 단순한 게임 개발자가 아니었다. 그는 검은 선글라스와 가죽 재킷으로 상징되는 게임계의 거침없는 ‘풍운아’였다.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도박과 같다”는 과감한 그의 말은 스스로 증명해낸 삶의 철학 그 자체였다.
그는 옳고 그름이 분명했으며, 자신의 철학을 직설적으로 내뱉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때로는 상대를 짓누를 듯한 그의 언행 덕분에 많은 비판의 목소리도 들었지만, 그 모든 자신감은 그가 만든 게임의 압도적인 완성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와세다 대학 법학부에 입학하고도 마작에 빠져 7년 만에 대학을 겨우 졸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인간에 감정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에게 도박은 공정한 룰 안에서 모든 것을 걸고 극적인 감정을 겨루는 ‘숭고한’ 게임이었다. 그는 이 철학을 자신의 게임 개발에 그대로 투영했다.
▶ 2000년에 촬영된 이타가키의 모습. 우리가 기억하는 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1992년 테크모에 입사해 게임 개발을 시작한 그의 첫 번째 도박은 1996년 출시된 〈DOA〉의 개발이었다. 회사의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의 유일한 지원자였던 그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3D 대전 격투 게임인 <버추어 파이터>를 뛰어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DOA〉 개발에 모든 것을 걸었다.
오늘날 액션 게임의 명가로 자리 잡은 개발팀 ‘팀 닌자(Team Ninja)’를 결성한 그는 프로젝트에 당시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담아 ‘죽거나 살거나(Dead or Aliv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 그는 사람들이 대전 격투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에 주목했는데 그가 생각한 격투 게임의 매력은 공정한 룰 위에서 벌어지는 승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격동이었다. 마치 과거 그를 미치게 했던 도박처럼 말이다.
그는 ‘홀드 시스템’이라는 가위바위보 식의 심리전을 도입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격투 게임을 구현했다. 여기에 카스미, 레이팡, 티나 등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들의 ‘특정 신체 부위’의 흔들림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소위 ‘바스트 모핑’을 과감히 추가했다. 당시 격투 게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이 파격적인 연출은 게이머들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DOA〉는 단숨에 테크모의 대표 타이틀로 자리매김했다.
▶ 1996년 출시된 〈DOA〉. 사진에 담기진 않았지만 '특정 부위'의 움직임이 엄청나다.
〈DOA〉로 첫 번째 도박을 화려하게 성공시킨 그가 던진 두 번째 승부수는 ‘류 하야부사’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테크모의 고전 명작 <닌자용검전>의 주인공에게 매료된 이타가키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3D 액션 게임에 도전했으니, 2004년 출시된 <닌자 가이덴>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류 하야부사를 어떠한 위기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완벽한 슈퍼 히어로로 그려내고자 했다. 하지만 주인공이 너무 강력하면 게임의 재미가 반감될 터, 이타가키는 여기서 게임의 난이도를 극단적으로 올리는 역발상을 선택했다. 게임이 너무 어렵다는 불평에 “캐릭터는 충분히 강한데, 당신들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는 그의 답변은 하드코어 게이머들을 향한 명백한 도발이었다.
여기에 ‘긁힌’ 게이머들이 그의 작품에 등을 돌렸을까? 아니, 오히려 정반대였다. 정교하게 구현된 액션과 치밀하게 짜인 게임 시스템은 그 고통스러운 난이도의 벽을 넘었을 때 비로소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선사했다. <닌자 가이덴>은 그렇게 3D 액션 게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으며 그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 1988년 출시된 테크모의 대표작 <닌자용검전>. 가운데 인물이 주인공 '류 하야부사'다.
▶ 2004년 출시된 팀 닌자의 <닌자 가이덴>
테크모 퇴사 이후에도 그의 '도박'은 멈추지 않았다. 신생 개발사 발할라 스튜디오를 설립해 <데빌즈 서드>라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으나, 과거와 같은 화려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2021년 자신의 이름을 딴 '이타가키 게임즈'를 설립, 마지막 순간까지 재기를 향한 신작 개발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돌이켜보면 그는 훌륭한 도박사였다. 장발과 선글라스, 검은 가죽 재킷이 만드는 강렬한 인상 뒤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때로는 과감한 올 인을, 때로는 도발적인 언변으로 블러핑을 선보였다. 자고로 도박은 무언가를 걸고 따야 하는 법. 그가 건 것은 자신의 열정이고, 그가 딴 것은 게이머들의 행복이었다.
▶ 그가 발할라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마지막 작품 <데빌즈 서드>
# “오늘 우리는 <철권>을 이겼다!”
이타가키의 비범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철권> 시리즈의 하라다 카츠히로 PD가 남긴 기록에 있다. 같은 시대에 격투 게임의 붐을 일으켰던 '전우'로서 그가 기억하는 이타가키는, 우리가 알던 '풍운아'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입체적인 모습이다.
때는 1990년대 후반, 이타가키는 〈DOA〉라는 브랜드를 <철권>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을 구상했다. 당시 아케이드 시장의 거인이었던 남코(現 반다이남코)와 세가를 상대로 테크모의 힘만으로는 정면승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는, 미디어를 무기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전략은 파격적이었다. 잡지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의도적으로 <철권>과 하라다 PD를 지목하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낸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게임 5개로 <철권> 1편부터 5편까지를 꼽았고, 이것이 화제가 되면서 <철권> 시리즈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남코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사이, 이타가키의 공격은 약 10년간 계속됐다.
▶ 당시 해외 잡지에 올라왔던 이타카기의 발언
하지만 이는 단순한 감정적 비난이 아니었다. 세계사와 군사학에 해박했던 그는 〈DOA〉와 <철권>의 경쟁을 일종의 전쟁으로 분석했다. 그는 승리를 위해 적의 전력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는 <철권> 개발팀의 크레딧을 분석해 주요 인물들의 학력, 경력, 기술까지 상세히 조사했다.
하라다 PD는 훗날 이타가키가 보여준 <철권>팀 전력 분석 차트를 보고 그 정확성에 소름이 돋았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이타가키는 감정적으로 보이는 외면과 달리, 누구보다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판을 짜는 전략가였다.
이타가키의 비범함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있다. 1998년, 당시 미디어에서 하라다를 맹렬히 공격하던 이타가키가 돌연 남코에 직접 전화를 걸어 “혼자 테크모 본사로 오라”고 요구한 것이다.
적진의 수장을 불러들인 테크모 본사의 작은 방. 이타가키는 그곳에서 마술사처럼 천을 걷어 미공개 상태였던 <DOA 2>를 공개했다. 그는 자신의 라이벌인 하라다에게 첫 플레이를 권했고, “감각이 좋다”는 하라다의 솔직한 한마디에 만족해했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타가키는 당시 하라다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 ‘〈DOA〉가 <철권>을 압도했다’고 판단, 개발팀에 돌아가 “오늘 우리는 <철권>을 이겼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이는 그의 치밀한 계산과 과감한 쇼맨십이 결합된, 그야말로 '이타가키다운' 일화다.
▶ 하라다 카츠히로 PD(왼쪽)과 이타가키 토모노부(오른쪽)
끝으로 그가 남긴 유언을 전하며 기사를 마무리한다.
내 인생의 불꽃이 결국 꺼지려 한다. 이 메시지가 게시되었다면, 그때가 왔다는 뜻이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내 인생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이겼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이에게 폐를 끼쳤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내 신념을 따랐고, 끝까지 싸웠다. 후회는 없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팬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말로 미안하다.
세상사가 다 그런 거지. 어쩔 수 없다(So it go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