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한 달 만에 스포티파이에서 55만 청취자를 기록한 사이키델릭 록밴드가 화제다. '벨벳 선다운'이라는 4인조 밴드는 6월 5일 첫 앨범을 낸 이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스포티파이의 큐레이터들은 이 밴드의 노래를 자신의 플레이리스트에 삽입하면서 이들은 깜짝 스타가 됐다.
그러나 '벨벳 선다운'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수상했다. 데뷔 1달 만에 55만 청취라면, 이곳 저곳에 얼굴을 비출 만한데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소속사에 대한 정보도, 투어 일정도 없었다. 밴드 멤버의 개인 인스타그램도 찾을 수 없었다.

스포티파이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벨벳 선다운은 AI로 창작된 결과물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지금 이 밴드의 음악은 생성형 AI로 만든 것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받고 있다. 밴드의 프로필 사진도, 음악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 속 모습들도 전부 인공지능으로 창작되었다는 것이다. 의심이 제기되고 나서야 밴드의 곡들이 사이키델릭 록치고는 너무 짧았고, 가사도 이상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벨벳 선다운'은 이 의심에 어떠한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만약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순위 조작을 넘어 AI가 창작한 음악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일본 야마하의 소프트웨어를 쓰는 ‘하츠네 미쿠’는 가상 아티스트이지만 제작 주체와 사용한 도구가 명확하다. 그와 달리 ‘벨벳 선다운’은 누가, 어떤 도구(Suno가 유력하다)를 사용했는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AI로 만든 음악을 스트리밍 서비스에 업로드하거나, 큐레이터가 이를 플레이리스트에 포함시키는 행위는 현재로선 불법이 아니다. 봇을 이용한 재생 수 조작만이 명확히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이러한 회색지대는 AI 창작물의 저작권, 크레딧 명시, 책임 소재 등에 대한 공백을 남기며 윤리적 논란을 확대시키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사재기의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예술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 밴드의 공연 사진
'AI를 어디까지 예술에 도입해도 되는가'라는 기술적, 도덕적 쟁점은 계속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이 문제는 정체불명의 아티스트를 넘어 메이저한 예술 분야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평단의 찬사를 받은 영화 <브루탈리스트>도 이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헝가리어 발음은 인공지능을 통해 수정되었다. 논란이 커지자 감독은 "AI를 발음 보정에만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명연기가 인공지능 보정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실망했다.

작년 골든글로브에서 3개 부문을 수상한 <브루탈리스트>. 이 영화의 헝가리어 연기에는 AI 보정이 사용되었다. (출처: UPI코리아)
게임은 어떤가? 챗GPT의 대인기로 AI를 쓴 게임이 우후죽순 생겨나자 밸브는 2024년 1월부터 스팀에 올라오는 게임의 AI 사용 여부 표시를 의무화했다. 최근 폴란드의 11비트 스튜디오는 신작 <디 얼터스>에서 AI의 도움을 받은 사실을 숨겼다가 게이머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11비트 스튜디오는 사과와 함께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 문제가 된 부분들을 수정할 것을 약속했다.

11비트 스튜디오의 SF 생존게임 <디 얼터스>에는 인공지능의 보조가 사용되었으나, 스팀 페이지에는 그 사실이 공개되지 않았다. 문제가 되자 개발사는 사과했다.
우리는 지금 'AI가 예술의 어디까지 들어와도 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기술은 계속해서 창작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AI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음악과 예술에 접근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시도되지 않았던 스타일과 형식이 새롭게 시도되고 있다. 감동이 반드시 인간의 손끝에서만 비롯된다는 고정관념까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감동의 기술적 재현이 가능하다고 해서, 창작의 맥락과 책임이 사라져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창작자에 대한 신뢰, 사용하는 도구의 투명성, 그리고 '인공지능을 사용했음'을 정직하게 밝히는 것은 기술이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소통의 길이다.
게임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결국 창작자가 수용자와 나누는 대화이다. 대화에서 거짓이 있었다면, 그 가치는 일정 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