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전'이라고 곧잘 즐겨 부르는 국제전자상가. 이 단어를 보면 많은 게이머들이 추억에 빠질 것이다. 개관 이후 무수히 많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구하러 (또는 CD를 팔러) 이 상가를 오갔다. 기자는 국전보다는 용산파였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것이 있을 때면 3호선으로 갈아타고 한강을 건넜다. 지금도 국전 9층의 게임샵은 '성지'로 여겨지며 성업 중이지만, 디지털 다운로드(DL)가 CD보다 흔한 요즘 국전의 분위기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인상이 있다.
이 '국전' 지하상가의 어느 한 켠에서 게임 개발을 이어나가는 회사가 있다. 10여 명 규모의 스타트업 '슈퍼빌런랩스'로 최근 첫 게임으로 방치형 액션 RPG <슈빌: 슈퍼빌런 원티드>를 통해 글로벌 시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넥슨, 엔픽셀, 라인게임즈 등 주요 게임사를 거쳐 창업한 이성준 대표는 "게임 본연의 재미"를 강조하며, 에어브릿지를 통한 데이터 기반 운영과 글로벌 커뮤니티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 '빌런'들은 왜 모였는지, 그리고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들어봤다.

Q. 디스이즈게임: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이성준 대표: 공동대표 이성준이다. 게임업계에서 12년 동안 일했다. 처음에는 니트로 스튜디오에서 해외사업 BD를 맡으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라인게임즈에서 퍼블리싱을 경험했고, 데브시스터즈 자회사인 메이커스게임즈에서는 창업 멤버로 참여했다. 직전에는 엔픽셀 블록체인 사업 본부에서 일하다가, 그 팀이 나와서 새롭게 창업한 것이 지금의 슈퍼빌런랩스다.
Q. 지하에 있는 게임사는 처음 와본다. 진짜 빌런 같은 느낌이랄까?(슈퍼빌런랩스는 국전 지하 공유오피스에 위치하고 있다.)
A: 비가 와도 비를 맞지 않는다. (웃음) 건물에 개방감이 있어서 답답하다는 느낌은 덜하다. 지하철과 바로 연결되어 좋은 점도 있다.
Q. 회사가 어떤 곳이냐고 물어보면 '웹3게임을 하는 곳'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요즘 블록체인 게임 시장 전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A: 우리는 토큰 비즈니스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가 아니다. 게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유저 데이터를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는 팀이다. 그렇다 보니 정체성은 블록체인이나 토큰보다는 게임 시장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그랑사가> 블록체인 버전을 준비할 때도 결국 중요한 건 '만들고 싶은 게임'이 있었고, 그걸 구현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인프라를 활용한 것이었다. 슈퍼빌런랩스 역시 같은 맥락에서 게임 제작에 방점을 찍고 있다.
Q. 웹3와 관련해 컴투스홀딩스와 협업 중이기도 하다. 웹3와 P2E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A: 웹3라는 키워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집중하는 포인트는 P2E가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 유저가 자신이 보유한 게임 자산을 계정 창고처럼 안전하게 저장하고, 필요할 때 거래할 수 있는 구조다. 과거 <디아블로>의 아이템 창고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컴투스홀딩스와는 웹3 플랫폼 'PLAY3'를 중심으로 협업 중이다. 해외 유저들이 많은 만큼, 그 안에서 다양한 이벤트와 미션을 진행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더 나아가, 이제는 게임사가 회원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자체 회원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큰 아젠다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 출시할 타이틀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Q. '만들고 싶은 게임'을 강조했는데, 그 결과가 첫 게임 <슈빌: 슈퍼빌런 원티드>(슈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방치형 RPG 장르는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세가 뚜렷했다가 한 풀 꺾인 느낌인데, 이 장르의 매력과 앞으로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A: 지금 모바일게임 시장은 점점 양극화되고 있다. 한쪽에는 하이퍼캐주얼 장르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IP를 확보해 대규모 자본으로 만드는 AAA 대작이 있다. 과거 40~50명 규모의 팀이 수집형 RPG를 제작하며 시장의 중간 레이어를 채우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저희 팀은 PC MMORPG 경험이 있는 멤버들이 모여 있고, 자연스럽게 RPG 장르에서 풀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대규모 MMO를 곧바로 제작하기보다는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선택해야 했고, 모바일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단일 국가만으로는 시장을 키우기 어려운 만큼, 캐주얼 감성을 지닌 모바일 RPG를 선택해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Q. <슈빌>의 성과를 소개한다면.
A: 글로벌에서 약 3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매출도 조금씩 상승세를 타고 있으며, 유저층도 점차 두터워지고 있다. 대규모 퍼블리셔를 두지 않고 직접 퍼블리싱을 하다 보니 마케팅 예산을 크게 집행하기는 어렵다. 대신 커뮤니티 기반으로 트래픽을 만들어가는 전략을 택했다.
디스코드나 SNS, 페이스북 같은 채널을 활용해 개발 과정과 업데이트 준비 상황을 공유하고, 유저와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확산을 유도하고 있다. 대형 인플루언서보다는 팔로워 1,000~2,000명 규모의 소규모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해 글로벌에서 조금씩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Q. 방치형 RPG가 많아도 너무 많다. 플레이어조차 화면만 보고 이 게임이 무슨 게임인지 단박에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슈빌>의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인가.
A: RPG의 전형적인 구조는 영웅을 수집해 덱을 구성하고 전투하는 클리셰다. 우리는 이를 빌런의 시각으로 비틀었다. 슈퍼빌런 회사라는 콘셉트를 세우고, 동료 빌런들을 모아 히어로를 무찌르는 내러티브를 담았다. 인턴부터 시작해 사장까지 승진하는 과정 자체를 게임 플레이에 녹였다는 점도 차별점이다.
최근에는 단순 방치형 RPG의 문법을 따르는 데서 벗어나, 소셜 기능을 도입해 유저들이 게임 안에서 다양한 회사 사람들을 만나고 협업할 수 있도록 확장했다. 단순히 전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세대가 관심을 가지는 키워드와 문법을 RPG 안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여낼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Q. <슈빌>의 리텐션 성과는 어느 정도인가.
A: 디원(D+1) 리텐션은 30% 초중반대에서 형성되어 있다. 과거 잘되는 수집형 RPG들은 50~60%까지 기록했지만 점진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모바일 게임은 니치한 취향을 맞추는 구조라 초기 지표는 낮을 수 있지만, 오히려 D+14 이후 완만하게 유지되거나 오르는 패턴이 나타난다. 핵심은 초기 이탈을 최소화하고, 이후 꾸준히 남는 유저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Q. 글로벌 서비스에서 인상 깊은 경험이 있었는가.
A: 5월 글로벌 론칭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슬라임을 잡으면서 300년…> 2기와 콜라보를 진행했다. 시기적으로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에서 방영되고 있었고, 작가분들도 협력해 주셔서 일본에서 좋은 성과가 나올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실제로 가장 큰 반응은 오히려 영어권에서 나왔다. 지금은 미국, 캐나다, 영국, 홍콩 등 영어권 유저들이 주력이고, 실제 유저 풀에서도 미국 비중이 가장 높다. 현재 마케팅 역시 영어권 중심으로 집중하고 있다.
Q. 태국에서 스스로 <슈빌>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했다고.
A: 태국에서 소프트 론칭을 했을 때 한 유저가 직접 '슈퍼빌런 원티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했다. (Q. 태국은 아직 페이스북이 대장인가? A. 그렇다.) 그 유저께서 우리 공지를 번역해 올리고 유저들과 정보를 공유해줬는데, 그 계정이 4천 명 이상을 모았다.
우리는 그 유저와 협력해 마케팅을 진행했다. 이런 커뮤니티 기반 마케팅은 동남아 시장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미국, 한국, 일본처럼 이미 최적화된 시장에서는 인풋 대비 매출이 계산되지만, 동남아나 인도, 라틴아메리카는 단가가 낮고 구매력이 약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커뮤니티를 직접 키우거나 협업하는 방식이 초기 트래픽을 모으는 데 중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 준비 중인 타이틀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A: <슈빌> 에셋을 활용해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인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MMORPG를 개발하려는 계획도 여전히 유효하다.
<로블록스>를 보면 다양한 모드가 공존하는데, 우리도 RPG적인 내러티브를 담은 모드를 만들어보고 싶다. 현재는 프로토 단계까지 개발이 진행되었고, 앞으로 확장 과정에서 인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모바일 타이틀의 경우 AI 공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모든 걸 AI로 대체할 수는 없지만, 2024년 6월부터는 파이프라인을 만들기 위해 인하우스에서 API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테크니컬 아티스트들이 직접 AI 기반 툴을 다루도록 준비 중이다.

Q. 마케팅 분석 솔루션으로 에어브릿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이전에는 다른 툴을 사용했는데, 마케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측정 툴은 필수적이었다. 다만 실제로 필요한 기능을 연동하고 데이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다른 팀을 통해 에어브릿지를 소개받았고, 연동이 간단하고 우리가 원하는 데이터와 기능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 현재까지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Q. 실제로 사용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유용했는가.
A: 여러 마케팅 채널을 연동할 수 있다는 점이 크다. 구글, 메타, 트위터 등 다양한 채널 데이터를 손쉽게 연결하고, 그 정보를 추적해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었다. 특히 구글이나 애플의 결제 데이터 독점이 풀리면서 이를 트래킹하는 것도 수월했다. 기능적인 장점 외에도, 다른 게임사들의 유즈케이스를 공유받을 수 있는 점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인하우스 마케팅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질문하고 조언을 얻을 수 있는 환경 자체가 강점이라고 느꼈다.
Q. 구체적인 활용 사례를 소개한다면.
A: 에어브릿지를 통해 소재별로 어떤 유저가 게임을 오래 즐기는지 분석하고, 이를 업데이트 방향성에 반영하고 있다. 퍼널 분석을 통해 초기 경험에서 이탈하는 지점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작업도 가능하다.
<슈빌>의 대규모 업데이트였던 '광장' 기능을 예로 들면, 방치형 RPG 특성상 메뉴 안에서만 진행되던 게임을 벗어나 MMO적 소셜 공간을 도입했다. 이를 마케팅 소재로 삼아 광고를 집행하고, 실제 유저 반응을 분석하면서 기능이 제대로 안착했는지를 판단했다.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던 덕분에 큰 변화가 있더라도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었다.
Q. 최근 구글플레이 창구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
A: 데이터 기반 지원도 좋았지만, 가장 실질적으로 도움된 건 마케팅 피처드였다. 슈퍼빌런랩스는 해외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어서 국내 마케팅을 챙기기 어려웠는데, 창구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피처드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작은 개발사 입장에서는 대형 퍼블리셔처럼 전담 POC를 확보하기 힘든데, 창구 프로그램 덕분에 전담 창구가 생긴 것이 가장 편리했다.

Q. 과거 다른 매체 인터뷰에서 '게임의 본연적 재미'를 중요시한다고 역설했다. '게임의 본연적 재미'란 무엇인가.
A: 재미라는 것은 결국 유저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개발자가 의도한 요소가 있어도 유저가 즐겁지 않다면 재미가 없는 것이다. 캐릭터를 모으고 성취감을 느끼는 과정이 즐겁다면, 그것이 곧 본질적인 재미다. 우리는 이 경험을 어떻게 더 좋은 지표로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에어브릿지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은, 이런 재미를 더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Q. 아까 AI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나.
A: 개발 측면에서는 리소스 생산 파이프라인을 자동화하는 데 AI를 활용하고 있다. 제미나이 같은 툴을 통해 기본적인 리소스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고, 이를 인하우스 API로 연결해 테크니컬 아티스트가 직접 다룰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업적으로는 소셜미디어 운영에서 AI를 적극 도입했다. 사람이 일일이 작성하기 어려운 포스팅이나 콘텐츠를 AI가 보조해주면서 효율이 크게 올라갔다. 마케팅 소재를 분석하고 추천하는 기능도 자체적으로 개발 중이다. 인력이 많지 않은 만큼, 루틴한 업무를 AI로 줄이고 전략적 판단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Q. IP 콜라보 계획이 있다면.
A: 3~4개월 주기로 꾸준히 콜라보를 진행하려고 한다. 태국에서 소프트 론칭을 했을 때 웹툰 IP가 잘 맞았던 사례도 있었다. 앞으로도 유저 성향에 맞는 다양한 IP와 협업을 시도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포켓몬 같은 IP를 활용한다고 하면, 슈빌의 SD 캐릭터가 원형 검수를 거쳐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방식까지 고려할 수 있다.
Q. 앞으로 만들고 싶은 게임은 무엇인가.
A: 특정 장르에 국한되기보다 유저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싶다. 지금은 모바일 RPG를 기반으로 하지만, 전달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슈퍼빌런랩스를 설립하며 추구했던 건 남들이 하지 않는 접근을 통해 팬덤을 구축하는 것이다. <슈빌> 콘셉트처럼 빌런을 주제로 한 RPG를 보여주면서, MMORPG의 기존 구조도 짧은 시간 안에 더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바꿔보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만의 팬덤을 만들어가는 회사가 되고 싶다.

이 인터뷰는 TIG와 AB180이 함께 제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