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스컴이 성황리에 종료됐다. 지난해엔 33만 5천 명 규모였던 방문객은 올해 35만 7천 명으로 늘었고, 무려 1,568개 게임사가 참여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한국 게임사들의 활약도 기대 이상이었다. 출시 연기가 됐다곤 해도 펄어비스의 <붉은사막> 부스엔 많은 인파와 팬덤이 몰렸고, 크래프톤의 <펍지>와 <인조이>, <블라인드스팟> 등에 대한 글로벌 유저들의 관심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엔씨소프트의 <신더시티>를 비롯해 여러 작품들이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더 넓게 보자. 독일 게임스컴 현장에 다녀온 사람들도, 멀리서 ONL(오프닝 나이트 라이브)만 시청한 사람들도 “화려한데 왠지 모르게 아쉽다”는 말들을 계속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함’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다 알던 IP만 가득하다.
단적으로 말해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의 데브컴 강연들과 <할로우 나이트: 실크송>의 시연 및 출시일 공개가 게임스컴의 전체 소식 중 최대 화제였던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경각심을 높이는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전 세계 게임사들이 한 곳에 모이는 초대형 게임쇼에, 그리고 게임 업계의 미래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 쾰른 대성당 앞 광장의 전광판에서부터 게임스컴 2025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도시 전체의 열기가 뜨거웠다. 글로벌 게이머들의 관심도 마찬가지로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게임스컴 2025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었다.
우리가 증명하고 온 부분들
<붉은사막>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임스컴 어워드에서 무려 4개 부문에 후보작으로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고, 시연 부스에는 매우 긴 대기열이 형성될 정도로 인기가 굉장했다. 특히 작년에 왔던 게이머들이 <붉은사막> 티셔츠 등을 입고 다시 온 모습들도 인상적이었다.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 또한 글로벌 인기게임답게 플레이타임 인증 릴레이가 이어졌으며, <인조이>와 <펍지: 블라인드스팟>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즈>와 <인조이>, 기존 <배그>와 <블라인드스팟>을 비교하는 얄궂은 질문에도 <인조이>와 <블라인드스팟>의 매력에 손을 들어준 현장 시연 유저들의 반응도 주목할 만했다.
기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게임 중 하나는 엔씨소프트의 <신더시티>였다. <LLL(엘엘엘)>이었던 시절과는 몰라보게 달라져, 탄탄한 재미를 갖췄다는 평이 쏟아졌다.
<신더시티>의 빅파이어 게임즈 배재현 대표는 “한국 시장을 넘어 해외에서 통하는 게임을 만드는 건 오랜 꿈이었고, 슈팅과 SF가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는 만큼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싶다. 곧 국내에서도 대규모 테스트와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하기도 했다.
▲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호평을 받는 데 성공한 <신더시티>
▲ 몇 백에서 몇 천 시간의 플레이타임은 입문자에 속했던 <배그>의 글로벌 인기
▲ 엄청난 대기열이 형성됐던 <붉은사막> 부스
카카오게임즈도 오션드라이브 스튜디오의 <갓 세이브 버밍엄>을 필두로 글로벌 시장에 새로운 출사표를 던져 이목을 끌었다. 넷마블도 ONL에서부터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의 신규 트레일러부터 <제2의 나라> IP 신작 <프로젝트 블룸워커>가 깜짝 공개되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몬길: STAR DIVE> 시연도 글로벌 게이머들의 호평을 받았다.
<몬길: STAR DIVE> 넷마블몬스터 김건 대표는 “게임스컴은 글로벌 대작뿐 아니라 인디, 레트로 등 다양한 작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여러 게임을 보며 큰 자극을 받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인사이트도 얻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 독일에서도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몬길: STAR DIVE>
조영기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은 “게임스컴은 유럽의 지리적 입지와 방대한 인프라의 강점을 지닌 행사다. 이번 전시에서 국내 게임사들의 약진 또한 돋보였다”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 지스타는 규모의 경제로 승부하기보다 고유한 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느꼈다. 특히 G-CON을 명망 있는 행사이자 강력한 콘텐츠로 키워 해외 게임사와 글로벌 게이머들이 찾아오는 행사로 육성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지콘과 연계된 지스타 전시에 영향력 있는 국내외 게임사가 참여하도록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 <갓 세이브 버밍엄> 시연 현장
콘진원 한국공동관 이게 최선입니까
국산 인디게임들의 약진도 돋보인 게임스컴 2025였다. 특히 <모노웨이브>는 게임스컴 어워드 임팩트 게임 부문에 후보작으로 오르는 성과를 거두며 글로벌 게이머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는 데 성공했다.
원웨이티켓스튜디오 <미드나잇 워커스>, 스튜디오 두달 <솔라테리아> 등 다수의 게임들이 유럽 및 서구권 게이머들에게도 호평을 이끌어내며, 우리 인디게임들도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디 아레나 존 등에 개별로 출품하거나, <안녕서울: 이태원편> 등 네오위즈 퍼블리싱 작들을 모아둔 부스에서도 게이머들과의 접점을 만들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번 게임스컴에서 국산 인디게임이 가장 많이 모여있던 곳은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주관의 한국공동관 B2C, B2B 공간이다. 그러나 이 ‘한국공동관’이 좋지 못한 의미로 많이 입에 오르내린 게 참 안타깝다.
▲ 게임스컴 2025 한국공동관 B2C 전경
먼저 시연 버전의 USK(독일 등급분류) 기준 <미드나잇 워커스>는 18세, <백룸 컴퍼니>는 16세 이상 이용가였는데, 18세 이상 이용가 게임에만 적용되는 가림막 또는 가벽 안에서 시연하는 조건(16세는 반면만 오픈된 상태로도 시연 가능)을 두 게임에 동일하게 적용해 비좁은 곳에서 시연이 진행되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두 게임 모두 ‘협동’ 플레이를 중시하는 타이틀이라 PC가 4대씩 있었고 한 번에 드나드는 참관객이 많아 가벽의 좁은 입구 하나에서 어깨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USK 16세, 18세 이상 이용가 게임이 모두 가벽 안에 모였고, 둘 다 '협동' 게임이라서 시연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한국공동관 B2C 공간이 있던 위치는 인디게임들이 모여있던 10홀에서도 가장 우측 구석에 있어 부스 위치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모노웨이브>, <솔라테리아> 등 5개 게임이 현장에서 몸으로 뛰며 고군분투해서 게이머들의 이목을 잘 끌었던 덕에 부스 흥행이 저조하진 않았지만, 공동관의 디자인은 시연을 즐기는 사람, 대기 인원, 시연한 게임사들 모두에게 그리 쾌적하지 못한 공간으로 남았다.
▲ 개별 팀들이 고군분투한 끝에 부스 흥행은 저조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을 따름이다.
반대로 한국공동관 B2B 공간은 참가사 수에 비해 공간을 과도하게 넓게 쓰면서, 비는 공간이 너무 많은 점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일부 참가사들의 볼멘소리가 아니다. 한국공동관 B2C, B2B 공간을 오간 업계인들이 인디게임 취재를 하는 기자에게,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여러 차례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 반대로 B2B 쪽은 공간을 너무 효율적이지 못하게 사용해 빈축을 샀다.
게임스컴 한국공동관 전시는 모든 팀들에게 주어지는 흔한 기회가 아니다. 콘진원에게도 게임스컴은 중요한 핵심 전시 중 하나이긴 마찬가지다. 적잖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간 인디 팀들이 현장에서 정확히 어떤 지원을 필요로 하는지 조금 더 적극적인 소통을 진행해, 내년 게임스컴에선 이런 아쉬운 목소리가 적게 나올 수 있게끔 하는 조치가 절실히 필요해보인다.
화려하지만 신선하지 않은
이번엔 해외게임 전체까지 시야를 조금 더 넓혀보자. 분명 기대작이나 규모가 큰 타이틀이 엄청나게 많았음에도, 꽤 적잖은 게이머들과 업계인들이 “눈길을 끄는 신작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아쉬움은 모두 어디에서 봤던 게임들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이다. 신규 IP의 게임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있는 업계의 풍토가, 게이머들에게 봤던 걸 또 본다는 피로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게임스컴 어워드 4관왕을 거머쥔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이다. <바하> 시리즈에 대한 팬들의 애정과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지만, SGF에서도 나온 <바하 레퀴엠>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엔 이 시리즈의 문법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 ONL에서도 뜨거운 환호를 받은 <바하 레퀴엠>
주요 공개작 및 출품작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와우> 한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7>, 20여년의 세월을 넘어 돌아온 <귀무자: 웨이 오브 더 소드>, <월드 오브 탱크: 히트>, <로드 오브 더 폴른 2>, <아노 177: 팍스 로마나>, <소닉 레이싱 크로스월드>도 모두 존재 자체로는 새롭지만 “충격”을 주기엔 조금 부족한 익숙한 경험 위의 신선함이다.
그나마 IP를 기준으로 완전 신작이라고 할 만한 건 <프래그마타>, <페이트 트리거>, <듀엣 나이트 어비스>, <이환> 등의 게임이 있겠으나, 이들도 앞서 다른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할 수 있던 타이틀이다. 개발 기간이 긴 타이틀이 많은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결국 진짜 처음 공개됐다 싶은 타이틀은 <검은 신화: 오공>의 뒤를 잇는 <검은 신화: 종규>, <디스코 엘리시움>으로 유명한 자움의 신작 <제로 퍼레이드> 정도다.
▲ ONL 대미를 장식한 <검은 신화: 종규>
이러니 사람들의 관심은 <실크송>과 <포켓몬 레전즈 Z-A> 시연,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 강연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있는 <포켓몬 레전즈 Z-A>조차도 게임스컴보다 며칠 앞서 진행된 포켓몬 월드 챔피언십에서 데모 일부가 공개되어 따끈따끈한 정보도 아니었다. 정리하자면 데브컴의 주인공은 <33 원정대>, 게임스컴의 주인공은 <실크송>, 어워드의 주인공은 <바하 레퀴엠>으로 압축된 셈이다.
▲ <포켓몬 레전즈 Z-A> 시연 장면
▲ 결국 베일을 벗은 <실크송>은 시연과 함께 9월 4일 출시 일정도 공개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이미 성공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게임사들은 다들 기존 IP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 위주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하나의 게임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기본 비용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기대 매출이 안정적인 선택지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게이머들도 함께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고는 해도 이런 시리즈물, IP 기반의 게임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 본다.
개중에는 <포켓몬>처럼 신작이 나왔다 하면 계속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는 타이틀도, <젤다>처럼 혁신 위의 또 다른 혁신을 보여주는 타이틀도 있겠으나, 이 씬을 지켜보는 게이머들 입장에선 익숙한 얼굴만 계속보는 상황이 지칠 때도 됐다. 이번 게임스컴과 ONL에 대한 사람들의 조금은 미온적인 반응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 팬심으로 열광할 타이틀의 존재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신선한 충격을 기다리는 게이머들도 매우 많다. 하지만 이번 게임스컴 2025가 그러한 갈증을 해소시켜줬는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
이제 “신선함”은 스팀에서 몇 달에 한 번씩 나오는 인디게임 글로벌 성공 신화에서나 기대해야 하는 덕목이 된 걸까. 독일에 모인 글로벌 게이머들은 각자 본인이 좋아하"던" 게임의 부스에 가서 팬덤의 화력을 보여줬다. 그 자체로는 분명 뜨거운 분위기였으나,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새로운 피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에선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참고로, 기자 또한 <포켓몬>, <바하>를 비롯해 언급한 시리즈들을 애정하는 팬이긴 하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IP 중심, 시리즈물의 유효기간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5년, 10년 뒤의 게임스컴에서도 <바하> 시리즈가 여전히 상을 휩쓸고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까지도 업계의 건강한 체질 중 하나라고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번 게임스컴 2025의 특징 중 하나는 디지털 도달 범위가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특히 ONL은 7천 2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조회수가 80% 상승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잠을 포기하고 새벽에 ONL을 시청한 사람들, 지구 반대편 독일 현장까지 찾아간 사람들이 과연 어떤 것을 기대했을지, 게임스컴도 주요 게임사들도 모두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중요한 분기점에 와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