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ail 화면이 뜨자 어린 아들이 신나서 “빼일! 빼일!”을 외쳤다. 의아해서 엄마가 물었다. “Fail이 뭐야?” 아들이 말했다. “실패라는 뜻이야.” 다시 물었다. “그럼 실패는 뭔데?” 아들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건 다시 하라는 뜻이야!”
본지가 게임문화연구회와 함께 ‘제 1회 게임문화컨퍼런스’를 열었던 2012년 당시, 이영아 연세게임교육원 교수가 강연에서 말한 일화다.(원본이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를 통해 가서 확인해보시길 권한다) 굳이 13년 전 강연을 인용하는 이유는, 2025년 최대 화제작 중 하나인 <할로우 나이트: 실크송>을 이야기하는 데 이 ‘실패’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팀을 비롯한 각종 스토어를 폭파시킨 <실크송>에 때 아닌 ‘난이도’ 논쟁이 불거졌다. 첫 트레일러 공개 이후 6년, 그 사이 늙어버린 당신의 손을 탓하라는 사람들도 있고, 개발사 팀 체리가 너무 오랜 기간 개발하다 보니 웬만한 난도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소위 ‘썩은 물’이 되어서 그런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40시간 넘게 플레이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아름답다는 말을 수십 번 해도 모자랄 정도로 게임에 공을 들인 티도 많이 나고, 방대한 분량과 깨알 같은 디테일들에도 많이 놀랐다. 하지만 이 게임을 쉽사리 권하기엔 불쾌한 구간이 너무나도 많았다. 단순히 어려운 구간의 성취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이 고통도 당신이 견딜 수 있을까 시험하는 요소가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이하 리뷰엔 스포일러는 없다. 스크린샷도 일부러 초반 구간 위주로 구성했다. 무엇이 <실크송>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고, 또 무엇이 이토록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찬찬히 짚어보려한다.
# 걸음을 멈추면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들
2017년 2월 출시된 <할로우 나이트>는 <다크 소울>에 상당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죽은 자리에 영혼을 떨어트리고 오는데 이를 회수하지 않으면 지니고 있던 재화를 모두 잃는 시스템이나, 화톳불과 유사한 회복 및 세이브 포인트 역할을 하는 의자, 굉장히 매운 난도 등으로 인해 소위 ‘벌레 소울’로 불리며 컬트적인 인기를 끈 작품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전작 <할로우 나이트>도 이번 <실크송>도 가장 굵은 뿌리는 결국 ‘메트로배니아’ 장르다. 길찾기가 어렵다거나 갔던 곳을 또 가는 일이 잦은 것은 부차적인 문제고, 이 장르의 본질은 ‘능력이 길을 터주는 공간적 탐색의 재미’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데 있다. 세계를 알아가는 것 자체가 재밌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세계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줄까.
기자가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실크송>의 최대 장점은 의외로 ‘사운드’다. 알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겠지만 전작 <할로우 나이트> 때부터 벌레들의 음성이 매우 독특하기로 유명했다.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에서 효과음으로 자주 들으시던 ‘항냥냥’ 사운드도 <할로우 나이트> ‘산파’ 캐릭터의 음성 소스였을 정도니 말이다. <실크송>은 거기서 몇 단계는 더 진일보했다는 인상이다.
이번 <실크송>에 많이 등장하는 여러 배경들에 맞게 긴장감을 불러 일으켜주거나 장엄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음악들은 너무나도 걸출하다. 특히 일품인 것은 각종 효과음들인데, 종을 울리는 소리, (이번 작품에 특히 많이 등장하는) 금속에 부딪히거나 튕기는 소리, 타들어가는 소리, 바람소리 등이 귀를 즐겁게 해준다.
<실크송>에서 주인공을 맡은 ‘호넷’은 특정 구간 이후로 무기인 바늘과 실(실크)을 이용해 연주를 하는 기술을 활용하는데, 이 연주는 단순히 특정 문을 여는 등의 상호작용에 그치지 않고, 거의 모든 NPC와 함께 노래를 할 수 있는 소통방식으로 사용된다. 당연히 그 벌레 캐릭터들의 성우가 각기 다른 노래도 불러주고, 숨겨진 비화나 감정, 상황을 가사로 전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NPC가 아닌 몬스터도 같은 방식에 반응한다.
전작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들의 음성 대사(?) 처리 방식도 평범하지 않다. 개성 있는 동시에 퀄리티 높은 사운드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해봐야 할 작품 중 하나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애니메이션이나 아트도 길게 말하면 입아플 정도다. 1장, 2장의 분량만 해도 엄청나지만, 3장에서 본격적인 연출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실크송>을 제대로 깊게 즐기고 싶은 분들이라면 초반의 분위기에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파고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할로우 나이트> 출시 이후 7년의 시간을 투자한 작품인 만큼, 세계 곳곳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디테일로 가득하다. 스피드런 등의 형태로 빠르게 즐기는 것도 <할로우 나이트> 때부터 유구한 전통을 가진 방법이지만, 이렇게 방대한 세계를 조금 천천히 둘러보는 여유를 잠시 가져보는 것도 이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라 본다.

# 슈퍼 플레이?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유튜브나 인터넷 방송을 보다 보면 “어떻게 저런 슈퍼 플레이를 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고수들이 참 많다. <실크송>의 전투와 플랫포머 요소들은 누군가의 플레이를 보며 감탄했던 그 순간을 당신이 재현해야만 다음 공간으로 진행할 수 있게끔 요구하고 있다. 그걸 성공해내는 것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단적으로 이번 작품에서 ‘호넷’은 (특정 시점 이후) 망토를 활용해 천천히 체공하거나, 회복 기술을 공중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짧은 시간 공중에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기술이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해 이를 잘 활용해야 하는 구간 및 몬스터, 보스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로우 나이트> 때부터 많이 쓰이던 공중 하단 공격은 <실크송>의 기본 문장 기준 좁은 범위의 대각 하단 공격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풍선, 지면에 고정된 가시, 금속 재질의 공중 오브젝트 등을 튕겨내며 다시 체공하는 컨트롤을 하기도 까다로워졌다.(이를 상대적으로 쉽게 해주는 문장(공격 방식)도 존재하긴 한다)
프리딜 타이밍이 많지 않기 때문에, 틈이 날 때마다 공격을 하고 적들 사이를 피하며 회피 기동도 잘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공중 체공과 하단 공격이 ‘매우 자주’ 사용된다. 일반 몬스터도 보스도 빈틈을 잘 내어주지 않아, 이를 공략하려 여러 차례 도전하다보면 어느새 패턴을 숙지하고 당신의 컨트롤 실력도 상승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키보드 기준 하단 공격 입력이 잘 안 되는 짜증나는 상황들만 제외하면) 이 과정의 기본적인 손맛 자체야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편이고, 지독하긴 해도 보스나 몬스터들의 패턴을 눈에 담고 이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까지는 재밌는 편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배치하고 반복하느냐의 영역에 있다.

# 이 ‘실패’도 정말 즐거운 걸까?
출시 첫날 ‘압긍’으로 시작했던 <실크송> 스팀 평가는 현재 13만 개 스팀 리뷰 중 76%만 긍정적인 ‘대체로 긍정적’ 평가에 머무르고 있다. 중국어 번역 이슈도 한몫을 했지만, 다른 언어권 유저들도 동일하게 비판하는 지점들이 있다.
일단 재화와 관련된 문제가 있다. 전작에서 ‘지오’로 통일되어 있던 재화는, <실크송>에선 ‘묵주’와 ‘조각’으로 나뉘었는데, 이러한 재화를 드랍하지 않는 몬스터도 굉장히 많다.
물론, 아무 것도 드랍하지 않는 몬스터들도 체력을 회복하거나 특정 기술을 사용할 때 소모되는 ‘실크’(일종의 기력)를 채우는 샌드백 용도나, 하단 공격으로 튕겨내는 공중 발판 등으로 사용되긴 하지만, 잡몹들도 매우 강력하고 성가시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죽는 빈도만 늘어나게 하는 주범이 돼버렸다. 경험치나 레벨 같은 개념은 없기 때문에 전투를 피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 때가 더 많다.
이는 자연스럽게 ‘의자’(회복 및 세이브 포인트)의 배치와 해금에 대한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몇몇 구간의 의자 배치는 말 그대로 악랄하다 싶을 정도다.
대표적인 예시가 1장 마지막에 상대해야 할 보스와 그 직전의 의자 사이의 구간인데, 한 번만 실수하면 모래지옥에서 벌레들에게 2 대미지를 갉아먹히는 플랫포머로 가득하고 성가신 몬스터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재도전을 할 때마다 그 길을 지나가야 한다. 그 보스가 1장 최종 보스라는 걸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알 방도가 없긴 하다만, 만약 알고 있다면 보스를 죽인 후에 그 근처에 머무르지 않길 권한다. 그게 당신의 정신건강에 이롭다.

<실크송>에선 대부분의 경우 이 의자를 해금하는 데에도 ‘묵주’가 들어가는데, 죽기 직전에 살기 위한 열망 하나로 새로운 의자에 왔을 때 빈털터리인 상태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묵주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다시 떠나야 한다. 그 발걸음이 가벼울 리가 없다.
호넷의 체력은 5칸으로 시작해 매우 어려운 과정들을 통해 한 칸씩 늘어나길 반복하는데, DLC로 개발되려던 게임답게 <실크송>은 시작 구간부터 2 대미지를 주는 몬스터, 함정이 가득하다. 일부 보스 패턴이나 특정 함정이야 대미지가 높을 수 있겠지만, 호넷이 가해야 하는 공격의 횟수에 비해 적들의 공격은 너무 위협적이다. (물론 한 번의 회복에 3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반박도 존재한다)
특히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몬스터들이 너무 많다는 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몬스터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방이나, 잡몹을 소환하는 보스 몬스터들과 상대할 때, 날아다니는 잡몹들에게 부딪히거나 당해서 죽으면 그것만큼 억울한 게 또 없다. 일부 몬스터는 당신이 (컨트롤이 매우 좋다면) 할 수 있는 것처럼 패링을 해 공격을 튕겨내기도 하고,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맞춰 백무브를 써서 계속 피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호넷이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공격은 극히 제한적이다. ‘도구’나 특정 기술을 잘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되지만, 도구를 다 쓰고 제작할 때마다 소모되는 조각의 수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다.

이러니 꽤나 많은 유저들이 2 대미지를 주는 함정, 몬스터 일부를 1 대미지로 수정하거나 그 수를 조금 줄이고, 의자 배치 및 재화 수급을 조정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고 있는 것이다. 기자도 몇몇 불쾌한 구간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잡몹과 플랫포머가 더해져 <고양이 마리오> 수준의 스트레스를 주는 구간들도 호불호가 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팀 체리가 이번 게임을 ‘어렵게’ 만들려고 의도했다면 그것 자체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개발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누군가는 충분히 비판할 소지가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많은 유저들이 이를 두고 갑론을박을 할 때 ‘난이도’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 말하다 보니, 컨트롤이 부족한 스스로를 탓하라거나, 무지성 매운맛 추종자들 같은 공격적인 단어들이 양 극단에서 오가고 있다.
초반 구간에서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 ‘야수파리’ 전에는 도구를 채워갈 수 있게 조각을 드랍하는 몬스터들을 둔 게 친절한 디자인이었던 것처럼 개인적으론 지역, 구간 등에 따라 이 비판도 다 다르게 적용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불쾌함을 의도한 디자인인지는 팀 체리 본인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불쾌한 디자인에 대한 논쟁에 가려져 굉장히 많은 장점들의 언급이 묻히고 있는 상황이 안타까울 정도다. 메트로배니아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동기를 극히 제한해둔 초반 구간을 포함해 당신이 현재 가진 능력으로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설명이 아닌 몸으로 모두 알 수 있게 디자인한 것도 좋았고, 액션 게임으로서의 디테일도 동작과 상호작용 하나하나가 뛰어난 편이다.
그러나 이 게임이 주는 감동의 크기와 스트레스의 크기 중 어느 쪽이 더 큰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할로우 나이트>를 좋아했던 사람들, 화제의 <실크송>이 어떤 게임이고 얼마나 도전적인 어려움을 자랑하는지 궁금한 분들, 이 세계의 진가가 궁금한 분들이라면 꼭 한 번은 도전해봐야 할 작품이다.

기자에게 <실크송>은 죽음에 뛰어들길 좋아하는 불나방들의 영혼으로 빚은 독한 술처럼 느껴졌다. 빛깔도 향도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독주를 아무에게나 권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 취향과 성향의 경계에서 불쾌한 디자인 없이 명쾌한 디자인으로만 구분할 수 있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지금의 <실크송>은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리뷰 기사를 작성 중인 9월 9일 오후, 팀 체리는 다음 주 중에 버그 픽스와 일부 난이도 조절 패치가 있을 것이라 예고했다. <할로우 나이트> 때도 피드백을 받으며 더 나은 디자인으로 거듭났던 사례가 있는 만큼, 앞으로 <실크송>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좋은 술’로 거듭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 사운드 디자인의 교과서 아닐까
- 아기자기한 아트 안에서도 돋보이는 정교한 액션
- 가격 대비 엄청난 분량과 파고들 요소들
- 대미지 수치 조정을 해도 여전히 성가실 날아다니는 몬스터들
- 이번 작품의 정체성이기도 한 하단 공격 중심의 플랫포머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