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로그라이크’ 장르의 역사를 논하다 보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들이 있다. 바로 <하데스>와 <뱀파이어 서바이버즈>(이하 뱀서)다. 두 작품 이후 이들이 남긴 유산을 자신들 나름의 분위기와 템포로 재해석하려는 셀 수 없이 많은 시도가 이어져 왔다. 하지만 두 인디 팀이 세운 성은 너무나도 높고 튼튼해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유의미한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들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난공불락이란 말 뒤엔 언젠간 그 공고했던 성에 균열이 갔다는 결말이 뒤따르곤 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인게임즈가 개발 중인 <엠버 앤 블레이드>는 눈길을 끄는 도전자 포지션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국산 게임 중에선 매우 드물게 ‘감각적인’ 플레이 환경에 신경을 많이 쓴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단순히 아트와 스킬 이펙트만 예쁜 것이 아닌, 플레이 내내 캐릭터들의 독백과 대화로 플레이어의 귀를 사로잡기도 하고, 스킬 선택지를 주는 캐릭터들의 디자인도 걸출했다.
스팀에 정식 데모가 공개되기 전에, <엠버 앤 블레이드>의 데모 빌드 중 일부를 먼저 플레이해볼 수 있었다.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운 장르 안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족적을 남기는 작품이 될 수 있을지, <엠버 앤 블레이드>의 첫걸음을 함께 따라가보자.
# 손이 안 바쁠 것 같은데 매우 타이트한 게임
먼저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기자들이 라인게임즈에 방문해 체험한 버전은 ‘데모’ 중에서도 일부 빌드였다는 것이다.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영역들도 많으니, 전해들은 개발 방향성을 함께 고려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려 한다.
<엠버 앤 블레이드>는 <하데스>와 <뱀서> 중엔 <하데스> 쪽에 훨씬 더 가까운 게임이다. 카메라가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 주인공에게 매우 많은 다수의 적들이 몰려 온다는 점은 <뱀서>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필드 탐색과 함께 스킬을 늘려 보스에게 도전하는 과정, 캐릭터 디자인, 스킬과 액션의 스타일은 <하데스>에 훨씬 가깝다.
미디어 시연은 PC 버전을 게임 패드로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긴 시간 동안 몬스터를 계속해서 상대해야 하는 구조에 맞춰 공격 버튼을 연타하지 않고 꾹 누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연속 공격이 가능한 점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조작이 여유로운 건 절대 아니다. 체력 관리가 꽤나 까다로운 편에 속했기 때문에, 최대 2회까지 충전되는 구르기(회피)를 포함해 이동 조작을 바쁘게 해줘야 한다.
주인공 ‘펜릭스’와 함께 다니는 ‘루미’가, 쿨타임은 길지만 체력을 서서히 회복해주는 스킬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또한 화면에 보이는 적들을 한 번에 공격할 수 있는 필살기 또한 적절한 타이밍에 활용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주인공인 악마 사냥꾼 '펜릭스'
일반 전투 장면
필살기 사용 장면
‘펜릭스’라는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불사의 능력을 가진 ‘악마사냥꾼’으로 대검과 석궁을 사용한다. 플레이어가 공격 버튼을 조작할 때는 대검으로 공격하며, 적과 거리가 조금 있는 상태에서 공격 버튼 조작을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석궁(보조 무기) 공격을 한다. 몇몇 상황에서는 패링 또는 반격을 할 수 있는 QTE와 비슷한 상황도 연출된다.
<하데스>가 ‘신’들을 만나며 스킬을 얻는 전개를 보여줬다면, <엠버 앤 블레이드>는 ‘천사’를 구해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검의 천사 미카엘은 거대한 검을 내리 꽂거나 검으로 방벽을 만들어주는 등의 스킬을 주고, 락(Rock)의 천사 우리엘은 파동을 활용한 공격과 전투의 템포를 끌어올려주는 스킬을 준다. 불의 천사 세라피엘은 메테오를 포함해 불의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준다.
락의 천사 '우리엘'
이렇게 습득하는 스킬들은 별도 키에 배정되는 방식이 아닌, 조건부로 저절로 사용된다. 메인 무기, 보조 무기를 사용할 때 발동 또는 적을 몇 회 이상 타격했을 때 발동 등 각기 다른 조건이 붙고 쿨타임도 다르다. 하지만 스킬을 습득해도 손이 바쁘고 적을 상대하기 까다로운 건 여전하다.
여타 뱀서류 게임들이 다른 스킬을 여럿 보유할수록 스킬끼리 쿨타임을 보완해줘서 유리해지는 구조를 가진 경우가 많은 반면, <엠버 앤 블레이드>는 ‘하나’의 스킬을 계속해서 찍는 게 훨씬 더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처음엔 이런 스킬 중복 강화의 효능이 잘 느껴지지 않지만, 몇 차례 강화하다 보면 공격력 및 범위 등 스킬의 상세 스펙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
문제는 중간보스들과 액트 1의 최종 보스 모두 체력이 매우 높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스킬을 매우 높은 타점까지 강화하고 가지 않으면 상대할 수 없는 밸런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개발팀에게 앞으로 몇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의 스킬을 기하급수적으로 강화하는 스타일을 유지하되, 강화 단계마다 수치적 상승 외에도 범위와 이펙트 변화도 더 확실하게 느껴질 수 있게 만들기.
여러 스킬을 고르게 찍는 빌드와 밸런스를 어느 정도 맞추면서, 다른 시너지에 대해 추가로 고려해보기.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정식 빌드엔 있을 것이라 예고된 ‘로그라이트’ 영구 성장 요소 및 다른 무기 세트를 활용하는 시스템에서 지금 같은 단일 스킬 강화 외에 다른 해법을 보여주기.
왜 단일 스킬을 계속 찍었을 때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고 했는지 대미지 수치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현재 빌드엔 공개되지 않았지만 개발 일지를 통해 엿볼 수 있던 '로그라이트' 영구 성장 요소
전투 밸런스는 ‘펜릭스’가 보스를 공격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보스가 ‘펜릭스’를 공격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으로 보였다.
장판 표시 및 사전 동작으로 보스 패턴을 미리 인지하고 반응할 수는 있었으나, 보스의 공격 타이밍은 생각보다 빠르고 범위는 넓어서, ‘펜릭스’의 구르기를 제때 사용하지 않으면 피격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구르기는 충전 횟수가 제한되어 있고 천천히 충전되기 때문에, 거리조절을 잘 하며 ‘체력 회복’ 및 ‘필살기’, ‘구르기’가 충전될 때까지 버티는 전략도 병행해야 했다.
여기서 장애물로 작용한 것은 중간보스전 중에도 다른 자잘한 적들이 우르르 함께 몰려든다는 점이었다.(액트 1 최종 보스 때는 1대1로 싸운다) 중간보스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어떤 공격을 가하려 하는 것인지 시야에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때도 있었기 때문에, 중간보스의 패턴 사이에 잡몹들을 어느 정도 처리해두거나, 몹이 적은 빈 곳을 향해 뛰어가 버틸 시간을 확보하는 방식 등이 활용됐다.
결과적으로, 매운맛을 지향하는 것은 좋으나 <엠버 앤 블레이드>의 정체성을 어떤 플레이에서 찾을 것인지, 어떤 세련된 방식으로 밸런스를 잡을 것인지, 어느 정도의 난도로 재미를 줄 것인지 노선을 더 확실히 정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런 피드백을 받기 위해 진행하는 데모 공개인 만큼, 게임의 발전 방향성도 기대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중간보스 전투 중 잡몹들도 함께 상대하는 장면
# <엠버 앤 블레이드>의 '감각적인' 분위기
아직 초기 데모 빌드라는 점과 시스템 중 일부만 공개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전투는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측면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버 앤 블레이드>가 괜찮은 게임으로 거듭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시청각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하데스>와 닮은 듯하면서도, <엠버 앤 블레이드> 특유의 색채를 뿜어내는 아트가 일단 눈길을 끈다. 개발진은 개발 일지를 통해 <AFK: 새로운 여정>의 스타일에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는데, 확실히 특유의 수채화 같은 색감과 텍스쳐가 잘 전해졌다.
적들의 디자인이나 필드의 오브젝트도 ‘악마’를 잡는다는 설정에 어울리는 편이었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어둡고 선혈이 낭자한 그런 스타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적정 수준에서 기괴하고 거부감이 들게 설정되어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보이스’ 연기가 플레이 내내 함께 한다는 점이었다. 조작 사이의 틈이 짧은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귀에 계속해서 음성 연기를 전달하는 게 개발자 입장에선 사실 쉬운 선택이 아니다. 연기가 어설프거나 말을 전하는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나도 불필요한 방해되는 요소로만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엠버 앤 블레이드>의 음성 연기는 나쁘지 않은 퀄리티를 가지고 있었고, 세계관과 플레이어의 지향점을 알려주는 본래의 의도도 잘 전해진 편이었다. 슈퍼자이언트 게임스가 이제는 <하데스> 개발사로 명성을 드높이고 있지만, 개인적으론 그 이전에 내놓았던 <트랜지스터>의 분위기가 정말 손에 꼽히게 세련됐다고 생각하는데, <엠버 앤 블레이드>를 플레이하면서 좋은 의미로 <트랜지스터>의 음성 연기가 떠오르기도 했을 정도다.
액트 1 보스 바호메트
다만, 이 음성이 현재는 ‘영어’ 하나뿐이라는 게 유일한 흠이었다. 영미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눈과 손, 귀가 동시에 반응할 수 있겠으나, 리스닝 실력이 뛰어난 케이스를 제외하면 외국인 입장에선 ‘자막’을 함께 봐야 하는데, 전투 및 필드 탐색 과정에서 다른 정보량도 많아 이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해법은 ‘한국어’ 음성을 추가하는 것이겠고, 차선의 해법으로는 액션이 많은 구간과 음성 연기가 등장하는 구간을 분리하는 방법도 있다. 추후 개발진이 어떤 방식으로 이 매력을 재정비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캐릭터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세라피엘'
# <마비노기 2: 아레나>에서 <앰버 앤 블레이드>에 이르기까지...
여기까지 읽으시는 동안 ‘아무리 장르 대표작이라곤 해도 신작을 소개하면서 <하데스>와 <뱀서>를 이렇게 자주 언급해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을 하는 독자분들도 계실 텐데, 사실 기자보다 <하데스>와 <뱀서>를 먼저 언급한 건 <엠버 앤 블레이드>의 개발 일지(데브 로그)를 썼던 김주복 디렉터였다.
<엠버 앤 블레이드>는 꽤 재밌는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현재 라인게임즈 나인라이브팀에서 <엠버 앤 블레이드> 디렉터를 맡고 있는 김주복 디렉터는, 과거 데브캣에서 <마비노기 2: 아레나>의 테크니컬 디렉터를 지낸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마비노기 2: 아레나>는 안타깝게도 결국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게임이 됐지만 해당 프로젝트에서 지향했던 특유의 액션감과 아이디어를 살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개발 일지에서 그는 <하데스>와 <뱀서> 등의 게임에서 큰 영감을 받았으며, 로그라이트적인 반복 구조 안에서도 기억에 남는 스토리를 전하는 것, 서바이버라이크와 문법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소울라이크의 일부 요소를 담아 재미를 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언급했다. 개발 일지에서는 POC(프루프 오브 콘셉트) 단계에서 <프로젝트 NL>이라는 이름으로 개발했던 2024년 당시의 <엠버 앤 블레이드>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프로젝트NL>이라는 이름으로 초기 개발됐던 <엠버 앤 블레이드>의 POC 당시 모습
개발진은 <엠버 앤 블레이드>의 정식 출시 시점엔 메인 스토리만 15시간 이상 되는 작지 않은 볼륨으로 나올 것이라 예고했다. 일부 시스템만 공개된 상태에서도 세련된 아트와 분위기가 좋았던 작품인 만큼, 전투와 성장 시스템도 잘 갖춰 더 균형 잡힌 모습으로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려 본다.
<엠버 앤 블레이드>의 전투 콘셉트를 볼 수 있는 1시간 분량의 ‘데모’는 7월 17일 목요일 오전 중에 스팀에서 공개될 예정이며, 스팀 넥스트 페스트에서 콘텐츠를 보강한 데모를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2025년 연내 ‘얼리 액세스’ 출시, 2026년 글로벌 ‘정식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