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게임사가 <삼국사기>를 찾아 읽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는 ‘역설사’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시뮬레이션 게임의 명가 패러독스 인터랙티브가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도쿄게임쇼 2025(TSG 2025)에 모습을 비췄다. <유로파 유니버설리스>부터 <빅토리아>, <하츠 오브 아이언> 등 유럽의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다뤄왔던 이들이 갑자기 바다 건너 일본을 찾은 이유가 있다. 바로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3>의 신규 DLC가 동아시아를 주무대로 하기 때문이다.
이번 DLC에서는 미얀마, 몽골을 넘어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까지 추가되어 게임 속 세계가 30% 이상 확장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만다라 제도를 바탕으로 주변 국가들을 모두 통합해 거대한 제국이 형성되고, 중국에서는 하늘의 명을 받들어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가 탄생하는 등 국가와 지역에 맞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한다.
역사적 고증을 중시하는 역설사가 이를 가볍게 다룰 리는 없을 터. 사실적인 역사 구현을 위해 이들은 한국의 <삼국사기>등 수많은 역사적 문헌을 참고하고 있다. 이들이 멀고도 낯선 동양의 삶과 역사에 시선을 돌린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독특한 동양의 문화를 이해하고 게임으로 녹여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개발자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루시아 제디티 프로듀서(왼쪽)와 리아드 대네시 QA 매니저(오른쪽)
Q. DLC 제목인 ‘All Under Heaven’은 어떤 의미인가?
A. 루시아 제디티: 한자 ‘天下’의 영문 번역이 “All Under Heaven(하늘 아래 온 세상)”이다.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 3국을 테마로 한 이번 DLC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좋은 표현은 없을 것이라 생각해 이번 DLC의 제목으로 결정하게 됐다.
Q. 그렇다면 굳이 바다 건너 스웨덴에 있는 게임 개발사가 동아시아 3국을 소재로 한 DLC를 개발하게 된 이유는?
A. 루시아 제디티: 동아시아도 유럽만큼이나 넓은 지역이고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곳이기도 하다. 처음 게임을 만들 때부터 동아시아 지역을 다루고 싶었지만 문화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굉장히 낯설었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다루기 위해선 정말 많은 조사가 필요했다.
Q. 동아시아 역사를 다루기 위해 참고한 문헌이 있는지?
A. 리아드 대네시: 유럽에서는 전쟁과 화재로 인해서 관련 문헌이 많이 유실되었지만, 동아시아 같은 경우는 정말 특정 사안에 대해 교차 검증이 가능할 정도로 역사적인 문헌들이 정말 많이 남아 있다. 고려의 역사를 다룰 때는 <고려사>, <삼국사기>, <동국통감> 등의 문헌을 참고했다.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의 역사를 조사할 때는 서양의 해석보다는 주로 그 나라에서 편찬된 자료를 참고하려고 노력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스톡홀름의 한국문화원과 한국의 유관 기관에 도움을 받아 최대한 많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국 커뮤니티의 도움도 정말 많이 받았다. 역사 고증과 번역 같은 작업을 진행할 때 많은 피드백을 보내주신다. 덕분에 더욱 사실적으로 역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Q. 관련 문헌들을 조사하고 이를 게임에 구현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누군가는 의복 관련 문헌을 조사하고, 누군가는 해당 국가의 영토에 대해 조사하는 등 부서마다 조사하는 영역이 달라서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그래도 최소 1년 이상은 관련 자료를 조사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 한반도에 위치한 고려
Q. 사실 동아시아 3국은 문화적으로 정말 가깝지만 그래서 더 역사 문제에 민감하기도 하다. 일본과의 독도 관련 분쟁, 중국의 동북공정 등 유저들이 ‘긁힐만한’ 부분들이 정말 많은데.
A. 루시아 제디티: 고증에 민감한 것은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도 지역 또는 국가별로 아이덴티티가 다른데, 이걸 잘못 표시하면 곧장 피드백이 돌아온다. 이런 고증 관련 피드백에는 최대한 빠르게 확인하고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실제로 이번 TGS 현장에서도 부스를 찾은 한국 유저들이 캐릭터의 복장과 헤어 스타일을 한국식으로 바꿔 달라는 요청을 보내주셨고, 관련 조사를 통해 추가할 계획이다. 이런 유저들의 관심 하나하나가 더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역사를 구현할 수 있게 만들 수 있게 돕는다.
Q. 동아시아 삼국은 유교 사상을 중시했다. 유교는 일종의 종교이면서 동시에 도덕관이자 정치관이기도 한데, 이렇게 복잡한 개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궁금하다.
A. 루시아 제디티: 동아시아에서 유교는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과 게임을 통해 이를 묘사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유교가 동아시아 국가의 거의 모든 문화에 내재되어 있기에 게임 메커니즘의 한계 내에서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그렇기에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가깝게 묘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군주를 성군으로 인정하고,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을 했을 때 유학자들의 충성도가 오르는 것 같은 요소들을 게임 속 요소로 구현해 냈다.
▶ 아직 번역은 완벽하지 않지만 유교 사상도 제대로 구현되어 있다.
Q. 사실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는 한국의 아침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막장 전개’로 유명하다. 자기 가문의 세력을 키우고 유지시키는 과정에서 근친혼이나 존속 살해 같은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인데, 문제는 유교 사상에서는 이런 행동들이 도덕적으로 금기시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런 행동들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궁금하다.
A. 리아드 대네시: 굉장히 재밌는 질문이다. <크루세이더 킹즈>에서 플레이어는 한 가문의 일원이 되어 게임으로 구현된 역사 속에서 가문의 번영을 위해 행동하고 선택해야 한다. 때로는 극단적이고 비도덕적인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양한 문화적 특성과 행동들을 섬세하게 게임 속에 구현해 뒀다. 앞서 말한 것들도 모두 구현되어 있다. 가문의 이익을 위해 부도덕한 선택을 하든, 반대로 신념에 따라 도덕적인 선택을 하든 자유다.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플레이어 당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 이런 막장스러운 선택이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의 묘미다.
Q. 실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시점도 정확하게 구현되어 있나? 만약 그렇다면 특정 시기에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것을 미리 예측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A. 루시아 제디티: 모든 사건은 아니지만, 중요한 사건들의 발생 시기는 사실에 맞게 구현되어 있다. 역사를 잘 알고 있다면 이를 활용해서 중대한 위기를 대비하거나 역사의 명운을 바꾸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Q. 끝으로, 이번 DLC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의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A. 리아드 대네시: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에서 동아시아 지역을 최초로 선보일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준 한국 커뮤니티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열정적인 한국 유저들이 한국의 역사를 직접 플레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기대된다.
루시아 제디티: 지금까지 보내주신 한국 커뮤니티와 팬들의 성원에 감사드린다. 여러분의 피드백이 게임 개발에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이번 DLC도 많이 즐겨주시고 많은 피드백 보내주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