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들은 명확한 규칙, 공정한 경고 그리고 항소할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지난 29일, 국제 게임 개발자 협회(IGDA)가 최근 스팀, itch.io 등 주요 게임 플랫폼에서 발생한 성인 게임 삭제 및 결제 거부 사태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개발자가 과도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IGDA는 합의되지 않은 행위, 강간, 근친상간 등을 제한하는 서비스 약관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규칙의 제한이 실제로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게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IGDA는 최근 정책의 변화는 비자, 마스터카드 등 결제 처리업체들의 압력에 크게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IGDA는 문제가 되는 행위를 패티시하는 콘텐츠를 용납하지 않지만 모호하거나 지나치게 광범위한 검열이 아닌, 명확하고 일관된 콘텐츠 정책을 지지한다며 금지된 콘텐츠와 함법적인 성인 표현을 구분하는 명확하고 자세한 지침과 조치를 취할 시에는 개발자에게 구체적인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최근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성인 게임에 대한 결제사의 규제 이슈가 화두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논란은 어디에서 출발했고, 현재 어떤 단계에 이른 것일까? 이슈의 추이를 정리해 봤다.
▲ 스팀에서 '성인 전용'으로 판매되고 있는 게임들. 설정을 통해 자신의 상점에 노출되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폰허브와 온리팬스에서 출발한 카드사의 규제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2020년~2022년 경 미국에서 발생한 성인 사이트 '폰허브'와 '온리팬스'와 관련한 논란이 꼽히고 있다.
당시 두 사이트에서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자료나 여러 성매매 자료가 거래되는 것을 유통 사이트가 암묵적으로 허가하고, 결제 단에서 차단되지 않았다는 폭로와 소송으로 큰 논란이 됐다. 이에 마스터카드와 같은 경우는 2021년부터 강화된 성인 콘텐츠 정책을 도입하면서 연령 및 신원 확인 시스템이 완비된 경우에만 결제를 허용하겠다는 기준을 설정했다.
결국 폰허브의 경우 카드사의 차단으로 전자 결제 수단이 막히며 점유율을 크게 잃을 정도로 큰 피해를 봤다. 폰허브는 구조조정 후 수많은 영상 자료를 삭제하고 운영 정책을 개편했지만 현재도 결제사들은 폰허브에 대한 카드 결제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물에 대한 논란과 결제사의 규제는 게임 쪽으로도 퍼져나갔다. 2024년 경부터 일본의 DLsite, FANZA 등 성인 콘텐츠를 포함한 다수의 일본 플랫폼에서 한꺼번에 비자나 마스터카드 결제가 제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명확한 이유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위에서 시작된 이슈가 영향을 끼친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비자의 일본 지사 대표는 관련해 "때로는 브랜드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을 거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결제에 어려움을 겪게 된 플랫폼들은 우회 결제를 권장하거나, 심각한 경우 서비스를 중단했다. 일러스트 사이트인 '픽시브'의 경우 해외 이용자의 성인물 열람을 금지하는 강수를 뒀다. 결제사들의 성인 게임에 대한 차단 조치는 게임 플랫폼으로까지 번나갔는데, 이미 2025년 1월 스팀에서 성인 게임을 판매하는 일본 개발자가 수익을 송금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미 2024년부터 일본에서는 카드사의 성인 게임에 대한 결제 차단 등이 논란시되고 있었다. (출처: X) .
# 게임 플랫폼으로까지 퍼져나간 규제와 논란
성인 게임 유통과 관련해 현재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플랫폼은 '스팀'과 'itch.io' 두 개다.
먼저, 밸브의 PC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에 성인 게임이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2018년이다. 당시 밸브는 기존의 '그린라이트' 제도를 폐지하고 '스팀 다이렉트' 제도를 도입했고, 이로 인해 이전까지 극소수에 불과했던 성인용 게임의 스팀 출시가 증가했다. 다만, 밸브는 미성년자 성 착취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게임들에 대해서는 상점에서 제거하는 등 선별적인 규제를 유지했다.
2020년에는 규제가 완화됐다. 밸브는 "소비자의 자유로운 게임 선택권"이라는 스팀의 설립 원칙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거나 노골적인 악성 행위'를 제외한 모든 게임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12월에는 스팀에 성인 전용 게임 섹션이 신설됐다. 이에 일본의 DLsite 등 특정 플랫폼에서만 유통되던 게임이 스팀에 대거 진출하며 성과를 보기 시작했고, 성인 게임을 전문으로 유통하는 퍼블리셔가 수많은 팔로워를 끌어모으기도 했다.
'itch.io'(잇치 닷 아이오)는 2013년 설립된 유명 인디게임 유통 사이트다. 누구든 자신이 개발한 게임을 사이트에 간단하게 업로드할 수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며, 플랫폼과의 수익 분배율을 개발자가 자유롭게 조정 가능하다. 덕분에 실험적인 인디게임이 선호하는 플랫폼이며, 테스트 단계의 게임이 사이트에서 itch.io에서 반응을 본 후 스팀을 통해 정식 출시하는 사례도 많다. 자유롭게 업로드가 가능한 사이트인 만큼 '성인 게임'도 알음알음 업로드돼 유통되고 있었다.
▲2018년 이후 스팀에 진출하는 성인 게임은 크게 늘어났다. (출처: steamDB) .
그리고 2025년 4월, 양 플랫폼에 출시된 <노 머시>라는 게임이 큰 논란이 됐다. '근창상간과 남성 지배에 초점을 맞춘 비주얼 노벨'이라고 설명된 이 게임은, 영국에서 공론화를 통해 피터 카일 기술부 장관이 공식적으로 스팀에 삭제를 요청하고, 여러 단체가 서명을 모아 스팀에 청원을 전달했을 만큼 이슈가 됐다. <노 머시>는 결국 두 플랫폼에서 삭제됐다.
이어 2025년 7월 16일, 밸브는 스팀에서 게임을 판매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방침을 안내하는 '스팀웍스'에 스팀 게임 구매, 자금 충전 등 결제 처리업체 및 카드 네트워크, 은행, 인터넷 네트워크 제공업체가 정한 규칙 및 표준을 위반할 수 있는 콘텐츠를 게시하지 못한다는 조항을 업로드했고, 발표 이후 스팀에서는 다수의 성인 게임이 제거됐다.
밸브는 다수의 해외 매체를 통해 "최근 스팀의 특정 게임이 당사의 결제 처리업체와 관련 카드 네트워크 및 은행에서 정한 규칙과 기준을 위반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따라서 해당 게임의 판매를 중단했다"라며 결제사의 요청으로 성인 게임을 삭제한 것이라고 밝혔다.
▲추가된 조항.
'itch.io'의 경우에는 더욱 큰 피해를 봤다. itch.io는 성인 게임을 다수 삭제하거나 대부분 검색되지 않도록 조치한 후 "4월 사이트에서 일시적으로 이용 가능했던 <노 머시>라는 게임이 삭제된 사건과 관련해, 콜렉티브 샤우트라는 단체가 스팀과 저희 사이트를 상대로 캠페인을 시작해 두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특정 콘텐츠의 특성에 대한 우려를 결제 처리 업체에 전달했다"고 했다. "이어 결제 처리는 저희 플랫폼의 모든 크리에이터에게 중요하며, 결제 인프라 보호를 위해 긴급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28일, itch.io는 업로드가 자유로운 개방형 플랫폼이자, 스팀에 비해 규모가 작기에 보다 결제사의 규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itch.io는 현재 스팀과 같은 조항을 추가한 후 '스트라이프'와 '페이팔'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며 "이러한 유형의 콘텐츠를 더 적극적으로 다룰 의향이 있는 다른 결제 처리업체"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언급된 '콜렉티브 샤우트'라는 단체는 호주의 반(反)포르노 시민단체다. 콜랙티브 샤우트는 스팀와 itch.io의 조치가 이루어진 이후 "승리"라고 표현했다. 이어 "저희는 몇 달 동안 스팀에서 <노 머시>와 같은 강간 및 근친상간 관련 게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몇 달 동안 요청을 무시당했다. 스팀이 응답하지 않아 결제 처리 업체에 문의해 서한을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콜렉티브 샤우트는 이전에도 호주 대형 마켓에서 <GTA 5>의 판매를 금지하거나, <디트로이드 비컴 휴먼>에 아동 학대 장면이 포함됐다며 호주 내 판매를 금지하자는 운동을 펼친 바 있다.
▲콜렉티브 샤우트 측은 타임라인을 업로드하며, 스팀이 <노 머시>를 차단해 달라는 자신들의 요청을 몇 달간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출처: 공식 홈페이지)
# 반대 움직임도 거세져
이처럼 성인 게임에 대한 규제 및 검열 논란이 이슈화되자 반대의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IGDA의 성명문이 대표적이다. IGDA는 문제가 되는 게임에 대해서는 명백히 반대하나, 결제사의 명확하지 않은 검열이 문제가 없는 성인 게임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명확한 지침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스팀에서 문제시되는 성인 게임을 퇴출해야 한다는 서명 운동이 힘을 얻었던 것처럼, 이를 반대하는 서명 운동이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미국 서명 사이트 'change.org'에서 20만명이 참여한 서명 운동은 "온리팬스와 같은 플랫폼은 실제 성적 학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는 신뢰할 만한 폭로와 소송에도 불구 최소한의 감독만 받으며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완전히 허구적인 묘사에는 신속하게 대응해 창작자를 차단하고 글로벌 검열을 하고 있다"라며 "특정 활동 단체가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어 "성인은 보고 읽고, 플레이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며 "누구나 자신에게 불쾌함을 주는 콘텐츠에 참여하도록 강요받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무엇을 즐길 수 있는지 결정할 권리는 없다. 결제 처리 업체와 사회 운동 단체가 디지털 시대의 문화 문지기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관련 서명 운동 (출처: change.rog)
성인 게임에 대한 결제사의 광범위한 검열이 오히려 소수자들을 차별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영국 매체 PC 게이머가 인터뷰한 몇몇 성소수자 개발자는 "성인 콘텐츠를 소비하고 즐기는 여성들도 많다. 성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여성들도 아주 많다. 그리고 그들은 노고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 여성들을 수입원과 시청자로부터 차단하는 것은 그들을 '보호'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극단적인 사례를 내세워 보수 단체가 소수자를 탄압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했다.
이들은 반대의 경우처럼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개발자는 "콜렉티브 샤우트가 단 1,000명의 사람들로 이러한 행동을 촉발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한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 명확한 룰 정해지는 하나의 계기 될까?
이번 결제사의 성인 게임에 대한 결제 거부 사태가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993년 <모탈 컴뱃>과 <둠>으로 촉발된 게임의 폭력성 논쟁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게임의 폭력성과 검열에 관한 논란은 ERSB(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등급 위원회)가 발족하며 게임에 대한 자율 심의 제도가 생겨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몇 년간 스팀 등을 통해 성인 게임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던 것은 분명 사실이다. 스팀 통계 사이트 'steamDB'에 따르면 스팀에서 '성인용 콘텐츠'를 포함한 게임은 2015년 3개에서 2024년 1,383개로 늘어났다. 수요가 늘어난 만큼 판매량도 늘어나는 추세였는데, 몇몇 게임은 출시 하루 만에 5만 장을 팔았다고 밝혔으며, 일본의 DLsite와 같은 사이트에서만 유통되다 스팀에 진출한 후 큰 상업적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상업적 성과가 알려지며 성인 게임의 스팀 진출은 더욱 가속화됐다.
이에 단순한 성적 노출을 넘어 고어 혹은 료나(물리적 괴롭힘을 보며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것) 같은 비교적 마이너한 소재를 다룬 게임이 상점에 노출되며 커뮤니티에서 토론이 발생하는 사례도 있었다. 조심스레 추측해 보자면 스팀에서 성인 게임이 완전히 판매 중단되는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 아닌 한 이번 사태를 통해 '어떤 게임이 문제인지', '어떤 게임이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보다 명확한 규정이 생기거나 '성인용 게임'에 대한 출시 허가가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스팀은 기존에도 '게시할 수 없는 콘텐츠'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었으며, 성인용 콘텐츠의 경우 일반적인 검토보다 조금 더 까다롭게 심사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