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게임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게임쇼를 보기 위해 오토바이로 400km를 20시간 동안 달릴 수 있을까? 베트남 게임버스 2025에는 그런 낭만 게이머가 있었다. 개막을 이틀 앞두고 게임쇼 일정이 갑자기 변경될 수 있을까? 베트남에선 그런 당황스러운 일도 벌어졌다.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고, 우리에겐 놀라운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개최된 올해로 3회 째를 맞는 게임버스는 이젠 어엿한 게임쇼의 틀을 갖췄다. 경품이 넘쳤고, 쇼걸과 코스프레가 즐비했으며, 게이머로 가득했다. 마치 초창기 지스타의 농축된 모습을 보는 듯했다. /베트남 호치민=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게임버스 2025 특집]
①오토바이로 나짱에서 호치민까지, 낭만이 살아 있는 게임버스 2025
②세계 1위 다운로드 베트남 게임이 이제 '베트남다움'을 찾는 이유
③43만 개발자 베트남은 '산업 협력' 원했는데, 한국은 '규제 노하우' 들고 갔다
④[포토뉴스] 게임버스 2025, 한국과 쇼걸, 경품과 불쌍한(?) 내 눈
개막 이틀 전, 일정이 바뀌다
"게임버스 일정이 하루 앞당겨졌어요."

5월 22일 목요일 오후, 호치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확인한 카카오톡 메시지다. 원래 5월 24-25일(토/일) 열릴 예정이던 게임쇼가 5월 23-24일(금/토)로 급하게 변경됐다. 개막 이틀 전의 일이다.
사정을 알아보니, 전 베트남 국가주석 쩐득르엉이 20일 늦은 밤 별세하면서 일요일에 국장(국가장례식)이 열리게 됐다. 이 기간에는 조기가 게양되고 스포츠나 문화예술 행사가 중단된다. 놀랍지만, 유교 문화가 강한 베트남에서는 당연한 일. 사실 한국도 국가장 기간에는 공공기관 주최 행사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적지 않다.
쩐득르엉(Tran Duc Luong)
1997~2006년 베트남 국가주석. 한국을 국빈 방문한 첫 베트남 주석으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외교를 통해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베트남전에 대한 한국의 사과에 화답하며 "과거는 뒤로하고 협력의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참가업체들은 목요일부터 부랴부랴 작업에 들어갔다. 부스 작업이 언제 끝날지, 게임쇼는 제시간에 열릴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금요일 오후 개막 예정이지만, 정확한 시간은 미정. '확정되면 알려주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날 밤 9시쯤, 다시 일정이 바뀌었다. 국장이 주말 동안 치러지게 되면서 게임쇼는 26~27일(월/화)로 연기됐다. 결국 귀국 비행기표와 숙소를 하루씩 연장해야 했다.

첫날(토요일) 저녁 예정됐던 '엑솔라 커넥트 호치민 2025' (위 사진)는 다행히 정상 진행됐다. 다만 당초 예정됐던 '요란스러웠을' DJ 파티는 취소되고, 밤 10시까지 조용히 진행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다.
베트남 업계 관계자들은 일정 변경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반면 한국에서 온 일부 업계인들은 게임쇼를 보지도 못한 채 귀국했다. 해외 인사들을 초청한 베트남 게임사 대표는 호텔 연장과 항공권 변경에 애를 먹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받아들였다.
나짱에서 호치민까지, 400km 오토바이의 낭만
응우옌후탄 씨는 5월 25일 오전, 나짱을 출발해 약 400km를 오토바이로 달려 사이공 전시 컨벤션 센터(SECC) 앞에 오전 4시 도착했다. 그는 게임버스 2025의 첫 참석자 중 한 명이다.
"친척 집에 들렀다 다시 운전했는데, 도착하니 20~30명이 대기 중이더군요. 하루뿐인 휴일이지만, 하루 종일 머무르며 행사를 즐길 겁니다. 힘들지만 의미 있는 일입니다. 내년엔 더 많은 국내 신생 퍼블리셔가 초청되길 바랍니다." (베트남 최대 매체 'VN익스프레스' 기사 중)
나짱에서 호치민까지 약 400km, 빈즈엉을 거쳐 왔으니 실제론 480km가 넘는다. 용산에서 남원을 거쳐 부산 벡스코까지 가는 셈이다. 낭만과 열정을 빼고 이 게이머를 설명할 수 있을까?
게임쇼가 평일로 연기되면서 관람객 수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기우였다. 4만 명이 몰렸다. 평일임에도 작년 주말과 같은 수준이다. 1억 인구 중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이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은 베트남의 저력을 보여줬다. 자녀와 동반한 가족 관람은 줄었지만, 젊은 관람객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베트남 현지 매체에 따르면 자정부터 SECC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베트남 게임 시장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행사장 앞 오토바이 주차장의 모습은 난생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2024년 9월 기준, 베트남 등록 오토바이는 7,700만 대. 인구 1,000명당 770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체 교통량의 약 85~90%가 오토바이다. 젊은 인구가 많은 것과도 연관된다.

행사 규모도 역대 최대였다. VNG, VTC 등 대형 부스를 포함해 100개 이상의 체험 부스가 열렸다. 첫 회(20개), 작년(50개)에 비해 두 배씩 늘어난 수치다. 한 부스는 2시간 만에 1만 개의 경품을 배포했다. 경품 가방을 든 관람객들이 몰린 일부 구역은 이동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부스 규모는 지스타보다 작았지만, 경품과 쇼걸은 지스타를 능가했다.
[관련기사] ④[포토뉴스] 게임버스 2025, 한국과 쇼걸, 경품과 불쌍한(?) 내 눈
극진하게 예우 받은 한국, 자신감 내뿜은 베트남
앞줄 가장 왼쪽이 레꽝뜨조 국장, 그 옆으로 유병한 이사장 등 한국 인사들.
게임버스 개회사는 문화체육관광부 방송전자정보국 레꽝뜨조(Le Quang Tu Do) 국장이 맡았다. 그는 한국 인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개회식에서 중앙 맨 앞줄 자리를 배정했다. 외국 공공기관 인사가 게임버스 개막식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테이프 커팅에는 베트남 게임 산업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고, 한국 게임문화재단 유병한 이사장도 함께했다. 게임버스 개막 전날인 5월 23일, 문체부 방송전자정보국과 게임문화재단·게임물관리위원회는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 한국문화원과 콘텐츠진흥원도 부스를 운영했다.
[관련기사] ③43만 개발자 베트남은 '산업 협력' 원했는데, 한국은 '규제 노하우' 들고 갔다

레 국장은 개회식 후 한국 부스를 가장 먼저 방문했고(위 사진), 이후 여러 부스를 돌면서도 유병한 이사장 등을 손수 챙겼다.
그는 첫날 게임포럼에서도 "베트남이 게임 분야의 글로벌 목적지로 성장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참가자들도 작년보다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공감했다.구글, 메타, 라이엇게임즈, 마스터카드 등의 글로벌 업체의 구애가 이어졌다.

하이퍼캐주얼게임의 강자 iKame Global 대표 꾸이엣응우옌(Nguyen Manh Quyet)는 2024년 전세계 모바일게임 다운로드 1위로 올라선 베트남 게임사의 성장을 이야기했다. VTC그룹 총괄이사 응우옌응옥바오(Nguyen Ngoc Bao)는 베트남 역사와 문화를 담은 국가 IP의 창출 필요성을 강조했고, 비엣레거시 이사 람후인팟(Lam Huynh Phat)은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 <하오키동아>(Hao Khi Dong A)의 개발 소식을 전했다.
[관련기사] ②'세계 1위 다운로드' 베트남 게임이 이제 '베트남다움'을 찾는 이유
게임버스 어워드: <실크로드 온라인 오리진> 3관왕!
첫날 밤 열린 '게임버스 어워드 2025'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관람객들은 자유롭게 무대 앞에 모여 앉았고, 수상작이 발표될 때마다 환호가 터졌다.
총 22개 부문에 걸쳐 330만 건이 넘는 유저 투표가 집계됐다. 2023년 270만, 2024년 300만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시상식을 통해 2025년 베트남 게임씬의 모습을 어느 정도 조망할 수 있었다.
Gosu 온라인 레탄민 대표(Le Thanh Minh)가 '올해의 베트남 게임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올해의 베트남 게임'은 <실크로드 온라인>(위메이드맥스) IP를 활용한 모바일게임 <실크로드 오리진 모바일>에게 돌아갔다. Gihot이 개발하고 Gosu 온라인이 퍼블리싱한 이 게임은 '베스트 게임플레이', '베스트 그래픽' 부문도 함께 수상해 3관왕을 기록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게임상'을 받은 iKame Global의 꾸이엣응우옌 대표(Nguyen Manh Quyet).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게임'은 iKame Global의 <우드 스크류 퍼즐>. 이 회사는 2024년 기준 세계 다운로드 5위 게임사로, '최고의 베트남 게임 개발사'로도 선정됐다.
'최고의 퍼블리셔' 부문은 VNG와 VTC가 공동 수상했다. VNG는 호치민 기반의 게임사로 텐센트의 투자를 받았고, VTC는 하노이에 본사를 둔 국영기업으로 <오디션>, <크로스파이어>, <실크로드 온라인> 등 한국 게임으로 성장한 회사다.
퍼펙트월드의 <소오강호>가 '올해의 게임', 호요버스의 <젠레스 존 제로>가 '베스트 모바일 게임'으로 선정됐다. 두 게임 모두 Gamota가 퍼블리싱한 중국산 게임이다.
쭉쭉 성장하는 게임버스, 크게 아쉬운 B2B
"B2B 부스 어디에 있어요?"
한국 게임업계 관계자가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였다.
지난해 푸토 체육관 실내 통로에 있던 B2B 부스가 올해는 전시관 안에 들어왔다. 형식적으로는 개선됐지만, 실질적 접근성은 오히려 떨어졌다. B2B 공간을 가리키는 표시가 없었고, B2C 공간과 크게 구분되지 않아 찾기가 더 어려웠다.

올해 B2B 부스들은 전시관 맨 안쪽 일부 벽면을 따라 배치됐다. 모서리에 B2B 발표와 네트워킹 행사가 열리는 대형 부스가 있었다.
구글과 메타는 개발자 대상 부스를 운영했지만, 다른 B2B 부스와 달리 B2C 부스들 사이에 있었다. 한국계 아웃소싱 업체 '원유니버스'는 B2B 공간과 구글/메타 옆에 각각 하나씩 부스를 냈지만, 연기된 일정 탓인지 첫날은 텅 비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개선된 게임버스에서 B2B 영역은 여전히 가장 미흡한 부분이다. 지스타, 차이나조이, 게임스컴 등 글로벌 게임쇼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베트남 게임씬의 특성 탓이다. 하이퍼캐주얼 게임사는 구글이나 애플 플랫폼을 통해 바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VNG와 VTC 같은 대형 퍼블리셔는 자국 게임 퍼블리싱 비중이 높지 않다. 둘 다 B2B 부스를 따로 운영할 필요성이 적다.
게임버스를 글로벌 게임쇼로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해외 업계 파트너의 관심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이고 차별화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