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들이 온라인 레이싱게임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2004년 넥슨의 잘 나가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새 둥지를 차린 박종흠 개발실장과 그의 일당(?)들이 벌인 꿍꿍이가 이런 결과로 나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내로라 하는 스타개발자에 빗대자면 대중에겐 비록 낯설게 다가오는 인물이겠지만 게임업계 내공으로 치자면 ‘갑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보니 주변의 관심도 대단할 수밖에 없다.
박 실장이 <어둠의 전설>과 <택티컬 커맨더스> 그리고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만들며 넥슨의 역사를 그려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국민게임 <카트라이더>의 신화까지 이들의 손을 거쳤다는 대목에 이르면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비교적 조용했던 시작이었지만 이들은 예상보다 쇼킹한 기획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창창한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MMO레이싱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가시밭길'을 스스로 걷고 있는 ‘제이투엠’의 젊은이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걷는 길이 결코 고되지 않다는 표정으로 오히려 묘한 궁금증의 꼬리를 물게 만든다. 그래서 만났다. 늘 겸연쩍은 웃음을 짓지만 웃음의 의미가 더 묘연한 이유가 궁금했으므로.

제이투엠 소프트 박종흠 개발실장
◆ 왜 레이싱게임인가?
“그냥 다른 게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현실세계를 투영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열망이 컸습니다. SF라든가 판타지가 아닌 ‘익숙한’ 세상을 말이죠.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의기투합했죠.”
2004년 11월, 사표를 던지던 당시 머리 속으로만 그려오던 게임의 구상은 이미 끝났다.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그와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충분히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종흠 실장의 꿈은 <택티컬커맨더스>를 함께 만들던 대표와 <카트라이더>의 메인 프로그래머였던 기술이사와 함께 2004년 12월 구로디지털단지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비록 작은 둥지로 시작한 출발이었지만 지금은 18명에 달하는 동료들과 함께 제법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불과 1년 2개월 만에, 그들에게도 생소할 수밖에 없었던 온라인레이싱게임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잘 나가던 회사를 왜 그만두고 나가냐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죠(웃음). 오히려 그런 이야기 때문에 더 오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다들 정말 고생이 많았죠. 특히 서울 시내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발벗고 동분서주하던 디자이너 분들의 노고가 컸습니다.”
때문에 제이투엠의 게임개발은 ‘원화를 그리고, 모델링하고, 프로그래밍 하는’ 전통적인 프로세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띌 수밖에 없었다는 게 박종흠 실장의 설명이다.
“왠 노하우요? 노가다입니다(웃음).”

높지 않은 사양에서도 훌륭한 속도감을 보여주는 것이 개발 목표다.
◆ "극한의 리얼리티!" 2006년 서울의 완벽한 재현
눈 앞에서 펼쳐진 <레이시티>는 발상을 완전히 깨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얼핏 리얼레이싱을 추구하는 게임 같아 보이다가도 점프로 고가도로를 넘나들고 거리의 차량을 밀쳐대며 질주하는 모습은 단순히 공식웹사이트만 보고 유추한 컨셉을 완전히 뒤집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너무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서울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겠다는 것. 그게 <레이시티>의 1차 목표였습니다.”
현재 버전에서 게임에 구현된 강남, 서초구의 거리는 말 그대로 실제와 ‘거의’ 비슷한 형태로 구현됐다. 강남의 교보타워 사거리에서부터 골목 구석의 작은 치과, 심지어는 전자제품 매장 바깥에 붙은 광고포스터까지 매일 거리를 오가며 보았던 풍경이 모니터 앞에서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레이시티> 속에서 재현된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
더욱 놀라운 것은 강남권 일대가 모두 ‘로딩’이 없는 심리스 방식으로 구현돼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레이시티>는 서울 지역 곳곳을 아무런 제약 없이 달릴 수 있는 MMO 레이싱게임을 지향하고 있다.
이처럼 제약 없는 자유의 경험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선 온라인레이싱게임의 치명적인 제약이라고도 할 수 있는 ‘로딩’을 없애는 게 급선무였고 이들의 기획과 기술력은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모하게 출발했습니다. 그냥 지도 하나 놓고 카메라 들고 다니며 건물 사진을 찍은 뒤 그걸 일일이 모델링하는 작업을 반복했죠. 쉽지 않았던 일이지만 보람이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해야 할이 더 산더미지만 말이죠.”

서울 시내를 돌며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건물과 거리를 재현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창업자 세 명 모두 레이싱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개발진 대부분 게임의 ‘사실성’을 따지기보다는 ‘게임다운 캐주얼’을 추구하는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카트라이더>에서도 증명됐듯 또 이들의 이런 생각이 인기와 직결되는 비결이기도 했고.
“물론 리얼레이싱은 리얼레이싱 자체에 매력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레이시티>도 그러한 유저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이 덧붙여지고 있구요. 하지만 ‘게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과 똑 같은 그림 안에서 한번 펼쳐보고 싶었습니다. 동호대교에서 차로 다이빙을 하고 강남구청 뒤에 있는 치과 건물 위로 점프한다거나…(웃음)”
사양은 낮지만 퀄리티 만큼은 상당한 수준. 차량 한 대당 약 5,000 폴리곤을 이용한 <레이시티>는 유저의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기술구현을 통해 수많은 동시접속자 하에서도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부딪히고 들이받고 긁히고 점프하고~ <레이시티>는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이다.
모티브를 얻은 것은 과거 오락실에서 인기를 끌었던 종스크롤 방식의 레이싱게임. 빠른 스피드로 달리며 좌우측으로 왔다갔다 피하는 묘미를 <레이시티>에서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 박종흠 실장의 설명이다.
“인공지능 차량을 상당수 집어넣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단순히 유저들끼리 달리는 것보다는 이런 인공지능 차량을 요리조리 피하며 달리는 재미가 상당하죠. 물론 부딪쳐도 상관없지만 말입니다. ^^”
서울 시내의 구현은 강남구, 서초구의 대부분이 완료된 상태로 현재는 광화문에서부터 종로구간과 강북지역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서울시 전부를 게임 내에 구현하는 것은 유저의 집약도도 떨어지고 게임이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게 박종흠 실장의 설명이다.
“바로 인터랙티브한 퀘스트가 <레이시티>의 또 다른 강점이자 재미요소입니다.”

개발실 한 쪽 벽에 붙어 있는 강남 일대의 지도
◆ 퀘스트 시스템은 <레이시티>의 핵심
손님 수송, 버스 운전, 배달, 범인추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적을 부여하는 퀘스트 시스템은 <크레이지 택시>나 <그랜드씨프트오토>를 연상시키는 듯 여러 게임에서 재미요소를 가져온 느낌이다. 하지만 <레이시티>는 온라인이라는 특징을 십분 활용, 살아있는 퀘스트를 부여함으로써 유저들의 교류를 한층 강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차로 할 수 있는건 모두 해보자라는 컨셉이었습니다. 가령 한 유저가 어떤 물건을 배달하는 퀘스트를 수행 중일 때 다른 곳에서 그 유저의 임무수행을 방해하라는 퀘스트를 부여한다는 식이죠.”
콜택시조합이라든가 승객의 단체수송 등 유저들의 커뮤니티를 융합시키기 위한 요소 역시 주목할만한 <레이시티>만의 특징.
“가령 설연휴가 됐을 때 모 백화점에서 택배물량을 대량으로 쏟아내면 길드끼리 경쟁을 벌인다는 방식입니다. 길드끼리 택배를 보다 빨리 배달하는 경쟁을 할 수도 있고, 특정 멤버가 다른 길드의 수송을 방해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겠죠. <레이시티>의 재미요소는 이런 것에서 파생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퀘스트를 통해 쌓은 경험치와 캐쉬로 자신의 차량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새로운 차량을 구매할 수 있다. <레이시티> 개발팀은 이미 70대가 넘는 차량의 모델링을 끝낸 상태다.

<레이시티> 개발에 한창인 모습
◆ 올 여름 오픈베타가 실시된다?
“일단 4월 클로즈베타테스트를 시작으로 게임을 유저들에게 오픈할 생각입니다. 월드컵이라는 변수가 있어서 어떻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7월 오픈베타를 목표로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이죠.”
퍼블리셔 결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시작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궁금했다.
“사실 이 게임은 우리 개발팀 18명 외에는 정말 아무도 모르고 있던 ‘극비보안(?)’의 게임이었습니다. 무엇을 만드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퍼블리셔를 결정하는 것도 이상하고 퍼블리셔 입장에서도 이건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사실은 직접 서비스하고 싶다는 열망이 크지만 좀 더 지켜봐야겠지요? 물론 제가 할 몫은 개발이지만 말이죠.”
박종흠 대표는 <레이시티>를 만들며 자신이 한층 더 충만해짐을 느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레이시티>를 위한 시간은 그에게 많은 것을 안겨다 준 듯 했다.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합니다. 이것이 옳은 판단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시간이 있었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았을 일이었겠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게임을 만들어나간다는 것. 결코 쉽진 않은 일이었지만 제 인생에 있어 정말 좋은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신하고 싶습니다.”

강남역 사거리를 구현한 모습, 가게 간판이나 도로 표지판도 똑같다.
|
◆ 제이투엠 소프트
<택티컬 커맨더스>,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만든 박종흠 실장과 대표, <카트라이더>를 만들던 기술이사 등 넥슨 출신의 개발자들로 출발한 개발사. 지난 2004년 12월 자본금 3억 5,700만원으로 설립됐다. 현재 총 18명으로 1년 2개월간 MMO 레이싱게임 <레이시티>를 개발 중에 있다. J2M은 ‘Journey To Media’라는 뜻으로 온라인게임에서 출발해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회사로 성장하려는 비전을 뜻한다.
왼쪽 끝부터 방경민 대표, 박종흠 개발실장, 최영민 기술이사 |
|
◆ 박종흠 개발실장 약력
1996. 넥슨 입사
1997. <어둠의 전설> 프로그래머
1998. <택티컬 커맨더스> 메인 프로그래머
2001. <비엔비 크레이지 아케이드> 기획 및 총괄
2004. 11. 넥슨 퇴사
2004. 12. 제이투엠 소프트 설립 |


