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기자지만 뉴스 보는 게 그리 즐겁지 않은 요즘이다. 연일 불편한 소식만 가득하다. 특정 국가를 가릴 것 없이 국제 정세는 불안하고, AI와 일자리 경제 흐름에 대한 미래 예견들도 디스토피아 소설 속 인물로 사는 것만 같아 기분이 께름칙해질 때가 많다. 이제 기상캐스터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모 방송국의 속내를 차치하더라도, 일기예보 보는 것조차도 이상기후 등으로 인해 혼돈이다.
사실 세상 자체가 망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이상한 종말론이나 세계의 리셋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노, 아임 낫 어 휴먼>이라는 게임은 게이머들에게 꽤나 익숙한 문법으로 무서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몸 담고 있는 세계 전체가 이상하다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아마 역대급 여름 폭염 앞에서 모두가 한 번쯤 해봤을 상상인 “태양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하는 위기감에서 게임은 시작된다. 비정상적으로 뜨거워진 태양에 낮 시간엔 야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고, 세계는 매캐한 연기와 불길로 가득하다. 혼돈의 세상 속에서 밤이 되면 다음 날 해를 피할 공간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 그 안엔 ‘방문자’라는 사람의 형상을 한 괴물들도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흉흉하기 때문에 혼자 버틸 수는 없는 상황. “사람을 꼭 집에 들여야 한다”는 조건 속에서 당신은 믿을 수 있을 만한 ‘사람’과 절대 집에 들여선 안 될 ‘방문자’를 구분할 수 있을까. 이 기괴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 인간도 못 믿겠는데 괴물이라니
태양 활동에 이상이 생기면서, 낮 시간엔 야외를 나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창밖을 내다보는 것조차 위험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유일하게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시간은 ‘밤’. 문제는 그 밤마저도 지저에서 나온 괴물이라 추정되는 ‘방문자’들로 인해 혼돈의 시간이 됐다는 것이다.
밤이 되면 플레이어의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 잔혹한 세상에서 제발 자신을 들여보내달라 애원하는 사람들. 그 중엔 첫인상만으론 구분하기 어려운 ‘방문자’(괴물)들도 섞여 있다. 당신은 이들을 집에 들일지 말지, 집에 들여왔다면 낮 시간에 집 안에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심문, 검사를 하면서 ‘방문자’인지 ‘사람’인지 구별해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방문자’들은 집 안에서 살인을 일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이들에게 총을 쏴서 처단하는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아무도 집에 안 들이고 혼자 생존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수 있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게 문제다. 밤 중에 찾아오는 ‘방문자’ 중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집에 당신이 ‘혼자’ 있다는 게 확인되면 그 길로 당신에게 끔찍한 결말을 보여준다.
▲ 태양의 이상 현상 때문에 종말이 다가오는 세계
▲ 거기에 사람의 형상을 한 '방문자'들의 존재까지 더해져 혼란 그 자체다.
▲ 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문을 두드리는 존재들을 잘 걸러가며 집에 들여야만 한다.
▲ 아무도 못 믿겠다고 혼자 있어 보려 하는가? 아마 좋지 못한 결말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세계관의 설정에 맞게, 집 안에서 당신은 TV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 밤에 창밖으로 내다볼 수 있는 동태에 집중해야 한다. 이 세계관을 보는 것 자체로도 꽤나 재밌는 경험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 TV와 라디오에선 ‘방문자’와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여러 특징을 알려준다.
이상할 정도로 하얗고 고른 치아, 건선처럼 피부 질환이 생겼거나 털이 없는 겨드랑이, 충혈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눈, 흙이 묻은 더러운 손톱, 고름 같은 귀지가 나오는 귀, 아우라를 비춰주는 사진을 찍었을 때 반점 같은 얼룩이 나오는 존재들이 모두 ‘방문자’라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기괴한 세상에서 아프면 눈 좀 충혈될 수도 있고, 귀지 좀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가장 무서운 건 이 ‘방문자’와 접촉한 사람도 ‘방문자’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소문이다. 게임에선 낮 시간에 집 안에 있는 인물들의 증상을 확인할 수 있는 횟수(에너지) 제한이 있는데, 플레이어 자신의 몸도 화장실 거울 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당신 본인도 ‘방문자’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 '방문자'로 의심할 만한 여러 조건을 계속해서 방송이 알려준다.
▲ 글쎄... 이건 이가 누런 걸까 하얀 걸까. 경험의 힘도 중요하다.
▲ 사람인지 여부를 떠나 못 미더운 인간들 뿐이다.
▲ 필요하다 판단된다면 사살해야 할 때도 있다.
▲ 내 몸은 언제 이렇게 변한 걸까. 씻으면 낫는 걸까.
세상이 이 모양이다 보니, ‘사람’들 조차도 기구한 사연과 배경, 이상한 성격을 가진 자들이 많다. 정상인이라 할 만한 사람이 있기나 한가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이들을 걸러가며 집에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홀로 남은 당신 마저 살해당할 테니까. 그 와중에 당국에선 기이한 현상의 조사를 핑계로 당신이 데리고 있던 인원들을 ‘확인’해봐야 한다며 계속해서 데려가기까지 한다.
과연 당신은 이 혼돈의 세계에서 끝까지 생존할 수 있을까. 사람만 집에 남기는 과정에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만 할 수 있을까.

# 기막힌 아트와 세계, 하지만…
<노, 아임 낫 어 휴먼>의 세계관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하나 같이 모두 미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나 각자의 이야기들도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마치 <페이퍼 플리즈>나 <댓츠 낫 마이 네이버>처럼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정보와 상대를 비교하며 끊임 없이 의심하는 과정도 잘 짜여진 편이다.(특히 명쾌한 정답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 미스터리의 깊이가 더해진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여러 탄탄한 요소들이 있다. 척 봐도 느낄 수 있는 기괴하고 독특한 아트 스타일부터, 세계를 보고 반응하는 대사와 그 번역 퀄리티까지 모두 이게 인디게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긴장감을 잘 유지시켜주는 기묘한 사운드와 음악도 마찬가지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고양이’도 꽤나 중요하게 등장하며, 이 고양이를 비롯한 특정 조건이 마련되면 카펫 아래에 지하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는 설정까지만 말씀드려도 게임이 지향하는 미스터리의 방향성이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첫 설정 이상으로 깊다는 걸 금방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번역이 깨진 게 아니라 당신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거나 라디오 수신이 원활치 못하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텍스트를 깨트려 놓기도 한다. 딱 절묘한 공간에 말이다. 그만큼 현지화가 공들여서 잘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고양이 등장 전후로 게임 플레이의 흐름도 조금 달라진다.
▲ 바깥에 어떤 혼란이 펼쳐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과정도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 믿을 수 없긴 마찬가지인 연재청의 조사원들도 당신의 계획을 계속 위협한다.
그런데 몇 안 되는 단점이 발목을 잡는다. 일단, 이 게임은 매 순간 굉장히 많은 선택지를 플레이어에게 던져주고, 그 선택의 연속으로 매우 다양한 멀티 엔딩으로 도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다회차 플레이도 요구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정식 출시 버전을 기준으로, 이 다회차 플레이의 편의성이 그리 잘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게임에서 매우 드문 조건으로 습득할 수 있는 ‘콤부차’ 아이템은 게임 진행 상황을 저장할 수 있는 유일한 아이템인데, 평범한 회차에선 기본으로 1개 주어지는 ‘콤부차’ 외엔 거의 저장 없이 1시간~2시간 가까운 플레이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 문제의 '콤부차'...
참고로 이전 회차에서 본 내용이 다음 회차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면 안 된다. 가령 TV나 라디오를 통해 얻는 ‘전화번호’는 게임에서 꽤 중요한 요소로 쓰이는데, 지금 진행하는 회차에서 당신이 아직 몰라야 정상인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수화기 너머 대상이 알아차리고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스토리 진행에 필요한 몇몇 고정된 인간 및 방문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이전 회차에서 방문자였다고 또 방문자라는 보장이 없는 랜덤 설정 방식을 따르고 있기도 하다. 그 불확실함과 긴장감이 게임의 핵심 요소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선 이 반복 플레이가 다소 루즈하다 느낄 수도 있다.
▲ 겉만 보곤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이전 회차의 기억으로 플레이할 수 없는 구조다. 아무도 믿지 말 것!
▲ 그것이 설령 TV와 라디오에서 들은 소식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이 보여주는 굉장히 흥미로운 세계관과 독특한 분위기, 기괴한 인간 군상을 직접 체험하는 과정 자체가 ‘미스터리’ 애호가들에겐 즐거운 시간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플레이해보시라 권하고 싶다. 스팀 정가 16,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만약 이 게임의 ‘플레이 방식’보다 ‘세계관’이 더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라면 스팀 페이지에서 꾸러미로 함께 묶어서 소개되고 있는, 혜성에서 나오는 우주선(코스믹 레이)로 인해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설정을 가진 <룩 아웃사이드>라는 게임을 꼭 해보시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얼핏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룩 아웃사이드> 쪽이 훨씬 더 명작에 가까우니 이 기회에 두 게임을 모두 해보셔도 좋을 것이다.
추적추적 비가 오다 말다 하는 우중충한 날씨에, <노, 아임 낫 어 휴먼>의 흥미로운 세계에서 잠시 스트레스를 풀어보면 어떨까.
문을 두드리는 존재가 사람인지 아닌지조차 믿을 수 없는 세계에서 어쩔 수 없이 그 상대를 집에 들였다가, 전혀 믿지 못할 존재라 생각한 녀석들이 사실 ‘인간’이었다는 상황을 마주하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가진 수 많은 ‘의심’과 ‘믿음’의 두께가 얼마나 얄팍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절망적인 세계에서 헛헛한 희망이 싹튼다. “아무 것도 믿지 말아라” 그 말 한 마디 만큼은 믿어도 괜찮은 진실이니까.
▲ 믿음이 사라진 세계에서 오히려 의심하기 위해 먼저 믿어봐야 하는 아이러니를 그리고 있다.
▲ 이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여러 의미에서 꽤나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

- 일관된 메시지. 아무도 믿지 마, 대신 믿어보려 노력은 해봐
- 개성 있는 아트, 술술 읽히는 텍스트
- 도전 과제와 멀티 엔딩 수집 자체로 재밌음
- '게임 플레이' 방식 자체로만 보면 다른 상위호환 게임들이 뇌리에 스쳐갈 수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