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지난달 일본 오사카로 여행을 떠났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파칭코일 것이다. 도톤보리 부근의 파칭코장이 강남의 스타벅스만큼이나 자주 보이던 것도 참 희한했지만, 작은 구슬을 수없이 떨어뜨려 알맞은 구멍에 넣는 그야말로 도박에 가까운 오락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이들이 즐기고 있는 그 광경이 본인에게는 참으로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면 파칭코처럼 작은 공을 활용하는 게임이 몇 가지 존재했던 것도 같다. 특히나 예전 윈도우 환경을 접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기본으로 설치돼있던 핀볼 게임을 즐겨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소위 '벽돌깨기' 게임으로 널리 알려진 <알카노이드(Arkanoid)>는 이후 수많은 이식과 후속작이 주기적으로 출시되며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기도 했다.
어쩌면 인간의 본능은 작은 공을 발사해 무언가를 맞추거나 터뜨리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도록 맞춰져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제대로 자극해 극도의 도파민 분출을 유발하는 게임이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양한 방식으로 공을 조합해 몬스터 블록을 파괴하는 게임 <볼X핏(Ball X Pit)>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작성=쿠타르크(인디게임 블로거), 편집=한지훈 기자
►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바로 그 핀볼 게임 <윈도우 핀볼 스타(Window Pinball Star)>
► “조합은 변화무쌍, 재미는 무궁무진”
# <알카노이드>의 손맛에 뱀서라이크의 중독성을 더하다
<볼X핏>은 스팀을 통해 여러 게임을 선보였던 뉴욕 브루클린의 개발자 케니 선(Kenny Sun)이 여러 베테랑 개발자들을 규합하여 제작한 게임으로, 다양한 종류의 공을 확보하고 조합하며 끊임없이 내려오는 몬스터 블록을 파괴해야 하는 벽돌깨기 스타일의 슈팅 액션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볼빌론’의 재건을 위해 몬스터 블록을 파괴하는 모험을 반복하며 자원을 확보하고 각종 건물들을 지어 기지를 건설해나가야 한다. 다소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비주얼과 웅장한 듯하면서도 귀에 착 감기는 사운드가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며, 장황한 설명 없이 볼빌론이 무너졌음을 알리는 짤막하고 간결한 인트로가 대단히 강렬하게 다가온다.
작은 공을 연이어 발사해 화면 상단에서 내려오는 다양한 크기의 몬스터 블록을 파괴하는 게임 플레이는 확실히 <알카노이드>를 위시한 벽돌깨기 게임에서 모티브를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게임의 제목에 굳이 ‘X’가 붙은게 얼핏 보기에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X’라는 표시가 이 게임에서 가지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
이후에 보다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단순히 작은 공을 발사해 벽돌을 깨트리는 걸 넘어 ‘조합’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그렇다.
► 거대한 덩어리가 떨어져 왕국이 멸망했다. 참으로 단순하고 강렬한 인트로.
► <알카노이드>가 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게임 화면
보유한 공을 발사해 서서히 다가오는 몬스터 블록을 파괴하고 경험치 조각을 습득해 레벨을 올려 무작위로 제시되는 공이나 패시브 중 하나를 고르며 빠르게 성장한다. 특정 지점에 다다르면 게임의 무대가 양옆으로 살짝 넓어지면서 중간 보스가 등장하고, 마지막 지점에 도달하면 최종 보스를 맞이하게 된다. 딱히 제한 시간이 존재하진 않지만 각 게임 당 걸리는 시간은 10분에서 15분 정도로 다소 짧은 편이다.
<뱀파이어 서바이벌(Vampire Survivors)>을 플레이해 본 이들에게는 다소 익숙하게 다가올 법한 게임 흐름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전반적인 게임의 흐름은 ‘뱀서라이크’ 계열의 게임들과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결을 드러낸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뱀서라이크를 종스크롤의 형태로 풀어낸 게임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그래도 여러 개의 공을 마구 난사하는 게임 플레이, 그리고 수십 개의 작은 공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화면을 가득 메운 몬스터 블록이 파괴되는 광경은 상당히 볼만하다. 레벨을 올리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공을 고를 수 있는데, 몬스터 블록을 관통할 수 있는 공이 있는가 하면 광범위한 영역에 한꺼번에 많은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공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렇게 고른 공을 빠르게 발사해 다수의 몬스터 블록을 한꺼번에 파괴하는 게임 플레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엄청난 도파민의 분출을 유발한다.
► 경험치 조각을 모아 레벨을 올리고, 무기와 장비를 고르며 빠르게 성장한다. 어, 이거 완전…?
► 작은 공을 마구 쏴서 블록을 파괴하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즐겁다.
# 쏘고, 모으고, 조합하라
각 공은 최대 3레벨까지 강화시킬 수 있다. 고작 3레벨인가 싶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게임의 진가는 바로 ‘조합’에 있다. 3레벨까지 강화한 공은 융합 원자로를 통해 조합을 시킬 수 있는데 특정 레시피가 존재하는 두 공을 조합하는 ‘진화’와 따로 레시피가 없는 두 공을 조합하는 ‘융합’이 가능하다.
진화의 경우 미리 레시피를 알려주진 않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한 것들이라 공을 이것저것 획득하면서 레시피를 찾는 재미가 있다. 또한 융합의 경우 따로 레시피가 없는 두 개의 공을 조합할 수 있으며(이때 조합한 두 개의 공 사이에 ‘X’가 붙는다) 나아가 한 차례 진화를 거친 공들도 얼마든지 조합시킬 수 있다.
덕분에 조합의 양상이 상당히 변화무쌍하면서도 그 잠재력은 그야말로 무궁무진에 가깝다. 보유한 공을 아무렇게나 조합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단 한 번에 화면을 싹 쓸어버릴 만큼 강력한 공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10분에서 15분이면 한 판이 끝나는지라 게임 한 판 당 조합의 기회가 많지는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유롭게 강력한 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합의 재미는 실로 훌륭하다. 어쩌면 이 게임이 지닌 두 공의 조합의 잠재력과 진정한 재미는 정해진 레시피가 존재하는 ‘진화’보다도 레시피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공을 조합할 수 있는 ‘융합’에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 진화 조합을 미리 알려주진 않는다. 그래도 대부분은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 진화 조합식이 없어도 두 공을 융합시킬 수 있다. 어떤 융합은 어지간한 진화보다도 더 큰 폭발력을 갖는다.
각자 개성과 특징이 판이하게 갈리는 16종의 캐릭터 또한 주목할 만하다. 각 캐릭터에 따라 단순히 일부 능력치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을 발사하는 방식이나 게임의 양상이 바뀌기 때문에 그렇다.
‘베이비볼’이라 불리는 작은 공을 전혀 발사하지 않는 캐릭터가 존재하는가 하면 공을 발사하는 궤도나 방향이 달라지는 캐릭터가 존재하기도 하고, 심지어 실시간으로 진행되어야 마땅한 게임을 갑자기 턴제로 바꿔버리거나 아예 게임을 제멋대로 플레이하는 캐릭터도 존재한다. 이로 인해 각 캐릭터마다 잘 맞는 공이나 패시브가 다르고 나아가 게임의 접근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공을 발사해 블록을 파괴한다”는 기본 규칙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파격적인 차별화를 드러내는 다양한 캐릭터를 구현한 점은 확실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기지 건설이 일정 수준 진행되면 두 캐릭터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 마치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두 개의 공을 조합했던 것처럼 말이다.
두 캐릭터를 동시에 출격시킬 경우 한 게임에 두 캐릭터의 특성이 전부 발휘돼 게임의 양상이 엄청 다양하면서도 또 재밌어진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두 공의 조합이 그러했듯 두 캐릭터를 잘 고를 경우 기대 이상의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할 여지도 있다. 이렇듯 두 캐릭터를 동시에 활용하는 게임 시스템 역시 조합의 또 다른 잠재력이자 재미 요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진정한 닌자는 뒤를 습격할 줄 알아야 하는 법
► 두 개의 캐릭터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 이 또한 조합의 재미이리라.
# 반복 플레이마저 즐겁게 만드는 영리한 게임 디자인
몬스터 블록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설계도를 활용해 기지에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기도 하고, 밀과 나무, 돌 등의 자원을 추가로 수집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아무것도 없던 볼빌런을 재건하는 한편 새로운 캐릭터를 해금하거나 모든 캐릭터의 기본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강화하거나 게임의 쾌적한 진행을 돕는 업그레이드를 확보할 수도 있다.
그 와중에 자원 수집과 건물 건설도 그냥 하는 일이 없어 캐릭터를 발사하는 과정을 따로 거쳐야 하고, 각 건물마다 모양도 조금씩 달라 한정된 공간에 많은 건물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과정도 겪어야 한다. 여러모로 벽돌깨기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기지 건설 자체도 제법 흥미롭지만, 이런 기지 건설 덕분에 게임의 순조로운 순환이 완성된다. 기지에 다양한 건물을 건설하고 기지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벽돌깨기를 반복해서 플레이하고, 또 쾌적한 벽돌깨기를 위해 기지 건설에 공을 들이는 이상적인 순환인 것이다.
즉, 벽돌깨기와 기지 건설이 절묘하게 맞물려 게임에 대한 엄청난 몰입을 유도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 게임을 전반적인 게임 디자인의 측면에서 보자면 벽돌깨기와 기지 건설의 절묘한 조합의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하여간 기지 건설도 절대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이 얼마나 벽돌깨기에 충실한 모습인가?
► 기지 건설과 벽돌깨기의 순조로운 순환. 크게 보면 이 역시도 두 가지 컨셉의 적절한 조합이 아닐런지.
다만 궁극적으로는 플레이어의 역량보다는 플레이 시간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게임이기도 하다. 물론 각 캐릭터마다 능력치의 편차가 은근히 커 사용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도 분명 존재하고, 기어를 전부 모아 새로운 층계를 해금할 때마다 몬스터 블록이 급격히 강해져 바로 클리어하기가 조금 까다롭기도 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반복 플레이를 통한 자원 수집과 건물 건설, 그리고 업그레이드 확보를 통해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기지가 건설된 이후 초반부 층계를 다시 진입해 보면 게임이 꽤 쉽게 풀린다. 자연스레 이 시점부터 두 공의 조합과 두 캐릭터의 조합이 지닌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는 무기 선택을 제멋대로 하는 ‘숙고자’ 캐릭터와 아예 모든 게임을 제멋대로 플레이하는 ‘반동분자’ 캐릭터의 존재가 명확히 증명한다(더 웃긴 건 정작 이 두 캐릭터는 동시에 고르지 못한다). 최적의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건 다르게 해석하면 그렇게 플레이해도 클리어가 가능한 게임이라는 걸 의미하기도 하니 말이다.
따라서 피지컬을 어느 정도 요구하더라도 보다 주도적으로 게임에 참여해 스스로의 힘으로 클리어할 수 있는 게임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이 지점에서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릴 여지도 있다.
► 결국은 플레이 시간에 비례해 강해지는 게임이다. 이 점에서 호불호가 살짝 갈릴지도…
► 제멋대로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있다는 건, 제멋대로 플레이해도 클리어가 가능하다는 의미도 있는 것.
# 파괴X성장X조합, 절묘하게 맞물린 재미의 삼박자
<볼X핏>은 작은 공을 발사해 다가오는 블록을 마구 파괴하는 벽돌깨기의 기본에 충실한 게임이자 두 가지를 합쳐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조합의 재미를 아주 잘 살린 훌륭한 인디 게임이다.
일단 발사된 공이 마구 움직이며 화면을 가득 메운 몬스터 블록들을 한꺼번에 파괴하는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기본적인 골자에 있어서는 뱀서라이크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직접 공을 진화시키거나 융합시키며 다양한 조합을 찾는 과정과 두 캐릭터의 조합으로 게임의 양상을 다양하게 풀어나가는 과정이 대단히 흥미롭다. 여기에 기지 건설과 벽돌깨기의 순환으로 깊은 몰입을 유발하는 게임 디자인 역시 높게 평가할 만하다.
핀볼처럼 작은 공을 쏘아 무언가를 맞춰 점수를 획득하는 게임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능히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핀볼이나 파칭코 같은 오락 기기가 아니라도 짧은 시간에 강렬한 도파민의 분출을 원하는 이들 역시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게임이다.
나아가 꼭 작은 공을 사용하는 게임이 아닐 지라도 빠른 순환과 그로 인해 깊게 몰입할 수 있는 게임을 찾는 이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고, 뱀서라이크 계열 게임의 또 다른 재해석을 찾는 이들에게도 권장하고프다. 길게 말할 것 없이 단순하게 재미있는 게임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이 게임이 매우 만족스럽게 다가올 것이라 자신있게 보장한다.

- '조합'이라는 소재에 다분히 충실한 게임 시스템
- 벽돌깨기와 기지 건설의 순조로운 순환
- 제멋대로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존재
쿠타르크 (블로거)
2014년부터 10년째 인디게임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1,000건이 넘는 게임 리뷰를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