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가 여러분의 일터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느끼는가. (게임 업계로 한정 짓지 않더라도) 채용 시장엔 혹한기가 찾아왔고, 멀쩡하던 외양간에도 피바람이 부는 곳이 많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불었던 폭풍을 기억해보시라. 몇 천 명씩 몇 차례를 내보내도 이 바람은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런가 하면 동시에 한쪽에선 나노 바나나가 대유행이다. 얼핏 표면적 현상만 보면 지브리 프로필 사진 유행 때 너도나도 사진을 제공했던 것과 유사한데, 이제는 더 광범위한 일반 대상 모두를 피규어, 3D 모델로 만들어보겠다는 호기심 아래 AI의 몸집을 키워주고 있다. AI가 이 데이터를 저장, 학습한다기보다는 많은 트래픽 속에서 이 처리 과정 자체를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쪽에 가깝다.
궁금해서 해본 게 죄인가. 당신을 탓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AI가 어디까지 발전했나 궁금해하는 그 호기심이 AI를 자라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러니다. 키를 잴 수록 키가 커지는 꼴이다. 일관성이 높아졌다고 인식률이 좋아졌다고 단순히 감탄할 문제일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칼럼의 요점을 먼저 남기고 시작하자면, AI 발전 앞에 평범함을 천하게만 보는 게으른 시각 대신, 무엇이 귀한지, 귀한 것에 대해 우린 얼마나 제대로 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내용을 전하려 한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인재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보니, 소 잃고도 외양간조차 고치지 못할 선택을 하고 있는 곳들이 너무 많이 보여 안타까울 뿐이다.
▲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 하청의 하청은 종말할지도 모른다
정말 하이엔드의 결과물을 추구하고 있거나, 아직은 AI의 손만 거친 상태로 고객에게 직접 전달하기 어려운 영역(광고, 마케팅, 게임 콘텐츠 중에서도 유저에게 직접 전해지는 최종 결과물 등)을 제외하고,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어보자. AI에 의한 잠식 앞으로 몇 년이 고비일까.
채색? 단순 배경? 물론 특정 콘셉트나 디테일하게 원하는 방향성이 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채워넣기만 하는 가성비를 원하는 이들도 있다. 비오 3, 나노 바나나 등의 기술 발전이 피부에 와닿을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산업 구조가 개편될지 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많다.
통역? 이번 게임스컴을 기점으로 확실히 느꼈다. 미국 현지인들과 나쁘지 않은 회화를 구사하는 카투사 출신의 기자조차도 유럽 권역의 액센트와 쪼를 모두 알아 듣기는 어려웠던 반면, AI는 99% 이상의 정확도로 그 말을 타이핑해줬다. 음성이 문서로 옮겨지면 사실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건 딜레이나 오역이 생길지 몰라도, 나눈 대화, 회의, 인터뷰를 정리하는 데에는 시간만 있다면 문제가 될 부분이 전혀 없다. 이전엔 90점의 언어능력이 있어야 원활했다면 지금은 60점만 되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멍청해도 좋은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구분할 눈과 귀만 있으면 충분히 움직일 만하다는 것이다.
▲ 통번역 업계가 AI 등장 이후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최근 들어 더 자주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당신이 주문, 요청, 명령하는 숙련도에 따라 제미나이를 비롯한 AI 툴들은 일에 드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줄 수 있다. 이 ‘명령’은 지금도 앞으로도 너무나 중요하다. 어디까지를 어떻게 어느 정도의 디테일로 꺼내달라 할 것인지 교통정리가 필수고, 그 답변을 다시 업무에 재적용하는 것도 여전히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자. 정말 빠른 시일 안에 소멸할 일이 태산이다. 당신이 명령과 응답의 테두리 안에 그대로 머무른다면 말이다.
# 어쩌면 기자도 하청의 하청일지 모릅니다
남 얘기하듯 들릴 수 있겠지만 기자라고 다르지 않을까. 지난 지스타 2024에서 북미 지역 등에서 온 해외 업계인과 만나 이런 질문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기자와 pr이 뭐가 다른가요? 미디어 쪽 사람이 아니면 충분히 궁금해 할 만한 질문이다. 심지어 기자 중에도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일단, 기자의 펜촉은 우호적일 수도 비판적일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어디까지나 관찰자고 견제자다. 어느 회사가 잘 된다고 보너스를 받거나 망한다고 피를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할 말을 얼마나 세련되게 하느냐, 얼마나 깊이 있는 취재로 공감할 만한 관점을 보여주느냐의 차이로 기자의 역량이 나뉜다.
그러나 이런 기자들의 글마저도 AI의 인용 대상이 된다. 엄밀히 따지면 AI의 영구적 '학습' 대상이 되는 것과는 미묘하게 다르다고 AI 회사들은 주장하지만, AI가 색인을 남기며 모든 자료를 인용하는 방식만으로도 미디어 생태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유의미한 관점을 제시하던 사람들은 결국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 미디어 생태계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이미지 출처: 이라스토야)
잠시 다른 예를 보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 이후 정말 오만가지 주석이 붙었다. 과감하게 말해볼까. 업계를 관통한 ‘척’하던 그 수많은 분석글을 쓴 사람들이,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흥행 이전에 얼마나 많은 케이팝과 애니와 영화를 보셨는지 반문하고 싶다. 모르면 글쓰면 안 된다는 척사파가 아니다. 부정확한 사견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 세태를 말하는 것 뿐이다.
사실 강남스타일 때도, BTS 때도 비슷했다. 사람의 지적 과시욕을 누가 막겠냐만. AI도 사람도 그 의견의 질을 크게 따지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가장 호응이 좋은, 유명한 인사들의 말을 퍼나른다. 할루시네이션도 피할 수 없다. AI도 사람도 모두 불분명한 대세를 따른다. AI에게 <케데헌> 성공의 이유를 물어보시라. 말 못 하겠으면 그만하라 명령해도 어느 시점 이후 조금씩 거짓말이 섞여 나온다.
▲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웃기게도 그런 불완전한 하청을 우리는 신뢰한다. 아는 정보라면 걸러주면 된다. 손만 빠르고 일 못 하는 후배 쯤으로 생각하면 속도 편하다. 사람도 실수한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니 사람 자르자 그런 소리하는 칼럼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린 AI보다 얼마나 잘났나? 리더와 HR은 사람과 AI의 역량을 얼마나 잘 구분하는가? AI보다 더 나은 사람을 더 낫게 대접하나? 진짜 귀한 사람이 더 귀해져야 할 시점에 평범함이 천해지기만 하지 않았나? MS의 대량해고의 후폭풍을 Xbox 진영은 이겨낼까?
다시 묻자. AI가 뭘 잘 하냐는 실무자와 팀 단위에서 더 세밀히 따질 문제다. AI가 뭘 못 하냐를 리더와 HR이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정반대의 의사결정을 하는 곳이 너무 많다. 실무자들은 AI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보단 안 되는 일에 막힐 때의 답답함을 토로하기 바쁘고, 리더와 HR은 AI가 해줄 일에 대한 구체적 확신보다 막연한 기대만 크다. 그리고 마무리로 포장하는 말만 인력의 '대체'가 아닌 '보조'를 언급한다.
귀한 사람 다 놓치고 나중에 가서 AI 하청만 마냥 부르짖으면 뭐 하겠나. 하청의 하청은 사라질지 몰라도 원청은 유능한 하청을 계속 둬야 한다. 당신의 업무 비서로 AI를 두는 것과 외양간 고칠 겨를도 없이 직원을 모두 잃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다.
▲ 게임스컴과 데브컴 곳곳에서는 개발하고 있는 장르나 팀의 크기 등에 무관하게 어떻게 좋은 팀과 조직을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게임스컴에 가서 다시금 느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여전히 얼마나 중요한지 그 가치를 아는 게임사들은 좋은 인재 영입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그들의 공동 목표 함양에 얼마나 큰 뜻을 두는지. 빠른 변화에 혼란이 가득한 업계의 분위기만큼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논의가 수면 아래에서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업계 가리지 않고 매일 접하는 소식이니, 쉬는 인구가 많다거나, 퇴사 및 이직자들이 많은 점, 회사의 몸집을 줄이려 칼을 뽑아드는 곳들이 많은 점 등은 하나하나 더 나열하지 않겠다. 줄어든 외양간에 무엇이 남는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