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 시뮬레이션의 한 획을 그은 프린세스 메이커가 한국 개발사의 손으로 돌아왔다.
<아수라장>을 만든 디자드는 요나고 가이낙스와 협약을 맺고 시리즈의 주인공 '카렌'을 바탕으로 한 새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예언의 아이들>을 개발했다. 디자드는 해당 게임의 텀블벅 후원을 한 차례 진행했고, 지난해 도쿄게임쇼에서 한 차례 시연하기도 했다.
과거 투자 발표 자료에는 2025년에 게임이 정식 출시될 것이라고 나왔지만, 여느 게임이 그러하듯 연기가 결정된 듯하다. <프린세스 메이커: 예언의 아이들>은 지난 7월 4일 스팀에 얼리액세스로 출시됐다. 2편부터(당시 어린 기자는 1편을 해볼 길이 없었다) 이 시리즈를 아낀 입장에서 주저하지 않고 게임을 선택했다.
하지만 게임은 얼리액세스(앞서 해보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어딘지 모르게 많이 비어있었다. 짓다 만 집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프린세스 메이커는 딱 절반만 돌아왔다.
육성은 10세부터 13세까지 4년만 가능하다. 13살까지 아이를 키우면, 갑자기 '몇 년 뒤'라는 자막이 뜨더니 분위기가 바뀌고 엔딩이 나온다. 절반까지 키운 데이터를 기반으로 엔딩이 나오다 보니, 좋은 직업을 가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장 많이 본 엔딩이 백수였다. 금과옥조처럼 아껴 키운 딸이 백수가 된다니, 아버지/어머니의 노고를 게임으로 대신 느끼게 된다.
<프린세스 메이커 2>처럼 직업 엔딩과 결혼 엔딩이 구분되었고, 총 8명의 공략(…) 가능한 여성/남성 캐릭터 중 오직 2명만 게임에 등장했다. 이 게임에서는 직업 엔딩만큼 결혼 엔딩도 이 게임의 중요한 요소인데, 지금 버전에서 공략 가능한 2명의 캐릭터와는 4년 교류하고 고작 13살에 평생의 가약을 맺는다.
그래서 그런지 빌드업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계속 이어 나가다가 각 인물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면 특별 컷씬이 등장하고 결혼을 할 수 있게 되는 단순한 구조다. 조금 더 연애물 같은 빌드업이 있으면 좋을 듯하다. 이미 공략 가능한 캐릭터들이 디자드의 공식 채널을 통해서 공개된 만큼, 향후 큐브 엔딩이나 아빠 엔딩(기자가 그 엔딩을 바라는 것은 아니고…)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듯 게임에는 19종의 직업 엔딩, 2종의 결혼 엔딩, 16종의 바캉스 이벤트, 18종의 드레스, 1개의 탐험 지역만이 공개되어 있다.
정식 출시 시점에는 60개의 엔딩이 추가될 예정이라고 한다. 퍼센트로만 따지면 육성 요소는 50%, 엔딩은 31%만 추가가 된 상태에서 유료로 판매를 시작한 셈이다. 기자가 가장 즐겨 하는 수확제에서는 요리대회 하나만 실려 있었으며, 무사수행의 탐험 지역 또한 어떻게 마무리를 볼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구색을 갖춘 모델하우스가 아니라 짓고 있는 집에 돈을 내고 들어온 느낌이랄까? 몇몇 아르바이트의 그래픽은 아직 구현되지 않았고, 필드에서 마법이나 아이템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마력을 최대치인 499를 올려도 마법기술 하나 날릴 수 없었다.
민첩을 499 찍어도 공격에서 이점을 얻는지, 도망 확률이 올라가는지 알 수 없었다. 세계수가 있는 필드 하나만 등장하니 탐험할 것도 구멍을 통한 보물상자 획득이 전부였다. 질서와 혼돈 바로미터가 존재했지만, 절반짜리 게임이다 보니 효과를 볼 일이 없었다.
세계관에 대해서도 단서를 얻기 어려웠는데 '카렌'이 주인공으로 나왔으니까 인간계는 아닐 텐데(아마도 마계로 보인다), 세계에 대한 '떡밥'은 거의 풀리지 않았고, 왕국에서 만날 수 있는 NPC도 4명 뿐이었다. 당연히 개발 중인 게임이니 시스템 메시지처럼 기다려야겠지만, 내가 딸을 어떤 '프린세스'로 만들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게임 제목이 <프린세스 메이커>인데, 얼리액세스 버전에 프린세스 엔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족한 점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단연 IP에 대한 팬심이리라. 스팀을 운영 중인 밸브도 "새로운 게임을 발굴해 남보다 먼저 플레이하고, 게임이 진화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소개하고 있다. 게임이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프린세스 메이커: 예언의 아이들>의 진화 '포텐셜'은 대단히 높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일러스트야 IP홀더와의 계약 문제가 있을 테니 할 말이 많지 않지만, BGM은 조금 더 많이 넣는 게 좋을 것 같다.



<프린세스 메이커: 예언의 아이들>은 다회차 플레이를 의도한 듯하다. 엔딩 하나를 볼 때마다 플레이 결과에 따라서 '운명카드'를 지급하며, 다음 플레이 때 '행상인의 물건 할인', '성공 확률 증가'와 같은 버프를 얻을 수 있다. 각 엔딩마다 어떤 운명카드를 얻게 될지 기대가 되지만, 얼리액세스 버전에서는 한계가 명확했고, 작가 엔딩 카드 같은 경우에는 아리까리한 설명이 쓰여있어 이해가 어려웠다.
일러스트는 보기 예뻤지만, 게임 디자인은 그렇지 않았다. 딸의 능력치를 결정하는 별자리는 히든 요소인지, 아니면 게임 시작 전 고를 수 있는 특성인 '기운'에 통합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겨울에 동복을 입히지 않아도 특별한 마이너스가 체감되지 않았으며, 마왕 이벤트와 신앙심 스테이터스 같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지난 시리즈에서의 악마와의 거래 같은 이벤트나 던전의 출입을 막는 어린 드래곤 같은 소소한 재미도 거의 제거된 느낌이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색기' 같은 능력치는 새로 다루어지는 것이 맞을 텐데, 14세 이후로는 육성이 제한되다 보니 이 또한 마찬가지로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가 끊겼다지만, 나름의 전통이 있는 시리즈인데, 게임으로 볼 수 있는 게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무엇보다 지금 단계에서의 게임은 '딸을 키운다'는 감각을 받기가 어려웠다.
매달 딸과의 대화는 랜덤한 주제로만 가능했고, 딸을 시내에 데리고 나가서 교회에 헌금을 하거나 요리를 사먹는 이벤트도 없었다. 대신에 '농장' 시스템이 있었고, 그 농장에서 매번 100G의 재화를 얻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농장에 들어가서 일손을 거드는 이벤트는 아직 추가되지 않았다. 식당에서는 '요리' 능력치를 키울 수 없고, 이렇게 과거 시리즈에 존재하던 몇몇 능력치는 아예 제거됐다.
전사 평가, 예술 평가 등의 평가 지표는 끝까지 올릴 수가 없었고 그저 아르바이트-수업-휴식의 3박자 속에서 굴러갈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육성 게임이 아니라 '엔딩 카드 모으기' 게임 같은 느낌이 강했다. 39,000원이면 스팀에서 중간 정도의 가격을 받고 판매하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 단계에서의 게임은 갖춰져야 할 게 너무나도 많아서 당혹스러운 수준이다.
그저 팬심으로 기다려야 하는 입장으로서, 내년 정식 출시 때에는 시리즈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결과물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